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런 버핏은 최근의 미국 증시가 "도박판 분위기"에 빠졌다고 경고했다.
2008년 금융위기의 하락을 예측해 이름을 알린 마이클 버리는 반도체 상장지수펀드(Exchange Traded Fund, ETF) 공매도를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골드만삭스 일각에서는 나스닥 25,000 돌파 이후 "이제는 조정"이라는 진단이 나왔다.
숫자도 경고에 힘을 싣는다. 시타델의 분석에 따르면 최근 30일간 S&P 500 지수 상승률을 능가한 종목은 전체의 22%에 불과해 30년 내 최저 수준이다. 6월 나스닥에는 스페이스X(SpaceX)가 1조 7,700억 달러의 평가를 받으며 사우디 아람코의 기록을 넘어서는 역대 최대 규모로 상장했다. 분기 순손실 42억 8,000만 달러의 적자 기업이 매출의 100배 평가를 받은 것이다.
그리고 5월 22일, 케빈 워시가 연방준비제도의 새 의장으로 취임했다. 6월 16일에는 그가 주재하는 첫 FOMC가 열린다. 경고는 차고 넘친다. 그런데 우리는 지금이 포지션을 조정할 때가 아니라고 본다. 이번 호의 질문은 '팔까 말까'가 아니다. '왜 팔지 않는가'다. 늘 그렇듯 조금 크게, 조금 길게, 조금 앞서서 본다.
1. 지금의 공포, 1999년의 데자뷔인가
공포부터 해부한다. 결론을 먼저 말하면 버블의 징후는 맞다. 그러나 징후가 끝을 말하고 있지는 않다. 이 차이를 구분하는 것이 이번 장의 전부다.
(1) 시장의 폭, 30년 만에 가장 좁다
"S&P 500을 이긴 종목은 22%, 30년 내 최저다.”
지난달 레터에서도 짚었던 시장의 폭부터 다시 본다. 최근 30일간 S&P 500 지수 상승률을 능가한 종목은 전체의 22%로 30년 내 최저다. 지수는 오르는데 상태가 좋은 종목의 숫자는 줄어드는, 극단적으로 좁은 시장이다. 한국은 이 쏠림이 더 심하다.

다만 좁아진 폭이 곧 끝을 뜻하지는 않는다. 이는 강세장, 그중에서도 강세장 후반에 반복적으로 나타났던 현상이다. 역사는 그대로 반복되지 않지만 그 운율은 맞춘다. 지금의 시장이 1999년의 복사본은 아니어도, 그때와 닮은 리듬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뜻이다. 그리고 이번에도 진짜 끝이 온다면, 그것을 부르는 것은 금리일 가능성이 높다. 뱅크오브아메리카의 마이클 하트넷은 지금의 상승을 자기강화적 붐 루프(Boom Loop)로 규정하며, 이 루프가 반대로 도는 신호로 미국 30년물 국채금리의 5% 안착을 제시했다. 30년물은 한때 5%를 뚫었다가 내려와 있어 아직 안착이라 보기 어렵다. 금융위기를 여러 차례 경고해 온 폴 튜더 존스조차 인공지능(Artificial Intelligence, AI) 강세장이 1~2년 더 남았으며 아직 정점이 아니라고 진단한다. 징후는 틀림없이 있다. 그러나 끝은 아직 아니다.

