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 좀비, 잃어버린 시간에 대하여

2022.02.27 | 조회 40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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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래이 동사형 라이프

만 개의 취향 만 개의 프리즘, 지금 나를 이루는 취향에 진심인 순간들의 기록

한 시절 절친이라고 부를만큼 가깝게 지냈지만 어느 순간, 멀어진 친구가 누구에게나 한 명 정도는 있지 않나. 나이를 먹은 탓인지, 더 이상 취향도 목표도 공유하지 않아서인지, 멀리 떨어져 서로 만날 일이 없어서 그런지, 한때 '친구'인 존재가 어느 순간부터 낯설게, 느껴질 때가 있다. 

똥침의 추억

내게는 ㅇ가 그런 친구이다. 중고등학교 동창인 우리는 ㅇ의 장난으로 친해졌다. ㅇ는 전교 1,2등을 다투는 명석한 아이였다. 그에 반해 나는 조용하고 공부 열심히 하는 그저그런 모범생이었다. 반에 한두 명 있는, 조용하고 티지 않아서 있는지 없는지 모르는 그런 재미없는 모범생. 그런 내게 ㅇ는 장난을 걸어 왔다. 그 유명한...똥침.

당시 교내 장난 트렌드는 복도를 걸어가는 아무개에게 기습 똥침을 하는 것. 물론 나는 그런 장난을 할 만큼 장난기도 없는 밍밍한 아이였기에 주로 당하는 입장이었다. 내게 늘 기습 똥침을 한 사람이 바로 ㅇ다. 우리 학년에서는 모르는 사람이 없고, 모든 선생님들의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있는 ㅇ는 공부도 열심히 했지만 놀기도 열심히 놀았다. 영어도 잘했지만 오락실에 가서 펌프게임 디디알도 무척 좋아했다. 겉으로 보면 우리는 어쩐지 극과 극같아 보였다. ㅇ의 넘치는 에너지와 전투력이 동물성이라면 나는 식물처럼 빛에 반응할 뿐, 큰 움직임도 중2스러운 반항심도 전혀 없었다. 우리가 친해진 계기는 순전히 ㅇ의 무차별 기습 똥침 때문이었다. 기습 공격에 화들짝 기겁하게 놀라는 내 모습 때문에, ㅇ와 나는 친해졌다. 같은 반도 아닌 우리는 지금 생각해도 어이없는 이유로 친구가 되었다. 

그런데 이제는 안부는 커녕, 생사 확인조차 하지 못하는 남이 되어버렸다. 소문일까. 얼마전 ㅇ가 죽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카톡을 보내보지만 일주일째 '1'이 사라지지 않고 그대로다. 

사춘기 친구는 영원할 수 없을까

중고등학교 시절을 늘 붙어 다니고 친하게 지낸 우리. 대학생이 되며 서로 다른 학교로 진학을 하지만 간간이 연락을 하고 소식을 전하며 지냈다. 대학 졸업 후 사회인이 되고서도 한동안 연락을 주고 받으며 우리는 그렇게 '친구'로 남아 있었다. 

어떤 관계는 파경을 맞기 전부터 그 관계의 운명이 투명하게 보이지만 어떤 관계는 끝이 나고서야 왜 끝이 날 수밖에 없었는지, 뒤늦게 깨닫게 된다. 나와 ㅇ의 관계가 그랬다. 끝이 나기 전까지는 무엇이 문제인지 전혀 몰랐다. 그런 우리의 관계는 내가 '참을성' 이 무너지면서 소리없이, 서로에게 아무 말도 없이 끝이나버렸다. 

여기서 말하는 나의 '참을성'은 ㅇ의 고민상담을 들어주는 나의 인내심을 말한다. 중학교 시절부터 ㅇ는 불평과 불만, 터져나오는 불이 많은 아이였다. 그건 어쩌면 너무나 당연한 건지도 모른다. 중학생이 아니던가. 어른도 아이도 아니면서 어른의 도덕성과 인격을 요구받고, 그에 준하는 성과를 내야하지만 마음은 아직 그만큼 노련하지 않은 존재. 중학생이 불만과 불평이 많은 건 당연한 일인지 모른다. 

