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수리 때문에 나왔다가
시간이 남아서 두물머리길을 걸었습니다.
두물머리 들어가는 입구 주차장에서
세미원 후문까지 이어지는 나룻길인데,
제가 참 좋아하는 산책로랍니다.
강아지를 데리고 종종 산책을 나왔던 곳인데,
이제는 혼자 걷고 있네요. 그래도 여전히 예쁜 길.
겨울이라도 볕이 좋아 그런지
나름의 정취가 있습니다.

풍경은 참 느긋하고 좋지요?
그런데 정작 제 마음은 그렇지가 않답니다.
사실은 불안하고 초조한 마음 때문에
걸으며 마음을 달래려던 건데,
안타깝게도 전혀 나아지지 않더라고요.
한참을 걷고 들어왔지만
여전히 마음은 불안합니다.
뭐 때문이냐고요? 사실 딱히 이유는 없습니다.
그냥 불안하고, 그냥 초조합니다.
이런 게 만성 우울증이랍니다.
뭐, 걱정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저혈압 환자가
가끔 어지러움을 겪는 것과 비슷하달까요.
이유가 아주 없지는 않습니다. 사실 저는
최근 몇 주 동안 꽤나 스트레스를 받았거든요.
개인적으로 문제가 좀 생겨서
이리저리 알아보느라 진땀을 좀 흘렸고,
어느 정도 해결돼서 조금 여유가 생긴 참입니다.
희한하게도 한참 바쁠 때는
스트레스고 뭐고 못 느끼다가,
어느 정도 정리가 돼서 여유가 생기면
피로감이 한 번에 몰려오더라고요.
강아지도 보고 싶고 막 그런 느낌.
AI에게 물어보니, 이러한 증상을
'감정숙취(Emotional Hangover)'라고 한다네요.
스트레스 상황에서는 코르티솔이나
아드레날린 같은 호르몬이 팍팍 나오면서
우리 몸이 각성상태를 유지하지만,
상황이 종료되어 호르몬 수치가 급격히 떨어지면
그동안 억눌렸던 피로감이 한꺼번에
몰려오는 증상이라고 합니다.
저 혼자만 겪는 것은 아닌 것 같아
조금 다행이라고 하면, 너무 못돼보이나요?
종종 제가 "멋지게 산다"는 말을 듣습니다.
운영하던 회사는 정리하고,
시골에 전원주택을 사서, 재택근무를 하면서
마당과 텃밭을 가꾸는 유유자적함이라니!
나도 그렇게 살고 싶다!
라면서 말이지요.
그런데 사실은 제 상황이 그렇게
유유자적하지는 않습니다.
남들 영끌해서 아파트 살 때
저는 영끌해서 시골집을 샀으니
대출이자 때문에 허덕이기는 마찬가지.
오히려 단독주택이라 대출금리가 높고,
대환대출도 어렵답니다.
게다가 단독주택은 연료비를 비롯해서
이것저것 고정비가 꽤 들어가는데,
수입은 더 적어지고 불규칙해졌으니
말해 뭐하겠어요.
그렇다고 "저 사실 이렇게 허덕이며 살아요"라고
광고하고 다니는 것도 우습지요.
그래서 많이들 오해를 하시나봅니다.
물 위에 우아하게 떠있는 백조의 기분이랄까요.
알고 보면 물 밑에서는 가라앉지 않으려고
요란하게 발을 젓고 있습니다.
아마 당신도 그렇지 않을까요.
남들 보기엔 멀쩡해 보여도,
속은 썩어들어가고 있을지 모릅니다.
남들 보기엔 명랑하고 밝아보여도,
속으로는 울고 있을지 모릅니다.
그러면서 생각하겠지요.
"남들은 다 괜찮아 보이는데 나만 왜 이래?"
그렇지만 위로 아닌 위로를 드리자면,
아니에요. 남들도 다 안 괜찮아요.
못난 걸 들키지 않으려 꾹 참고 있을 뿐
당신만 특별히 못난 게 아니랍니다.
사실은 모두가 다 못나고 부족한 존재지요.
냉정하게 말해서 남에게 징징댄다고
특별히 나아지는 것은 없습니다.
오히려 바보 취급만 당하기 쉽고요.
힘든 상황을 이겨낼 수 있는 건 어차피 당신뿐.
주변에서 응원해주면 약간 도움은 되겠지만,
그게 해결책은 아닙니다.
저 역시 그렇습니다.
그래서 이 글을 쓰고 있답니다.
"힘드니까 위로해주세요 징징징" 을
시전하려는 게 아니고,
이렇게 글을 한 편 쓰고 나면
기분이 한결 나아지거든요.
그게 글쓰는 사람의 가장 큰 무기라고 생각합니다.
마음 속 찌질함을 솔직하게 인정하고 나면
마음이 한결 편하답니다.
이렇게 말해도, 여전히 제가
쿨하고 유유자적해 보이시나요?
아니면 짠하고 못나보이시나요?
뭐, 어느 쪽이든 괜찮습니다.
쿨해 보이면 그렇게 여겨주시고,
짠해 보이면 그렇게 여겨주세요.
어쨌든 저는 당신이 이 글을
읽어주신 덕분에 마음이 한결 편해졌으니까,
그걸로 충분합니다.
...
쿨내와 짠내를 동시에
풍기는 것도 능력이라 믿는
임효진 드림.
의견을 남겨주세요
커피와케이크
쿨내와 짠내를 동시에 풍기는 것이 바로 인간미 아닌가요? 글을 쓰는 것으로 마음이 한결 편해지셨다니 다행이고, 또한 저도 글을 다 읽고 마음이 한결 편해져서 다행입니다. ^^
한쪽편지
공감해주시니까 너무 좋은데요? 늘 감사합니다 ^^
의견을 남겨주세요
땅꼬
록산님, 멀리서지만 마음으로 꼬옥 안아드려요. 글을 씀으로써 마음이 좀 나아지셨다니 다행이에요. 글을 쓸 수 있어, 읽을 수 있어 참 감사한 순간입니다.
한쪽편지
그러게나 말입니다. 글을 쓰는 것도 , 읽는 것도 참 좋은 일이에요. 늘 응원해주셔서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
의견을 남겨주세요
욕망도서관장
록산님 마음 내 마음~ 너무 공감됩니당~토닥토닥~ 혼자가 아니라고 말씀해주셔서 위로가 됩니다~ 감사합니다~^^
한쪽편지
다들 비슷하셨나봐요. 토닥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따뜻한 분이세요~
의견을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