(2) "이번엔 다르다"는 말부터 의심해야 한다
"닷컴 버블 때도 실적은 붕괴 직전까지 좋아졌다.”
낙관론의 논거도 만만치 않다. 같은 골드만삭스 안에서도 채널에 따라 시각은 갈린다. 비즈니스 인사이더가 전한 골드만삭스 트레이더들의 주장은 셋이다. 상위 7개 종목의 가격수익비율(Price Earnings Ratio, PER)이 닷컴 버블 때보다 비싸지 않고, 상승이 투기가 아닌 펀더멘털에 근거하며, 자금 유입과 소비가 견조하다는 것이다. 실제로 S&P 500 종목의 실적 상향 비율은 27~29%로 10년 내 최대였다. 이들의 결론은 5~8% 조정은 가능하나 30~40%의 급락형 붕괴는 아니라는 것이다. IG마켓도 엔비디아는 마진 50% 이상에 선행 PER 40배지만 2000년의 시스코는 200배였으며, 닷컴 기업들이 클릭 수로 미래를 약속했다면 지금의 매그니피센트 7은 20%대의 실제 이익 성장을 내고 있다고 본다.

그러나 이 논리에는 함정이 있다. 1999년에도 실적은 버블 붕괴 직전까지 가파르게 좋아지고 있었다. 그때는 실적이 받쳐주지 않았다는 통념은 사실과 다르다. 아폴로의 글로벌 수석 이코노미스트 토르스텐 슬록은 상위 10종목의 PER이 닷컴 버블 당시 23~26배였던 반면 지금은 약 40배에 이른다며, 지금의 AI 버블이 1990년대보다 크다고 평가한다.
지금은 충분히 싸다, 지금은 안전하다는 말이 들리기 시작하면, 그 말부터 의심해야 한다.

(3) 스페이스X와 순환투자, 1999년의 운율
"그때 루슨트가 그랬듯, 지금 엔비디아가 그렇다.”
지난해 레터 들에서 버블의 끝은 언제나 IPO 시장의 과열과 맞물린다고 짚은 바 있다. 그 신호가 켜지기 시작했다. 스페이스X는 750억 달러를 조달하며 1조 7,700억 달러의 평가로 상장했다. 적자 상태에서 매출의 100배 평가를 받은 것이다. OpenAI와 앤트로픽(Anthropic)도 상장 대기열에 섰다. 다만 상장 첫날 시초가 배율로 보면 과열은 이제 시작 단계로, 하반기로 갈수록 과열 논쟁이 본격화될 것으로 본다.

더 주목할 것은 순환투자, 이른바 벤더 파이낸싱이다. 마이크로소프트는 OpenAI에 138억 달러를 투자했고, OpenAI는 약 87억 달러를 클라우드 사용료로 되돌려준다. 엔비디아가 투자한 돈은 칩 구매로 회귀한다. 1999~2000년 루슨트의 벤더 파이낸싱이 81억 달러로 매출의 24%였다면, 현재 엔비디아의 직접투자는 1,100억 달러로 매출의 67%에 이른다.

그리고 이 모든 루프의 중심에 OpenAI가 있다. 마이크로소프트, 아마존, 엔비디아, 오라클, 메타, 심지어 미국 국부펀드 구상까지 OpenAI 한 회사와 엮여 있다. 정부가 얽히는 통로는 국부펀드다. 미국은 MP머티리얼즈의 최대 주주가 되고 인텔, US스틸, 웨스팅하우스의 지분을 확보하는 등 국가자본주의의 행보를 국부펀드 구상으로 제도화하는 중이고, 샘 올트먼은 스타게이트 발표 이전부터 정부와 접촉하며 이 판에 들어가 있었다.

강성 좌파인 버니 샌더스와 강성 우파인 스티브 배넌이 국부펀드의 OpenAI 지분 50% 보유를 한목소리로 주장하고, 신생아에게 1,000달러씩 지급하는 트럼프 계좌를 그 재원으로 쓰자는 논의까지 진지하게 오가고 있다. 고리 중 하나만 끊겨도 사슬 전체가 흔들리는 구조에, 이제 국가까지 올라탔다.

