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ai가 없으면 일을 잘 못한다. 좋은 의미로 하는 말은 아니다. 출근할 때 휴대폰을 두고 나오면 하루 종일 손이 허전하듯, 이제는 무슨 일을 하다가도 일단 ai부터 켠다. 작년까지 상상 못했는데, 이젠 내 시작프로그램 중 하나가 터미널이다. 언제 쓰냐 물으면, 안 쓸 때를 생각하는 게 더 빠르다. 자료를 찾을 때도 켜고, 글을 쓰다가 막혀도 켜고, 내가 한 생각이 맞는지 의심스러워도 켠다. 맞춤법이랑 띄어쓰기도 당연하다. 이 정도면 도구라기보단 의존에 가깝다. 부디 나만 그런 게 아니길 바랄뿐.
언제부터 이렇게 됐나 생각해보면 내 경우에는 오퍼스 4.6 전후인 것 같다. 그 전까지는 아리까리 했는데, 지인을 통해 클로드코드에 대해 강의를 듣고, 그 이후부터 업무에 적용해봤는데 천외천이었다. 거칠게 설명해본다. 예전 ai는 일을 시키려면 내가 먼저 그 일을 상당 부분 알아야 했다. 지시를 세세하게 해야 했고, 중간에 헛소리를 하면 어디가 틀렸는지 찾아서 다시 시켜야 했다. 할루시네이션에 대한 의심과 지능에 대한 불신이 있었다.
쉽게 말해서 성실한 인턴이긴 한데, 업무 완수를 위해선 거짓말도 서슴지 않는 묘하게 부도덕한 놈이랄까. 요즘은 다르다. 내가 개떡같이 말해도 찰떡같이 알아듣는 순간이 꽤 많다. 가끔은 내가 설명하지 않은 것까지 먼저 챙긴다. 무섭고 편하다. 예전에 구글 직원 강의를 들었는데, 그 사람이 한 말이 이거였다. 구글은 한 발자국 먼저 가서 고객의 편안함을 고려한다고. 요즘 ai 쓰면서 그 생각이 들더라 (구글이 진짜 그러는진 모르겠음. 진짜였다면 에미나이가 이럴까?)
한국인이 시대마다 꼭 배워야 한다며 호들갑 떨었던 기술들이 있다. 내가 어릴 때는 영어였다. 영어만 잘하면 먹고사는 데 지장이 없다고 했다. 그 다음 주인공은 중국어였다. 중국이 뜬다며 중국어를 배우라고 했다. 외고를 비롯해 대학교 언어학과 계열에서 중국어가 인기 1황이었다. 어느 순간부터는 통계가 중요하다고 했고, 몇 년 전부터는 문과도 코딩을 배워야 한다고 했다. 나는 이 유행을 거의 다 구경만 했다. 찍먹만 했다. 근데 이제 와서 보니 ai 하나가 영어도 하고, 통계도 하고, 코딩도 한다. 뭔가 한참 건너뛴 기분이다. 우당탕탕하고 나서 짜잔!
물론 ai 하나면 모든 게 된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뭘 모르는지도 모르면 ai가 틀린 답을 내놔도 박수치게 된다. 중간 과정이 블랙박스처럼 가려져있는데, 이게 과연 옳은지 의문이다. 물론, 그럼에도 문과 출신인 내가 개발 비슷한 짓을 하게 됐다는 사실 자체는 꽤 놀랍다.
처음에는 지인이 ai로 뭔가를 만드는 걸 보고 따라 했다. 옆에서 볼 때는 쉬워 보였다. 말로 시키면 (키보드) 파일이 생기고, 프로그램이 돌아갔다. 나도 해봤다. 당연히 처음부터 되지는 않았다. 막히면 딸깍이 답이다. 오류 메시지를 통째로 복사해서 붙이고, 고쳐달라고 하고, 또 다른 오류가 나면 다시 붙였다. 내가 코드를 짠다기보다 오류를 ai에게 배달하는 사람에 가까웠다. 그래도 어쨌든 돌아가는 게 생겼다. 그때부터 약간 눈이 돌아갔다. 이것도 만들 수 있나? 그러면 저것도? 어디까지 해주는 거예요?

