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의 일기

창작에 대하여

야 딸깍하지 왜 직접 하냐?

2026.09.09 | 조회 6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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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시대에 무언가를 만드는 행위에 뭔 의미가 있을까?

 

혹자는 ‘딸깍’이라며 AI를 이용한 무언가를 비하하지만, 솔직히 말하면 인간이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하한 작업물보다 AI가 몇 초 혹은 몇 분 만에 내놓는 작업물이 더 훌륭할 때가 많다. 이 사실을 부정할 수도 없다.

 

그렇다면, 이 시대에 창작 행위가 가진 의미는 무엇인가? 그리고 창작이란 무엇인가?

AI를 이용한 창작에 대한 논란은 사실 미술계에 유사한 이력이 있기에, 거기서부터 보면 감이 온다. 가장 유명한 것이 조영남 대작 사건이다. 어찌저찌 요약하자면, 조영남이 구상만 하고 이후 조수에게 많은 걸 시키고, 마지막 터치를 다시 본인이 하고 이걸 “조영남 작품이오!”라고 해서 문제가 됐던 일이다. 

 

첨부 이미지

사실 어떤 아티스트가 온전히 자신의 힘으로 모든 것을 수작업하는 일은 거의 없다. 그러기 위해선 10년에 한 번 앨범을 낸다거나, 10년에 한 번 그림을 그리거나 전시를 하는 수밖에 없다. 협업하거나 일부 작업을 위탁하면서 완성하는 것이 현대 미술의 주된 작업 방식이라는 진중권의 설명도 붙는다.

그렇기에 나는 AI를 이용한 제작(혹은 딸깍)이 어떤 의미 없는 창작 행위라고 보지 않는다. 그 역시 창작이다. 같은 프롬프트라도 다른 결과가 나오듯 내 사용 패턴과 성향에 따라 다른 결과가 나오기에 개성도 반영될 수 있다. 오히려 인간의 창작은 앞으로 직접 만드는 일보다 구상에 집중될 확률이 높으며, 단순 뺑이(…)로 보여줄 수 없는 무언가를 더 고안해야 한다는 점에서 더 좋은 창작을 향한 경쟁은 더 빡세질 것 같다.

 

창작 행위가 가진 의미는, 직접 하는 것이 가진 의미는 취향이라는 단어로 설명해 보고자 한다.

나는 취향이라는 단어를 혐오한다. 취향이라는 모호한 단어보다는 내 선호 혹은 호불호 내지 내 기호라는 단어를 더 좋아한다. 취향과 감도라는 것은 정의 내리고 분석하기 어려우며 측정 난이도도 괴랄하다. 비꼬아서 생각하면, 그냥 “내 기분이 안 좋고 난 네가 싫어. 근데 논증하기가 어려워.”라고 하면 그때 취향과 감도를 끄집어내는 거 아닌가 싶기도 하다. 동시에 아무리 구려도 그냥 내가 너를 좋아할 때의 근거가 취향과 감도이기도 하고.

 

무언가를 ‘좋다’, ‘나쁘다’라고 평가하는 데에 있어 “다수결이 중요한가?”라고 하면 그리 중요하지 않을 수 있다고 본다. 그런데, 역사적으로 엄청나게 좋은 것들은 대개 그 시대 사람들 대다수에게 좋은 것으로 평가받았다. 그리고 그것들이 켜켜이 쌓이고 마치 토너먼트를 하듯이 더 대단한 것들이 서로 경쟁하다가 남은 것들은 확실히 좋고, 위대한 것이라 평가받는다. 이렇게 보면, 위대한 것들은 항상 다수에게 인정받았다. 예술이 주관적이고, 취향과 선호 역시 객관화하기 어렵지만 우리가 예술 작품이라고 부르는 것들은 역사를 거치면서 많은 이들에게 평가받고 이 과정에서 어느 정도의 객관성을 담보한다.

 

내가 취향이라는 단어를 혐오했던 이유는 어떤 무언가에 대해 ‘좋아한다’, ‘싫어한다’, 혹은 ‘좋다’, ‘나쁘다’라고 스스로 말하기가 어려우니 단순히 취향으로 퉁쳐 버리는 현상 때문이었다. 내가 좋아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왜 이것보다 저것을 더 좋아하는지 말할 수가 없다면 과연 나는 그것을 좋아하는가? 그냥 있어빌리티를 위해 대충 얼버무리는 게 아닌가 하는 거지.

