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사기에는 조금 불편한 공간이 있습니다. 10평도 안 되는 작은 공간, 골목 사이에 숨은 공간, 원하는 책이 없을 수도 있는 공간... 우리는 이 공간을 ‘작은 책방’이라고 부릅니다.
작은 책방에 방문해 주시는 분들은 책만 사러 오시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책방이라는 공간이 좋아서, 책방지기가 궁금해서 책방 문을 열고 들어와 주셨습니다. 이번에는 책방지기들이 책방 밖으로 나왔습니다.
수원에 있는 작은 책방, 그 안에 담긴 사람들. 이 공간을 지키는 사람들은 누구일까요? 어떤 이야기를 품고 있을까요? 수원 책방지기들의 이야기를 함께 ‘읽어’ 봅시다.“
2023 인문도시 시민축제 《휴먼라이브러리, 수원 책방지기 읽기》 프로그램 홍보문구다.
수원에 위치한 복합문화공간 111CM에서는 2023년 10월 13일부터 3일 동안《휴먼라이브러리, 수원 책방지기 읽기》프로그램이 매일 열렸다.
《휴먼라이브러리, 수원 책방지기 읽기》는 수원의 작은 책방 22곳의 책방지기들이 참여해 연대하고 시민들과 직접 만남을 가졌다. 책방이 참여하는 행사라 하면 북페어를 연상하기 쉽다. 책을 소개하고 굿즈를 파는 부스가 일반적이지만 이례적으로 책방 밖으로 나온 책방지기를 만나는 특별한 시간을 마련했다. 유명인이 운영하는 책방도 아니고 보통 사람이 운영하는 책방 이야기를 누가 궁금해할까? 동네에서도 모르는 사람이 더 많을 작은 책방을 운영하는 나도 하루는 책방지기 신분으로, 하루는 인터뷰어로서 행사장을 방문했다.
《휴먼라이브러리, 수원 책방지기 읽기》를 기획하고 진행한 서모아는 '書+모아'라는 뜻으로, 수원의 네 책방지기(글온언어 박지혜, 담해북스 이미연, 아뮤컨셉 송재형, 탐조책방 박임자)가 함께하는 모임이다. 담해북스 이미연 대표는 서모아가 임의 단체도 조합도 아니지만 수원 책방으로 함께 모여 재미있는 일을 해 보자며 사부작거리고 있다고 표현했다.
“서로의 안녕을 확인하고 안부를 물으며, 수원의 책 문화를 만들기 위해 대화합니다. 서모아에는 '서로 존중하는 수원 서점 교실'이라는 뜻도 있는데요. 책방을 운영하면서 겪은 각자의 정보와 경험을 공유하고 있습니다.”
담해북스 이미연 대표에게 행사 취지를 물었다.
“인문도시 시민축제에서 수원 책방과 함께하는 프로그램이 있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전해 들었어요. 처음에는 책방지기들이 큐레이션한 책을 전시하는 것은 어떻겠냐는 '전시' 중심의 기획 의견이었어요. 하지만 저희는 책을 전시하고 싶지는 않았어요.
서모아 활동으로 수원 책방들을 돌아다니면서, 책방을 좋아하는 분들은 책과 책방(공간) 뿐 아니라 책방지기를 아끼고 좋아해 주신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거든요. 책이 좋아서 책방이 좋아서 책방을 찾아오시기도 하지만, 책방지기가 궁금해서 책방지기를 만나고 싶어서 책방을 찾아주시는 분들이 많았어요. 그래서 책 말고, 책방지기라는 '사람책(휴먼라이브러리)'에 집중해 보기로 했어요.”
수원에는 30여 개의 작은 동네 책방들이 있다. 문을 연지 6개월도 안 된 신규 책방부터 동네에서 꾸준히 사랑받고 있는 책방, 문을 자주 열지는 않지만 궁금한 책방, 지금은 문을 닫은 책방까지 22곳의 책방지기들이 3일간 총 6차례로 나눠 책방 소개와 사전 질문을 바탕으로 이야기를 나누고 책방지기를 만나러 온 시민들과 즉석 질의응답으로 매번 2시간을 꽉 채웠다.