(4) 멈추지 못하는 자 뒤에, 멈출 수 있는 자가 있다
"95%의 기업은 AI 투자에서 수익을 내지 못했다."
초대형 클라우드 사업자(하이퍼스케일러)들은 스스로 멈추지 못한다. 구글, 아마존, 애플은 기술혁명의 마지막 생존자가 모든 것을 가져가는 승자독식을 경험한 회사들이다. 모든 연령대가 카카오톡을 쓰는 한국에서 다른 메신저가 설 자리가 없는 것과 같은 이치다. 여기서 멈추면 도태된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손해를 감수하고라도 자본적 지출(Capital Expenditure, CapEx)을 쏟아붓는다. 지난해까지는 잉여현금흐름 안에서 감당해 온 투자였지만, 2026년 하반기부터는 이익이 아니라 조달로 충당하는 단계에 들어선다. 구글의 유상증자, 메타의 증자 추진, 오라클의 회사채 발행이 그 신호다.

멈출 수 있는 쪽은 따로 있다. 자본공급자(Capital Provider)다. 회수가 어렵다고 느끼는 순간 이들은 손해를 보더라도 회수를 시작하고, 그때 시장은 신용쇼크를 맞는다. 스프레드가 벌어지면 AI와 무관한 작은 기업들의 조달 금리까지 치솟아, 쇼크는 시장 전체로 번진다. MIT NANDA의 'GenAI Divide 2025' 보고서에 따르면 기업들이 300억~400억 달러를 쏟고도 95%는 손익 효과가 없었고, 직원 1인당 매출과 이익률의 개선도 매그니피센트 7에서만 나타날 뿐 러셀 2000의 작은 기업들은 나빠지거나 제자리다.

워런 버핏의 말대로 금리는 자산 가격에 작용하는 중력이다. 1999년의 금리 인상이 보험성 완화를 되돌리는 성격이었다면, 2000년의 긴축은 과열과 물가를 억제하려는 것이었다. 2000년 2월 CPI는 1992년 고점 3.2%를 넘었고 3월에는 10년래 최고치인 3.8%까지 급등했다. 버블을 무너뜨린 것은 인플레이션 억제형 긴축이었다. 이번에도 연준이 물가를 명분으로 금리를 올리는 순간이 가장 위험한 변곡점이 된다.

2. 왜 팔지 않는가 ① — 워시의 시계
그렇다면 왜 팔지 않는가. 첫 번째 답은 5월 22일 취임한 연준의 새 의장에게 있다. 시장이 그를 오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1) 다섯 번째 의장, 그리고 반복된 혼돈
"새 의장 취임 뒤 시장은 예외 없이 흔들렸다."
연준 의장이 바뀔 때 시장은 예외 없이 혼돈을 겪었다. 앨런 그린스펀은 1987년 취임 2개월 뒤 다우가 하루 22.6% 폭락한 블랙먼데이를 맞았다. 벤 버냉키는 2006년 데뷔 후 4개월간 소통 혼란을 겪으며 자신의 발언이 증시 급락을 부르자 공식적으로 판단 착오를 인정했다. 재닛 옐런은 2014년 첫 기자회견의 '6개월' 발언으로 홍역을 치렀고, 제롬 파월은 2018년 취임 후 첫 7회의 FOMC에서 연속 하락을 경험했으며 그해 12월 지수는 20% 하락했다.
그리고 케빈 워시다. 금융시장에 몸담은 이래 지켜보는 다섯 번째 의장이다. 2026년 1월 30일 지명돼 5월 22일 취임했고, 6월 16일 첫 FOMC를 주재한다. 워시는 파월에 이은 연준 역사상 두 번째 변호사 출신 의장이다. 변호사 출신의 공통점은 증거주의, 곧 데이터 디펜던트다. 공식 소통과 포워드 가이던스를 처음 제도화한 옐런과는 정반대의 계보다.
미국 경제는 세상에서 가장 큰 크루즈선이고, 문제를 확인한 뒤에야 키를 꺾으면 배가 클수록 혼란도 크다. 파월은 인플레이션을 확인할 때까지 믿지 않겠다고 버티다 2022년 금리를 5.5%까지 올렸다. 워시는 공식 기자회견 축소까지 검토하며 포워드 가이던스를 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단기적으로 시장이 힘들어질 수 있는 조합이다. 그러나 혼돈이 곧 매도 신호는 아니었다는 것이 네 번의 역사가 남긴 기록이다.

