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7월입니다. 2026년이 정확히 반으로 접히는 지점이죠. 연초에 다이어리 첫 장에 적어둔 계획들, 잘 지켜지고 계신가요? 사실 저는 올해 초, 엄청난 행운이 찾아온다는 얘기를 들어서 기대가 좀 있었거든요. 그러나 시간이 지나도 여전히 저의 행운은 어디서 뭘하고 있는지 찾아와 줄 생각을 안 하더군요. 실의에 빠져 있던 어느날, 저는 주변에서 유난히 '운 좋은' 한 사람의 비밀을 우연히 알게 됐습니다.
그가 가진 운이 너무 부러워서 그의 비밀을 곧장 따라 해보기로 했죠. 그런데 그 여정은 제가 전혀 예상하지 못한 곳으로 저를 데려갔습니다. 오늘은 '운'에서 시작해 아주 뜻밖의 운명 이야기로 끝난, 저의 경험담을 들려드리려 합니다.
구독자님, 이번 뉴스레터는 이런 내용으로 준비했어요!
- 유난히 '운 좋은' 사업가의 숨겨진 비밀
- 감사일기는 정말 효과가 있을까?
- 갑자기 날아온 '두 개의 부고장'
- 내가 오늘 이 세상에 없을 확률 0.0005%
- '오늘 하루는 결코 당연하지 않다'는 진실
유난히 '운 좋은' 사업가의 숨겨진 비밀
구독자님에게는 혹시 이런 사람이 있나요? 만날 때마다 기분이 좋아지는 사람. 딱히 대단한 말을 한 것도 아닌데, 그 사람과 만나면 저절로 에너지가 충전되는 사람이요. 저에게는 오래 알고 지낸 한 젊은 대표님이 그렇습니다. 나이는 마흔도 안됐는데 유통, 제조, 콘텐츠 등 다양한 사업을 하고 계신 분이죠. 그의 특징 중 하나는 생각도 말도 놀라울 정도로 긍정적이라는 것입니다. 그가 쓰는 가장 부정적인 말이 “그게 좀 쉽진 않죠” 라니 말 다했죠.
그런데 제가 옆에서 몇 년째 지켜보니, 그는 참 운도 좋더라고요. 손대는 사업마다 잘됩니다. 신기할 정도로요. 처음엔 그의 말마따나 ‘운이 좋구나’ 싶었는데, 생각해 보니 그럴 수밖에 없더라고요. 에너지가 좋고, 배려심 넘치고, 예의 바르고, 일 처리까지 깔끔하니 사업 파트너를 넘어서 인간적으로 돕고 싶고 응원하고 싶게 만듭니다.
그런데 얼마 전, 저는 그의 남다른 ‘운의 비밀’을 우연히 알게 됐어요. 생각지도 못했는데 알고보니 그가 ‘명상러’였지 뭐예요.
“저는 아침마다 명상으로 하루를 시작하는데 그 중에서도 주로 감사명상을 해요. 고마웠던 사람들, 감사한 일들을 떠올리며 마음속으로 ‘감사합니다’ 라는 말을 반복합니다.”
저는 이 말을 듣고 속으로 무릎을 쳤습니다. 사업이 잘되고 하는 일마다 운이 잘 풀리는 사람. 그 사람의 아침을 채우고 있는 게 다름 아닌 '감사'라니! 예로부터 스님들이 꼬인 운을 풀고 싶으면 감사기도를 하라고 했던 게 바로 이거였구나 싶었죠. 그의 빛나는 긍정 에너지의 원천을 마침내 찾아낸 것 같았습니다. 마침 호린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인 기율님도 비슷한 이야기를 한 적이 있어요.
“제나도 감사명상을 꼭 해봤으면 좋겠어요. 감사명상은 의외로 간단해요. 하루 종일 숨을 쉬면서 날숨에 ‘감사합니다’를 실어 보내는 거죠. 기분 좋을 때만이 아니라 화가 날 때도, 억울할 때도요. 처음에는 가식적으로 느껴지는데 계속 하다보면 우리의 뇌가 기어이 감사한 일을 찾아내요. 그렇게 일상에서 작은 감사를 발견하다보면 실제로 감사할 일들이 생겨납니다.”
감사일기는 정말 효과가 있을까?

