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일본 문화의 차이를 학문적으로 접근해 봅니다.
안녕하세요. 재팬인사이트의 SW입니다. 꼭 한 달 만에 돌아왔습니다. 지난번 한국과 일본의 엔터프라이즈 영업 차이에 대해 길게 다루었었는데, 오늘은 일본의 문화적 차이를 다루어 보고자 합니다. 일본에 관해 다룬 책들이 종종 있지만, 대부분은 정량적이라기보다는 정성적인 것들이 대부분입니다. 그래도 오늘은 좀 정량적인 접근방법을 택해볼까 합니다.
제가 애정하는 매니지먼트 스쿨 INSEAD의 Erin Meyer 교수는 저서 『컬처맵(Culture Map)』에서 아래 이미지와 같은 방식으로 각 나라의 특성을 리니어하게 맵핑(mapping)해 분석했습니다.
이 이미지를 바탕으로 한국과 일본을 중심으로 한 비즈니스 접근법을 실제 사례와 함께 설명드릴까 합니다. 우선 항목은 다음과 같습니다.
- 커뮤니케이션 (Communicating: Low-context ↔ High-context)
- 피드백 (Evaluating: Direct Negative Feedback ↔ Indirect Negative Feedback)
- 리더십 (Leading: Egalitarian ↔ Hierarchical)
- 의사 결정 (Deciding: Consensual ↔ Top-down)
- 신뢰 형성 (Trusting: Task-based ↔ Relationship-based)
- 갈등 처리 (Disagreeing: Confrontational ↔ Avoids confrontation)
- 시간 관리 (Scheduling: Flexible-time ↔ Linear-time)
커뮤니케이션 (Communicating: Low-context ↔ High-context)
‘고맥락 문화’라는 말을 들어보신 분들도 계실 겁니다. 미국의 인류학자 에드워드 홀(E.T. Hall)은 의사소통 이론을 정리하면서 고맥락(high-context) 문화와 저맥락(low-context) 문화가 존재한다고 설명했습니다. 특히 고맥락은 아시아권을 중심으로 나타나는 특성입니다.
미국은 왜 가장 왼쪽, 즉 저맥락 문화의 대표로 위치할까요? 여러 요인이 있겠지만 흔히 단일 민족일수록 고맥락, 다민족일수록 저맥락 성향이라고 설명합니다. 다양한 민족이 섞여 살고 있는 이른바 Melting pot 미국은 모든 것을 문서화하고 주어와 목적어를 명확히 표현해야 하는 사회입니다. 반대로 한국이나 일본은 주어를 생략하거나 두루뭉술하게 표현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암묵적 맥락(context)으로 서로를 이해할 수 있기에 가능한 방식입니다.
일본과 한국은 가장 오른쪽 끝단에 위치한 고맥락 문화권입니다. 다만 일본이 한국보다 조금 더 극단적인 고맥락 문화로 나타나는데, 이 작은 차이가 실제 비즈니스에서 상당히 크게 다가옵니다. 예를 들어 한국은 한자 대신 순우리말 사용이 늘어나면서 다소 저맥락적 성향으로 이동했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일본과 일할 때는 ‘고맥락’이라는 점을 반드시 주의해야 합니다. 한국도 고맥락 문화라고 해서 똑같이 해석하면 안 됩니다. 일본의 ‘혼네(本音, 속마음)’와 ‘타테마에(建前, 겉치레)’ 개념이 대표적입니다. 혼네는 개인의 본심, 타테마에는 사회적 규범이나 배려 차원의 겉모습입니다. 이 둘을 구분해 상황에 맞게 사용하는 것이 일본식 고맥락 문화의 핵심입니다.
비즈니스 상황에서 예를 들어보면, 일본 기업과 미팅 후 우리 기업은 협의가 잘 되었다고 믿지만, 사실 일본 측은 이미 거절했을 수도 있습니다. 이후 한국 기업이 후속 연락을 반복하면, 일본 측에서는 “이미 거절했는데 왜 또 오는 거지?”라며 곤란해합니다. 물론 미팅 한 번으로 모든 것이 충분히 설명되지 않을 수 있으니 여러 번 접근하는 것은 필요하지만, 보통 일본 기업에서 관심이 있으면 그쪽에서 먼저 연락이 옵니다.
