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착은 결핍에서 나온다고 믿습니다. 특정한 무언가가 없어도 스스로 온전하다면 굳이 얽매일 필요가 없습니다. 끊임없이 갈망하는 무언가는 차마 가질 수 없는 무언가인 경우가 많습니다. 혹은 어떻게든 가지긴 했지만 이것이 사라진다면 스스로의 가치가 줄어들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혹은 과거에 해당 대상으로부터 상처입은 기억 때문에 더욱 갈구할 수도 있겠네요. 집착하는 대상과 결핍이라 느끼는 부분이 늘 일대일로 상응하지는 않겠지만요.
그런데 이 결핍을 인정하기가 참 어렵습니다. 이를 인정하는 것이 곧 자신의 약점을 드러내는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일까요. 남에게 보여주고픈 내 모습과 실제 자신의 모습 사이의 간극이 멀면 멀수록 더 그런듯합니다. 부족한 모습을 그대로 인정하기보다는 아닌 척 덮으려고 부단히도 애쓰기 때문이죠.
저도 집착하는 대상이 있습니다. 바로 증명하지 않아도 될 자유인데요. 특히 능력적인 면에 있어서 더욱 그렇습니다. 학생 때는 성적표이자 학위였고, 직장인인 지금은 평가입니다. 이제는 모두의 기준을 충족시킬 수 없다는 것을 알기에 어느정도 무신경해지기는 했지만 여전히 예민하게 반응하는 편입니다.
전 제가 A를 잘한다는 걸 보여주기 귀찮으니 그냥 A와 관련된 자격증을 따거나 학위를 따는 식으로 보여주는 게 더 효율적이라고 믿기도 합니다. 끊임없이 전문가가 되고자 노력하는 이유기도 하죠. 이때, 단지 그 업계에 오래 있었고 특정한 성과가 있었다는 걸 입증하지 않고도 얻을 수 있는 전문가의 위치를 더 원하는 것 같아요. 지름길로 가고 싶은 거겠죠. 그래서 여전히 학력을 높이는 데 관심이 많은가 봅니다. 졸업을 하고도 계속 공부를 놓지 못하는 까닭이기도 하고요.
이같은 집착이 어떤 결핍에서 비롯했는지도 알고 있습니다. 저는 무능을 무서워합니다. 정확히는 무능에 대한 외부의 시선을 무서워하는 거죠. 사실 남들이 어떤 기준으로 타인을 무능하다고 평가하고, 무능하다고 정의내린 대상을 어떻게 여기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다만, 제가 평생 살아오면서 제 기준에서 무능하다고 생각한 사람들을 마음 속으로 거리 두고, 심하게는 한심하다고 여긴 과거가 있기 때문에 이를 두려워 하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내가 누군가를 보고 느낀 못된 감정을 또 다른 누군가가 나를 보고 느끼는 게 아닐까 해서요.
무능이라 하니 엄청 거창해 보이지만 사실 큰 게 아닙니다. 어린이집 시절 선생님이 조용하라고 하는데 굳이 떠들다가 혼나는 친구들을 보면서 쟤는 왜 저럴까, 생각하면서 혀를 찬 것도 무능을 판별한 것이죠. 실은 무능이 아니고 오히려 규율에서 탈피한 창조적인 아이였을 수도 있을 텐데 말이에요. 어릴 때부터 옳고 그름을 맘 속에서 갈라치기한 게 저도 모르게 저의 결핍이자 집착으로 자리 잡은 게 아닐까 싶습니다.
그래도 모두가 겪는 성장 과정을 통해 무능과 유능은 한끗차라는 걸 절절히 깨달았습니다. 그 기준이 상대적인 것은 물론이고 특정 조직에선 유능한 사람이 지구 반대편에선 무능해질 수 있다는 것도 뼈저리게 느꼈고요. 저도 당장 조선시대 노비로 태어났으면 마당 쓰는 것 하나 제대로 못한다고 꼴통 취급 받았을 게 뻔합니다.
그런데 이를 머리로 인지하는 것과 스스로 그 결핍과 집착에서 벗어나는 건 또다른 문제입니다. 늘 말하지만 머리로 아는 게 가슴으로 내려와서 내재화가 되는 데는 한참 걸리거든요. 평생이 걸릴지도 모르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깨우쳐야 하는 이유는, 그 깨달음이 브레이크가 돼 준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이를 구구절절하게 길게 쓴 이유는 뉴스를 보다가 또 못된 습성이 스물스물 올라왔기 때문입니다. 입밖에 내면 지탄받을 것 같아서 다는 못말하겠지만 무언가를 보고 안쓰러움보다 한심함을 먼저 느낀 스스로를 반성하고 채찍질하기 위해 길게 쓴 비망록입니다. 내가 옳다고 믿는 것이 옳은 것이 아니고, 100명의 사람에겐 100가지 사정이 있고, 나 역시 누군가의 기준에선 미달이라는 것을 끊임없이 되뇌이며... 거울을 닦아 봅니다.
구독자님은 집착하는 대상이 있나요. 있으시다면 그것은 어떠한 결핍에서 빚어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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