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8일, 미국 10년물 국채금리는 4.80%로 2023년 11월 이후 최고 수준권에 머물러 있었다. 하루 전 브렌트유는 배럴당 97달러였고, 시장에서는 9월이 최악의 한 달이 될 것이라는 걱정이 쏟아졌다.
그런데 미국 주가 지수는 사상 최고치 근처를 떠나지 않았고, 엔비디아는 여전히 공급이 모자란다고 말했다. 그사이 원/달러 환율은 두 달여 만에 고점 대비 13% 넘게 내려갔다. 미국 주식에 투자한 계좌에서는 달러로 오른 종목마저 원화로는 손실이 찍혔다.
9월은 정말 최악의 달인가. 흔들리는 지수 아래에서 시장을 이끄는 힘은 어디에 있는가. 원화가 오른 지금, 달러 자산은 어떻게 대해야 하는가. 실마리는 먼저, 빚을 진 미국 정부가 금리와 돈의 흐름을 다루는 방식에서 찾을 수 있다. 이번 호는 그 방식이 바꿔 놓은 시장의 틀을 따라가 보려고 한다.
1. 9월은 정말 최악의 달인가
달력은 계절을 알려 줄 뿐, 올해 가을의 무게는 연준과 재무부, 그리고 유가가 정한다.
(1) 숫자들이 서로 다른 방향을 가리킬 때
"10년물 4.80%는 우리가 위기로 보는 5.0% 바로 아래, 밴드의 최상단이다.”
지난 한 달은 7월의 급락에 비하면 조용했다.
반등도 나왔지만 9월이 걱정된다는 목소리는 끊이지 않았고, 그 걱정의 한가운데에는 시장을 누르는 두 숫자인 금리와 유가가 있다. 9월 8일 미국 10년물 국채금리는 4.80%로 2023년 11월 이후 최고 수준권이었다. 5.0%를 위기의 금리로 보는 기준에서 4.80%는 10년물 금리 밴드(등락 범위)의 최상단이며, 이 수준에서는 채권을 매수하겠다는 월가 기관도 많다.
브렌트유는 9월 7일 배럴당 97달러였다. 미국 가계에 휘발유는 생필품이어서, 유가는 인플레이션을 부르는 동시에 나쁜 경기를 체감하게 만든다. 이란과 미국의 상황을 보면 유가는 쉽게 가라앉지 않을 것으로 보이지만, 전쟁이 멈추면 80달러 밑으로 내려갈 수도 있을 만큼 시나리오의 폭이 크다.
8월 고용은 16만 2,000명 늘어 예상치 5만 6,000명을 크게 웃돌았다. 9월 8일 기준으로 9월 16일 연방공개시장위원회(Federal Open Market Committee, FOMC)의 금리 인상 확률은 약 60%까지 반영되어 있었다.
떠받치는 숫자도 만만치 않았다. 9월 8일 종가 기준 S&P 500은 7,674로 사상 최고치 근처에 있었고, 엔비디아·델·브로드컴은 인공지능(Artificial Intelligence, AI) 서버 실적의 호조를 확인했다. 코스피는 6,955, 원/달러 환율은 1,345.6원으로 7월 2일 고점보다 약 13.5% 낮았다. 숫자들이 서로 다른 방향을 가리키는 혼조다.
(2) 동전 던지기보다 낮은 확률의 달
“평균 -1.17%를 끌어내린 것은 1931년 9월의 -29.6%였다.”
혼조 속에서 걱정의 근거로 가장 먼저 꼽히는 것은 달력이다. 뱅크오브아메리카 집계로 1928년 이후 S&P 500의 9월 평균 수익률은 -1.17%로, 평균이 마이너스인 유일한 달이다. 상승 확률은 44%로 동전 던지기보다 낮다. 역사상 최악의 40개월 가운데 9개가 9월이었고, 지난 5년 중에는 네 번 하락했다.
원인을 따라가 보면 수급과 유동성에 닿는다. 9~10월에는 국채 공급이 늘어 시장의 유동성이 귀해진다. 9월 30일 연방 회계연도 말과 10월 31일 뮤추얼펀드 회계연도 말이 이어지고, 실적 공백기의 자사주 블랙아웃 기간에는 가장 안정적인 매수 주체가 사라진다. 변동성지수(Volatility Index, VIX)와 장기금리가 9~10월에 계절적으로 올라 온 배경이다. 휴가 뒤의 포지션 정리와 '9월은 나쁘다'는 믿음이 부르는 선제 매도도 힘을 보탠다. 올해는 그 수급의 계절에 금리와 유가의 압력까지 더해졌다.
