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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린 인문학

'한국인의 인생을 바꾼 영성책' 베스트 1위는?

이번 여름휴가 때 읽어야 할 호린의 '인생 책'을 소개합니다

2026.07.31 |
from.
제나

구독자님은 살면서 전율을 느낀 책을 만난 적이 있나요? 저에게는 이 책이 그랬어요. 생각의 지평이 한 번에 확 열리는 느낌이랄까요. 평생 콘텐츠만 다뤄온 기획자의 눈으로 봐도, 이 책은 그야말로 다이아몬드였습니다. 모든 구절에서 엄청난 내공과 깊이가 느껴졌고, 동시에 그 모순 없는 논리정연함에 또 한 번 매료됐죠. 그 책이 바로 닐 도날드 월시(Neale Donald Walsch)의 『신과 나눈 이야기(Conversations with God)』입니다.

지금도 저는 속세의 삶에 너무 찌들었다 싶을 때, 인생의 지혜와 방향을 다시 찾고 싶을 때마다 이 책을 꺼내 읽습니다. 실은 지금도 한 달째 붙들고 있고요. 그런데 저 같은 한국인이 적지 않은가 봅니다. 얼마 전 이 책이 <한국인의 인생을 바꾼 영성책> 설문에서 당당히 1위로 뽑혔거든요. 사단법인 마인드랩, 명상맛집, 이너시티, 책추남TV, 힐링뉴스가 공동주최하고 한국리서치가 진행한 이번 조사에 무려 1,314명이 참여해, 자신의 삶에 가장 큰 영향을 준 영성책을 꼽았는데요. 1위가 바로 『신과 나눈 이야기』였습니다. 이번 뉴스레터에서는 이 책의 주옥같은 구절들을 여러분께 소개할게요.

 

구독자님, 이번 뉴스레터는 이런 내용으로 준비했어요!

  1. 신에게 항의 편지를 쓴 남자
  2. 신이 말하는 '이 세상을 창조한 이유'
  3. 신과 인간은 어떤 관계일까
  4. 신이 우리에게 준 '창조' 의 힘
  5. 신과 나눈 명상 이야기

 


신에게 항의 편지를 쓴 남자

 

한국인의 인생을 바꾼 영성책 베스트 1위가 '신과 나눈 이야기'이다
한국인의 인생을 바꾼 영성책 베스트 1위가 '신과 나눈 이야기'이다

여기서 말하는 '신'은 은유적인 신이 아니라 진짜 신이에요. 저자가 신과 직접 대화를 나눴다고 주장하는 내용을 그대로 엮은 책이거든요. '이 무슨 황당한 소리인가' 싶으실 거예요. 사실 저도 제목만 들었다면 사이비 교주가 쓴 책 아니냐며 쳐다도 안 봤을 겁니다.

그런데 제가 개인적으로 존경하는 서울대 종교학과 성해영 교수님이, 이 책을 '꼭 읽어봐야 할 영성책'으로 유튜브에서 소개하시는 걸 우연히 보게 됐어요. 강렬한 호기심에 바로 주문해 읽기 시작했죠. 그리고 이 책은, 제 세계관을 완전히 뒤집어놨습니다.

 

『신과 나눈 이야기』는 놀랍게도 한 남자의 밑바닥 이야기에서 시작됐습니다. 때는 1992년 봄, 부활절 무렵. 저자 닐 도날드 월시의 삶은 최악이었어요. 결혼이 파탄 났고, 얼마 전엔 교통사고로 목을 다쳤습니다. 회복한 뒤에도 일자리가 없어 오리건주의 한 온천 근처에서 텐트를 치고 빈 깡통을 주워 팔아 끼니를 해결하고 있었죠. "내 인생은 모든 면에서 실패한 것 같았다"는 그의 고백은, 정말 현실에서 나온 말이었습니다.

그날도 그는 오래된 습관대로 노란 종이철을 꺼내 편지를 쓰기 시작했어요. 다만 이번엔 상대가 사람이 아니라 신이었습니다.

내 인생은 순탄하게 굴러가지 않는 겁니까? 잘 굴러가게 하려면 대체 뭐가 필요하단 말입니까? 어째서 나는 다른 사람들과 행복하고 즐거운 관계를 가질 수 없는 겁니까? 필요한 만큼의 돈을 만져보는 일 같은 건 내 평생 한번도 없을 거란 말입니까?

