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9.14 | 203호 | 구독하기

연말, 팀장이 내년 업무분장표를 펼쳐 놓고 앉아 있다.
목록의 대부분은 작년과 같다. 정기 보고서, 분기 행사, 협력사 정산, 월별 데이터 취합. 새로 생긴 프로젝트는 하나뿐이고, 그것은 이미 맡을 사람이 정해져 있다. 나머지 팀원들에게는 작년에 하던 일이 그대로 돌아간다. 사람을 키우려면 도전적인 과제를 주라고 배웠다. 그런데 줄 과제가 없다.

새로운 일은 대부분의 사람에게 오지 않는다.
성장에 관한 조언은 대개 조직에 새로운 일이 계속 생긴다는 전제 위에 서 있다. 현실은 다르다. 대부분의 조직에서 일은 해마다 반복된다. 신규 사업은 드물고, 그마저 특정 조직이나 특정 사람에게 간다. 나머지 구성원은 작년에 한 일을 올해도 한다.
그래서 '성장'이나 '육성'이라는 말 앞에서 리더는 막막해진다. 교육 프로그램 몇 가지를 떠올리지만, 정작 실무에서 줄 수 있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성장을 새로운 일로만 만들어 간다면, 조직의 대다수는 구조적으로 성장할 수 없다는 뜻이 된다.
그러나 반복되는 일에도 해마다 달라질 수 있는 것이 하나 있다. 그 일에서 무엇을 스스로 정하는가이다. 일은 반복되어도, 위임까지 반복될 이유는 없다.
성장을 양으로 대신하려 할 때
새로운 일을 줄 수 없을 때 리더가 흔히 택하는 대안이 있다. 양을 늘리는 것이다. 작년에 행사 하나를 잘 치러냈으니 올해는 둘을 맡기고, 관리하는 협력사를 늘린다. 리더는 이것을 신뢰의 표현이자 성장의 기회라고 여긴다. "자네를 믿으니까 맡기는 거야."
그러나 구성원이 받은 것은 같은 수준의 판단을 더 여러 번 반복할 기회다. 숙련은 늘지만 판단의 층은 그대로다. 양을 늘리면 능숙해지고, 결정을 넘기면 성장한다. 리더가 주고 싶었던 것은 대개 뒤쪽인데, 실제로 건네진 것은 앞쪽이다.
역설도 생긴다. 맡은 일이 많아질수록 사람은 새로 생각할 여유를 잃는다. 작년 방식을 그대로 반복하는 것이 가장 안전하고 빠른 선택이 되기 때문이다. 물론 범위가 넓어지며 전에 보이지 않던 전체가 보이기도 한다. 다만 그때 사람을 키운 것은 늘어난 업무량이 아니라, 그 업무와 함께 넘어간 결정 권한이다.