그러나 이 평균은 이상치가 만든 숫자다. 대공황기인 1931년 9월 한 달의 -29.6%가 100년 평균을 끌어내렸다. 9월의 낙폭 자체는 심각하지 않다.
추세는 계절을 이긴다. 1950년 이후 200일 이동평균선 위에서 9월을 맞은 해에는 평균 +1.3%를 기록했고 60%가 올랐다. 9월 8일 기준 S&P 500은 200일선 위에 있었다. 동전을 기울이는 것은 추세다.

(3) 9월 16일과 11월 3일 사이
"1950년 이후 중간선거 뒤 12개월, S&P 500은 매번 플러스였다.”
올해 9월에는 통계보다 무거운 일정이 겹쳐 있다.
첫 관문은 9월 10~11일의 소비자물가지수(Consumer Price Index, CPI)와 생산자물가지수(Producer Price Index, PPI)다. 근원 CPI가 전월 대비 0.3%를 넘으면 인상 압력이 커지고, PPI까지 나오면 개인소비지출(Personal Consumption Expenditures, PCE) 물가를 가늠할 수 있다. 일정은 9월 16일 FOMC와 11월 4일 4분기 국채발행계획(Quarterly Refunding Announcement, QRA)으로 이어진다.
케빈 워시(Kevin Warsh) 연준 의장은 포워드 가이던스(사전 안내)를 내보이지 않는다. 지난 레터들에서 짚었듯, 그가 비둘기로 평가받는다면 채권 자경단이 장기금리를 끌어올려 시장이 무너질 수 있다. 매파로 보이는 것이 시장을 안정시키는 가장 비용이 적은 방법인 이유다. 우리는 9월 동결 쪽에 무게를 두어 왔지만, 연준과 재무부가 내놓을 결정은 예측이 어렵다. 그래서 9월은 최악의 달이 될 수 있다. 연준의 인상 여부, 재무부의 단기 국채와 바이백(국채 조기 매입), 그리고 유가. 이 셋은 돈이 누구 손에서 풀리느냐의 문제로 모인다.
중간선거 해의 약세는 결과를 기다리며 위험을 피하는 2~3분기에 몰렸다. 그러나 1950년 이후 중간선거 뒤 12개월은 매번 플러스였고 평균 상승률은 15% 내외였다. 예외 없이 되풀이된 계절성이다. 과거 통계가 미래를 보장하지는 않지만, 우리는 11월 3일 중간선거 이후의 흐름을 봐야 한다고 판단한다.
그렇다면 9월 이후 시장은 누가 이끄는가. 월가의 시선은 둘로 갈려 있다.

2. 시장을 보는 두 개의 시선
병목이 풀리지 않는 한, 주도권은 잠시 옮겨 갔다가 병목으로 돌아온다.
(1) 반도체가 쉬는 동안, 윌슨의 확산론
"반도체 이익 수정 폭 70%는 25년 동안 서너 번밖에 없던 극단이었다.”
하나는 주도업종이 옮겨 간다는 시선이고, 다른 하나는 AI의 병목이 풀리기 전까지 주도업종은 바뀌지 않는다는 시선이다. 첫 번째 시선의 대표 주자는 모건스탠리에서 최고투자책임자(CIO)로 미국 주식전략을 총괄하는 마이클 윌슨(Michael Wilson)이다.

윌슨은 AI 병목의 한가운데서 공급이 절대적으로 부족해 '부르는 게 값'이던 반도체의 모멘텀이 소진되고 있다고 진단한다. 반도체는 경기순환(시클리컬) 업종이어서 이익 증가율의 정점이 주가의 고점이 된다. 그가 꼽은 첫 신호가 반도체 이익 수정 폭 70%였고, 7월 필라델피아 반도체지수(SOX)는 고점 대비 -14%까지 밀렸다.
윌슨은 2025년 4월 롤링 리세션이 끝나고 새 확장이 시작되어, 현재는 경기 중반(미드 사이클)에 들어섰다고 평가한다. 유동성 장세가 실적 장세로 넘어가면 온기가 곳곳으로 번지는 확산이 나타나고, 주도권도 그동안 시장을 끌어 온 업종 밖으로 옮겨 간다는 논리다. 그의 7월 하순 분석에 따르면 직전 몇 주 동안 초대형 클라우드 사업자(하이퍼스케일러)의 주가는 반도체를 약 30%p 앞섰다. 그는 이를 ChatGPT 이후 하이퍼스케일러와 반도체가 주도권을 주고받은 네 번째 교대로 규정한다.
