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업의 기준이 뭐지?
7월 초부터 발매 공연과 라디오 출연, 팝업샵 등등, 계획표의 일정들을 죽 거쳐오고 나니 '모처럼 본업에 충실한 두 달이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다가도...... '대체 본업의 기준은 뭐지?'라는 생각도 하게 됩니다.
음악은 제가 사회생활을 하며 가장 처음 한 일이지만, 수익이 가장 많은 일도 아니었고(프리랜서들에게는 가끔 본업보다 다른 일의 수익이 많죠), 제가 가장 내세우고 싶은 일이라고 하기도 뭣하고(내세우는 순간 느껴지는 책임감), 또 일의 양으로 보아도 가장 많은 시간을 쏟고 있는지는 의문입니다. (지난 8/13일 재미공작소에서 열린 '김목인의 작은 가게'에서는 음반과 함께 그간 낸 책들도 전시했는데요. 책이 왜 이리 많냐는 얘기를 많이 들었습니다)
예전 같으면 일들 간에 외형상의 균형도 좀 맞춰보려 했지만 요즘은 그런 걸 그다지 신경 쓰지 않습니다. '날 꼭 이렇게 불러줘'라며 신경 쓰던 성향도 좀 느슨해졌고요. 마치 예식장에 축가를 부르러 가서 사회자가 소개 멘트를 물어볼 때처럼 답하게 된 거죠. '글쎄요. 거기 나와있는 대로 편하게 소개해주세요.' 정도.
얼마 전 지인들과 얘기를 나누다가도 이 '본업'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지금껏 해오던 일 말고 한 번쯤 다른 일을 해보는 상상'에 대한 대화였는데, 이미 다른 일들을 꽤 해왔다 생각했지만 어떤 면에서는 언저리의 일, 나름의 맥락으로 연결된 일들이었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음악을 하면서 음악 일에 대한 책을 쓴다든지)
저는 월세를 내며 바를 운영한 적도 없고, 회사 생활을 한 적도 없고, 인테리어 현장에 일을 하러 간 적도 없습니다... 그러고 보니 얼마 전 신축 빌딩에 미술 작품 거는 아르바이트를 하러 하루 다녀온 적은 있습니다. 안전 교육을 받고, 안전모를 쓰고 새벽같이 현장에 가니까 그때 만큼은 '창작자 김목인'의 연장선상에서 간 느낌은 아니더군요. 그러나 그곳에서도 비슷한 인맥으로 아르바이트를 하러 온 창작자들을 만나 역시 아주 먼 일은 아니었구나 싶었습니다.
'지금 하는 일이 평생의 본업인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본업을 구분하는 얘기로 흘렀고, 다른 사람을 도와주러 가 일하다 보니 '내 본업'은 이것인가라는 생각을 하게 되더라는 얘기도 나왔습니다. 그저 도와주러 간 것인데 너무 잘 할 것을 요구 받다 보니 '이건 내 일이 아닌데'라는 생각이 자연스레 들더라는 거죠. 뭐가 본업인지 애매한 입장을 취하고 있다가 본업이 아닌 일을 하자마자 본능적으로 명확한 태도가 드러나는 식이랄까요.
어쩌면 본업은 직종으로 구분되는 게 아니라 모든 일마다 내가 본업으로 느끼는 부분과 아닌 부분이 있는 것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가령 저는 음악가로 활동하며 곡도 쓰고, 편곡도 하고, 연주도 하고, 공연도 하지만 이 안에서도 '밀착감'에는 차이가 있습니다. 상대적으로 '역시 난 이 쪽이 맞다' 하는 순간이 있는 거죠.
저는 아마추어 애호가로서 악기 연주와 녹음 등에 호기심을 갖고 있다가 밴드와 어울려 공연이라는 세계에 접어들었습니다(이미 오래 전 이야기지만요).
그래서인지 순간 순간 원래 나는 만드는 쪽이 본업이었나 생각하곤 합니다. 공연도 만드는 것인 데다, 만든 음악들을 소개할 수 있는 기회이니 열심히 하고 있지만, '내 고향은 역시 무대였어' 정도는 아니라는 거죠. 아마 무대를 한껏 즐기지만 곡 쓰는 건 곤욕인 음악가가 있다면 서로 조언을 구하거나 전혀 다른 차원에서 대화를 나누지 않을까요?
책도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저는 좋은 책들을 낼 기회에 참여할 수 있었지만 원래부터 작가가 되고 싶었다기보다는 독자로서 책을 좋아했고, 수집가로서 좋은 책들을 모아오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인지 '좋은 문장 한 줄을 얻는다', '온몸으로 나를 표현한다'는 느낌(그냥 제가 상상해본 작가의 한 모습입니다 ㅎㅎ)보다는 내가 보아온 흥미로운 책들에 준하는 책을 '만들고 싶다'는 기분으로 하고 있습니다. 이왕이면 잘 만들고 싶고 말이죠.