도전은 일의 새로움이 아니라 책임의 성격에서 나온다.
드루와 웰먼은 관리자 60명이 실제로 경험한 직무 225건을 분석했다[1]. 이 연구에서 '도전적 경험'은 처음 해보는 일을 뜻하지 않았다. 방향을 스스로 정해야 하는가, 이해관계자를 직접 상대해야 하는가, 결과에 대한 책임을 지는가로 측정되었다. 같은 일도 어떻게 맡기느냐에 따라 도전의 크기가 달라진다는 뜻이다.
연구는 두 번째 결과도 보여준다. 도전 수준이 높아질수록 역량은 성장했지만 일정 지점을 지나면 증가 폭이 줄어들었다. 다만 피드백을 받을 수 있는 환경에서는 그 둔화가 상쇄되었다. 도전만 올리고 피드백이 없으면 남는 것은 부담뿐이다.
그렇다면 리더는 반복되는 업무를 어떻게 맡겨야 하는가?
첫째, 작년에 리더가 결정해 준 것 중 하나를 돌려준다.
같은 행사, 같은 보고서, 같은 정산이라도 작년에 리더가 정해 준 항목이 있다. 일정, 예산 배분, 업체 선정, 협조 요청 순서, 무엇을 성공으로 볼 것인가. 적어 보면 목록은 생각보다 길다.
그중 하나만 올해 담당자에게 넘긴다. "작년과 같은 행사야. 다만 올해는 이 행사를 잘했다고 말할 수 있는 기준을 네가 정해서 가져와." 일은 그대로인데 결정의 층이 한 칸 올라간다. 다섯 개를 한꺼번에 넘기는 것이 아니라 해마다 하나씩이면 충분하다. 3년이면 세 칸이 올라간다.
둘째, "작년처럼 하면 된다"고 말하지 않는다.
반복 업무를 넘길 때 가장 편한 문장이고, 담당자를 실행자로 고정시키는 문장이다. 이 말을 들은 사람에게 남는 판단은 없다. 작년 파일을 열어 날짜만 바꾸면 된다.
대신 이렇게 묻는다. "작년 방식에서 하나를 바꾼다면 무엇을 바꾸겠어?" 다만 바꿀 항목을 리더가 지정하면 그것은 다시 지시가 된다. 무엇을 바꿀지 고르는 것까지가 담당자의 몫이다.
그 일을 세 번 해본 사람은 리더보다 그 일을 잘 안다. 어디서 시간이 새는지, 어떤 절차가 형식만 남았는지 알고 있다. 다만 바꿀 권한이 없어서 말하지 않았을 뿐이다. 개선할 지점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이 개선 권한은 갖지 못한 상태, 이것이 반복 업무가 사람을 지치게 하는 진짜 이유다.
셋째, 반복되는 일일수록 끝난 뒤에 돌아본다.
새로 시작한 일은 끝나면 한 번 돌아본다. 무엇이 잘됐고 무엇이 어긋났는지 짚는다. 그러나 해마다 반복되는 일은 그냥 끝난다. 결과가 예상 범위 안에 들어왔으니 돌아볼 이유를 느끼지 못한다.
그래서 반복 업무에는 한 가지 맹점이 생긴다. 경험은 쌓이는데 학습은 일어나지 않는다. 다섯 번째 해에도 첫해와 같은 방식으로 일하고, 달라진 것은 손에 익은 속도뿐이다.
한 칸 올려 맡겼다면, 그 한 칸에 대해 이야기할 자리를 함께 잡아야 한다. 올해 새로 정한 것이 무엇이었는지, 그 판단이 맞았는지, 내년에는 무엇을 다르게 할지. 도전을 올리는 일과 피드백을 붙이는 일은 한 세트다.
이제 스스로에게 물어보자.
• 올해 우리 팀원이 맡은 일 가운데 작년과 달라진 것이 있는가. 일의 내용인가, 결정의 범위인가?
• 나는 '성장의 기회'라고 말하면서 실제로는 일의 양만 늘린 것은 아닌가?
• 이 일에서 내가 여전히 정해 주고 있는 것들의 목록을 적을 수 있는가. 그중 올해 넘길 수 있는 하나는 무엇인가?
• 반복되는 일을 끝낸 뒤, 우리가 함께 돌아본 적이 있는가?
업무분장표는 해마다 비슷하다. 그것은 리더가 바꿀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러나 같은 칸에 적힌 같은 일이라도, 작년보다 더 많은 것을 스스로 정하게 할 수는 있다. 사람을 키우는 것은 새로운 일이 아니라, 그 일에서 넘겨받은 결정의 크기다.
[1] 1 DeRue, D. S., & Wellman, N. (2009). Developing leaders via experience: The role of developmental challenge, learning orientation, and feedback availability. Journal of Applied Psychology, 94(4), 859–875.
하우코칭 파트너
박신후 코치(KPC)

*밑줄을 누르면 상세 내용으로 연결됩니다.
✅ S사 신임 임원 그룹코칭 🏃🏻♂️💨
✅ 내가 하는게 빠르지.. 😤
의견을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