따라서 당장 필요하지 않더라도 꾸준히 기능 업데이트나 업계 소식을 공유하며 관계를 이어가는 것이 더 좋습니다.
피드백 (Evaluating: Direct Negative Feedback ↔ Indirect Negative Feedback)
일본인은 거절을 잘 못합니다. 잘 못한다기보다는 회피한다고 표현하는 것이 더 정확할지도 모릅니다.
Erin Meyer 교수의 또 다른 저서 『규칙 없음(No Rules Rules)』에 소개된 사례가 있습니다. 넷플릭스의 기업문화상 상사에 대한 부정적인 피드백이 필수였습니다. 하지만, 일본 지사 직원에게 상사에 대한 피드백을 요청했을 때, 직원이 눈물까지 흘리며 힘들어했다는 일화입니다. “어떻게 상사에게 부정적인 말을 할 수 있나?”라는 문화적 충돌이 있었던 것이죠.
이와 가장 대척점에 있는 나라는 프랑스입니다. 프랑스 동료들과 일하다 보면 직설적이고 가감 없는 피드백을 들을 수 있습니다. 가끔은 거칠다고 느껴질 정도입니다. 반면 미국은 “Good job!” 같은 칭찬으로 시작해 부드럽게 개선점을 전달하는 방식이 일반적입니다.
일본은 다릅니다. 피드백을 거의 하지 않습니다. 돌려 말하는 수준도 아니라, 아예 알 수 없을 정도로 모호하게 표현합니다. 그 때문에 한국 기업이 일본에서 직원을 채용하면, 불만이나 문제점이 표면에 드러나지 않고 있다가 갑자기 퇴사를 통보받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미 늦은 상황인 셈이죠.
저 역시 후지쯔에서 해외 파트너십 업무를 맡을 때 경험했습니다. 한 유럽 파트너사에 거절 의사를 전달해야 했는데, 일본인 동료는 장문의 메일을 써서 “이런 부분이 부족하다”라고만 표현했습니다. 그러자 몇 달 뒤 해당 파트너사가 부족한 점을 개선했다며 다시 계약을 요청해 왔습니다. 결국 여러 번 핑퐁을 하다 제가 직접 관여하여 “진행하지 않겠다”라고 명확히 답변하며 마무리해야 했습니다. 이후로는 거절 메일을 제게 부탁하더군요💦
일본과 협업할 때 “검토가 필요하다”라는 말은 사실상 거절일 수 있습니다. 팁을 드리자면, 상대의 의사를 여러 번 확인하고, 또 확인하는 것 외에 뾰족한 수는 없습니다.
또한 일본은 지역차도 큽니다. 관동(関東)과 관서(関西)로 나뉘는데, 제 경험상 서쪽인 관서 지방 사람들은 한국인과 성향이 더 비슷하고, 비교적 직설적인 피드백을 주는 편입니다. 참고하세요.
리더십 (Leading: Egalitarian ↔ Hierarchical)
차트에서 보듯 일본은 한국보다 덜 위계적(Hierarchical) 리더십 구조를 보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한국과 크게 비슷하다고 생각하면 곤란합니다. 일본은 유교적 연공서열 문화가 이미 약화되었기 때문에 나이가 많다고 자동으로 승진하지 않습니다.
일본 기업은 평사원과 간부사원이라는 ‘투 트랙’ 구조입니다. 관리직을 원하지 않으면 정년까지 평사원으로 지내는 경우도 많습니다. 관리직은 보통 과장급부터 시작하는데, 승진 심사를 통과해야 하며 대개 40대 초반에 이릅니다. 일본의 과장은 한국의 차부장급, 부장은 이사급에 가깝습니다. 일본 직급체계에 대한 설명은 제 이전 페이스북 포스팅을 참고해 보시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따라서 일본의 리더는 지시자라기보다 조율자 또는 조력자 역할을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직원들에게는 상대적으로 권한 위임이 잘 되어 있습니다. 미팅을 할 때도 임원보다 실무를 담당하는 과장의 의견이 결정적일 수 있습니다.(부장보다도 과장입니다!) 한국처럼 임원을 구워삶아 톱다운으로 밀어붙이는 방식은 잘 통하지 않습니다. 실무담당자의 마음을 잘 살피면서, 임원이 잘 조력자역할을 할 수 있도록 영업을 진행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의사 결정 (Deciding: Consensual ↔ Top-down)
일본의 합의 중심(Consensual) 의사결정은 지난번 포스팅인 엔터프라이즈 세일즈의 극의(極意) 1, 2, 3에서 여러번 다루었습니다. 이는 ‘품의제도’와 ‘네마와시(根回し)’로 대표됩니다. 한국은 톱다운(top-down) 문화가 강하기 때문에 대조적입니다.