(2) 1951년 협약은 법이 아니라 합의였다
" 미국은 1951년처럼 새로운 협약이 필요하다.”
시장은 워시를 매파로 읽는다. 그가 일관된 양적완화 비판론자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통화정책에 대한 그의 본심은 다른 곳을 가리킨다. 워시는 2025년 7월 CNBC 인터뷰에서 "우리는 1951년에 했던 것처럼 새로운 재무부-연준 협약(Accord)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 번의 발언이 아니다. 2025년 4월 청문회에서는 통화정책의 독립은 고수하되 비통화 사안은 협력하겠다고 선언했고, 같은 해 7월에는 부채를 쌓으며 재무부와 엇박자를 내는 중앙은행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했다. 지명 전부터 일관된 노선이며, 트럼프가 그를 고른 이유로 보인다.

1942년 연준은 전비 조달을 위해 단기금리를 0.375%에 고정하며 재무부에 사실상 종속됐고, 1947년 인플레이션이 17%대로 치솟은 뒤에도 금리는 묶여 있었다. 이 갈등을 푼 것이 1951년 3월 4일의 협약이다. 국가부채 관리와 통화정책을 분리한 이 합의가 현대 연준, 독립적 연준의 출발점이 됐다.

결정적 포인트는 협약이 법이 아니라 기관 간 합의였다는 사실이다. 합의는 다시 쓸 수 있다. 그리고 미국은 1940년대 이후 최고의 부채 시대에 들어와 있다. 연간 국채 이자비용은 사상 처음 1조 달러를 넘었고 총부채는 GDP 대비 약 122%다. 조건이 같으니 해법도 닮아갈 것이다. 워시가 중시한다고 밝혀 온 절사평균 물가(Trimmed Mean)는 약 두 달 전 기준으로, 코어 PCE가 위를 향하는 동안 아래를 향했다. 절사평균을 기준으로 보면 물가 때문에 금리를 올릴 이유가 없다. 재무부와 연준의 협력 카드가 현실화되면, 시장의 예상과 달리 올해 하반기에는 인하까지 진행될 수 있는 상황이다.

3. 왜 팔지 않는가 ② — 재정 지배와 마르지 않는 유동성
두 번째 답은 지난 몇 달의 레터에서 거듭 말해 온 재정 지배에 있다. 이란을 둘러싼 전쟁 위기도, 관세도 통화정책 변수가 아니다. 시장을 움직이는 손이 통화에서 재정과 정치로 넘어갔기 때문이다.
(1) 유동성은 마르지 않는다, 세 갈래의 재정 카드
" 같은 지출도 '투자'로 부르면 자본이 된다."
케네스 로고프 교수의 선언을 빌려 몇 달 전부터 말해 온 대로, 우리는 재정 지배(Fiscal Dominance)의 시대에 들어섰다. 시장을 보는 렌즈는 통화정책이 아니라 재정정책이어야 한다. 그 렌즈로 보면 세 갈래의 유동성 카드가 대기 중이다.
첫째는 금융억압이다. 수익률곡선 통제(Yield Curve Control, YCC)와 오퍼레이션 트위스트로 장기금리를 눌러 부채 부담을 통제하는 1940년대식 정책이 새 협약 아래 가능해진다.
둘째는 비용의 자산화다. 부채비율은 분수다. 분자인 부채를 줄이지 못한다면, 분모인 GDP를 키워 부채를 왜소하게 보이게 만들면 된다. 미국은 1999년 소프트웨어를, 2013년 R&D와 지식재산을 GDP에 산입하는 개정을 단행한 전례가 있다. 1999년 개정은 1996년 GDP를 약 1% 키웠고, 2013년 개정은 2012년 성장률을 2.2%에서 2.8%로 끌어올렸다. 다음 차례는 AI 투자다. 현재 총력전으로 투입되는 AI 비용이 자산으로 분개되면 잠재성장률 2% 미만의 미국이 7~9%대 GDP 성장률을 기록하게 되고, 그 세계에서 3~4%의 인플레이션은 위협이 되지 않고, 기업 실적은 신기록을 갱신한다. 향후 1~2년 미국 시장을 좋게 보는 근거다.
셋째는 부의 효과다. 자산 가격 상승이 소비를 떠받친다. 한국에서도 태어나자마자 1억 원을 증여받는 아이들이 2~3년 전과 비교되지 않게 늘었다. 부동산에서 금융으로, 세대 간 부의 이전 수단이 바뀌고 있다. 이 세 갈래가 하트넷이 말한 붐 루프를 한 단계 더 밀어올린다.

