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오후입니다, 구독자님. 오랜만에 실시간으로 쓰는 편지네요. 어영부영 하다 오늘이 지나가기 전에 꼭 기록하고 싶어서 이렇게 편지를 보내봅니다. 구독자님은 이번 연말 어떻게 보내셨나요. 유난히 연말 같지 않은 연말이라는 이야기가 많이 들려오는데, 저 역시 같은 마음으로 보내기는 했습니다.
그래도 연말에 한 일을 기록해보자면 크리스마스 즈음하여 서울에 다녀왔습니다. 예전 직장 근처에서 제일 좋아하던 카페도 다녀오고, 좋아하는 거리와 이자카야에 갔는데 여전해서 좋았던 곳도 있고, 여전해서 달갑지 않은 곳도 있었습니다. 불과 몇개월이 지나지도 않았는데 언젠가의 제가 이 거리에 녹아 있었다는 게 믿기지 않기도 했고요. 농담삼아 함께 있던 친구한테, 이렇게 남의 집과 직장만 보는 출근길은 싫다며 눈치없이 말하기도 했습니다. 높지 않은 건물들 너머로 단박에 눈에 들어오는 강과 산을 보며 오가는 기쁨을 너는 아느냐고요(?).
그 다음에는 경북 영양에 다녀왔습니다. 영양군을 아시나요, 구독자님? 저는 외가댁이 있어서 어린 시절부터 자주 가기도 했었고, 이직한 곳에서 출장으로도 몇번 다녀와서 익은 곳입니다. 어린 시절 제게 영양은 진짜 깡 시골이어서 영양 가는 길은 만반의 준비를 해야 했던 곳이기도 합니다. 이제야 길이 좀 좋아졌다고는 하지만 예전엔 길도 진짜 불편하고 멀어서 뒷좌석에 타고만 있어도 힘들기도 했고, 낮에 출발해도 눈 뜨면 늘 깜깜한 밤이었걸랑요. 그런 영양을 올해 들어 혼자 운전으로 몇번 다녀와보니 새삼스레 어른이 됐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또 영양에서 이번에 차 단독사고가 나는 바람에..^^ 이제 혼자 고속도로들도 타고다니면서 팔랑팔랑 놀고 다니더니 이렇게 바로 경고를 해주는구나 싶어서 겸허해지기도 했습니다.
영양 얘기를 하다가 사고 얘기로 잠시 샜는데, 문이 빠그라진 차를 타고 다니면서 우울해 하고 있자 회사 분들께서 본인들의 사고 경험들을 막 털어놓으시면서 위로해주시는데 마음이 좀 좋아졌습니다. 인간은 남의 불행을 먹고 행복해지는 걸까요? 그저 나는 다신 운전을 하지 말아야 하는 종자인가 생각을 했는데 다들 초보 때는 그러는 거라며, 사람 안 치고 남의 차 안 치고 혼자 박은 거면 좋은 사고(?)라며 위로 아닌 위로를 받았습니다. 속이 좀 쓰리긴 합니다만 ... ^.^ 아무튼 그렇게 액땜도 했습니다.
이 얘기를 하려던 건 아니고 영양에서 올 한 해를 정리도 하고, 내년을 기약하기도 하며 나름대로의 2025 이별 여행을 하고 왔습니다. 사실, 산골 펜션에 틀어박혀서 2025 정리만 하려고 했는데 생각보다 콘텐츠가 많더라고요? 우선 초가지붕 아래에 무료 코인노래방이 있어서 노래도 부르고, 영양 시내의 로컬푸드 직판장 가서 구경도 하고, 마트 안에 파는 빵집에서 빵을 샀는데 올해 먹은 빵 중 역대급으로 맛있는 빵이었기도 하고, 무엇보다도 밤하늘이 대박이었습니다. 영양에 별이 많다는 건 익히 알고 있긴 했지만 성인 돼서 밤에 영양을 간 건 오랜만이었는데 진짜.. 말 그대로 쏟아지더라고요. 기억의 희미해졌을지는 모르겠지만 몽골에서 본 별만큼이나 많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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