작은 책방을 좋아하고 작은 책방을 열고 싶은 많은 분들이 책방지기들의 이야기를 직접 듣기 위해 자리했다. 그들이 눈을 반짝이며 귀 기울이고 집중하는 모습에 청중 앞에 나서는 것이 낯선 책방지기들도 에너지를 받아 그 시간에 빠져들었다.
책방을 열기 전에는 어떤 일을 하셨나요?
책방을 열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책방지기의 하루 일과는 어떻게 되나요?
책방을 운영하며 가장 힘들었던 때는 언제인가요?
그럼에도 책방을 계속 유지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책방지기를 하면서 새로이 알게 된 나의 능력이 있다면?
등 사전 질문으로 이야기를 나누며 분위기가 무르익었다.
책방을 열기 전 가졌던 디자이너, 출판사 편집자, 언어치료사, 프로그래머, 작가, 미술 교육 등 직업적 정체성은 책방지기가 된 후에도 ‘본캐’ 혹은 ‘부캐’ 로 가져가며 문화 기획자, 독립출판사, 강사로서 교육까지 하는 N잡러도 많다. 그리고 혼자 운영하는 작은 책방이라 스스로 하는 일이 점점 늘어나니 매번 능력치가 상승한다. 언제나 손님을 맞이할 수 있도록 늘 책방을 지키는 곳도 있고 외부 활동으로 책방을 자주 비우는 곳도 있다.
책방의 형태도 카페를 겸하는 곳, 작업실을 겸하는 곳, 독서 모임이나 글쓰기 모임을 주기적으로 하는 곳, 저자 북토크나 공연도 하는 문화공간, 조선시대 관련 책, 새 전문, 돼지 전문, 고양이 전문, 그림책 전문 등 뾰족한 정체성을 가지고 큐레이션하는 책방도 있다.
현장 즉석 질의응답 시간에 빠짐없이 등장하는 질문이 있다. 수익창출에 대한 현실적 이야기를 조심스럽게 물어본다. 책방지기들은 예상했던 질문이었다는 듯 쿨하게 임대료, 책 판매 비중 등을 오픈했다. 책만 팔아서 유지할 수 없다는 것이 공통적인 대답이다. 먼저 언급한 당양한 ‘부캐’가 나온 이유와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다.
여름서가 : 경기, 수원 등 서점을 지원해 주는 정보를 많이 알아봐야 한다. 공공기관에 납품을 하면 책을 많이 팔기도 한다. 하지만 책 판매만으로는 임대료가 부담스럽다.
탐조책방 : 책 수입은 아주 적다. 탐조 프로그램으로 공모사업을 많이 활용했다. 그렇게 3년 차가 되니까 부스비 지원도 받으면서 단체나 기관에서 요청이 많아지고 (프로그램비) 단위가 높아졌다. 새로운 프로그램 개발이 중요해졌다. 상상캠퍼스에 입주해 있기 때문에 임대료에 대한 부담이 적다.
우리서로 : 책 몇 권씩 팔아서는 임대료도 유지가 안 된다. 책방에서 인턴십을 할 수 있다면 하길 바란다.
달아트랩 : 좋아하는 책을 가득 채워놓는 공간을 정말 가지고 싶었다. 공간을 구할 때 숍인숍(전대)도 있었다. 계약 불발이 되어서 다른 곳을 임대했지만 예산이 적다면 처음에는 작게 숍인숍을 고려해도 좋을 것 같다. 강의 나가며 유지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든다.
아뮤컨셉 : 4년 차가 넘으니 책방의 쓸모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된다. 오픈할 때는 몰랐는데 지금에야 의문이 든다. 큰 책방은 문제지부터 모든 종류의 책을 구비하고 순수하게 책을 파는 공간이고 생각보다 꽤 유지를 하는데, 작은 책방은, 작은 공간은 어떤 쓸모가 있는 걸까? 대부분은 복합문화공간의 형태다. 그럼에도 존재하는 이유는 뭔지 책방지기들의 이야기를 듣고 싶다.
탐조책방 : 취향의 관점에서 탐조라는 주제로 책방을 열었다는 것. 규모의 차이와 어떤 일을 할 수 있는지는 다른 문제라고 생각한다. 취향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한다. 책방지기가 가지고 있는 정체성이다.