그때는 ‘언젠가 해보면 좋겠지’라고 생각만 하고 넘어갔어요. 그런데 옆에서 감사명상의 ‘살아있는 증거’를 발견하자 의욕이 샘솟았습니다. ‘저 비밀을 내 것으로 만들고 싶다’는 욕망이 솟구쳤지요.
사실 감사일기와 감사명상의 효과는 이미 잘 알려져 있습니다. 한때는 다이어리 트렌드였고 지금도 많은 분들이 마음챙김(mindfulness)을 위해 잠들기 전 감사한 일 세 가지를 적곤 하죠. 종교가 있는 분들, 명상을 하는 분들은 감사명상을 수행의 일부로 삼기도 하고요.
그리고 이건 단순한 ‘기분 탓’이 아닙니다. 감사 연구의 아버지라 불리는 미국 UC 데이비스(UC Davis)의 심리학자 로버트 에먼스(Robert Emmons)와 마이클 맥컬로(Michael McCullough)는 2003년, 지금은 고전이 된 실험 하나를 발표했습니다.
참가자를 세 그룹으로 나눠, 한 그룹은 매주 '감사한 일'을, 다른 그룹은 '짜증 났던 일'을, 또 다른 그룹은 '그냥 있었던 일'을 기록하게 했어요. 결과는 꽤 분명했습니다. 감사한 일을 기록한 그룹이 삶에 더 만족했고, 다가올 한 주에 더 낙관적이었으며, 몸의 불편 증상을 덜 호소하고, 심지어 운동도 더 규칙적으로 해냈죠.
과학은 그 이유도 어느 정도 설명해줍니다. 감사의 감정에 머물 때 우리 몸은 긴장 모드에서 빠져나와 부교감신경계(parasympathetic nervous system)가 활성화되고, 분노와 불안이 가라앉는 쪽으로 기웁니다. 신경심리학자 릭 핸슨(Rick Hanson)은 이런 좋은 경험을 의식적으로 반복하면 "좋은 것을 받아들일 때마다 뇌에 새로운 신경 구조가 조금씩 만들어진다"고 말합니다. 감사가 실제로 뇌를 바꾸는 훈련이 될 수 있다는 거죠.
여기까지는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검증된' 감사의 세계입니다. 저도 딱 여기까지 알고 있었어요.
그런데 문제는, 이게 정말 쉽지 않다는 거예요. 비밀을 알아내고 의욕이 샘솟았던 것도 잠시, 저의 작심삼일 본능이 여지없이 올라왔습니다. 생각날 때 잠깐 하다가, 바쁜 일이 생기면 잊어버리기 일쑤였어요. 화가 나는 순간마다 날숨은커녕 한숨부터 나왔습니다. 눈앞의 당면한 상황과 감정에 빠져 감사는커녕 매 순간 일어나는 불안과 짜증이 저의 호흡을 압도했습니다.
갑자기 날아온 '두 개의 부고장'

그렇게 저의 감사명상은 제대로 시동도 걸지 못한 채 또다시 사그라드는 듯 싶었죠. 그런데 얼마 뒤, 저는 생각지도 못한 두 개의 문자를 받았습니다. 부고장이었죠. 하나는 서서히 다가온 죽음이었습니다. 제가 아끼는 지인이 남편을 떠나보냈어요. 여느 때처럼 건강하던 사람이 어느 날 췌장암 진단을 받았고, 겨우 6개월 만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췌장암은 초기 증상이 거의 없어 발견됐을 때는 이미 늦은 경우가 많다고 하죠. 그녀의 남편 역시 그랬습니다. 어제까지 평범하던 일상이, 진단서 한 장으로 카운트다운으로 바뀌는 걸 곁에서 지켜보는 일은 참담했습니다.
다른 하나의 부고장은 한순간에 닥친 죽음이었습니다. 30대의 평범한 회사원이었던 지인의 남동생이었습니다. 전날 늦게까지 야근을 하고, 다음 날 아침 여느 때처럼 출근하던 길에 잠깐의 부주의로 버스에 치이는 사고를 당했어요. 그렇게 허망하게, 단 몇 초 만에 한 사람의 세계가 닫혀버렸습니다. 그저 평범한 여느 아침에 벌어진 일이었죠.
