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나이 반세기를 넘겨, 평균 수명 백이라 했을 때 이제 죽을 날까지의 기간이 지금까지 살아온 날보다 더 짧아졌겠다 느끼면서 종종 가늠해 보는 수치가 있다. 이거요:
여자분들께는 그게 뭐 대수냐고 들릴 수 있지만 이 지구상의 상당 수 남자들은 축구에 목 매달고 있다요. 얼른 기억나는 에피소드로, 몇 년전 회사 출장으로 런던엘 갔는데 거기서 우리 회사 영국 팀원들하고 합류했지. 그 때 만난 백인 동료, 이름이 Richard 였던가, 세상에서 제일 무뚝뚝하고 재미없는 반 대머리 중년 남성이었다. 나랑 둘이 걸어가는데 처음 5분 동안 서로 묵언 명상 하듯 숨소리만 내며 걷다가 내가 도저히 못 참겠어서 말을 붙였지. "You live in the UK, so you must be a fan of soccer?" 돌아온 대답은 우선, 자기네들은 soccer라 안 하고 football이라 부른다고, 하면서 자랑스럽게 뱉은 말이 "Football is world's most fantastic sport." 이걸로 우리는 말문이 트였고, 그는 그 후 나를 화상회의에서 보면 살갑게 인사말도 던지고 그랬단 말이죠.
얘는 영국인 치고는 일반인 스타일이고요, 중증 팬은 이런 경우도 있어요. 흑인인데 역시 같은 영국 동료였어. 내가 묻기를, 니 이 동네 사니까 아마 첼시 팬이지? 했더니 한 십여분간을 좔좔좔 첼시 첼시 첼시 만세를 쏟아내더니 자기는 주말 경기에 첼시가 지면 이렇게 된대요:
에피소드 하나만 더 얘기하고 본론 갈게요. 이번에는 아르헨티나 축구팬 얘기. 시드니에 이민 와서 정착하던 초기, 2005년에 만난 동료인데 이놈도 그 무렵 아르헨티나에서 막 넘어왔었어. 이 놈이 호주와서 가장 놀라웠던게, 호주 축구 경기장엔 펜스가 없다는거야. 아니 그게 뭐가 놀랍다는거지? 물었더니 아르헨티나 사람들에겐 아까 영국 흑인 팬 이상으로 축구는 나의 모든 것이요, 이에 축구 경기장은 내가 분노하는 모든 것 - 뒤죽박죽된 국가 경제, 거짓말쟁이 정치인들, 떠나간 연인, 이리하여 뒤틀려버린 내 인생 - 에 대한 울분을 온 힘을 다해 내뱉을 수 있고, 그래서 때로는 폭력도 용인되는 고대 로마 콜로세움 같은 장소가 된 것이라. 하여 내가 응원하는 부에노스아이레스 팀이 지거나 하면 그날은 펜스를 붙들고 울며불며 하다가 그래도 화가 덜 풀리니 에라이 맥주병 들고 그 주둥이에 기름불 붙여 경기장 난입하게 되고 마는 것이지요. 그래서 이민자 알젠티니안(Argentinian)에겐 가만히 앉아 무미건조하게 경기를 관람하는 시드니 축구 팬들이 신기하게 보일 수 밖에.
돈 냄새 맡는데 귀신인 도날드 트럼프가 이런 전지구적 남성내들 광기 발산 스포츠 이벤트를 안 놓치고 이번 북중미 월드컵 꿀단지에 빨대 꽂으라 건의한 모양입니다. 2026 월드컵 경기장 관람 가격은 천정부지로 올랐다 하네요. 제일 싼 것이 30만원이고 결승전은 현재 가격 300만원선. 아래표로 과거 월드컵과 비교할때 이번 북중미 대회가 몇 배 올랐나가 쉽게 확인됩니다. 왼쪽은 일반 경기, 오른쪽은 결승전 표 가격.