(2) 주식시장은 경제가 아니다, 소프트 데이터의 함정
" 심리 지표 최악이던 2023년, 침체는 오지 않았다."
10년 넘게 강조해 온 명제를 다시 꺼낸다. 주식시장은 경제가 아니다.
2023년이 그 교과서적 사례였다. 당시 소기업 낙관지수와 ISM 지수는 역사상 최저 수준까지 떨어졌고, SNS에는 대공황보다 심하다는 한탄이 넘쳤다. 그러나 침체는 오지 않았다. 당시 우리는 제조업에 국한된 순환 침체일 뿐이라고 진단했는데, 시간이 지나 그 이유가 밝혀졌다. 코로나19 이후 재정 지출로 미국 가계에 직접 주입된 현금이 가처분 소득을 유례없는 고점으로 끌어올려, 5.5%의 고금리를 견디게 해 준 것이다.
이때 갈린 것이 소프트 데이터와 하드 데이터다. 소기업 낙관지수, ISM, 컨퍼런스보드 지수는 전부 '어떻게 느끼는가'를 묻는 심리 지표다. 반면 GDP 성장률이나 실업률은 실제 숫자로 측정되는 하드 데이터다. 2023년 소프트 데이터는 최악이었지만 하드 데이터의 침체는 없었다. 구조도 다르다. 상장사는 코스피 기준 매출 1,000억 원 이상의 거대 기업들로, 작은 회사들처럼 심리 지표를 따라 흔들리지 않는다. 버블 붕괴를 외치는 목소리의 상당수가 소프트 데이터에 기대 있다면, 일반의 상식과 체감으로 주식시장을 판단하는 습관과 먼저 결별할 필요가 있다.

(3) 철도는 GDP의 5%, AI는 아직 2%가 안된다
" 기술혁명은 언제나 CapEx가 먼저 움직였다. "
인모스트는 2017년 말 출범 때부터 구조적 성장과 기술의 시대를 말해 왔다. 그 연장선에서 보면 경제는 물질경제(Atom)에서 디지털경제(Bit)를 지나 AI경제(Token)로 넘어가는 중이다. 디지털경제가 고용 없는 성장을 가능케 한 무형경제였다면, AI 팩토리와 데이터센터가 상징하는 토큰경제는 생산함수 자체를 바꾸는 전환이다. 이런 거대 전환기에는 언제나 CapEx가 먼저 움직인다.

역사적으로 GDP 대비 1% 수준의 투자는 반도체나 통신 같은 섹터 주도 랠리의 영역이다. 2%부터는 경제 전반의 생산함수가 바뀐다. 전기화와 PC·인터넷 사이클이 그랬다. 산업혁명의 효시였던 철도·운송 혁명은 GDP의 5%가 투입된, 80년의 산업 사이클과 50년의 투자 사이클을 가진 초장기 전환이었다. 전기 혁명은 산업 사이클 60년에 투자 사이클 20년, 인터넷은 20여 년에 10년이었다. 현재 AI의 설비투자는 GDP 대비 1%를 넘어섰지만 아직 2%에는 미치지 못한 수준으로, 2028년 이후 2%를 넘어설 것으로 추정된다. 글로벌 IB들은 평균 1.5~2.5%를, 엔비디아는 4% 이상을 전망한다.