내가 처음 만든 것들은 세상을 바꿀 서비스 같은 게 아니었다. 그냥 내가 불편해서 만든 것들이었다.
가계부 앱이 그랬다. 토스 같은 앱은 내 계좌에서 다른 내 계좌로 돈을 옮긴 것도 비용으로 잡을 때가 있었다. 네이버페이로 결제한 것은 제대로 못 잡기도 했다. 결제 내역이 이쁘게 보이는데 포인트 등이 섞여서 순결제금액이 이상하게 나오는 경우가 있었다. 그러면 내가 또 들어가서 분류를 바꾸고 금액을 맞춰야 했다. 내 일을 줄이려고 쓰는 가계부가 내게 일을 시키고 있었다. 그래서 내가 원하는 규칙대로 기록하는 걸 만들어봤다. 입력 창구는 텔레그램. 어차피 계좌이체 금액 등은 내가 수기입해야 하는데, 그 창구를 텔레그램으로 고정한 셈.
뉴스레터 때문에 만든 것도 있다. 뉴스레터는 발행일만 기억한다고 나가는 게 아니다. 그전에 초안을 쓰고 윤문하고 업로드해야 한다. 나는 발행일은 기억하는데 그 앞의 마감을 자꾸 까먹었다. 그러니 발행일 하나만 입력하면 나머지 일정을 알아서 계산해 캘린더에 넣고 알림까지 보내줬으면 했다. 시중 캘린더에 내가 일일이 넣으면 되는 일이다. 근데 그게 귀찮아서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a라는 일정을 구글 캘린더에 박으면, 알아서 관련 세부 일정이 역산해서 만들어진다. 사실, 몇 번 입력하면 끝날 일을 (클로드가) 며칠 동안 개발한 셈이다 (난이도보다는 토큰양 때문). 원래 사람이 그렇다.
텔레그램도 문제였다. 좋다는 채널을 하나씩 구독하다 보니 어느새 읽을 수 없는 양이 쌓였다. 안 보면 좋은 정보를 놓치는 것 같고, 다 보자니 하루 종일 남이 전달한 정보만 읽다 끝날 판이었다. 그래서 주요 채널을 주기적으로 요약하는 봇을 만들었다. 나중에는 디스코드에도 붙였다. 직접 찾아가지 않아도 필요한 정보가 알아서 내 앞으로 오게 만들고 싶었다. 알림이 너무 많아서 알림을 정리해주는 알림을 만든 것이다. 요약의 요약을 또 요약해버려!
이런 걸 하나씩 만들 때는 진짜 신난다. 어제까지 못 하던 일을 오늘 할 수 있다는 감각이 있다. 크몽 등에서 개발자에게 설명하고 견적을 받고 기다릴 필요도 없다. 모르는 말이 나오면 바로 물어보고, 화면이 이상하면 캡처해서 보여주면 된다. 막말로 ai가 만들고 나는 옆에서 정보를 셔틀하거나 야지만 놓으면 된다. 이것 좀 옮겨라, 저건 왜 안 되냐, 아까 되던 걸 왜 망가뜨렸냐. 그러다 보면 얼추 내가 원한 모양이 나온다.
문제는 만들 수 있다는 걸 알게 된 다음부터였다.
만들고 싶은 게 너무 많아졌다. 가계부를 만들다가 뉴스레터 일정이 생각나고, 뉴스레터 캘린더를 만들다가 텔레그램 봇이 생각났다. 이것도 자동화할 수 있겠는데? 저것도 굳이 내가 할 필요 없겠는데? 하루에도 몇 개씩 아이디어가 생겼다. 다 만들 수 있을 것 같으니 모두 만들어야 할 것 같은 이상한 부채감도 생겼다. 개발을 못 할 때는 개발 능력이 없어서 답답했는데, 이제는 선택지가 너무 많아서 답답하다.