처방은 모멘텀 추격을 자제하고 소비재·운송·바이오를 담으라는 것이었다. 6월에는 지역은행도 꼽았고, 연말 S&P 500 목표로 8,000을 제시하면서도 7,000까지의 조정 가능성을 열어 두었다. 그는 이것이 AI 사이클의 종언을 뜻하지 않으며, 주가는 성장의 변화율에 반응한다는 취지로 설명했다.
(2) 반은 맞고 반은 틀린 성적표
"윌슨은 교대를 맞혔지만, 방향은 금리와 유가가 정했다.”
8~9월의 시장은 윌슨에게 절반의 점수만 주었다.
반도체 모멘텀이 소진된다는 판단은 7월 급락으로 맞는 듯했다. 그러나 8월 26일 엔비디아가 공급 제약을 밝히자 반도체가 다시 부상했고, 9월 첫 주 반도체 랠리가 재개되며 코스피가 9월 7일 하루 4.6% 올랐다. 하이퍼스케일러가 반도체를 앞선다는 판단도 맞았지만, 판정은 아직 진행형이다. 흐름은 직선으로 가지 않았다.
섹터 확산은 방향만 맞았다. 3분기 들어 에너지는 21% 올랐고 산업재는 7% 내렸다. 확산의 주역은 에너지·헬스케어였고, 그가 꼽은 소비재·운송은 오르지 않았다. 연준 동결이라는 금리 가정도 잭슨홀을 거치며 흔들려, 현재는 그의 시나리오에 불리하다. 이 성적표로 보면 확산은 반도체가 쉬는 동안 다른 업종이 뒤따르는 구간이다.
윌슨은 경기 사이클 자체가 바뀌었다고 진단한다. 그 판단이 옳다면 보유 업종을 줄이고 종목을 교체해야 한다는 결론이 나온다. 우리는 그렇게 보지 않는다. 시장에서 지켜본 바로는 AI 안에서 하이퍼스케일러와 반도체가 자리를 주고받는 일은 있어도, 강세장이 살아 있는 한 주도업종 자체는 교체되지 않았고 그 교체는 곧 강세장의 끝이었다.
두 시선은 층위가 다르다. 윌슨이 보는 것은 주가의 변화율이고, 병목론이 보는 것은 실물의 수급이다. 우리는 병목을 구조로, 확산을 그 위의 파동으로 본다. 확산이 끝나는 순간 주도권은 다시 병목으로 돌아온다.

(3) 돈은 엔비디아가 원가로 지불하는 곳으로 흐른다
"고객의 수요 전망은 100% 성장인데, 공급에 막힌 성장 전망은 70%에 머문다.”
병목론의 첫 증거는 엔비디아의 실적이다. 8월 26일 발표한 2분기 매출은 962억 달러로 106% 늘었고, 데이터센터 매출은 890억 달러로 117% 증가했다. 2028 회계연도 성장 전망이 70%에 머무는 이유는 공급 제약이며, 최고재무책임자(CFO)가 밝힌 고객의 수요 전망은 100% 성장, 곧 2배다. 엔비디아는 하이퍼스케일러의 자본적 지출(Capital Expenditure, CapEx)이 2026년 약 8,000억 달러에서 2027년 약 1조 3,000억 달러로 늘어날 것으로 제시했다.
반도체가 다시 힘을 얻은 배경에는 OpenAI의 GPT-6 '아스트라(Astra)' 출시도 있었다. 아스트라는 공개로 풀린 오픈웨이트 모델보다 핵심 업무를 빠르게 끝내 토큰을 적게 쓰면서, 사실상 토큰 가격을 낮춘 효과를 냈다. 토큰이 싸질수록 사용은 늘어난다. 이것 하나 때문은 아니지만, 프론티어 모델이 경쟁에서 밀려 메모리 투자가 줄 것이라는 반도체 조정론은 힘을 잃었다.

젠슨 황 최고경영자(CEO)와 콜레트 크레스 CFO는 성장의 상한을 메모리 공급에서 찾았고, 그 부족이 2028 회계연도 초까지 이어진다고 밝혔다. 서버 D램(DRAM) 가격은 2025년 하반기 64% 올랐고, 트렌드포스(TrendForce)는 2026년 260% 상승을 전망한다. SK하이닉스 최고경영자는 2027년을 부족이 가장 심한 해로 꼽는다. 여러 번 짚었듯 메모리 업계는 지난해 상반기까지 '반도체의 겨울'을 이유로 생산을 줄여 두었다. 부족이 더 깊을 수밖에 없다.