네마와시의 예시로서는, 전 직장 후지쯔에서 M&A관련 업무를 할 때, 독일의 한 업체를 인수를 추진하고 있었습니다. 최종적으로는 경영회의에서 모든 임원 앞에서 발표하고 승인해야 하지만, 경영회의 한달 전부터 CFO를 포함하여 유관부서의 담당임원들의 시간을 잡고, 한 명 한 명 방문하여 사전 구두승인을 받아야만 했습니다. 보고자료도 임원의 특성에 맞춰 표현 하나하나까지 미세수정을 할 정도입니다. 물론 추가적인 질문이 오면 그 부분에 대해서는 경영회의에서 답할 수 있도록 미리 준비해야 하고, 굉장히 호의적인 임원의 경우는 승인이 잘 날 수 있도록 미리 준비한 질문을 던져달라(일본에서는 이런 역할을 하는 사람을 ‘사쿠라’라고 표현합니다)고 부탁하기도 합니다.
장점은 일단 결정이 나면 일사천리로 추진된다는 점입니다. 미국이 빠른 의사결정을 하고 잘못되면 다시 수정하는 문화라면, 일본은 신중히 검토해 결정을 내린 뒤에는 흔들림 없이 밀어붙이는 문화입니다.
흥미롭게도 독일이 일본과 유사합니다. 이런 연유인지 일찌기부터 일본기업과 독일기업의 제휴가 많았습니다. 실제로 후지쯔(富士通)도 독일 지멘스(Siemens)와 일본 후루카와(古川) 재벌의 합작사로 시작했습니다. 이름의 ‘후지’는 후루카와와 지멘스의 앞 글자를 딴 것이지 후지산과는 무관합니다.
여담으로, 독일의 합의 중심의 의사결정에서 중요한 것은 노조입니다. 노조의 합의없이 일을 진행하다 큰 코 다치는 경우 많으니 주의하세요.
신뢰 형성 (Trusting: Task-based ↔ Relationship-based)
일본은 관계 기반(Relationship-based) 신뢰가 강하지만, 한국만큼은 아닙니다. “관계가 중요하다”는 말만 믿고 술자리부터 만들려고 하면 역효과가 납니다. 일본은 오랜 미팅과 검증을 거쳐 회사가 신뢰할 만한지 판단한 뒤 비로소 깊은 관계로 들어갑니다.
따라서 회식이나 친교는 계약 체결 이후 또는 서비스 안정화 이후가 자연스럽습니다. 저역시 일본의 한 대형 렌터카 프랜차이즈 대표와 몇 달에 걸친 협의를 할 때, 조바심 내지 않고 차근차근 일을 진행하다가 우리쪽 일본인 영업대표가 너무 급하게 서두르길래 제지를 하며, 상대편 대표님께 “오랫동안 함께 할텐데(長い付き合い) 서두르지 않겠습니다’라고 하자 매우 반색한 기억이 납니다. 그 한마디가 오히려 더 신뢰를 쌓을 수 있는 계기가 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또한 일본은 사죄 문화도 신뢰를 중요시하는 반증입니다. 믿고 관계를 형성했는데, 품질이 시원치 않거나 문제가 발생했을 때는 계약서대로 이행하기 보다는 사안에 걸맞는 레벨의 담당자(필요에 따라서는 대표나 임원급)가 사죄메일을 쓰고, 심각성에 따라 직접 찾아뵙고 머리 숙여 사과를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갈등 처리 (Disagreeing: Confrontational ↔ Avoids confrontation)
일본은 갈등을 회피(Avoids confrontation)하는 성향이 강합니다. 이는 ‘화(和)’ 문화와도 연결됩니다. 공개적인 반박 대신 은유적 표현, 침묵, 모호한 언어로 의견을 표현합니다.