원망과 비난으로 가득한 분노 어린 질문이었죠. 그런데 마지막 질문을 휘갈기고 펜을 내던지려는 순간, 그의 손이 종이 위에 그대로 붙들렸다고 해요. 마치 보이지 않는 힘이 붙잡은 것처럼요. 그러더니 펜이 저절로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더 쓸 생각이 전혀 없었는데도 어떤 생각이 흘러나왔고, 받아 적는 속도보다 대답이 더 빨리 나오는 바람에 마구 휘갈겨 쓰기도 했다는 거예요.

 

그렇게 받아 적은 원고가 바로 이 책입니다. 1995년 출간되자마자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 목록에 130주 넘게 머물렀고, 지금까지 37개 언어로 번역됐어요. 이후 여러 권으로 이어진 '신과 나눈 이야기' 시리즈의 첫 권이자, 많은 독자가 백미로 꼽는 바로 그 1권이죠.

이게 정말 신의 목소리였는지, 벼랑 끝에 선 한 사람 안에서 터져 나온 것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다만 제가 책을 읽으며 확신했던 것은 이것은 평범한 인간이 쓸 수 있는 내용의 범주를 벗어났다는 것이죠. 저자가 던지는 질문은 지극히 인간적인데 신의 대답은 그 스케일과 웅장함, 일관성과 철학의 깊이가 인간차원의 것이 아닙니다. 적어도 20년차 콘텐츠 기획자인 제 눈에는 그 사실이 아주 명징하게 보였죠. 실제로 그가 받아 적었다는 대답들은 저 뿐만 아니라 30년 넘게 전 세계 수많은 사람의 세계관을 뒤흔들었습니다. 특히 신은  '세상이 왜 생겨났는가'라는 우주적 질문에 놀랍도록 독창적이고 일관성 있는 대답을 합니다.

 

신이 말하는 '이 세상을 창조한 이유'

 

첨부 이미지

 

책 속의 신은 이렇게 말합니다. 창조주가 자신이 창조주임을 아는 방법은 단 하나, 창조하는 것뿐이라고요. 완전한 무언가가 자기 자신을 '체험'하려면 자기를 비춰볼 상대가 있어야 했기에, 신은 하나였던 자신을 무수히 나눴고 그 조각 하나하나에게 전체와 똑같은 창조력을 나눠줬다고 합니다. 그 신의 조각이 바로 인간이라는 것이지요.

내가 영적인 자식인 너희를 창조한 것은 나 자신을 신으로 인식하기 위해서였다. 나로서는 너희를 통하는 것 말고는 그럴 수 있는 방법이 없다. 그러므로 너희에 대한 내 목적은 너희가 자신을 나로 인식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렇게 해서 무로부터 모든 것이 솟아났다. 덧붙여 말하면 이것은 빅뱅 이론이라 부르는 것에 딱 들어맞는 영적인 사건이었다."


실제로 현대 우주론의 표준 모형은 약 138억 년 전, 상상할 수 없이 뜨겁고 밀도 높은 한 점에서 시공간과 물질이 함께 태어났다고 봅니다. 여기서 이 책의 가장 아름다운 논리가 나옵니다. 신은 사랑이 사랑으로 존재하려면 그 대립물도 함께 있어야 한다는 걸 알았어요. 어둠을 모르면 빛을 빛이라 부를 수 없듯이요.

"신은 사랑이 존재하려면, 또 자신을 순수한 사랑으로 인식하려면 그것의 대립물도 존재해야 한다는 걸 알았다. 그리하여 신은 자진해서 그 위대한 극단, 사랑의 절대 대립물, 곧 (…) 오늘날 두려움이라 부르는 것을 창조했다." 

신은 사랑과 그 대립물 사이의 이원성을 창조한 이 사건이 바로 인간들이 여러 신화들 속에서 악의 탄생이니 아담의 타락이니 사탄의 반란 따위로 표현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인간은 순수한 사랑을 신이라는 배역으로 의인화했던 것처럼, 비천한 두려움을 소위 악마라는 배역으로 의인화했다고요.

그런데 여기서 한 걸음 더 들어가면, 정말 중요한 질문이 남아요. 신이 우리에게 "너는 내 일부야"라고 그냥 말해주면 될 텐데, 왜 우리는 하필 이 고단한 물질세계에, 그것도 자신이 누구인지 까맣게 잊은 채로 태어났을까요.

"뭔가를 안다는 것과 그것을 체험한다는 건 전혀 다른 문제다. 영혼은 자신을 '체험'으로 알고자 갈망했다. 개념으로만 안다는 것만으로는 너희에게도 충분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래서 신은 순수한 영혼인 우리를 이제 막 창조된 물질 우주로 들여보냅니다. "물질성이야말로 너희가 개념으로 아는 것을 체험으로 알게 해주는 유일한 길"이었다는  거예요. 게다가 체험을 하려면 반드시 '나 아닌 것'이 필요하죠. 키가 작다는 걸 모르면 크다는 걸 알 수 없듯이요. 여기에 신은 가장 절묘한 장치를 하나 더 심어둡니다.