병목의 이익은 엔비디아가 원가로 지불하는 곳으로 옮겨 간다. 한국 반도체 수출은 2026년 1~8월 누계로 169.6% 늘었고, 모건스탠리는 아시아 CapEx 슈퍼사이클의 수혜 1순위로 한국을 꼽는다. 메모리 가격은 한국 반도체의 이익이 되고, 그 이익은 원화와 코스피를 움직이는 동력이 된다. 원화 강세로 원화 기준 수출액이 6월 156조 원에서 8월 138조 원으로 줄어든 것은 함께 읽어야 할 리스크다.

(4) 칩은 온다, 변압기가 안 온다
"변압기 리드타임은 160주, 2028년까지 AI의 조달 갭은 1조 5,000억 달러다.”
반도체주는 곧바로 반등했지만, 두 번째 병목인 전력은 다른 모습을 보인다. 칩은 오는데 변압기는 오지 않는다. 변압기 납품 리드타임은 2023년 140주에서 160주 이상으로 길어졌고, 북버지니아·피닉스·댈러스에서는 데이터센터의 전력망 접속 대기가 4~7년에 이른다. 소형모듈원전(Small Modular Reactor, SMR)과 원전도 곧바로 생산에 들어가지 못해 지연되고 있고, 뉴욕에서 시작된 데이터센터 건설 반대는 전국으로 번졌다. 수요는 크지만 실제 매출이 되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릴 것이라는 인식이, 병목의 가치가 이미 주가에 반영된 것 아니냐는 의문으로 이어졌다. 그래서 병목 업종 가운데 전력은 강한 반등을 보이지 못하고 떨어진 채 머물러 있다.
세 번째 병목은 자본이다. 모건스탠리 분석으로 2028년까지 데이터센터 CapEx 2조 9,000억 달러 가운데 영업현금흐름으로 댈 수 있는 몫은 1조 4,000억 달러다. 나머지 1조 5,000억 달러의 조달 갭은 사모신용(Private Credit)·회사채·유동화 등이 메운다. 메리츠증권 집계(8월 25일)로 하이퍼스케일러 4사의 부채는 부외부채(장부에 잡히지 않는 부채)까지 합쳐 약 3조 달러다. 장기금리가 곧 AI의 원가다.
몇 달 전 우리는 이런 자본조달 구조가 위험하다고 말했다. 지금은 사정이 달라졌다. 미국 정부가 사활을 건 영역이 되면서 정부는 이곳에 유동성을 더 흘려보내려 하고, 당분간은 조일 수도 없다. 현재로서는 위험하지 않은 상태라고 보는 이유다.
그래서 우리는 AI 병목 업종이 여전히 주도업종이라고 본다. 중간선거와 계절성, 연준의 불확실성에 몇 달 갇혀 있을 수 있지만 올해 말에는 주도권을 되찾을 것으로 예상한다.
AI의 원가가 장기금리라면 재무부의 바이백은 AI 정책이 된다. 그런데 정부는 금리를 그대로 둘까. 병목이 연말에 주도권을 되찾는다고 보는 이유는 이 물음의 답에 있다.
3. 리짐 체인지, 선택당하는 정부
틀이 바뀌는 시기에 그 틀을 읽지 못하면, 시장은 끝내 읽히지 않는다.
(1) 출구가 하나뿐인 부채의 산수
"부채 약 40조 달러, 긴축도 디폴트도 닫힌 나라에 남은 출구는 성장이다.”
리짐 체인지(Regime Change), 시장의 체제 전환. 월가의 시트리니(Citrini)가 8월 27일 내놓은 보고서의 제목이다. 우리에게는 낯선 말이 아니다. 2년 전부터 시황에서 40년간 이어진 저금리·저물가·저성장의 틀이 중금리·중물가·중성장으로 바뀐다고 말해 왔기 때문이다. 다만 현재의 미국은 부채 문제를 묻어 둘 만큼 숫자로 고성장을 만들어야 하기에, 정부의 가장 큰 관심은 GDP 성장률을 끌어올리는 데 있을 수밖에 없다.
미국 연방부채는 약 40조 달러, 재정적자는 GDP의 6%다. 상대가 미국이라 해도 빚이 많은 채무자는 더 높은 이자를 요구받으니, 조달금리가 오르는 것은 자연스럽다. 빚은 줄여야 한다. 그런데 줄일 수 없다.
부채를 갚는 길은 세 가지뿐이다. 긴축과 디폴트, 그리고 성장이다. KB증권은 8월 27일 긴축을 '정치적 자살'로 규정했고, 재정건전화를 선언한 정권이 줄줄이 실권했다는 점을 근거로 들었다. 디폴트는 애초에 선택지가 될 수 없다. 남는 것은 물가 상승분을 포함한 성장, 곧 명목성장이다.