따라서 일본과 비즈니스 할 때는 직접적인 반박보다 완곡하게 표현하는 것이 좋습니다. 한국식으로 문제점을 직설적으로 지적하며 “이건 고쳐야 한다”라고 접근하면 오히려 대화가 단절될 수 있습니다.
시간 관리 (Scheduling: Flexible-time ↔ Linear-time)
시간 관리에서도 한국과 일본의 차이가 큽니다. Erin Meyer 교수는 고도 경제 발전을 겪은 국가는 변화의 속도가 빠르기 때문에 한치 앞을 내다보기 힘들기 때문에 유연한 시간 관리(Flexible-time)를, 성숙한 시장일수록 변화가 적기 때문에 선형적 시간 관리(Linear-time)를 따른다고 설명합니다.
일본은 철저히 선형적 시간 관리 문화입니다. 일정과 마감 준수가 매우 중요합니다. 미팅도 사전에 충분히 통보해야 하며, 갑작스러운 일정 변경은 거의 없습니다.
예를 들어 일본에서는 “오늘 퇴근 후 맥주 한잔 어때?”라는 제안이 한국처럼 흔치 않습니다. 미팅을 요청하면 다음 주가 아니라 다음 달이나 다다음 달 일정을 잡아주는 경우도 많습니다.
저는 강연 때마다 “일본 출장 가는데 다음 주에 만남을 주선해 달라”는 요청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강조합니다. 실제로 어느 장관님 방일 일정에 급히 일본 기업 미팅을 조율해 달라는 부탁을 받았는데, 지인은 “그렇게 무례한 부탁을 할 수 있냐”며 저를 나무랐습니다. 결국 미팅은 성사되지 못했습니다.
맺음말
이렇게 7가지 관점에서 일본 문화를 살펴봤습니다.
참고로 『컬처맵』은 현재 한국에서 절판 상태입니다. 한국에서는 다른 나라와의 차이에 큰 관심이 없는 듯합니다. “사람 사는 게 다 똑같지”라며 무심히 넘기는 경우가 많지만, 실제 경험해 보면 그렇지 않다는 걸 알게 됩니다. 물론 시대가 변해 코로나를 기점으로 세계화와 탈세계화가 교차하였고, 그 기간동안 각 나라의 문화는 크게 변하진 않은 것 같습니다. 관심이 있으시다면 원서로라도 구해서 한 번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사실 위의 내용을 기반으로 한 Erin Meyer교수의 두번째 베스트셀러가 Netflix 창업자 Reed Hastings과 공동으로 집필한 '규칙 없음(No Rules Rules)'입니다. 규칙 없음은 위와 동일한 분석 기법으로 설명을 해 나갑니다. 아무래도 잘 나가는 ‘넷플릭스’의 기업문화를 엿볼 수 있는 책이라 그런지 한국에서 꽤나 잘 팔린 것 같습니다. 제가 2016년에 프랑스 퐁텐블로(Fontainebleau!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소설 개미의 배경인 동네)에서 그녀의 열띤 강의를 들었는때, 이미 그때 이 책을 집필중이라, 책내용을 발표전에 미리 들을 기회가 있었습니다. '규칙없음'에서 주는 진정한 교훈은 넷플릭스의 독특한 기업문화도 있지만, 넷플릭스조차 글로벌화를 할때 이 나라간의 차이를 극복하기 위해 얼마나 어려움을 겪었는지에 대한 얘기입니다. 넷플릭스 자체가 미국회사이지만 일반적인 미국비즈니스문화의 대척점에 있다는 것도 눈여겨 볼만한 부분입니다. 물론 일본에서 넷플릭스가 얼마나 고생했는지도 나옵니다.
저는 그 나라의 문화를 이해하지 않고, 비즈니스 진출을 꾀하는 것은 무모하다고 생각합니다. 왜 미국을 진출할 때 미국을 이해하려고 그렇게 노력하면서, 일본진출은 출장 몇 번 온 것으로 이미 일본을 다 알고 있는 것처럼 행동할까요? 저는 일본대기업에서 20년 가까이 근무했고, 일본에서 10년이상 살았지만, 아직도 일본, 일본인, 일본기업을 잘 모르겠습니다. 항상 겸손하게 접근해 주셨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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