우리서로 : 문화행사할 때는 책방이라는 정체성을 잃어버리는 것 같다. 행사할 때 오시는 분들은 책을 볼 겨를이 없다. 작가는 책이 자신을 증명해 주는 브랜드라 책을 쓰는 거고 책방이라는 것은 책방지기 정체성을 보여주는 한 줄이라고 생각한다. 주변 사람에게는 조그마한 공공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쓸모가 있지 않을까..
여름서가 : 2024 트랜드코리아에서 공간력이라는 단어를 봤다. 대학가에서 책방을 열고 1년을 지나고 보니 대학생들이 들어오게끔 못 했던 것 같다. 팝업스토어처럼 책방들도 새로운 기획과 콘셉트를 통해 가치 소비를 하게 해야 한다. 그러면 새로운 것이 창출될 것 같다.
아티스트웨이 : (관객석에 앉아 있었으므로 마음속으로 대답했다) 책도 적고 자주 자리를 비우고 뾰족한 정체성은 없지만 세상을 놀이터 삼아 즐거운 마음으로 경험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공간이어도 되지 않을까? 사람책이 있는 공간이니까!
마지막으로 청중에게 소감을 물었다.
청중1 : 인간의 뇌는 추억을 곱씹으며 산다. 작음 공감은 내 추억의 공간이 되지 않을까 싶다. 지금 이 자리도 추억이 만들어지는 것 같아 너무 좋다.
청중2 : 연결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지속적이지 않아도 어떤 사람을 만나고 공간을 만나고 추억이 된다고 생각한다. 의미 있는 순간을 오늘 만나게 되어 감사한다.
청중3 : 저는 꼭 쓸모가 있어야 하냐는 생각도 든다. 쓸모가 없어도 누구나 올 수 있다면 충분하다. 작은 책방들의 움직임들이 소중하다는 생각을 한다.
청중4 :독서모임장을 하고 있다. 어릴 때는 책을 안 읽었고 24살부터 읽기 시작했다. 독서 모임에 오시는 분들의 연령도 다양하다. 인생에서 어느 순간에 책을 읽게 될지는 모른다. 작은 책방에서 만난 책이 시작이 될지도 모른다. 현시점에서 책방 운영을 지속하는 것만으로도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청중5 : 많은 책을 담을 수 있는 e북이 있지만 종이책을 본다. 빠른 세상에서 불편함을 추구하면서 편안함 느낀다고 생각한다.
담해북스 이미연 대표는 “이번 행사로 '수원에 이렇게 다양한 책방이 있구나' 하는 것만 알고 가셔도 충분하다고 생각했어요. 특히, 발표자로 참여해 주신 책방지기 간에 서로의 안녕을 묻는 계기만으로도 이번 프로그램의 역할을 다한 것이라 생각했고요. 관객은 많지 않아도 괜찮다고 생각했는데 감사하게도 생각보다 많은 분이 자리해 주셨어요.” 라며 소감을 전하며 이어서, “저희가 올해 초에 폐업 책방과 신규 책방 책방지기분들을 인터뷰한 적이 있었는데요. 지금 공간은 사라졌지만 여전히 '책방지기'인 그분들의 이야기에서 느낀 점이 많았는데 이번에 함께 할 수 있어서 의미가 컸어요.” 라고 덧붙였다.
나는 종이책을 읽는 사람들과 연결감을 느낀다. 지하철에서 스마트폰이나 패드가 아닌 종이책을 들고 있는 사람을 보면 아는 척하지는 못하지만 무슨 책을 읽고 있는지 궁금하고 내적 친밀감을 느끼며 괜히 반갑다. 책이라는 물성이 지닌 감각을 공유하는 사람이 줄어들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도 있다.
사람들이 느끼는 작은 책방이라는 공간의 이미지는 소설《어서 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에서 그려진 느슨한 연대가 있고 좋은 사람들과 속 깊은 대화가 있고 마음이 받아들이는 따뜻한 공간인 것 같다. “책방을 열어도 될까요? ”라는 물음에 “힘들어요. 추천하지 않아요” 라고 하면서 행복한 얼굴을 하는 책방지기가 답이 될까?
탐조책방 박임자 대표는 책방은 완성형이 아니라 시작점이라는 이야기를 한다. 삶이 그렇듯 철저한 계획 아래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하나 시도하며 점을 찍고 연결되는 선이 늘어나고 시간이 지났을 때 딱 나 같은 책방이 된다는 의미일 터다.
서모아의 말을 전하며 긴 글을 마무리하려고 한다.