성장률이 높으면 부채비율은 낮아지지만, 시계는 빠듯하다. NH투자증권은 8월 31일, 2026년 평균 조달금리 3.40%가 명목성장 가정 4.3%보다 0.90%p 낮아도 그 여유가 해마다 줄어든다고 계산했다. 같은 계산에서 조달금리가 성장률을 앞지르는 시점은 2033년경이다. NH투자증권 김병연의 말대로 미국은 성장을 지속하는 방법밖에 없고, 성장이 멈추는 순간 문제가 달라진다.
성장의 엔진은 무엇인가. 모건스탠리는 AI CapEx가 해마다 GDP 성장률을 약 0.4%p 끌어올린다고 추산한다. 명목성장의 엔진이 AI CapEx라면, 정부는 병목 투자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선택당한다. 우리가 미국 정부의 선택지를 매우 좁게 보는 이유다.

(2) 1946년의 페그, 2026년의 바이백
"118%였던 부채비율은 흑자로 갚지 않고도 23%까지 내려왔다.”
부채와 금리의 문제가 이만큼 겹친 선례는 한 번뿐이다.
2차 세계대전 직후인 1946년 미국 정부부채는 하나증권 집계로 GDP의 118%였고, 1974년에는 23%까지 내려왔다. 흑자로 갚은 것이 아니었다. 금리를 묶고 인플레이션을 감수하며 명목성장으로 비율을 줄였다.

그 수단이 금융억압(Financial Repression)이다. 재무부가 연준을 눌러 정부의 조달 창구처럼 쓰는 방식으로, 1942~1951년 미국은 장기금리를 2.5%, 단기 국채 금리를 3/8%(0.375%)에 묶는 금리 페그(고정)를 유지했다. 장기금리를 낮게 묶는 수익률곡선 통제(Yield Curve Control, YCC)와 오퍼레이션 트위스트도 썼다. 1946년에는 물가가 급등하고 실질금리가 마이너스로 내려갔다. 1951년 재무부·연준 협약(어코드)으로 연준은 비로소 통화정책의 독립을 얻었다.
2026년에는 재무부가 앞장선다. 베센트(Bessent) 재무장관은 9월 9일부터 11월 4일까지 장기채 바이백을 회당 20억 달러에서 40억 달러 이상으로 늘리기로 했다. 또한 재무부 일반계좌(Treasury General Account, TGA)에는 9,500억 달러가 쌓여 있다. 30년물 금리는 8월 20일 5.27%로 19년 만의 최고를 찍은 뒤 바이백 발표에 9bp(0.09%p) 내렸다가 되돌아왔다. 이른바 '베센트 풋'의 효과를 두고는 논쟁이 이어지지만, 우리는 그 효과가 작동하고 있다고 본다. 쌓아 둔 TGA 현금은 장기금리 상승에 베팅한 쪽에 보내는 경고이며, 10년물 금리가 4.8% 위로 쉽게 오르지 못하는 배경에도 이 경계심이 깔려 있다고 판단한다.
지난달 레터에서 살펴본 워시의 뉴 어코드가 이 판본의 설계도다. 1951년의 어코드 1.0이 연준의 독립 선언이었다면, 2.0은 재무부와 연준이 손발을 맞추는 체제로 돌아가는 일이다. 두 기관이 협조하면 장기금리를 묶어 두고, 빚이 산처럼 쌓여도 성장이 부각되게 할 수 있다. 1940년대에도 처음 단기 국채를 받아 준 쪽은 상업은행이었다. 그 역할이 다시 은행으로 돌아오고 있다.
(3) 은행으로 바꿔 끼우는 돈의 파이프
"JP모건은 규칙이 나오기도 전에 현금 비중을 7.8%에서 6.2%로 줄였다.”
금융위기 이후 시장에 돈을 푼 주체는 연준의 양적 완화(Quantitative Easing, QE)였고, 코로나19 때는 정부 지출이 뒤를 이었다. 그러나 쌓인 부채 탓에 정부가 지출을 더 늘리기는 어렵다. 연준은 2025년 12월 양적 긴축(Quantitative Tightening, QT)을 끝낸 뒤 월 최대 400억 달러의 단기 국채(T-bill, 이하 빌)를 사들였고, 2026년 8월 14일 매입을 멈췄다.
새 공급자는 누구인가. 시트리니는 8월 27일 보고서에서 이 흐름을 세 문장으로 정리했다. "연준은 줄고 은행은 커진다. 둘 다 빌을 산다. 재무부는 채권 대신 빌을 판다." 유동성의 창구가 은행으로 옮겨 간다는 뜻이다. 리짐 체인지는 돈이 흐르는 파이프를 연준에서 은행과 재무부 쪽으로 새로 까는 배관공사다.
