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호] 양날의 검을 지닌 VR 영화, 공감과 연대를 도모하기 위한 가능성에 대한 고민들

💌 뉴스레터 30호

🙋‍♀️ 인디&임팩트 30번째 뉴스레터입니다~ 

8월 개편 특집 기획으로 VR 영화 제작기를 소개하고 있는데요.

지난 주 'VR 영화 <소녀램프라디오> 제작노트' 에 이어 이번 호는 🥽몰입형 VR 영화 <게르니카, 에레스 뚜>(Guernica, eres tú) 제작기를 담았습니다. 생생한 제작 과정에 대한 이야기와 함께 VR이라는 매체의 가능성과 윤리적인 접근에 대해서도 세심하게 돌아본 글이니 놓치지 마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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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 인디&임팩트는 3회에 걸쳐 VR 영화를 제작하거나 배급하고 있는 제작/창작자 분들의 이야기를 담고자 합니다. 그 두 번째 이야기로 여전히 계속되고 있는 전쟁과 분쟁의 참상을 기억하기 위한 몰입형 VR 영화 <게르니카, 에레스 뚜> 제작기를 소개합니다. 공동감독으로 참여한 조한결 감독의 제작기를 통해 공감과 연대를 도모하기 위한 VR 영화의 가능성을 살펴봅니다.

[기획] 양날의 검을 지닌 VR 영화, 공감과 연대를 도모하기 위한 가능성에 대한 고민들

- 2023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비욘드 리얼리티' 공식 초청작 <게르니카, 에레스 뚜> 작품 제작기를 중심으로

본 글에서는 공동감독으로 참여한 몰입형 VR 작품 <게르니카, 에레스 뚜> (Guernica, eres tú) 제작기에 대한 소개와 더불어 VR 영화가 지닌 가능성에 대한 고민을 나누고자 한다.  

1. <게르니카, 에레스 뚜> 제작기

<게르니카, 에레스 뚜>는 전쟁, 분쟁과 같은 폭력의 문제가 끊이지 않는 현대 사회에서 동시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과거의 참상을 어떻게 다시 기억하고 이야기를 풀어볼 수 있지를 표현한 작품이다. 파블로 피카소의 <게르니카> 원화에서 모티프를 얻어 제작한 몰입형 VR작품으로 HMD기기를 착용하고 컨트롤러를 사용하여 체험을 진행할 수 있다.

체험자는 미로처럼 구성된 원형 복도 공간들을 따라가면 작품에서 연출한 인물들의 모습을 통해 기괴하고 잔혹해 보이는 모습을 마주한다. 원화를 기반으로 창작한 5명의 인물들은 당시 시대적 상황 안에서 평화로운 마을 사람들이 참담한 폭격으로 인하여 기억 속에서 사라져 버려 마주할 수 없는 존재들이다. 아이를 잃은 어머니, 갑작스러운 폭격에 집을 나서는 사람, 쓰러진 군인, 폭격을 피해 집으로 숨었지만 갇히고만 사람, 등불을 건네는 사람의 이야기이다.

본 작품에서는 이들의 모습을 전쟁의 어두운 그림자로 형상화하여 검은 형체의 알 수 없는 인물의 움직임으로 표현하였고 인물의 서사에 맞는 음악을 제작하였다. 마지막 공간까지 이동하였을 때, 체험자는 이들 모두가 아비규환처럼 뭉쳐서 멈춰있는 모습을 마주한 뒤, 끝내 본인의 얼굴을 드러내며 촛불을 통해 불을 밝혀내는 배우를 만나며 체험은 마무리된다. 체험 동안 마주한 모든 인물들의 움직임과 감정이, 실존하는 사람(배우)의 모습을 통해 수행되었음을 보여줌으로써 게르니카가 보여주고자 했던 참상이 여전히 세계적으로 유효하며,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과 이어질 수 있음을 다루고자 하였다. 작품 제목이 “게르니카는 그대이다”라는 뜻으로 지어진 것도 작품 내용처럼 현재와의 연결성을 도모하기 위함이었다.

작품을 만들면서 개인적으로 특별히 주의했던 점은 크게 2가지였는데, 첫 번째로는 어설픈 재현이나 일방적인 원작의 모방을 하고 싶진 않았던 점이다. 가상공간을 통해 우리만의 해석을 보이고자 작품의 전체적인 분위기를 살리는 데 집중하고 너무 어렵지 않으면서도 함축적이고 이해할 수 있는 서사와 움직임을 표현하고자 했다. 원작인 게르니카에서도 그려진 인물들이 어떤 상황에 처해있는가에 대해 아비규환으로 엉켜있는 모습을 시각적으로 보여주고 있지만 직접적인 서술을 하거나 설명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전쟁의 참상을 직접적으로 겪지 않았던 우리이기도 하여, 동시대에 살아가는 우리가 어떻게 다시 기억하고 이야기를 풀어봄으로써 비극이 현재에 이어지고 있는가에 대하여 인식을 환기시키고 연결성을 도모할 수 있을까를 고민했다. 단순히 유명한 작품과 유명한 사건을 대상화하고 도구화함으로써 화려한 기술과 디자인이 반영된 신기술로 대중에게 감탄을 주는 방식으로 다가가지 않도록 하기 위해 스스로 경계하고 성찰하는 과정들이었다.

