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채원입니다.
며칠 전, GEEKNEWS 위클리에서 '인지 부채(Cognitive Debt)'라는 단어를 봤습니다. AI에게 사고를 맡겨버리면 단기적으론 효율이 오르지만, 장기적으론 '사고 근육'이 쇠퇴한다는 개념입니다.
읽으면서 약간 멈췄습니다. 제 얘기 같았거든요.
사고할 시간 자체가 짧아지고 있었습니다.
저는 저만의 스킬을 만들어두고 사용하고 있습니다. 경제에도 관심이 많아 저만을 위한 /today 스킬을 만들었습니다. 매일 아침 뉴스와 지표 기반으로 거시경제 분석 + 제가 보유한 포트폴리오 종목별 기술적 분석 + 액션플랜을 자동으로 정리해줍니다.
일할 때도 사업계획서의 방향성과 아웃라인을 잡는데 집중하고, 문서를 완성하거나 PPT화 하는 작업은 AI한테 시키고요. 뉴스레터도 톤 스킬, 제목 스킬을 거쳐 나갑니다.
평소에 큰 원칙과 방향은 직접 잡고, AI한테는 작업만 맡기려고 합니다. 스킬이 오늘 시장 상황에 대한 분석을 던져주면, 항상 "이 부분은 좀 이상한데?" 하면서 반박할 지점을 찾습니다.
그런데 인지 부채 개념을 보고, 한 가지가 자꾸 걸렸습니다. AI를 더 깊고 더 자주 쓰게 될수록, 평소에 충분히 사고할 '시간' 자체가 짧아지고 있다는 점이요. 생산성이 올라가고, 빠르게 처리할 수 있는 영역이 늘어나는만큼, 사고 근육을 쓰는 절대 시간이 줄어드는 함정이 있더라고요.
인지 부채는, '기술 부채'랑 같은 원리입니다
PM이나 개발자라면 '기술 부채(Technical Debt)'라는 말이 익숙하실 겁니다. 코드를 빨리 만들려고 임시방편으로 짜면 단기적으론 빠르게 보일지 모르지만, 시간이 지나면 결국 리팩토링이나 재작성을 해야 하는 상황이 오죠. 모르고 쌓이다가, 어느 순간 보면 너무 많아 손도 못 대는 그 빚.
인지 부채도 똑같습니다. AI에게 '생각하는 일'을 너무 많이 맡기면, 지금은 빠르게 무언가 해결되는 것 같아도 시간이 지나면 이런 일들이 일어납니다.
- 본질을 못 짚게 됩니다
- 이상한 답을 그냥 받아들이게 됩니다
-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도 잘 모르게 됩니다
- 결정이 점점 느려집니다
- 결국 차별점이 사라집니다
무서운 건, 기술 부채처럼 모르고 쌓이다가 어느 순간 너무 늦었다는 걸 알게 된다는 점이죠. 사고 근육은 안 쓰면 위축됩니다. 우리 몸의 근육처럼요. 사고 근육을 안 쓰다보면 빠르게 본질을 짚고, 큰 리스크를 찾고, 결정을 내려야 하는 상황이 왔을 때 판단을 내리기 어려워지는 거죠.
'AI가 사람을 대체한다'는 두려움이 많죠. 그 두려움의 진짜 시작점이 '인지 부채'라고 생각합니다. 부채가 쌓이면, 정말로 AI에 대체 가능한 사람이 되거든요. 지금까지 '생산성 올리는 법'에 집중했다면, 이제는 '사고 근육 보존하는 법'에 대해서도 같이 고민해봐야 할 때가 아닌가 싶습니다.
인지 부채를 쌓지 않고 AI 쓰는 법, 5가지
핵심은 한 가지예요. 방향과 판단은 사람이, AI는 작업만. 그럼 평소에 이걸 어떻게 지킬까요? 거창한 방법론은 아니지만, 그동안 하던 걸 글로 정리해봤습니다.
1. 정보 채널을 'AI 밖에' 두기
저는 뉴스레터를 구독해두고 매일 따로 읽고, 뉴스 기사도 직접 봅니다. AI가 정리해준 분석만 보지 않습니다.
왜 이게 중요하냐면, AI를 잘 쓰려면 사실 나도 배경 지식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토론이 잘 되려면 양쪽이 비슷한 정보를 가지고 있어야 하잖아요. 한쪽이 백지면, 그냥 다른 한쪽 말을 그대로 따라가게 됩니다.
AI 답을 검증할 만한 배경 지식이 없으면, AI를 의심할 수도 없어요. 그래서 정보 채널을 AI 외에 따로 두는 게, 사고 근육의 첫 시작입니다.
2. 본인 관점 먼저, 그 기반으로 AI에 묻기
저는 정보를 받아본 후 '내 관점은 이렇다'는 가설을 먼저 만들고, 그걸 기반으로 AI에 질문합니다.