"너희는 물질계로 들어오면서 자신에 관한 기억을 지웠다. 덕분에 너희는 (…) 그냥 깨어나는 게 아니라 자신이 되는 쪽을 '선택'할 수 있게 한 것이다."

이미 다 알고 눈뜬 존재에게는 '선택'이 없으니까요. 그래서 이 책은 우리가 여기 온 이유를 이렇게 정리합니다. "이 지상에서 너희의 직무는 배우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재구성하는 것"이라고요. 새로 배우러(learn) 온 게 아니라, 원래 알던 자신을 다시 모아 기억하러(re-member) 왔다는 거죠.

 

신과 인간은 도대체 어떤 관계일까 

 

이 책을 쓰고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 닐 도널드 월시
이 책을 쓰고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 닐 도널드 월시

 

그렇다면 이 세계 속에서 신과 우리는 대체 어떤 관계일까요. 이 책의 대답은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지켜보고 상벌을 내리는 신'과는 꽤 다릅니다.

먼저, 이 책의 신은 세상일에 일일이 끼어드는 개입자가 아니에요. 오히려 '관찰자'에 가깝습니다. 우리에게 닥치는 사건들에 대해 신은 이렇게 말해요.

"나는 이런 사건들을 일으킬 생각이 없다. 나는 그저 너희가 그렇게 하는 걸 관조할 뿐이다. 그리고 나는 그런 사건들을 막을 일도 하지 않는다. 그렇게 하는 것은 너희 의지를 방해하는 것이고 너희의 신 체험, 곧 너희와 내가 함께 선택한 체험을 도로 빼앗는 것이 되기에."

얼핏 차갑게 들릴 수 있지만, 그 바탕엔 오히려 깊은 신뢰가 깔려 있어요. 신은 우리를 통제하는 대신, 우리와 '함께 일하는' 쪽을 택했다는 겁니다. 책은 이 관계를 신과 인간의 합작품, 나아가 동업 관계라고 표현해요.

"내가 여기서 합작품이란 표현을 쓰는 이유는 너희 모두가 나와 더불어 그 계획에 참여하고 있기 때문이다. (…) 이 동업 관계를 이해하겠는가? (…) 그것은 신성한 협력, 참으로 성스러운 교섭이다."

그리고 이 동업자는 놀랍게도 우리를 심판하지 않습니다. 이 책의 신은 벌하는 신도, 두려워해야 할 신도 아니에요. 누구도 심판하거나 정죄하지 않는다고 분명히 말합니다. (책 속의 신은 십계명도 언급하며 원래는 그런 뜻이 아니었다고 합니다.) 한발 더 나아가, 이 생(生)이라는 게임에서 우리가 지는 일은 없다고까지 해요.

"너희는 조건 없이 사랑받는 게 어떤 건지 잊어버렸다. 신은 너희를 조건부로 받아들이며 따라서 궁극의 결과는 불확실하다는 그 첫번째 거짓말에서 너희가 항상 거기에 있는 신의 사랑에 기댈 수 없다면 대체 누구의 사랑에 기댈 수 있단 말인가? ... 너희가 가고 있는 곳에 이르지 않을 방도는 없다. 신이 너희의 표적이라면, 너희는 운이 좋다. 신은 너무 커서 절대로 놓칠 리 없을 것이기에."

기독교인은 아니지만 죽음 뒤의 세계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 있었던 저로서는 이 구절들이 뭉클한 위로이자 혁명적인 서사로까지 들렸습니다. 물론 심판도 지옥도 없다는 대목은 이 책이 기독교 신학계와 가장 크게 부딪치는 지점이기도 합니다.
(물론 '심판이 없다'는 말이 '아무렇게나 살아도 된다'는 뜻도 아닙니다. 심오한 이 내용은 원문을 꼭 읽어보시길 바래요.)

신이 우리에게 나눠준 '창조'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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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여러번 읽다보면 유난히 자주 반복되는 단어들이 있습니다. 체험, 그리고 창조라는 말들이죠. 신은 물질세계를 창조한 것이 우리가 생각과 말, 특히 체험을 통해 자신안의 신성을 발견하기 위해서라고 여러차례 강조합니다. 신이 창조주이듯, 우리에게도 창조의 힘이 있다는 것입니다. 