과거 기술혁명의 규모에 비추면 이번 전환의 최종 투자 규모는 적어도 GDP의 2%와 5% 사이가 될 것으로 본다. 그만큼의 자금과 시간이 남아 있다는 뜻이고, 인모스트가 메모리 반도체, 전력, 통신 네트워크에 투자해 온 것은 전부 이 연속성에 대한, CapEx에 대한 투자다. 생산성은 뒤늦게 온다. 먼저 오는 것은 물리적 투자다.

4. 한국의 역설 — 그리고 도마뱀의 뇌
마지막 답은 한국 시장, 그리고 그보다 더 가까운 우리 자신의 심리에 있다. 좋은 장에서 투자를 실패하게 만드는 것은 시장이 아니라 투자자의 뇌이기 때문이다.
(1) PER 7.3배의 축복, 반도체 국가의 저주
" 두 종목을 빼면 코스피 상승률은 반토막 난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이익 추정치 급등 덕에 코스피의 PER은 7.3배, 여전히 딥밸류 구간이다. 메리츠증권의 9,900을 비롯해 12,000까지 제시되는 목표 지수도 두 종목을 포함하면 그렇게 계산된다. 적정 가격으로 따지면 한국은 아직 싸다.

약점은 그 축복과 같은 곳에서 나온다. 반도체 국가의 저주, 곧 반도체 이익의 정점이 주가의 정점을 만드는 구조이고, 이는 사이클마다 반복돼 온 한국 시장의 오랜 체질이다. 쏠림도 심각하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빼면 코스피 상승률은 78%에서 30%로 낮아지고, 8,000대의 지수는 4,100선으로 내려앉는다. 미국의 좁아진 상승 폭보다 훨씬 좁다. 반도체 ETF를 샀을 뿐인데 두 종목에 집중투자한 것 같은 효과가 나는 이유다. 지수는 신고가인데 내 계좌는 빈약하니, 두 종목의 보유자와 미보유자는 완전히 다른 시장을 산다. 삼성전자의 대규모 인센티브가 부러움을 사는 동안, 두 종목이 없는 계좌는 그 기쁨을 간접적으로라도 누리려 반도체로 더 쏠린다. 그러나 두 종목에 모든 것을 거는 투자의 끝은 대개 좋지 않았다. 잘 관리해야 하는 국면이다.

(2) 좋은 걸 샀어도 못 팔면 수익이 없다
행동재무학이 말하는 손실회피 성향은 손실의 아픔을 이익의 기쁨보다 2배 이상 크게 느끼게 만든다. 그래서 떨어지면 손실을 확정하기 싫어 팔지 못하고, 본전 부근에 오면 실패를 감추고 싶어 곧바로 팔아버린다. 최근 한 북토크에서 만난 분의 이야기가 전형이다. 8만 원대에 산 삼성전자가 5만 원대까지 밀리는 동안 추가 매수로 평균 단가를 낮추며 버텼고, 2년여 만에 평균 단가를 넘어서자 뿌듯한 마음으로 정리했다. 총수익 2만 6,000원. 그 주식은 현재 30만 원대다.

2차전지도 같았다. 고점에서 매도했다면 198%의 수익이었을 보유 기간 수익률이, 팔지 못한 계좌에서는 마이너스 13%로 끝났다. 고점에 올라탄 매수는 자발적 장기투자가 되기 쉽다. 당시 2차전지 리밸런싱을 권고했을 때 돌아온 "지금 왜 파느냐, 더 사겠다"는 반응이 그 전형이었다.