이번 대회 가격 결정에 트럼프가 진짜 개입했는지 어쨌는지는 알 수 없으나, 조직 위원회인 FIFA가 티켓 판매 방식을 바꾼 것은 확실합니다. 여태까지는 티켓 가격에 상한제를 두어 일반 서민들이 구입 할 수 있는 수준으로 맞췄고, 판매는 추첨으로 이루어졌는데 이번 대회엔 얘네들이 돈독이 올랐나, 완전 자율 시장 경쟁 체제로 맡겨 돈 더 낼 사람 더 내라는 식으로 가격제를 바꾼 것이죠. 이렇게 되어 이번 대회엔 티켓 판매 대금으로 얻는 수익이 예전보다 크게 늘어나게 됩니다. 아래 표의 분홍색이 티켓 판매 금액. 전통적으로 제일 수익이 컸던 부분은 역시 방송 중계권, 그리고 경기장에 로고 갖다붙이는 기업 마케팅 금액이 그 다음(하늘색)이었네요.

경기별 가격에 관한 표도 흥미로우니 보여드리겠습니다. 이번 대회 처녀 출전한 아프리카의 케이프 베르데 (Cape Verde) 경기는 본선 1차 토너먼트 세 경기 모두 보게 되면 1000불 밑입니다(그래도 ㅈㄹ 비싸다!). 브라질은 뭐 말도 못하네. 토너먼트 세 경기 토탈 관람 가격 우리 돈으로 500만원 넘어가네. 여기 표에는 안 나오지만 한국은 대략 600~700불 하는 것 같고, 일본은 이보다 비쌉니다. 대략 1000불 언저리. 참고로 유럽의 챔피언스 리그 있지요? 그거 결승전 티켓은 싸게 사면 200불이랍니다. 그러니 이번 월드컵에 FIFA가 얼마나 돈독이 올랐나, 잘 알 수 있습니다.

축구 얘기하다 보니까, 이번 주에 북한 여자 축구팀과 우리나라 수원 FC Women과의 남북 대결도 있었지요. 날짜 맞춰 KBS 스트리밍으로 경기 볼려고 했는데 깜빡 놓쳐버렸네. 그래서 인터넷에 결과 찾으려고 검색했더니 엥? 여기 일본이라 이상한 매체가 하나 뜨네. 이름하여 조선신보. 우선 그들의 헤드라인을 읽어드리면
엄훠 생경해라, 연음 법칙같은거 내래 안쓰갔시요. 좋아, 기사 읽어내려가니 사진도 있네. 여기 붙여드리갔수다.

오~ 로동신문에서 찍은 사진이군요, 화질 ㅈ같다. 돈 없어 좋은 카메라 못 썼구나 이해한다. 니들 수령님도 이런 안타까운 사연 알고 계실라는가. 본인 가죽잠바 하나 팔아 카메라 마련해 주시게, 하고 조선신보에 애독자 투고 하나 올리려 했더니 투고란은 없고 화면 상단에 이런 메뉴만 있네 ㅠㅠ

음음 이런거 불편해요~ 하실 분 위해 이런 저질 매체가 왜 일본에서 버젓이 판을 치는가 설명드리면, 일본은 총련 세력이 아직 무시 못한단 말이에요. 특히 총련이 운영하는 학교 수는 50개가 넘는데 대한민국이 운영하는 한국인 학교는 네 개 뿐이라. 내가 아는 한국계 회계사 이 분도 총련 학교 나왔지. 학교에서는 마르크스 엥겔스의 19세기 이상적 공산주의 이론들 있잖아 - fuck 부르조아, everyone can have shiny toilet - 그런거 가르치면서 정은이 수령님 고생한다, 하여 평양으로 수학여행 가서 대동강변 배경으로 사진도 찍고 그런다고. 물론 이 교육 받고 다 커서 사회 나오면 같은 한국말 쓰는 K 드라마와 뮤직, 화장품에 자연스럽게 빠지게 되어 결국 북한보다는 한국 관련 일을 하게 되는 경우가 많을 것인데, 그래도 나 어렸을 때 말 배워주고 수학여행도 보내주고 했으니 학교에 성금내고 총련에 기부금 내고 그러겠지. 안타까운 분단의 현실은 여기 일본 열도에서는 아직도 진행중이고요... 오늘 맺음말로, 여자 축구는 아시아에서 졌으나 남자 축구는 월드컵에서 분투하기를, 하여 나에게 아마 이번이 대략 내 인생에서 13번째 남은 월드컵일 텐데, 부디 좋은 결과로 맺어지게 되기를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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