하나는 6개월에 걸쳐 서서히, 하나는 몇 초 만에 속도는 달랐지만 두 사람의 죽음은 저에게 적지 않은 충격을 주었습니다. 그리고 미처 인지하지 못했던 한 가지 진실을 보여주었습니다.
‘세상에 그 무엇도 당연한 것은 없다’는 사실이요.
바로 어제까지 함께 저녁을 먹던 사람이, 내일도 당연히 곁에 있으리라는 것. 오늘도 어제처럼 아무 일 없이 출근하리라는 것. 우리는 그걸 조금도 의심하지 않고 삽니다. 하지만 그건 당연한 게 아니라, 그저 운이 좋았던 거였어요.
매일 아침 눈을 뜨는 것도, 저녁에 무사히 집에 돌아오는 것도, 건강검진에서 별일 없다는 말을 듣는 것도, 사실은 당연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실제 어제까지 멀쩡했던 사람이 갑자기 오늘 세상을 떠날 확률은 얼마나 될까요. 통계청 사망률로 30~50대를 기준 삼아 대략 계산해보면 이렇습니다.
갑작스러운 사고로 세상을 떠날 확률: 하루 약 0.0001% (100만분의 1)
질병으로 세상을 떠날 확률: 하루 약 0.0003~0.0004% (40대 기준)
둘을 합쳐도 하루 약 0.0005% 안팎, 즉 오늘 하루를 무사히 넘길 확률은 99.9995%
(딱 떨어지는 공식 수치라기보다, 연령별 사망률에서 '감'을 잡기 위해 추정한 숫자로 봐주세요.)
0.0005%는 언제나 100%가 될 수 있다

0.0005라니 얼마나 작은 숫자인가요. 그래서 우리는 이를 아예 없는 셈 치고 살아갑니다. 모든 걸 당연하게 여기죠. 그런데 분명한 것은 0.0005는 결코 0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지인의 남편에게는 그 질병 확률이, 지인의 남동생에게는 그 사고 확률이, 어느 평범한 날 갑자기 현실이 되어버렸으니까요. 우리는 매일, 그 작은 숫자를 무의식중에 아슬아슬하게 비껴가며 살고 있었던 겁니다.
그리고 개인에겐 이토록 작은 확률이, 사회 전체로 넓히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연령과 사인을 다 합치면 실제 우리나라에서는 매일 평균 약 980명이 실제로 세상을 떠나거든요.(통계청, 2024년 사망원인통계) 개인에겐 확률이지만, 전체에겐 어김없이 확정된 숫자입니다.
이는 마치 어릴 적 하던 수건 돌리기와도 같습니다. 둥그렇게 둘러앉아 노래를 부르는 동안, 누군가의 등 뒤엔 반드시 수건이 놓입니다. 우리가 사는 하루하루도 어쩌면 거대한 수건 돌리기가 아닐까요. 매일 누군가의 등 뒤엔 그 수건이 놓이고, 오늘 내가 무사한 건 잘나서가 아니라 그저 수건이 내 뒤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운 없이 죽음의 수건을 받아든 사람들의 소식을 듣습니다. 뉴스에서는 매일 나오고 드물게 내 지인 혹은 가족 중에서 발견합니다. 그렇다면 아무 일 없이 흘려보낸 오늘 하루, 980명 중에 들어가지 않은 오늘 하루는 따지고 보면 어마어마한 행운 아닐까요.
저는 여태껏 '지혜로운 사람'이란 지식이 많고 경험이 풍부한 스승들을 떠올렸습니다. 그런데 2년째 명상을 하며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진짜 지혜란, 뭔가를 더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이라고요.
우리는 대개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합니다. 각자의 아집과 불안과 강박이 눈앞의 세상을 왜곡시킵니다. 눈은 뜨고 있지만 마치 앞을 못 보는 사람처럼요. 그래서 모든 걸 당연하다고 여기고, 마땅히 누려야 할 것이라 착각합니다. 그런데 죽음은, 그 착각과 교만의 민낯을 여지없이 드러냅니다.
우리가 매일 숨쉬고 살아가는 이 시간 자체가 결코 당연하지 않다는 현실을요. 0.0005라는 숫자는 언제 어디서든 나의 100이 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언젠가 우리는 반드시 100%의 확률로 죽음을 맞이하지요. 이것은 인간으로 태어난 우리의 숙명입니다.