 

그런데, 역설적으로 요즘 서구권에서는 취향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AI로 인해서 무수히 많은 쓰레기 작품(슬롭)이 나오는 현실을 개탄하는 많은 이들은 결국 창작이 너무나 쉬워진 만큼, 개인이 더 좋은 것을 발견하고 구별해 내는 힘(=취향)이 더 중요해진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취향은 어떻게 쌓을까? 단순하다. 창작이다. 내가 무엇을 잘하는지 알고 싶다면, 해 봐야 한다. 내가 그 분야에 감탄하고 싶다면, 그 분야를 공부하고 행해 봐야 한다. 내가 페이커와 임요환의 플레이에 감탄했던 데에는 스타와 롤을 했던 이력이 있다. 내가 Vox에 감탄했던 이유는 그걸 조금이나마 만들어 보고자 했기 때문이다.

 

감탄과 비탄이 쌓이다 보면 어느 것이 더 좋고, 어느 것이 더 열등한지 직관적으로 깨달을 수 있는 일종의 스파이더 센스가 생기기 마련이다. 나는 이런 스파이더 센스는 타고난 것이라고 보진 않는다. 왜냐하면 순수히 타고났다고 하기엔, 그런 대가들은 대부분 엄청나게 많은 노력을 하기 때문이지. 타고났다기보단 성장 과정에서의 환경과 개인의 노력이 적잖은 비중을 차지한다는 정도로 하자.

 

여튼, 돌아보면 AI는 우리의 제작 비용을 0에 가깝게 낮춰 주었다. 그와 동시에 저퀄리티의 작업물은 평타를 치게 해 주고, 평타 치던 것들은 좀 더 쌔끈히 보이게끔 해 주고 있다. 그런데, 또 여기서 홈런을 칠 만한 퀄리티의 작품들은 나오기 어려운 게 명백하다. AI를 비롯해 데이터에 의존한 무언가는 대부분 후행적이고 다수를 따르기 마련이다. 많은 이가 좋아할 법한 것, 미래보다 과거에 좋아했던 것들이 더 좋게 평가받는다. 윤제균 감독의 흥행력을 무시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그가 이창동보다 위대한 감독이라고 할 수는 없지.

 

윤제균도, 이창동도 필요한 세상이다. 하지만, 세상의 breakthrough는 이창동이 해낸다(〈가능한 사랑〉 보고 싶다). 이창동은커녕 두 발로 서 있기도 어려운 게 지금이지만 그럴수록 더 많은 창작을 해내야 한다. 지금 시대에 무언가를 직접 하는 행위가 의미 있는 유일한 이유는 그 경험들이 쌓여서 내게 무엇이 좀 더 좋은 것인지 구별해 내는 눈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절대 평범하고 무난한 중간 퀄리티의 무난피싱에 낚이지 말자.

그럼에도 삶은 꽂히면 가는 거고, 답은 구하기 나름이며, 중요한 것은 미래를 추론하기보다 만들어가는 것이다. 

웬만하면 맞춤법 틀린 부분 없을 텐데, 있으면 봐주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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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뿌리 의 프로필 이미지

    뿌리

    0
    1일 전

    사실 이 문제에 대해 한동안 고민이 많았었는데, 뭔가 답을 내려준 것 같아 고마워요. 특히 마지막 문단("지금 시대에 무언가를 직접 하는 행위가 의미 있는 유일한 이유는 그 경험들이 쌓여서 내게 무엇이 좀 더 좋은 것인지 구별해 내는 눈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절대 평범하고 무난한 중간 퀄리티의 무난피싱에 낚이지 말자.")에서 뭔가 이 내용이 마치제 고집과 동일해서.. 나만의 고집을 넘어, 아집'이 되는 것은 아닌가 고민하고 있었는데.. 고맙습니다! 아직 더 답을 찾아가야 하겠지만, 중간에 쉴 그늘이 되어주신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고맙습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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