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일기

나한테 이런 취미가 있을까

술익는집을 보면서

2026.11.04 | 조회 6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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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탄재보다 못한 사람, 소비형 취미의 남자

나는 좋아하는 게 꽤 많은 사람이다. 어릴 때는 WWE를 챙겨 봤고, 만화책을 끼고 살았고, 스타크래프트는 하는 것도 보는 것도 좋아했다. 지금은 롤을 본다. 돈이 없던 시절에는 가진 게 시간뿐이라 시간을 쏟아부었다. 좋아하는 방식이 늘 그랬다. 보고, 하고, 또 본다. 그러니까 전부 소비였다.

그런데 지금 와서 돌아보면 손에 남은 게 별로 없다. 흔히 좋아하면 모으게 된다고 하는데 나는 모으지 않았다. 변명을 하자면 초등학생이 WWE 티셔츠 살 돈이 어디 있겠나. 근데 이게 또 묘하다. 정말 좋아했으면 어떻게든 샀을 텐데, 돈이 없어서 못 샀다는 건 그만큼은 아니었다는 뜻일 수도 있다. 축구를 좋아해서 고3 때 바람막이 하나 산 게 전부다. 스타크래프트와 롤은 굿즈를 몇 개 갖고 있지만 전부 누구나 살 수 있게 파는 물건이다. 애장품이라고 부르기엔 쑥스럽다. 희소성이 없다. 그냥 샀다.

모으는 건 그렇다 쳐도 더 큰 문제는 만드는 쪽이다. 덕질은 소비로 시작해서 생산으로 끝난다고 생각한다. 좋아하다 보면 아쉬운 게 보인다. 저 장면은 이랬으면 좋겠는데, 이 부분은 왜 이렇게 만들었지 싶은 것들이다. 아쉬운 게 보이면 직접 해보고 싶어지고, 하다 보면 그 행위 자체에 빠져든다. 덕후들이 결국 뭔가를 만들어내는 건 그래서다. 나한테는 그런 경험이 없다. 만들 만큼 좋아하는 게 없었을 수도 있고, 내가 좋아한 것들이 직접 만들기엔 너무 컸을 수도 있다. 이유야 뭐든 결과는 같다. 나는 좋아하면서 아쉬워만 했지 만들어본 적이 없다.

그러던 중에 유튜브가 '술익는집'을 띄워줬다. 알고 보니 꽤 오래된 채널인데 나는 이제야 알았다. 희한한 일이다. 알고리즘이 그동안 한 번도 안 보여줬다는 건 내가 그만큼 술과 상관없이 살았다는 증거다. 나는 술을 거의 못 마신다. 관심도 없다. 위스키, 버번, 데킬라를 앞에 줄 세워 놓으면 하나도 구분 못 할 것이다. 그런 사람이 이 채널은 영상 하나 틀면 끝까지 본다.

채널 이름 그대로 술을 만든다. 그것도 별의별 술을 만든다. 집이 사실상 양조장이다. 바나나 술, 망고 술은 기본이다. 영화에 나온 술을 따라 만들기도 하고, 당분만 있으면 술이 된다면서 휴지를 분해해 술을 만들기도 한다. 휴지로 술이라니. 처음엔 이게 되나 싶어서 봤고, 되는 걸 보고 나서 또 봤다.

예전 영상부터 정주행하는 동안 처음엔 감탄했고, 지금은 부럽다. 이유가 있다. 술은 마시기는 쉬워도 만들기는 과학의 영역이다. 이분은 그 과학을 계속 공부한다. 논문을 읽고, 대학원 수업까지 듣고, 대학원 과정도 밟는 것 같다. 유튜버도 오래 하다 보면 좋아하던 일이 일이 되기 마련인데, 이분은 일이 된 걸 넘어서 여전히 엄청 즐기는 게 보인다. 그걸 보면 인간적으로 존경스럽다는 말이 나온다.

사실 좋아하는 일이 있어도 못 하는 사람은 많다. 능력이 안 돼서 못 하는 사람이 있고, 능력은 되는데 이런저런 핑계로 지금은 여력이 없다고 빼는 사람이 있다. 이분은 능력도 있고 열의도 있다. 가족의 지원까지 있다. 이 정도로 조건이 맞아떨어지는 사람은 드물다.

유튜브로 어떻게 성공하느냐는 나도 모른다. 다만 사람들이 유튜브에 바라는 건 어렴풋이 알 것 같다. 내가 못 하는 것, 내가 못 본 것, 그리고 재미있는 사람이다. 유튜브는 캐릭터쇼다. 그 캐릭터가 성장하고, 뭔가를 배우고, 자기가 아는 걸 나누는 과정을 지켜보는 장르다. 그렇다면 본인이 진심으로 파고드는 분야에서 시작하는 게 정답에 가깝다. 이분은 그걸 제대로 찾았고, 끝까지 키우고 있다.

그럼 나는 어떨까. 솔직히 모르겠다. 내가 계속 소비해온 걸 이제 생산해보겠다고 마음먹으면 더 많은 게 보일 텐데, 막상 마음이 가는 대상이 없다. 굳이 따지자면 추리소설? 그렇게까지 좋아하지 않는다. 공포소설도 마찬가지다. 나는 완전한 덕후는 아니다. 관심 없는 사람보다는 관심이 있고, 고관여자에 비하면 한참 모자란다. 내 자리는 딱 그 사이다. 이게 참 애매하다. 그렇다고 취미가 없어서 아쉬운 삶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술익는집'을 보고 있으면 자꾸 하나가 걸린다.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말라는 시가 있지 않나. 나는 살면서 그렇게 뜨거워 본 적이 있었나 싶다. 삶에 그런 게 하나쯤 있으면 늘 재미있을 것 같다. 술도 못 마시는 내가 술 만드는 영상을 보면서 이런 생각을 하고 있다. 아이러니하다. 일단 오늘도 나는 소비한다. 다음 영상을 틀었다.

그럼에도 삶은 꽂히면 가는 거고, 답은 구하기 나름이며, 중요한 것은 미래를 추론하기보다 만들어가는 것이다. 

웬만하면 맞춤법 틀린 부분 없을 텐데, 있으면 봐주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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