그런 당연한 시절에도 나는 식물처럼 소리없이 자라고 있었다. 이 시절 문제적인 아이는 ㅇ가 아니라 나였다. 하지만 그 시절에 나는 나의 문제를 전혀 모르고 있었다. 그랬기에 버럭 화를 내고 웃고 또 울고, 감정 기복이 심했던 ㅇ가 내게는 '시선'하게 느껴졌다. 하루에, 한 순간에 저런 다양한 감정이 오고가는 걸까. 그렇게 불만스러운 일이 있거나 힘들 때면 늘 ㅇ는 내게 털어놓았다. 

펜팔로 사귄 오빠가 답장을 하지 않을 때도, ㅇ의 어머니가 성적으로 심하게 꾸지람을 하는 일에도, 나는 ㅇ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이었다. 들어주고 위로해주고 다독여주는 사람. 나의입장은 저 세 가지를 벗어나지 않았다. 영원히 그 자리일 것 같은 나의 이런 역할도 어느 날 나도, ㅇ도 예상치 못하게 끝이 나고 만다. 

마지막까지 하지 못한 말, "나도 힘들어"

그 한마디가 뭐가 그리 힘들다고, 나도 한번도 ㅇ에게 하지 못했을까. 태생적인 건지, 그렇게 습관이 되어버린 건지, 가깝다고 생각하는 친구에게 조차, 나 힘들다는 한마디를 하지 못해, 영영 멀어져버리고 말았다. ㅇ와 나의 마지막 통화에서 만약 내가 저 한마디를 했다면, 아무도 우리는 지금도 여전히 '친구'로 남아 있지 않았을까. 

ㅇ와의 마지막 통화. 결혼한 ㅇ는 신혼생활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하소연했다. 아무리 잘 맞는 연인이라도 동거, 함께 사는 건 또 다른 문제이니까. 이미 그 전에도 몇 차례 내게 전화로 속상한 일을 털어놓고는 했다. 그런데 그날은 왜 그랬을까. ㅇ의 불평 혹은 하소연이 들어주기 힘들었다. 당시 내 상황은 남친과 헤어지고 새로운 곳에서 적응해야 했던 시절이었다. ㅇ가 전남친과 헤어지던 시절, 하루 걸러 ㅇ는 내게 전화를 했고 나는 ㅇ의 주체하지 못하는 감정을 다독여주었다. 

그런데 나의 연애에 대해서는, 이별에 대해서는 ㅇ에게 한 마디의 상의를 한 적이 없었다. 문제는 거기 있었는지 모른다. 어째서 나는 관계로 힘들때 ㅇ에게 한 번도 상담을, 불평을 털어놓은 적이 없을까. ㅇ 역시 내게 한번도 되물어 준 적이 없었다. 

우리의 마지막 통화. 나는 으레 ㅇ에게 해주던 위로나 공감 대신, 남편의 입장도 생각해보는 게 어떻냐는, 친구로서 다소 냉담한 대답을 해주었다. ㅇ의 이야기에 호응 대신 어서 끊고 싶다는 마음으로 건성으로 대답했다. 어느 순간 '나도 힘들어' 한 마디를 내뱉고 싶었지만, 나는 별말 없이 그저 전화를 끝었다. 5년 전 어느날, 그게 우리의 마지막 통화였다. 그 후, 전화번호를 바꾸고 한국을 떠나고, 오늘까지 우리는 서로에 대해 안부를 묻지 않는, 모르는 사람이 되었다. 

