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미가 흐드러지는 시간입니다.
5월의 한복판, 세상은 온통 축제와 기념일로 들떠 있지만 당신의 거실은 어쩌면 조금 적막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오늘은 부부의 날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부부'라는 이름 앞에 붙은 그 수많은 의무와 책임들이 때로는 서로를 사랑하기보다 견디게 만들고 있지는 않은지 조심스레 묻고 싶어집니다.

취업과 학업, 그리고 끝나지 않는 경쟁 속에서 번아웃을 겪으며 우리는 너무 빨리 지쳐버렸습니다. 나 하나 건사하기 힘든 세상에서 누군가의 배우자가 된다는 것, 부모가 된다는 것, 혹은 '정상적인 가정'을 꾸려야 한다는 사회적 기준은 우리를 자꾸만 작아지게 만듭니다.
SNS 속 타인들은 매일이 기념일 같고 행복해 보이는데, 왜 우리만 이토록 사소한 일에 날이 서고 서로에게 생채기를 내는 걸까요. 그건 당신들이 부족해서가 아닙니다. 그저 더 이상 애쓸 에너지가 고갈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림 속의 거위 부부를 가만히 바라봅니다. 이들은 서로에게 "더 노력해라"라거나 "내일은 더 나아질 거야"라는 식의 버거운 응원을 건네지 않습니다. 그저 고단했던 하루의 끝에서, 서로의 온기 속에 가만히 머리를 기댈 뿐입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거창한 성공의 서사가 아니라, 오늘 하루 무사히 살아남았다는 서로의 '생존 보고'일지도 모릅니다.
가끔은 부모라는 역할에서, 며느리와 사위라는 의무에서, 그리고 완벽해야 한다는 강박에서 함께 도망쳐도 괜찮습니다. 아무것도 성취하지 못한 채 거실 바닥에 나란히 누워만 있어도, 당신들은 충분히 그 존재만으로 무해하고 아름답습니다.

오늘 밤에는 서로에게 다정한 해결책을 주는 대신, 그저 "오늘 하루도 고생 많았어"라는 짧은 허락의 말을 건네보세요.
무기력해도 괜찮고, 조금 뒤처져도 괜찮습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가장 안전한 피난처가 되어줄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당신들의 계절은 충분히 따뜻할 테니까요.
부부라는 이름의 무게를 잠시 내려놓고, 그저 온전한 당신으로 쉴 수 있는 밤이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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