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레터

안녕하세요! 김목인입니다.

2022.06.15 | 조회 86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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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목인의 풍경과 코러스

싱어송라이터 김목인이 보내온 일상과 창작 이야기, 소식들

믹싱(mixing)의 심리적 개념도
믹싱(mixing)의 심리적 개념도

 

마음의 믹스다운

 

저는 요즘, 7월 초 앨범 발매를 앞두고 후반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지난 몇 주는 믹싱(mixing) 기간이었는데요. 작업을 하며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 이거였구나. 이런 거였어.'

녹음도 믹싱도 무척 순조로웠던 데다 함께 일하는 분들의 실력도 대단했습니다. 다만 그걸 간간히 들어보고 판단해야 하는 저 자신만 엄청나게 일희일비(혹은 일비일비?)하고 있었죠.

 

녹음이 모두 끝나면 악기 별로 저장된 수많은 파일이 믹싱 엔지니어에게 전달됩니다. 그리고 얼마 후 음원 형태로 다듬어진 첫 작업물이 메일로 도착하죠.

프로듀서와 저는 잘 듣고 당일 혹은 이튿날 수정 의견을 보내주게 되는데, 제 의견은 보통 이런 식입니다. '지금 방향 좋은 것 같습니다. 다만 목소리만 살짝...'

이때의 '다만'과 '살짝'에는 저만 아는 적잖은 변덕과 번민의 시간이 감춰져 있습니다.

 

(실제)저녁에 집에 오자마자 작업용 스피커로 음원을 듣던 나는 층간 소음 때문에 그만 들어야 할 시간이라는 걸 안다. 그러나 멈출 수가 없다. 보컬의 한 구석이 굉장히 심란해 안심이 되질 않는다. 결국 녹음 단계(이미 돌이킬 수 없는)에서 잘 했어야 했나 하는 후회가 밀려오는데, 내일 차분히 듣기에는 조바심이 나고 마냥 스피커로 들을 수도 없어 폭발할 것 같다. 결국 이어폰을 끼고 나선다.
이곳저곳 밤의 동네를 배회하며 수없이 생각한다. '나는 왜 이걸 이렇게 불렀으며, 이것밖에 못 부른 것이며, 민망한 부분은 왜 이리 선명해진 것인가. 이렇게 선명해질 걸 알았더라면 그렇게 안 했을 텐데!'
결국 편의점 앞에서 마음을 진정 시키고 집으로.

 

역시 가장 흥미로운 음악은 자신의 데모입니다. 가장 심란한 음악은 자신의 앨범이고요.

다음날 오전에 들어보니 어제보다는 괜찮습니다. 남들에겐 더 괜찮게 들릴지도 모른다는 은근한 기대도 해보고요. 결국은 구구절절 쓰던 마음 속 메일의 양을 한 줄로 줄입니다. '보컬만 살짝 작아지면 어떨까요.' 정도로.

귀라는 것이 기분의 영향도 커서 하루 지나면 다르고, 옆 사람이 좋다고 하면 다르고, 믹싱 엔지니어가 조금 수정해 보내주면 아무 것도 아닌 경우도 많습니다.

하지만 얼마 뒤 수정본이 도착하면 또 한 번 광기가 시작되는 거죠. '목소리는 딱 좋습니다. 다만, 기타가! 좀...!'

더구나 현실에는 '맑고 차분한 기분으로 소리에만 귀 기울이면 되는 날' 같은 건 없습니다. 다른 일로 한창 피곤하거나 정신이 없는데 갑자기 믹싱 음원이 도착해 있고, 작은 한 부분에서 굉장한 번민이 자라나는 거죠.

 

지난 토요일, 그 모든 일희일비가 끝날 즈음 프로듀서와 함께 마지막 세부 사항을 정리하러 전북 완주로 내려갔습니다(믹싱 엔지니어가 그곳에 살고 있거든요).

몇 시간의 수정까지 끝나고 나자 저는 엔지니어의 작업실 창밖을 여유롭게 내다보며 노래를 들을 정도가 되었습니다. 엔지니어가 넌지시 묻습니다.

'자, 그럼. 이대로 정리하겠습니다...?' (혹시나 하는 물음표)

'네! 좋습니다......!' (머뭇거림이 티 나는 느낌표)

'믹스 다운(mix down)'이라는 과정을 통해 몇 초 만에 모든 소리들이 하나의 파일로 합쳐집니다. 디자인까지 끝난 책의 원고, '이미지 병합'을 누른 포토샵 사진 같은 거죠. 이제 이대로 가는 겁니다.