미란(Miran)이 공저한 연준 논문은 할인창구(연준이 은행에 담보를 받고 급전을 빌려주는 창구)가 은행 우량 유동자산의 20%까지 담보를 인정하는 안을 담았다. JP모건은 규칙이 나오기도 전에 총자산 대비 현금 비중을 2025년 말 7.8%에서 6월 6.2%까지 낮췄다. 3월 3일에는 베센트와 연준의 보우먼(Bowman)이 은행 유동성 규제의 리셋과 할인창구의 낙인 해소를 내걸었다. 메리츠증권은 8월 25일 다음 단계를 민간은행의 대차대조표를 동원하는 일로 평가하고, 유동성커버리지비율(Liquidity Coverage Ratio, LCR) 개정을 마지막 퍼즐로 꼽았다.
반론도 있다. 마이클 바(Michael Barr)는 5월 14일 연설에서, 할인창구의 담보 인정은 지급준비금 수요는 줄이지 못한 채 국채 수요만 줄일 것이며 2023년의 교훈은 규제 강화라고 반박했다.
베센트가 밝힌 규제 리셋의 목적은 AI 인프라와 국내 공급망, 방산에 수천억~수조 달러를 대출할 여력을 확보하는 데 있다. AI가 패권국의 자리를 정하는 이상 정부는 멈출 수 없다. AI 자본지출의 진짜 경고등은 어디서 켜지는가. 재정흑자 기조가 나올 때다. 1998~2001년 클린턴 정부의 재정흑자는 IT 버블의 붕괴와 겹쳤다. 지금은 GDP 6%의 적자를 감수하는 정반대 국면이다. 아직 그 불은 들어오지 않았다.

(4) 억압은 구조, 인상은 경로
"연준이 2%를 재확인하는 동안, 물가는 65개월째 2%를 웃돌았다.”
남은 질문은 물가다.
7월 근원 PCE 물가는 3.3%, 헤드라인(전체) PCE 물가는 3.7%로 2021년 3월 이후 65개월째 2%를 웃돌았다. KB증권이 베센트의 정책을 금융억압의 첫발로 평가하는 등, 국내 주요 증권사는 이미 금융억압을 기본 가정으로 쓴다.
긴장은 연준에서 온다. 워시는 8월 28일 잭슨홀 연설에서 2% PCE를 확고하고 고정된 목표로 재확인하며, 단기금리를 주된 수단으로 삼고 금융여건은 제약적이지 않다고 말했다. 이후 9월 인상 확률은 약 60%로 높아졌다.
연준의 2% 재확인과 금융억압이라는 기본 가정은 함께 성립할 수 있다. 미국에서는 성장이 동반하는 일정 수준의 인플레이션을 용인해야 한다는 인식이 조성되고 있다. 억압은 구조이고 인상은 경로다.
리짐 체인지의 렌즈로 보면 익숙한 공식도 달라진다. 예전에는 금리가 오르면 주식이 하락했지만, 명목성장으로 빚을 작게 보이게 해야 하는 지금은 금리가 오를 수밖에 없고 실제로 5월 이후 금리와 주가가 함께 올랐다. 인플레이션의 기준점은 2%에서 3~4%로 옮겨 갈 가능성이 있고, 유가 같은 체감물가는 관리 대상으로 남는다. 장기채도 예전 같은 안전자산으로 보기 어렵다. 정부가 붙들고 움직이는 대상이 되어, 문제가 터졌을 때 방어 수단으로 쓰이기 어렵기 때문이다.
시황을 읽는 순서도 실물의 수급인 병목, 빌·바이백·은행으로 이어지는 정부의 자금조달, 연준의 경로, 그리고 그 위의 파동인 계절성과 확산으로 바뀐다. 이 논지를 약하게 만드는 신호도 적어 둔다. 9월 16일에 25bp 인상과 2% 목표의 재강조가 겹치는 경우, 11월 4일 QRA의 장기채 발행 유지, 30년물 금리의 5.3% 선 재돌파다.
금리를 억지로 누르면 풍선처럼 다른 곳이 부풀어 오를 수 있고, 그 한 갈래가 달러 약세에 거는 투자다. 환율에 대해 우리가 지켜 온 원칙은 전체 자산의 60% 이상을 달러 평가 자산으로 상시 보유하는 것이다. 그 원칙이 현재 가장 아프게 시험받는 곳은 원화 급등으로 환산 손실이 난 계좌다.
4. 원화가 오른 지금, 무엇을 지킬 것인가
환율의 방향은 맞히려 하지 않고, 달러는 자산이 사는 집으로 삼는다.