'오늘 하루는 결코 당연하지 않다'는 진실
그래서 저는 감사를 대하는 관점이 달라졌습니다. 감사란, 우리 삶을 지탱하는 디폴트 조건값을 정면으로 인정하는 것이라고요. 그 뒤부터 감사는 제게 좋은 운을 만드는 비밀이 아니라, '그 무엇도 당연하지 않다'는 진실을 매일 일깨워주는 일종의 의식이자 알아차림이 됐습니다.
영적 스승들은 이미 이 얘기를 수천 년 전부터 하고 있었습니다. 고대 로마의 스토아 철학자들은 '메멘토 모리(memento mori)', 즉 '죽음을 기억하라'를 매일의 수행으로 삼았습니다. 세네카(Seneca)와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Marcus Aurelius)는 아침마다 잃을 수 있는 것들을 미리 떠올리는 '불행의 예행연습(premeditatio malorum)'을 했어요. 지금 가진 모든 것은 잠시 빌린 것일 뿐이라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유대교에는 '모데 아니(Modeh Ani)'라는 아침 기도가 있습니다. 눈을 뜨자마자 침대에서 외우는 짧은 기도인데, 그 바탕에는 놀라운 전제가 깔려 있어요. 잠은 일종의 작은 죽음이고, 아침에 눈을 뜨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니라 매일 새로 '되돌려받은' 선물이라는 것. 그래서 하루의 첫 행위가 "감사합니다"인 겁니다.
불교에는 '마라나사티(maraṇasati)', 죽음을 늘 마음에 두는 수행이 있습니다. 역설적이게도 죽음을 또렷이 의식할수록, 지금 이 삶과 이 한 번의 호흡이 얼마나 소중한지가 살아난다고 해요. "우리의 삶이 소중한 건, 우리가 언젠가 죽기 때문"이라는 거죠.
현대에도 같은 목소리가 있습니다. 베네딕도회 수도자 데이비드 스타인들-라스트(David Steindl-Rast)는 이렇게 말합니다. "모든 것은 선물이다. 이 진실에 우리가 얼마나 깨어 있는가가 곧 감사의 크기이고, 그것이 곧 살아있음의 척도다." 그는 매 순간이 '주어진 순간'이며, 우리가 벌어들이거나 만들어낸 것이 아니고, 다음 순간이 또 주어지리라는 보장도 없다고 덧붙입니다.
'아무것도 당연하지 않다'는 진실을 매일 다시 마주하기 위해, 인류는 아주 오래전부터 '감사'라는 수행을 만들어 서로에게 물려주고 있었던 겁니다. 그래서 요즘 저의 감사명상은 조금 달라졌습니다.

저는 이제 아침에 눈을 뜨면 이렇게 되뇝니다.
'살아있음에 감사합니다.'
오늘도 0.0005%의 운명을 비껴가, 이렇게 하루를 선물 받은 것에 감사합니다. 그리고 매일 크고 작은 고통을 느낄 때마다 다시 디폴트로 돌아갑니다. 오늘 ‘살아있다’는 행운을 받았기에 이 고통을 느낀다는 것을 알아차립니다. 그러면 그 순간만큼은 마음속의 분노와 불안과 강박이 사그라드는 것을 느낍니다. 그 누구도 반박할 수 없는 삶의 근본 명제이기 때문이죠.
호린 피플 여러분도 오늘 하루 한 번 멈춰서 생각해보시면 어떨까요. 지금 내가 너무 당연하게 여기고 있는 것들이 정말 당연한가. 그리고 자신만의 감사명상을 해보세요. 감사일기가 아니어도 좋습니다. 오늘 무사히 눈을 뜬 이 아침에, 곁에 있어주는 누군가에게, 날숨 한 번에 '감사합니다'를 얹어보는 것으로 충분합니다.
구독자님의 오늘 하루가, 당연하지 않은 수많은 선물들로 가득한 하루였음을 문득 알아차리는 순간이 찾아오기를. 그리고 그 알아차림이 구독자님의 삶을 조금 더 단단하고 따뜻하게 지켜주기를 진심으로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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