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잘 지내셨나요. 오늘은 당신에게 조금 긴 침묵 끝에 편지를 보냅니다.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하고 혼자 삼켜야 했던 감정들이 있습니다. 열심히 살아야 한다는 강박이 도리어 독이 되어 돌아온 날들, 타인의 성취를 보며 나의 평범함을 비하했던 그 시간들 말입니다.
저는 며칠 전, 도망치듯 숲속으로 트래킹을 떠났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커다란 옹이가 가득한 가래나무 한 그루를 만났습니다.
나무의 몸통에 울퉁불퉁하게 튀어나온 그 혹들을 보며, 문득 제 마음속에 박힌 번아웃의 흔적들을 떠올렸습니다. 가려야 할 결점이라 믿었던 나의 우울과 무기력이 그 나무의 옹이와 참 닮아 보였거든요.
하지만 가래나무는 그 옹이를 부끄러워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과거 거센 바람에 가지가 꺾였을 때, 세균이 침투하지 못하도록 스스로를 보호하며 만들어낸 '유합 조직'이었습니다.

우리가 겪어온 그 지독한 무력감도 실은 마찬가지일지 모릅니다. 세상의 속도에 지친 마음이 자신을 지키기 위해 필사적으로 부려댄 방어 기제,
즉, 나를 살리기 위한 치유의 숨결이었을 것입니다.

주변을 보니 크고 작은 상처를 안고도 묵묵히 서 있는 나무들이 모여 숲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방랑 시인 랭보의 말이 아니어도 상처 없는 영혼이 어디 있겠습니까. 우리는 그저 각자의 옹이를 품은 채, 그렇게 서로의 배경이 되어주며 살아가고 있는 것이겠지요.
사회적 규범에 맞추려 애쓰지 않아도 됩니다. 무엇인가를 성취하지 않아도, 그저 오늘 하루를 버텨낸 것만으로도 당신은 충분히 무해하고 아름답습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괜찮은 밤입니다. 당신의 상처가 언젠가 단단한 옹이가 되어 당신을 지켜주기를, 그저 담담히 응원하고 싶습니다.
그렇게 우리도 숲이 되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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