더 황당한 건 그렇게 만든 걸 내가 안 쓴다는 점이다.
처음 며칠은 열심히 쓴다. 장난감 같은 거지. 내가 만든 것이 움직이는 게 신기하니까 괜히 한 번 더 켜본다. 기능도 붙이고 색도 바꾸고 오류도 고친다. 그런데 일주일쯤 지나면 손이 안 간다. 텔레그램 요약은 쌓여 있는데 읽지 않고, 캘린더 알림은 습관처럼 넘긴다. 가계부도 자동으로 기록은 되는데 내가 그 숫자를 보고 소비를 줄이는 것은 또 다른 문제다. 기능은 작동한다. 나는 작동하지 않는다.
그러면 좀 허무하다. 나는 정말 이게 필요해서 만든 걸까. 아니면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이 재밌어서 필요를 만들어낸 걸까. 아이디어가 있어서 만들었는데, 생각보다 내가 안 쓰는 아이디어랄까. 장난감과 피규어 같은 거지. 레고가 좋아서 샀는데, 막상 조립해보니 흥미가 떨어지는.
ai는 해결책을 만드는 비용을 엄청나게 낮췄다. 그런데 해결책이 싸졌다고 문제가 저절로 해결되는 건 아니었다. 오히려 예전에는 돈이 아까워서라도 이게 진짜 필요한지 먼저 생각했다. 지금은 일단 만들고 본다. 돈은 별로 안 들지만 시간은 든다. 관리할 것도 생긴다. 쓰지 않는 앱, 읽지 않는 요약, 무시하는 알림이 계속 늘어난다. 사실 내가 만든 놈들이 어떻게 돌아가고 뭐가 있는지 헷갈릴 듯하다.
그래서 요즘은 뭔가 만들고 싶어질 때 잠깐 멈추려고 한다. 이게 진짜 문제인가. 이걸 만들면 내가 자주 쓸까. 한두 번의 불편을 없애려고 계속 관리해야 하는 프로그램을 하나 더 만드는 것은 아닐까. 프로그램이 아니라 내 습관을 고쳐야 하는 문제는 아닐까. 아직 잘 안 된다. 만드는 게 재밌어서 일단 시작하고 보는 경우가 많다.
회사 일도 별반 다르지 않은 것 같다. 회사에서 하는 일은 결국 누군가의 문제를 회사가 가진 돈과 사람과 시간 안에서 푸는 일이다. 회사의 가용 자원 안에서 앞에 놓인 문제를 해결하는 일이 직원 업무의 태반이다. 이제 보고서를 만들고 데이터를 정리하고 간단한 도구를 만드는 비용은 더 내려갈 거다. 예전 같으면 일이 커서 못 했던 것도 금방 시도할 수 있다. 그러면 더 많이 만들고 더 많이 일할 수 있을까. 아마 그렇겠지. 아니려나? 자원은 한정적이니까. 뭐가 됐든 그게 더 좋은 일인지는 모르겠다.
일을 빨리 끝내는 능력은 여전히 중요하다. ai를 잘 다루는 능력도 당연히 중요하다. 하지만 다들 웬만큼 빨리 만들 수 있게 되면 결국 차이는 다른 데서 날 거다. 무엇을 만들지 정하는 일. 어떤 문제는 풀고 어떤 문제는 그냥 내버려둘지 정하는 일. 해결책을 추가할지 아니면 문제를 만드는 구조 자체를 없앨지 정하는 일. 이런 건 여전히 사람이 해야 한다.
개발은 쉬워졌다. 적어도 내가 뭔가 개발 비슷한 것을 해보는 일은 쉬워졌다. 그런데 내가 잘 개발하고 있는지는 모르겠다. 내가 필요한 것을 만드는지, 만들고 싶은 것을 필요하다고 우기는지도 헷갈린다. 그러니까 오히려 욕심이 생기면 안하려고 한다. 진짜 필요한가? 되묻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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