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도록 머리 끙끙 싸매고 있던 프로젝트의 시작을 무사히 마친 날, 유난히 고되고 지친 노동을 했던 날, 을씨년스런 하늘에 습기 머금은 공기 사이를 가르며 걷던 날, 사람들과 함께 축하하고 즐거움을 나누고 싶은 날, 그리고 세상에 말도 안 되는 일이 실제로 벌어져서 말로는 다 설명이 안 되는 날. 그런 날엔 술이 필요하다.
언제부터 술을 마시기 시작했냐는 질문에 나는 대외적으론 계엄이 터진 후라고 답했다. 엄밀하게 따지면 결혼식 이후, 신혼여행지에서 마셨던 칵테일류의 음료가 첫 번째였겠지만. 그때는 난생처음 마셔보는 알코올의 맛과 향에 적응보다는 거부가 빨라서, 마실 줄 모르는 술을 잔뜩 시킬 줄만 아는 아내 옆의 남편만 두 배로 마시곤 했다. 계엄이 터지고 몇 시간 지나지 않아 급한 불은 꺼졌고, 다음 날 놀랍게도 일상은 이어졌고, 나는 예정되어 있던 수업을 책방에서 잘 마무리했다. 갈 사람들은 가고, 남아 있던 몇몇 사람들과 함께 지난밤 일어났던 소동에 관해 이야기하던 중, 심 선생님이 잠시 기다려보라며 미닫이문을 열고 들어가시더니, 붉은 액체가 담긴 병과 종이컵을 들고 다시 나오셨다.
“와! 이거 비싼 건데!”
자타공인 애주가인 소 선생님은 병만 보고도 바로 알아봤지만, 나는 태어나서 처음이었다. 진도 홍주라니. 40도가 넘는 술이었다. 세상에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졌는데 술 한잔해야지 않겠냐며, 선생님은 종이컵에 한 사람씩 술을 따라주셨다.
“홍 선생도 조금 하지요?”
평소 존경하던 심 선생님의 제안을 거절하기가 민망스럽기도 하고, 도대체 이게 무슨 액체길래 수많은 이들의 삶에 영향을 주는 건지 호기심이 들기도 했다. 남편도 넙죽 받아 마시니 나도 옆에서 조금, 아주 조금의 술을 종이컵에 받았다. 맑고 영롱한 붉은 색 술. 간단한 안줏거리와 이런저런 이야기들과 함께 늦은 밤까지 술자리가 이어졌다. 그날을 시작으로 선생님들과 종종 만나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술을 제대로 마셔본 적도, 배워본 적도 없다는 말이 선생님들 마음 어딘가에 있는 욕망을 자극한 듯했다. 마치 아기 새에게 먹이를 물어다 주는 어미 새처럼, 선생님들은 나에게 새로운 주종을 가르쳐주며 이곳저곳의 이 술 저 술을 마실 수 있게 해주었다. 위스키와 고급 소주, 보드카와 와인, 가끔은 맥주와 막걸리도. 그중에서도 가장 빈도가 높은 건 와인이었고, 내 입맛에 가장 즐겁고 좋은 것도 와인이었다. 선생님들은 이 술 모임에서 탄력받아 짧고 굵은 살롱 운영을 하기도 했다. 6개월이라는 짧은 시간이기는 했지만 내가 살면서 가장 자주, 많이 방문한 술집이기도 했다. 와인은 특히 함께 어울려 먹는 음식이 좋아서 더 좋아했다. 샴페인과 까바, 샤르도네와 소비뇽 블랑, 리슬링, 카베르네 소비뇽, 말벡…. 아직도 다 알 수 없는 다양한 품종의 와인과 치즈, 햄, 올리브, 견과류들.
기념할 일이 있거나 의미 부여가 필요한 날, 기운 내기 위해 맛있는 것을 먹고 싶은 날에는 마트나 편의점의 와인 코너를 기웃거리기 시작했다. 맥주 가격의 몇 배가 되지만 아깝지 않았다. 외식할 때는 주류엔 어떤 품목이 있는지 살펴보곤 했다. 가끔은 옛 친구 집에 놀러 갈 때 술을 사 가기도 했다. 이쯤 되니 나는 인정해야 했다. 내가 술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술의 세계로 온전히 진입하고 나니, 그제야 보이는 세상이 분명하게 드러났다. 술을 마시고 싶은 순간에는 어떤 감정을 느끼는지, 어떤 분위기에 어떤 음식을 먹고, 어떤 음악을 듣는지, 어떤 사람과 함께 하고 싶은지. 과거 술을 마시지 않던 때에 이 모든 것을 경험해 보지 못했다는 게 아쉽다가도, 오히려 지금에야 이것들을 안 것이 흡족하기도 했다. 비교적 덜 휩쓸리며 나의 속도에 맞춰 술을 알게 된 것이.
술을 마시는 인간이 된 후로 좋은 건, 내가 몰랐던 나의 모습을 새로 알게 됐다는 사실이다. 내가 산미가 있는 음료를 대체로 좋아한다는 것, 그것은 와인뿐 아니라 커피에도 해당한다는 것, 음식으로써의 술이 일상에 적절한 배출구, 기념비 역할을 해준다는 것, 그리고 결국 무엇을 어떻게 먹든지 간에, 누구와 함께 먹느냐가 가장 중요하다는 것.
술을 마시게 된 후로부터, 나는 나를 가두고 있던 큰 틀 하나를 뛰어넘은 기분이다. 무조건 죄악시하거나 터부시하던 대상을 다른 관점으로 바라보게 되면서 다른 선택을 하는 나. 그 자유로움, 타인의 시선과 타인을 바라보는 나의 시선 모두에 찾아온 진정한 변화. 이 다음엔 또 어떤 내가 있을까? 나 자신을 알아가는 여정에 한 걸음 더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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