더불어 제 마음도 함께 믹스 다운 됩니다. 그간의 감정들은 현재의 감정으로 녹아들고, 내일 귀가 변덕을 부리든 마음이 변하든 이제 이대로 가는 겁니다.

2주 간 방에서, 한밤의 동네에서, 전철 안에서 날뛰던 마음은 더 이상 수정하지 않아도 되는 편안함에 이릅니다.

(물론 여전히 수정은 가능한데요! 보통 그러는 일은 없습니다. 굉장히 만족한 상태이거나 지긋지긋해 며칠은 들을 수 없는 상태이기 때문이죠)

 

 

🌘 창작의 뒷면

믹싱을 맡은 오정균(oZZang) 님의 전북 완주군 자택으로 마지막 수정을 하러 가는 길(마치 오래 전 손을 떼고 올리브 농사를 짓고 있는 실력자를 찾아가는 느낌)
믹싱을 맡은 오정균(oZZang) 님의 전북 완주군 자택으로 마지막 수정을 하러 가는 길(마치 오래 전 손을 떼고 올리브 농사를 짓고 있는 실력자를 찾아가는 느낌)
(좌) 프로듀서와 믹싱 엔지니어. 믹스 다운을 마친 후의 허허로움 / (우) 믹스 다운의 완료를 알리는 석양
(좌) 프로듀서와 믹싱 엔지니어. 믹스 다운을 마친 후의 허허로움 / (우) 믹스 다운의 완료를 알리는 석양

 

 

🥝 가벼운 디깅

제이 파리니, <보르헤스와 나>
제이 파리니, <보르헤스와 나>

이 책을 '파고' 있다고 할 수는 없지만, 최근 전철을 기다리며, 약속을 기다리며 야금야금 읽고 있습니다.

작가가 1970년대 초 스코틀랜드로 도피성 유학을 갔다가 우연히 그곳에 와 있던 아르헨티나의 거장 '보르헤스'를 맡았었고(지인의 부탁으로), 보르헤스의 충동적 제안으로 북쪽 지방 여행까지 다녀온 거짓말 같은 경험을 담고 있는 책입니다.

짝사랑하던 여학생을 만나러 돌아가야 하는데, 보르헤스는 아라비안 나이트부터 꿈과 인생, 인류의 역사까지 방대한 지식을 들려주고...  '뭔가 흥미롭기도 하고, 유익하기도 한데, 지금 내가 이러고 있어도 되는 건가' 고민하는 주인공의 마음이 '디깅'하고 있는 이의 마음 아닐까요?

 

🌿 가까운 소식

🦆 얼마 전 서울국제도서전에서 미리 선보였던 음악에세이(?) <미공개 실내악>이 6/17일에 정식 출간됩니다. 송라이터 이아립 님을 이번에는 편집장으로 모시고 만든 책입니다:) 

미공개 실내악

🦆 지금 가장 주목해야 할 프로젝트, '빅이슈프로젝트'의 싱글 <나무가 된 사람들>이 발매되었습니다. 저는 보컬과 코러스로 참여했고요. 프로듀서를 맡은 송라이터 이주영님의 주문 : '목인씨, 동편제처럼 불러 주세요!' - '네??'

빅이슈프로젝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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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2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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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송다영

    0
    almost 2 years 전

    솔직한 작업기, 공감이 되어 웃음이 새어나오네요🙂 그리고 책을 추천해주셔서 기뻐요! 첫 메일을 받은 것도, 여러모로 선물을 받은 느낌이네요.

    ㄴ 답글 (1)
  • 0
    almost 2 years 전

    재밌어요! 책은 어디서 구매 가능한지요..?

    ㄴ 답글 (1)
  • 별공

    0
    almost 2 years 전

    비공개 댓글 입니다. (메일러와 댓글을 남긴이만 볼 수 있어요)

    ㄴ 답글 (3)
  • 반딧불

    0
    almost 2 years 전

    안녕하세요 목인님 지난 이랑님과의 공연에서 책도 음반도 내신다는 말씀을 듣고 무척 기뻤습니다! 미공개 실내악은 서울국제도서전에서 구입했고요 이제 음반만 남았네요 4집이 나오면 전국투어 한번 하시죠! 여긴 참고로 대전입니다😊

    ㄴ 답글 (1)
  • 삭제됨

    0
    almost 2 years 전

    멋있으시네요

    ㄴ 답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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