나에게 작은 책방이 존재하는 의미
글온언어 박지혜
언어치료 전문가와 함께 언어능력을 성장시킬 수 있는 책방입니다. 언어치료, 독후활동 등 다양한 활동을 할 수 있습니다.
작은 책방은 책을 매개로 책방지기와 삶을 나눌 수 있는 곳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작은 서점은 사람이 모이고 이야기가 모이는 공간이라 소중하다.
나에게 글온언어란, 내가 상상하던 공간이다. 책방에서 언어치료를 진행하게 되어 접근성이 높아져 적절한 시기에 언어치료를 받을 수 있다. 또한 책과 함께하는 환경에서 책을 좋아하는 아이들을 만나고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공간이 되기도 한다.
아뮤컨셉 송재형
책이 있고, 가죽공예를 하는 가구디자이너가 하는 문화공간. 책방의 새로운 대안을 제시하며, 다양한 문화활동을 통해 재미있는 일을 도모합니다.
4년 넘게 책방을 하고 있지만, 잘 모르겠다. 개인적으로 한 가지 알게 된 사실은 읽는 즐거움과 깨달음의 순간 때문에 이 공간을 유지한다는 생각도 든다.
아뮤컨셉은 의심의 해결 장소 같은 곳이다. 그리고, 나의 작업실, 나의 창의성을 만들어 나가는 공간.
탐조책방 박임자
새를 통해 자연과 연결될 수 있도록 새와 관련된 책, 탐조 용품 등을 판매하며 매달 탐조 프로그램을 진행하며 탐조 입문을 돕고 있습니다.
새라는 작은 존재를 세상에 알리는 작지만 큰 생태문화공간, 집보다 더 오래 머무르면서 생각을 현실로 만드는 공간이다.
담해북스 이미연
서점형 출판사로, 출판 편집장의 작업실이자 창작자를 위한 공간입니다. '읽기,쓰기,듣기,말하기'를 주제로 큐레이션 하며 글쓰기 모임과 출판 관련 클래스 등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작은’ 시도들을 해 볼 수 있는 공간 아닐까요? 책방지기가 하고 싶은 일들을 그 안에서 펼쳐 볼 수 있으니까요. 최근 책방지기와, 책방을 열고 싶다는 분(예비 책방지기) 들을 많이 만났는데요. 모두 그 안에서 해 보고 싶은 것들이 있더라고요. 물론 저도 그랬고요.
저에게 담해북스란 공간을 먼저 생각한다면 저를 위한 공간이자 저를 닮은 공간이에요. 이 안에서 가장 오래 있는 게 저니까, 저에게 맞춰져 있죠. 담해북스 자체로 생각한다면 담해북스는 저에게 ‘가능성’입니다. 무언가 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지만 열심히 씨앗을 뿌리고 있어요.
“저희는 앞으로도 함께 사부작거리고 있겠지요? 그게 어떤 일이 될지, 어떤 방향이 될지 아직은 알 수 없지만요. 이번 행사도 이렇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지도 못했으니까요. 한 가지 바람이 있다면, 수원에 더 많은 서모아가 생기는 것이에요. 서모아 회원이 느는 게 아니라, 저희처럼 사부작거리는 모임이 생겼으면 해요. 이번 행사에서 자그마한 씨앗들은 보았습니다. 재미있는 일이 많이 생길 것 같아요.
그리고 주변에 작은 공간들을 살펴봐 달라고 시민들에게 부탁하고 싶어요. 그 공간이 책방이면 더욱 좋겠고요. '이런 곳이 있었네?' 하는 작은 관심이 계속 쌓이면 더 다양한 공간에서 멋진 일이 펼쳐질 것 같아요.“
인터뷰어 이주영
라이프 아트 북 살롱 <아티스트웨이>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책과 예술을 매개로 삶이 예술이 되는 콘텐츠를 기획합니다. 인터뷰를 통해 편견을 하나씩 부수어 나가는 중입니다. 그리고 누군가의 삶이 응원이 필요할 때 곁을 내어 줄 수 있는 삶에 관심이 갑니다.
저서 《좋아하는 일을 해도 괜찮을까:인터뷰로 묻고 글쓰기로 답하다》,《다시, 시작합니다》, 《1YEAR DIARY》 인스타 @artistway.booksal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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