한 편 기술을 적극적으로 드러내기보다는 작품 속에서 자연스럽게 녹아있을 수 있는 방법을 모색했다. 작품을 만드는데 활용한 주요 기술은 볼류메트릭 비디오 캡쳐(Volumetric Video Capture)로 피사체를 여러 대의 카메라로 360도의 전면을 가진 입체적인 4D 실사 영상으로 촬영하는 기법이다. 말 그대로 인물을 3D모델링하는 기술이 아닌 정말 ‘입체 영상’ 데이터가 되도록 촬영한다. c K-실감스튜디오에서 진행했는데 기술의 특성상 후보정이 어렵거나, 촬영 공간이 협소한 것과 같은 여러 제약을 고려해야 했다. 예를 들어 빛바램을 최소화하기 위해 배우가 입을 옷의 재질이나 활용할 소도구를 신중히 선택해야 했고, 촬영 기술 자체가 검은색 자체를 정확히 컴퓨터그래픽으로 재현하지 못하는 한계로 인해 검은 옷에서 붉은 기가 묻어나는 점들을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에 대한 문제들도 고려해야 했다.

또한 ‘사진5’와 ‘사진6’에서 보는 것과 같이 공간이 넓지 않은 점은 한정된 공간 안에서 어떻게 최적의 표현을 할 수 있을까 고민을 하게 하였다. 실제로 무용처럼 동선이 큰 작업을 볼류메트릭 스튜디오를 활용해서 진행하는 경우에는 현장에서 안무가 바뀌는 경우가 빈번하다고 하며, 우리 팀 또한 협소한 촬영 공간을 고려하여 각 인물이 표현할 움직임을 만들곤 하였다.

우리 팀의 제작 일정 상 볼류메트릭 비디오 촬영은 사전 촬영 1회, 본 촬영 1회만으로 작업을 했어야 했다. 사전 촬영 당시에는 이혜연, 정승현 감독님과 함께 공동감독 3인이 제작진이었고, 움직임과 연기는 세부 담당으로써 내가 연출하였다. 이후 운이 좋게도 정유경 배우님이 팀으로 합류하게 되면서 함께 캐릭터를 구성하면서 움직임을 보완할 수 있게 되어 더 완성도 높은 작품을 제작할 수 있었다. 솔직한 심정으로 본 작품을 4명의 제작진이 만들었다는 것이 아직도 놀랍다. 돌이켜보면 소규모 제작진이었기에 오히려 스토리텔링, 디자인, 음악, 움직임, 연기와 같이 전 과정에서 함께 깊은 논의를 진행하면서 작품을 만들 수 있었던 것 같다.

2. 양날의 검인 VR 기술 그리고 VR 영화가 지닌 가능성

<게르니카, 에레스 뚜> 작업은 VR 기술이 지닌 가능성에 대해 다시금 돌이켜보게 하는 계기가 됐다. 공감과 연대를 도모하는 기술로서의 활용 가능성에 주목하게 되었다. 이 작업에 대해 ‘왜 VR 작품을 매체로 활용하여 사회적 이슈를 전달하려는지 알 것 같다’는 평가를 들었는데 분명 평소라면 견지하기 어려울만한 시점을 강한 몰입 경험을 통해 전달한 것이 큰 몫을 차지했다고 본다. 그리고 이 경험이 전쟁과 같이 폭력적인 상황이 지속되고 있는 상황에 대해 한 번 더 생각하게 만들고 궁금증을 가지게 한다는 점이 연대를 도모하는 기반을 마련해 준다.

다만, 이 가능성을 발휘하고자 하기 위해서는 몰입형 가상현실(VR)이 지닌 매체의 성질에 대한 탐구와 윤리적 성찰이 필요하다. 몰입형 가상현실은 2D 평면 영상으로 바라보는 것과 달리 공간 자체를 감각하고 경험하게 해주는 매체라는 점에서 양날의 검이 될 수 있다. 어떻게 활용하냐에 따라 VR 기술은 화려한 스펙터클의 요소에 의해 체험자의 주체적인 생각을 뺏거나 자극적인 오락만을 추구하게 만들 수도 있고, 다른 사람이나 상황의 관점에서 생각해 보는 경험을 만들 수도 있기 때문이다.

후자의 경우에는 체험자를 일반적으로 경험하기 어려운 상황들에 위치시켜 행동하게 함으로써 인지적인 시야를 확장시키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 더 나아가 타자에 대한 공감 경험을 이끌어 연대로 연결시킬 수 있는 가능성을 지닌 장점도 있어서 실제로 VR이 궁극적인 공감 장치가 될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많다.