"삶은 발견이 아니라 창조다. (…) 너희는 순간순간 너희 현실을 창조하고 있다. 아마 그것을 의식하진 못하겠지만."

그런데 이 창조는 정확히 어떤 단계를 밟아 이뤄질까요. 책은 창조가 세 가지 도구를 거쳐 흘러간다고 말합니다. 바로 생각, 말, 그리고 행동이에요. 먼저 모든 창조는 생각에서 시작됩니다.

"생각은 창조의 첫 단계다. 네 인생을 '도약하게' 하려면 먼저 그것에 대한 자신의 생각이 아주 명확해져야 한다. 자신이 되고 싶고 하고 싶고 갖고 싶은 게 무엇인지 생각하라. 자꾸자꾸 생각하라.

그 다음은 말이에요. 말은 밖으로 표현된 생각이고, 생각보다 더 큰 힘으로 세계를 흔든다고 합니다.

"말에는 창조력이 있고, 말은 창조 에너지를 우주 속으로 내보낸다. 말은 생각보다 더 역동적이다. (…) 말은 생각보다 더 강한 충격으로 우주를 뒤흔든다."

그리고 마지막이 행동입니다. 여기서 이 책의 정수가 나와요.

"행동은 움직이는 말이다. 말은 표현된 생각이다. 그 끝은 행동이다. 행동은 창조하는 신, 즉 체험된 신이다."

생각에서 출발한 창조가 행동에 이르러 완성되는데, 그 완성된 자리를 책은 '체험된 신'이라 부릅니다. 왜 이렇게까지 행동과 체험을 강조할까요. 바로 여기에 이 책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이 있어요. 생각·말·행동이라는 세 에너지가 합쳐져 최종적으로 만들어내는 단 하나의 결과, 그게 바로 체험이거든요.

그러니까 창조의 진짜 목적은 자신이 누구인지를 개념이 아니라 '체험'으로 살아내는 데 있다는 거예요. 앞에서 이 책이 "삶은 학교가 아니다"라고 했던 것도 같은 맥락이죠. 머리로 아는 것만으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으니까요.

"네가 자신의 관대함을 알 수는 있다. 하지만 자신의 관대함을 펼치는 뭔가를 하지 않는다면, 너는 오직 개념만을 갖고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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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지점에서 우리는 창조를 다시 이해하게 됩니다. 창조란 없던 물건을 뚝딱 만들어내는 마법이 아니라, 내 안에 개념으로만 잠들어 있던 '가장 위대한 나'를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해서 마침내 체험으로 깨우는 일이라는 것. 그 창조를 시작하는 스위치가 바로 우주에서 가장 강력한 두 글자, "나는(I am)"이에요. "나는" 다음에 무엇을 붙이느냐가 그 체험을 불러내 내게 데려온다는 거죠. 

그런데 이걸 '생각만 하면 다 이뤄진다'는 얕은 주문으로 오해하면 곤란해요. 이 책이 말하는 창조의 뿌리는 표면의 긍정적 사고가 아니라 그 아래 깔린 '받침생각'이거든요.

"인간의 모든 행동은 그 가장 깊은 단계에서 두 가지 감정 중 어느 하나, 곧 두려움이나 사랑에서 시작된다."

사랑에서 나온 생각이냐, 두려움에서 나온 생각이냐. 그 근본 태도가 창조 엔진의 진짜 연료라는 겁니다. 그래서 책은 부정적인 생각에 붙들린 자신을 발견하면 문자 그대로 "다시 생각하라(Think again)"고 말해요.

네 삶이 도약하길 바란다고? 그렇다면 지금 당장 네가 되기 바라는대로 네 삶을 그려보고 그 속을 옮겨가라. 그것과 조화를 이루지 않는 모든 생각, 모든 말, 모든 행동을 점검하라. 그런 것들에서 떨어져라. 네 고귀한 전망에 걸맞지 않은 생각을 하게 되면, 바로 그 자리에서 새로운 생각으로 바꾸라. 네 가장 위대한 이상에 어울리지 않는 말을 하게 되면 다시는 그런 말을 하지 않게끔 적어두어라. 네 가장 좋은 의도에 어긋나는 행동을 하게 되면, 다시는 그렇게 하지 않겠다고 다짐하라. 

 

신과 나눈 명상 이야기

 

그럼 이 창조의 힘과 실제로 만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월시가 "어떻게 해야 그것을 기억할 수 있느냐"고 묻자, 신의 대답은 놀랍도록 명상적입니다.