- ❌ "이 종목 어떤가?" (백지에서 묻기)
- ✅ "내가 보기엔 이 종목이 이러한 이유로 장기적인 테제는 무너지지 않은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해?"
그러면 AI가 내 관점을 검증, 보완하는 역할로 쓰이게 됩니다. 백지에서 물으면 AI 관점이 곧 내 관점이 되거든요. 다만 한 가지 함정이 있어요. 이렇게 관점을 먼저 주면 AI가 그 관점에 동의해주는 방향으로 흘러갈 가능성이 큽니다. 그래서 3번 방법을 같이 씁니다.
3. '레드팀 관점'을 의도적으로 요청하기
자기 관점만 검증받지 마세요. 반대 입장도 AI에 따로 요청합니다.
- 레드팀 관점에서 이 결정에 대한 허점과 반론을 찾아줘
- Fresh Eye View로 지금 내용에 대해서 처음부터 검토해줘
위와 같은 프롬프트를 자주 사용합니다. 여기에서 나온 내용을 바탕으로 다시 AI와 답변을 주고 받습니다. 저는 이걸 AI와 토론한다고 생각해요. 제가 가설을 던지면 AI가 반론을 펼치고, 그 반론에 제가 다시 재반박하고, 또 AI가 받아치는 식이에요. 핑퐁처럼 주고받다 보면 양쪽 논리가 다 펼쳐져 있어서, 종합적으로 보고 판단할 수 있거든요.
4. 방향과 결론은 항상 본인이 잡기
이게 가장 중요합니다. 저는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지, 그 중 어떤 내용이 가장 중요한지. 이 두 가지는 절대 AI에 넘기지 않습니다.
방향이 모호하거나 AI 답이 마음에 안 들 때 프롬프트를 탓하기보단, '내 방향이 모호했나?'부터 점검해야 합니다. 방향이 명확해야 결과물도 명확해져요.
5. AI를 '오픈북 테스트의 책'으로 쓰기
저는 AI를 오픈북 테스트의 책 같은 도구라고 생각합니다. 시험 문제를 푸는 건 학생(나)이 하고, 책(AI)은 필요한 정보를 빠르게 찾아주는 역할을 할 뿐입니다. 나 대신 시험을 쳐주는 게 아니라요. 어떤 정보를, 어떤 관점으로 취해서, 어떻게 종합할지는 '나'의 판단이 들어가는거죠.
여기엔 구조적인 이유도 있어요. AI는 본질적으로 평균을 학습해서 답하는 도구이기 때문에 정리, 분석, 요약은 잘하지만, 톡톡 튀는 새 아이디어나 차별화된 방향은 어쩔 수 없이 평균치로 수렴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이렇게 분담합니다. 자료 정리, 자동화, 반복 작업은 AI에, 아이디어와 차별화 방향은 제가. 이렇게 인식하면 신기하게도 AI를 더 잘 쓰게 돼요. 너무 많이 기대하지 않으니까, 오히려 명확한 작업만 잘 시키게 되거든요.
시장 관점에서 한 가지 더
여기서 한 단계 더, 인지 부채는 시장 전체로도 번지고 있고 점점 더 심화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모두가 AI 요약만 읽고, 비슷한 논리를 쓰고, 같은 신호를 따라가면 시장 전체가 사고의 다양성이 부족한 상태가 됩니다.
흥미로운 데이터도 있어요. 앤트로픽 교육 리드 Drew Bent에 따르면, 같은 AI 도구를 쓰게 한 학생 그룹과 안 쓴 그룹에게 이후 AI 없이 같은 유형의 문제를 풀게 했더니 AI를 안 쓴 그룹이 17% 더 높은 점수를 받았다고 해요. AI로 정답만 받은 학생은 개념을 자기 것으로 만들지 못한 겁니다. 이게 인지 부채가 실제로 데이터로 나타나는 풍경이에요.
그래서 앞으로 더 가치 있어지는 사람은 직접 읽은 사람, 직접 의심한 사람, 직접 구조를 이해한 사람일 거예요. AI를 쓰더라도 인지 부채를 쌓지 않고 사고 근육을 키워온 사람이요. 많은 사람들이 더 많은 것을 AI에 의존할수록 그 판단력이 진짜 차별점이 됩니다.
거창한 스킬을 익히거나 쓰기 전에, 사고를 AI에게 다 넘기지 않는다는 원칙을 지키는 것부터 나아가보면 어떨까요? 마지막으로 앤트로픽 Drew Bent가 던진 질문을 공유 드립니다.
"오늘 AI에게 정답만 구하셨나요? 아니면 그 답을 발판 삼아 더 큰 질문을 던지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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