좀비가 된 친구들

ㅇ에게 톡 하나를 보내본다. 일주일 째 답이 없다. '1' 지워지지 않는 1이라는 숫자. 소문일까. sns 하나로 세계인과 연결되는 이 시대, 사춘기 시절부터 알아온 친구의 생사 확인을 할 수 없다는 사실이 어쩐지 받아들이기 힘들다. 유일하게 연락하는 동창생에게 혹시 아는 소식이 있는지 묻지만 대답은 노. 인스타계정을 뒤져서 ㅇ를 아는 다른 친구의 계정을 찾아내 연락해보지만 역시 아무런 대답이 없다. 

ㅇ의 죽음을 증명할 능력이 없음으로 나는 ㅇ의 죽음을 소문으로 치부한다. '어떻게 그렇게 쉽게 죽을 수 있을까' 마치 죽음이 가장 어려운 숙제라도 되듯, 나도 모르게 마음 속에서 그런 생각이 든다. 기억을 더듬고 더듬어 ㅇ의 직장을 구글로 찾아본다. 개인 프라이버시 때문인지 직원의 이름에서 중간 이름을 지운 이름이 여전히 있다. 그렇다면, ㅇ는 살아있는게 아닐까. 

어쩐지 카톡으로 전화를 걸어볼 용기는 나지 않는다. 받지 않는 긴 통화 연결음을 듣고 있을 자신이 없다. 죽음을 확신할 증거가 없음으로 나는 슬퍼하지 않는다. 다만, 후회한다. 마지막 통화 때, '나도 힘들어' 그 한마디를 할 수 있었다면, 내가 좀더 솔직해질 수 있었다면, ㅇ 역시 나의 이야기를 들어주었을 텐데. 나도 힘든 일이 있는 사람이라는 걸 알았을 텐데. 그러면 우리는 이렇게 멀어지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살다보니 그런 관계가 생겨난다. 영원히 함께 같은 길을 갈줄 알았는데, 어느 순간 멀어져 이젠 '친구'보다는 한 시절 '알았던' 사람으로 기억되는 존재들. ㅇ의 소식을 물어볼 사람들 리스트를 보다 카톡에서 가려진 친구 목록을 본다. 너무나 낯이 익은 얼굴, 반가워서 무턱되고 카톡을 보내보고 싶지만 마음은 그렇게 아직도 가까운데 손이, 몸이 무겁다. 

기차비가 없어 한 친구의 결혼식에 회사 핑계를 대며 못 가게 됐다고 거짓말을 한 적이 있다. 그 당시 계좌에 20만원이 전부였고, KTX를 타고 친구의 지방 결혼식에 가는 것을 며칠 고민하다 거짓말을 했다. 친구에게 회사 핑계를 댓고, 그 이후 그 친구는 내 문자에 한번도 답장을 주지 않았다. 전화도 받지 않았다. 그래도 카톡 보이는 친구 얼굴을 보니, 어제까지 이야기한 것처럼 이 반가운 마음은 뭘까. 

역시 왜 멀어졌는지 그 이유조차 분명하지 않은 한 친구. 얼굴을 보니 너무나 반갑다. 하지만 선뜻 연락할 용기는 나지 않는다. 이제는 친구였던 시간보다 친구가 아닌 존재로 서로를 잊고 산 시간이 더 길다. 여전히 내가 그녀에게 '친구'일까. 다시 친구일 수 있을까. 생각이 많다는 건 좋지 않은 신호다. 반가운 마음을 가로막을 만큼 생각이 많다. 이렇게 좀비가 된 친구들. 너무나 익숙하고 잘 아는 존재라고 생각하지만 더 이상 내가 알던 그 시절의 그 친구는 아닌 존재들. 아주 미워할수도 없고 그저 좋아할 수도 없는, 같지만 낯선 좀비들. 

나 역시 그들에게 이제는 어떤 좀비가 아닐까. 한때 잘 알았지만 더 이상 내가 알았던 그 존재가 아닌 타인보다 더 낯선 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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