"고요히 있는 것에서 시작하라. 외부 세계를 가라앉혀라. 그러면 내면 세계가 네게 시야를 줄 것이다. 너희가 내면으로 가지 않는다면, 너희는 바깥으로 가게 되리라."

내면으로 들어가지 않으면 평생 바깥에서만 헤매게 된다는 이 말은, 사실상 명상의 정의 그 자체예요. 그리고 그 안에서 우리가 만나는 건 논리적인 생각이 아니라 느낌이라고 책은 말합니다. 느낌이야말로 영혼의 언어라고요. 저는 이 구절, "내가 내면으로 가지 않는다면, 바깥으로 가게 되리라"에 줄을 쳐놨습니다. 가끔 현실의 소음이 너무나 커질 때 저는 이 말을 늘 떠올립니다. 명상으로 들어가는 일종의 마법의 주문이 된 셈이죠.

 

사실 이 우주 탄생 이야기를 처음 읽었을 땐, 솔직히 충격이었어요. '신이 자신을 알기 위해 스스로를 나눴다니, 이런 발상이 가능한가' 싶었죠. 그런데 신기하게도 읽으면 읽을수록 어디선가 들어본 이야기 같더라고요.

알고 보니 이 책의 창조 이야기는 완전히 새로운 계시라기보다, 인류가 수천 년간 여러 전통에서 되풀이해온 아주 오래된 노래에 가까웠거든요. 하나였던 궁극의 실재가 자신을 알기 위해 여럿으로 나뉘고, 그 조각인 우리가 근원을 잊은 채 살아가다 다시 그것을 기억해 돌아간다는 뼈대 말이죠.

이를테면 힌두 베단타 철학은 유일한 실재인 브라흐만(Brahman)이 곧 내 참 자아이며, 우리는 '마야(Maya)'라는 베일 때문에 그 사실을 잠시 잊고 있을 뿐이라고 말합니다. 이슬람 신비주의 수피 전통에서 널리 인용되는 한 전언에는 "나는 감춰진 보물이었고, 알려지기를 원해 세상을 창조했다"는 구절이 있는데, 월시의 '신은 자신을 체험으로 알기 위해 창조했다'와 거의 같은 말이에요.

유대 신비주의 카발라의 '흩어진 신성한 불꽃을 다시 모은다'는 이야기, 노자 도덕경의 "도가 하나를 낳고 하나가 둘을 낳는다"는 구절까지 학자들이 '영원의 철학(perennial philosophy)'이라 부르는 이 커다란 그림 안에, 이 책도 나란히 놓여 있는 셈이죠. 

 

호린 피플 여러분, 오늘 우리가 함께 펼친 이야기를 딱 한 줄로 줄이면 이래요. 당신은 심판받는 존재가 아니라, 신과 함께 자신을 창조하는 동업자다. 우주가 사랑을 체험하기 위해 스스로를 나눴듯, 우리도 자신을 잊고 이 세계에 들어와 매 순간 생각과 말과 행동으로 자신을 다시 창조하고 있다는 것. 그리고 이를 알아차리는 지혜는 내면 안의 깊은 고요속으로 들어갈 때 열린다는 것이죠.  

 

사실 제가 소개한 것은 이 책의 아주 일부일 뿐입니다. 1권에는 특히 줄 치고 싶은 주옥같은 명문장들이 많아요. 한번에 이해 안되는 문장들도 많지만 읽을 때마다 새로운 것들이 보이고 신의 의도가 조금씩 이해되기 시작합니다. 이번 여름 휴가 때 영혼을 충전해줄 인생 책을 찾고 있다면 이 책을 권해드려요. 

호린이 시작된지도 어느덧 1년이 넘었는데요, 또 한번의 도약을 하기 위해 호린이 기율님과 새로운 성장 프로젝트를 준비하고 있어요. 2~3달 정도의 재정비 기간을 거친뒤 가을에 새로운 모습으로 찾아뵐게요.
뜨거운 여름날 건강히 잘 지내시고 여러분의 매일을 아름답게 체험하고 과감하게 창조하시길 고요히 명상합니다.

 

Holyn Lab은 영성인문학 연구팀으로 모든 종교를 존중하지만 특정 종교나 단체에는 소속돼 있지 않습니다. Holyn 뉴스레터는 격주 금요일에 발송되며 지금은 무료로 구독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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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밤하늘의별의 프로필 이미지

    밤하늘의별

    1
    약 21시간 전

    준비하시는 새 성장 프로젝트 기대 됩니다. 저도 인생 후반기에 새로운 장으로 도약하기 위해 정비중입니다. 그럴 수 있다는 기회에 감사한마음으로 내면에 집중하려고 합니다. 응원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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