(1) 달러로 벌고 원화로 잃은 계좌
"달러로 5.4%를 벌었는데, 원화 계좌에는 -5.9%가 찍혔다.”
앞서 본 메모리 병목은 한국 반도체의 이익이 되었고, 그 이익은 경상흑자와 함께 원화 강세의 바닥에 깔렸다. 그 원화 강세가 미국 자산을 보유한 투자자의 계좌에는 손실로 찍혔다.
7월 10일 상장한 SK하이닉스 미국주식예탁증서(American Depositary Receipt, ADR)는 9월 4일까지 달러로 5.4% 올랐다. 원화로 환산하면 -5.9%로, 환율에서만 11.3%p가 깎였다. 원화 수익률은 달러 수익률에 환율 변화가 곱셈으로 겹쳐 정해지기에, 환율이 13.8% 내리면 달러로 10%를 벌어도 원화로는 -5.2%가 된다.
서학개미(미국 주식에 투자하는 국내 개인투자자)의 순매수 상위 10종목은 달러로는 다섯 개가 올랐지만 원화로는 열 개 모두 손실이었다. 해외주식 보관금액은 1,908억 달러로 69억 달러 늘었는데, 원화로는 30조 원이 줄었다. 벌었는데 잃었다. 산식이 곱셈이기 때문이다.
레버리지는 이 곱셈을 더 아프게 만든다. 미국 반도체 3배 레버리지 상장지수펀드(Exchange Traded Fund, ETF)는 달러로 -35.4%였고, 원화로는 -44.3%까지 불어났다.
환헤지형이 답이었을까. 국내 상장 S&P 500 ETF는 7월 2일부터 8월 26일까지 환노출형이 -9.1%, 환헤지형이 +2.2%였다. 미국 주식은 올랐다. 환헤지형이 플러스라는 것이 그 증거다. 그런데 같은 상품의 기간을 7월 28일까지 1년으로 잡으면 환노출형 +22.9%, 환헤지형 +13.4%로 순서가 뒤집힌다. 어느 기간을 보여 주느냐가 결론을 바꾼다.

(2) 달러 공급의 도미노가 밀어 올린 원화
"두 달 사이 원화가 스스로 만든 절상분이 9~10%p에 이른다.”
원화를 이만큼 밀어 올린 힘은 무엇인가. 원/달러 환율은 7월 2일 고점 1,555.8원에서 9월 8일 종가 1,345.6원으로 약 13.5% 내렸다. 집계 시점이 달라 이 수치와 차이가 있지만, 7월 1일 이후 달러인덱스(DXY)가 1.7% 내리는 동안 원/달러 환율은 11% 내렸다. 달러 약세로 설명되는 몫을 빼면 약 9~10%p가 원화 고유의 절상분이라는 뜻이다.
답은 달러 공급의 도미노였다. 방아쇠는 7월 10일 SK하이닉스가 ADR로 조달한 265억 달러다. 7월 15일부터 이 돈이 원화로 환전되며 일평균 외환 거래의 20%에 이르는 물량이 한 방향으로 쏟아졌다. 조선사의 선물환(미래 시점의 환율을 미리 정해 두는 거래) 매도와 법인세 중간예납 환전이 뒤를 이었고, 8월 19일 11개월 만에 1,400원이 무너지자 미뤄 둔 달러의 투매도 나왔다.
외국인 순매도가 6월 약 48조 원에서 7월 약 10조 원으로 줄면서 달러를 살 사람도 사라졌다. 바닥에는 7월 경상흑자 421억 달러, 한국은행의 두 달 연속 금리 인상(3.00%), 미·일 공조 개입이 구조적 강세 재료로 깔려 있었다.

원화가 늘 달러 약세만큼 강해지는 것도 아니다. 달러 약세가 가장 두드러졌던 지난해 상반기에 원화는 오히려 약세였다. 원화는 엔화나 위안화를 따라 움직이는 프록시 통화(다른 통화의 흐름을 대신 반영하는 통화)다. 그래서 원화의 향방은 가장 맞히기 어려운 영역에 속한다. 우리는 이번 절상도 원화 고유의 수급 도미노가 겹친 결과였다고 본다. 그렇다고 원화가 계속 강하리라고도, 곧 되돌아가리라고도 단정하지 않는다.
(3) 7년 다섯 번, 되풀이된 신문의 대사
"환율 저점에서는 환헤지를, 고점에서는 환노출을 치켜세우는 제목이 붙었다.”