생물학자 출신 테리 버넘(Terry Burnham)은 '비열한 시장과 도마뱀의 뇌'에서 이 심리의 뿌리를 짚는다. 수렵 시대의 뇌는 빠르게 반응하고, 먹이가 보이면 즉시 먹고, 무리를 따라 움직이도록 설계됐다. 시장에서는 전부 거꾸로 작동하는 본능이다. 시장이 비열한 것이 아니다. 도마뱀의 뇌로 들어온 사람에게만 비열하게 보일 뿐이다.

(3) 일찍 팔아도 진다, 숏과 알고리즘의 덫
" 공포에 판 다음 수순은 3배 인버스였다. "
못 파는 심리의 반대편에는 너무 일찍 파는 심리가 있다. 조정을 붕괴로 확신하고 모두 팔아치운 개인의 다음 수순은 떨어지는 쪽에 거는 투자다. 3배짜리 인버스에 들어갔다가 하루 만에 90% 하락한 사례가 전형이다. 월가에서 버블 경고가 이어지고, 유튜브 알고리즘은 한번 본 붕괴 경고 영상을 비슷한 영상으로 계속 채워 준다. 모든 전문가가 같은 말을 하는 듯한 착시 속에서 확신은 굳어진다. 2020~2021년의 강세장에서도 똑같이 반복된 패턴이다. 이 확신으로 하락에 거는 순간 손익은 방향만이 아니라 시간과의 싸움이 되는데, 강세장 한복판의 인버스는 버티는 하루하루가 손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강세장의 마지막 1년은 앞선 5~6년만큼을 한 번에 올린다. 일찍 내린 사람은 그 구간을 견디지 못하고, 약이 오를 대로 오른 마지막에 다시 들어와 가장 아픈 자리를 산다. 전문가의 경고를 듣고 스스로 붕괴를 판정하는 선무당의 칼은, 시장보다 자기 계좌를 먼저 벤다. 못 팔아도 지고, 너무 일찍 팔아도 진다. 도마뱀의 뇌는 양방향으로 공평하게 작동한다. 그래서 이 게임의 답은 타이밍이 아니라 구조에 있다.

(4) 다이내믹 로테이션, 파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 법
" 같은 테마 안에서도 무기를 갈아 끼운다. "
사놓고 방치하는 것이 장기투자는 아니다. 인모스트는 2022년 7월 방위산업을 유니버스에 편입한 뒤 동일가중에서 시가총액가중으로, 다시 분산으로, 유럽 특화로, 우주항공 액티브로 다섯 단계에 걸쳐 ETF를 교체해 왔다. 같은 테마 안에서도 사이클이 바뀔 때마다 그 국면에 맞는 ETF로 갈아 끼우는 다이내믹 로테이션(Dynamic Rotation)이다. 안 가는 것은 손절한다. 설비투자 테마 ETF를 마이너스 6.7%에 정리한 것이 그 사례다. 개인의 심리로는 어려운 일을 시스템과 규칙이 대신한다. 가끔 농담처럼 말하듯, 우리가 파는 데 과감할 수 있는 까닭은 운용하는 돈이 내 돈이 아니기 때문이다. 내 돈이 되는 순간 누구나 도마뱀의 뇌로 돌아간다.

이 구조가 만든 결과는 실제 계좌가 증언한다. 2020년의 강세장 끝자락에 들어와 2022년의 하락을 시스템 안에서 견딘 한 고객의 계좌는 연평균 13%의 복리를 쌓아, 1억 2,000만 원이 5년여 만에 2억 3,000만 원이 됐다. 같은 기간 하락이 두려워 추가 매수를 멈추고 계좌를 방치한 경우에도 연평균 10%는 나왔다. 차이를 만든 것은 종목 선택이 아니라 떨어질 때도 규칙을 따랐는가였다.

- 본 내용은 2026년 06월 10일에 진행된 인모스트투자자문의 시황세미나를 토대로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