물론 VR이 정말 공감 장치가 될 수 있을까에 대해서는 더 풍부한 논의와 성찰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직접적인 공감보다는 공감이 필요한 상황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이해의 기반을 마련해 주는 것에 가까운 것은 아닌지, 우리가 경험하는 공감이 단순한 연민이나 동정은 아닌지 혹은 1회성으로 촉발되고 휘발되는 감정의 경험은 아닌지 등 다각도로 고려해 볼 수 있다. 특히 체험자의 주체성과 능동성이 더욱 발휘될 필요가 있는 매체라는 점은 다른 매체와 달리 체험자들의 해석과 경험이 더욱 다양해지게 만드는 긍정적인 요소이다. 하지만 제작자의 입장에서는 주제와 의도를 전달하는 면에서 더욱 까다로운 제약이 되므로 VR을 활용한 세심한 경험 만들기를 더욱 어렵게 만든다.

완벽할 수 없을지라도 더욱 면밀하고 세심한 윤리적인 검토 속에서 활용해야 하는 기술이라는 점도 계속 견지해야 할 사항이다. 실제로 가상현실 공간 속에서 만나는 타자를 단순히 가상캐릭터로만 여겨 욕설, 비하, 성희롱, 성폭력을 일으키거나 포르노그래피와 극단적인 폭력의 경험에 무분별하게 노출시키는 일들이 이미 벌어지고 있다. 또한, 사회적 이슈에 대한 관심 촉구나 공감과 연대로의 이행을 목적으로 사회적인 사건 혹은 개인들의 삶이 처했던 고통과 슬픔의 상황에 타자를 위치시키는 것은 체험자로 하여금 무방비한 폭력에 노출시키는 것에 불과해질 수 있는 위험도 존재한다. 다른 매체보다 본능적으로 감각되는 자극이 상대적으로 아주 강한 매체이기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이다.

이 문제는 <게르니카, 에레스 뚜>에서도 체험을 진행하고 나서야 발견한 문제이기도 했다. 제작자의 입장에서는 공포감을 조성하고자 할 의도가 없었으나, 일부 체험자에게는 무채색에 어두운 분위기로 구성된 공간 경험과 긴장감을 조성하는 음악 그리고 참상에 대한 서사가 공포로 다가와 체험을 중단한 적이 있다. 주제 의식을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었는가의 여부 이전에 체험자가 안전하게 경험할 수 있도록 설계함에 대해 진지하게 되돌아보는 사례였다.

VR 기술을 활용해 VR 영화 작업으로 사람들과 소통하는 일은 여러 한계와 장점이 동시에 존재한다. 아직은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기술의 한계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경험하기도 어렵고 접근성 또한 월등히 낮아서 다른 매체보다 진입장벽이 너무나 높은 점처럼 극복해야 할 문제가 많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VR 영화들이 보여준 가능성을 극대화하고 더욱더 따뜻한 기술로써 활용될 수 있도록 하는 작업들을 시도하려 한다.

몰입형 VR이 만드는 신체적이고 공감각적인 체험 양식에서 주체성을 어떻게 부여하고 또 윤리적인 고려 안에서 공감과 연대를 이끌어 낼 것인가에 대해서는 VR 영화제작자 그리고 VR 기술을 활용할 사람들 모두가 고민해야 할 일임은 분명하다. 능동적이고 주체적인 수행의 경험을 요하는 매체인 만큼 VR 영화가 더욱 따뜻한 의미를 품고 공감과 연대의 실천을 도모할 수 있는 방향으로 창작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전하며 원고를 마친다.

2023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비욘드리얼리티' <게르니카, 에레스 뚜> 작품 정보

글쓴이. 조한결 (HanGyeol Jo, Matthew) 

문화예술 기획자, 청소년 교육 활동가, 예술기술 연구자 등 다방면에서 활동하고 있는 청년이다. 예술과 기술이 사회에 어떻게 도움이 될 수 있는 지를 고민하여 다양한 활동에 참여하고 있다. 현재 서강대학교 아트앤테크놀로지학과 트랜스미디어스토리텔링 그룹에서 석사과정으로 연구를 진행하고 있으며, 주된 관심사는 소수자에 관한 문제들이다.

본 뉴스레터는 미디어운동에 대해 새롭게 질문하고 좀 더 발전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지 여러 사람들이 함께 고민하고 찾아가기 위해 발행됩니다.

미디어 환경이 빠르게 변화하고 각종 담론과 현상이 범람하는 가운데 과연 우리가 주목해야 할 대상은 무엇인지, 사람들의 삶을 개선하는 데 있어 정작 중요하게 필요한 미디어의 변화는 무엇인지 관점을 제공하는 공간을 만들고자 합니다.

앞으로 매주 다음과 같은 내용을 가지고 여러분께 찾아갈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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