이런 급절상은 처음이 아니다. 2020년, 2022년, 2024년, 2025년, 그리고 2026년. 7년 동안 다섯 번 원화가 갑자기 강해졌고, 완결된 네 번은 모두 4~9개월 안에 되돌려졌다. 촉발은 달러 약세, 연준 피벗(금리 방향 전환), 관세, 국내 수급으로 매번 달랐지만, 구조는 과도한 원화 약세의 되돌림으로 같았다.
신문의 제목도 같은 대사를 되풀이했다. 원/달러 환율이 1,307원으로 저점이던 2024년 9월에는 '환헤지 ETF가 떠오른다'는 기사가 나왔고, 그 뒤 6개월 동안 환노출형은 +11.26%, 환헤지형은 -0.37%였다. 환율이 1,466원까지 오른 2025년 3월에는 환노출형이 환헤지형의 10배 수익을 냈다는 제목이 붙었는데, 환율은 그로부터 2주 뒤 고점을 찍고 원화 강세 국면으로 넘어갔다. 틀린 것은 조언이 아니라 그 조언을 실행한 시점이었다.
채권 ETF에서는 이 문제가 더 커진다. 국내 상장 미국 10년 국채 ETF는 7월 이후 8월 26일까지 금리 상승과 환차손이 겹쳐 환노출형이 -12.61%, 환헤지형이 -2.20%였다. 앞서 본 리짐 체인지의 렌즈에서 장기 명목채는 억압 대상이고, 원화 강세까지 겹치면 손실은 이중이 된다. 채권의 달러 기준 변동은 ±5% 안팎인데 환율은 ±10% 이상 움직여, 채권 ETF의 선택은 사실상 환율 베팅이 된다.
물론 두 달 사이 환율이 깎아 낸 11%p 안팎의 수익률은 실재하는 고통이다. 다만 그것은 평가손이고, 달러 기준 해외주식 보관금액은 오히려 69억 달러 늘었다. 그렇다면 이번에도 되돌아온다고 말할 수 있는가.

(4) 달러라는 이름의 보험과 두 개의 지갑
"가장 강력한 헤지가 필요한 순간, 달러는 스스로 강해졌다.”
우리의 답은 '돌아온다'가 아니라 '맞히지 않는다'이다.
경상흑자가 쌓인 구조에서는 이번 되돌림이 얕을 수 있고, 증권사 전망도 1,300~1,440원으로 흩어져 있다. 우리는 환율을 맞힐 수 없는 영역이라고 계속 말해 왔다. 한미 금리차에 연동되는 환헤지 비용은 지난 수년 연 1.5~2% 수준이었지만, 금리차가 줄어든 현재는 연 1% 미만으로 추정된다. 비용만으로는 헤지를 마다할 이유가 약해졌다는 뜻이다. 그럼에도 우리가 자문 운용에서 환헤지형을 쓰지 않는 이유는 위기의 순간에 있다.
IMF 외환위기, IT 버블, 글로벌 금융위기, 코로나19, 2022년 긴축 발작까지 다섯 번의 위기에서 원화는 매번 약해졌다. 미국이 진앙지였던 글로벌 금융위기 때도 2007년 10월부터 2009년 2월까지 월말 기준으로 코스피는 -48%, S&P 500은 달러로 -53%였지만, 원화로 환산한 S&P 500은 -20%로 손실이 절반 이하였다. 달러는 기축통화여서 공포가 커질수록 돈이 달러로 피난한다. 한국은 소규모 개방경제여서 위기가 오면 외국인 자금이 빠져나간다. 헤지가 가장 절실할 때 달러가 스스로 강해지니, 달러 자산은 보험료를 따로 내지 않는 보험과 같다. 이것이 자연 헤지다.
우리는 전체 자산의 60% 이상을 달러 평가 자산으로 상시 보유한다는 원칙을 지켜 왔다. 전 세계 주식시장 지수인 MSCI ACWI에서 미국의 비중은 약 60%다. 전 세계 주식시장에서 한국이 차지하는 몫은 2~3%에 그친다. 원화 지갑은 한국이 좋을 때 벌어 주는 돈이고, 달러 지갑은 한국이 흔들릴 때 지켜 주는 돈이다. 달러는 자산이 사는 집이다.
대가도 있다. 원화 강세기에는 환산 수익이 낮아진다. 2003~2007년이 그랬고 지금이 그렇다. 그런 시기에는 원화 지갑이 벌 차례다. 다만 달러 자산의 비중은 투자자의 목적과 기간, 위험 성향에 따라 달리 설계해야 하며, 과거의 위기 통계가 앞으로의 결과를 보장하지는 않는다.

- 본 내용은 2026년 09월 09일에 진행된 인모스트투자자문의 시황세미나를 토대로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