요즘은 가수라고 불러도, 작가라고 불러도, 책을 자주 내는 싱어송라이터로 불러도 정체성의 문제로 느끼지는 않습니다. 모두들 편한 대로, 이해한 만큼 부르는 이름일 뿐 제가 열중하고 있는 일은 어차피 계속 이어지고 있으니까요.
지난 몇 년이 본업이 무엇인지 신경 쓸 필요 없이 이것저것 만드는데 골몰한 기간이었다면, 지난 두 달은 간판을 걸고 돌아다니며 한껏 일을 소개하는 기간이었습니다. 함께 해 주신 많은 분들께 고마운 마음을 전합니다!
🌘 창작의 뒷면
이번 '창작의 뒷면'은 지난 7/16 현대카드 발매공연과 8/13 재미공작소에서 열린 팝업샵 '김목인의 작은 가게' 사진들로 대신합니다.
🥝 가벼운 디깅
이 악기는 인도에서 주로 쓰이는 스타일의 하모니움(harmonium)입니다. 유럽에서 전래되어 인도에서 토착화된 형태라 할 수 있죠.
어떤 악기인지 항상 관심이 있던 차에 인도의 한 상점에서 저렴하게 나온 것이 있어 구입했습니다(물론 인터넷 쇼핑으로). 휴대용 케이스를 연 다음 들어 올려 연주하는 형태고요. 수공예품이 이렇게 정교한데 놀랐습니다.
제 곡에 이 악기를 쓰게 될 확률이 얼마나 될 지는 모르겠지만, 며칠 구조를 들여다보고 연주도 해보며 마음의 평정을 얻었습니다:) 하모니움의 소리는 풍금 소리인데, 발이 아닌 한쪽 손으로 바람을 불어넣어야 해 주로 한 손으로 연주합니다. 한 음이나 화음을 오래도록 지속할 수 있어 명상 음악에도 자주 쓰이죠.
저는 상자 안에 정교한 장치를 넣은 악기에 관심이 많습니다. 더구나 이 하모니움은 오르간들이 그렇듯 건반이라는 장치가 바람의 흐름을 조정한다는 점이 무척 매력적입니다. (링크 - 하모니움 반주의 만트라)
🌿 가까운 소식
🦆 김목인의 전국책방투어 - 9/3 서울 '이상한나라의헌책방'을 시작으로 전국 8개 서점에서 투어를 시작합니다. 매진 행렬, 그러나 아직 잔여표가 남은 곳도 있으니 확인해 주세요:)
🦆 4집 <저장된 풍경>의 바이닐(Vinyl)이 예정보다 빨리 발매되어 9월 1일 예약 판매에 들어갔습니다. 그 동안 제 LP를 사랑해주셨던 많은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댓글 4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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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물박사 김민지
본업은 소개해주신 하모니움 같은 게 아닐까요. 한 음이나 화음을 오래도록 지속할 수 있어 명상의 시간으로 인도하는 그런 일인 것 같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습니다. 바람의 흐름을 조정하기까지 한다면 너무 좋은 본업일 것 같아요. 책 작업은 분명 음반 작업과 다르지만 목인님 앨범을 듣다 보면 책을 읽는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책에 들어가는 요소들은 그때그때 다르지만 왠지 계속 사게 되는 출판사 책들처럼요.
김목인의 풍경과 코러스
본업에 대한 멋진 비유를 해주셨네요. 유지되는 자신의 음을 안다면 좀 더 편안할까 싶기도 하네요:) 네, 저도 정리해보지는 않았지만 정말 계속 사게 되는 출판사 책들이 있어요. 느낌이란 게 생각보다 뚜렷한 것인가 봅니다. 뉴스레터 받아주시는 것도 고마운데 좋은 댓글까지 달아주셔서 감사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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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tdogcoolpug
거의 한달만에 온 레터 너무 반갑고 감사한 마음입니다. ㅠㅠ 현대 공연 너무 좋았는데 재미공작소를 못 간 것이 너무 아쉽습니다... 여러 업을 하고 계신 모습이 멋집니다! 그것도 다 잘하시니 말이에요.. 노래처럼 디깅을 계속 하고 계시는군여 악기가 너무 예쁘구요... 앨범은 최고로 잘 듣고 있습니다 .🥺
김목인의 풍경과 코러스
반갑게 받아주셔서 감사합니다:) 다 잘 해서 하는 건 아니지만 열심히 즐겁게 하도록 노력하려고요. 언제 또 작업 모습을 보여드릴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할게요.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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