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월 두 번째ㅣ자기만의 방과 타인의 삶 ③ #이호

🌵 필로덴드론 구티페룸

구독자님과 함께 살고 있는 식물이 있나요?

처음 제 공간에 들어왔던 식물은 누군가가 선물한 아주 작은 화분에 담긴 녀석이었습니다. 실은 그 이름도 모습도 기억이 나지 않을만큼 제겐 인상깊지 않은 사건이었어요. 하지만 4년 전에 제가 직접 선택하고 결정해서 집으로 데려왔던 식물에 대해서는 기억하고 있어요.

'필로덴드론 구티페룸 Philodendron Guttiferum'

마치 마법 주문같은 이름이죠? 🧙‍♀️🧹 어쩌면 마법처럼 자라나주길 기대했을지도 모르겠어요. 하지만 화분에 갇혀 있는 식물에게 적절한 온도와 습도, 햇빛을 제공하고 변치않는 애정을 유지하며 함께 산다는 건 생각보다 쉽지 않았습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혜로(라고 불렀어요)’는 지금 제 곁에 없습니다. 비슷한 시기, 동거인의 친구가 분양해 준 알로카시아도 저에게 왔다가 무름병으로 유명을 달리했고요. 😢 

그럼에도 불구하고 2019년 봄, 새로운 집으로 이사한지 얼마 안되어 저는 다시 용기를 냈습니다. (봄이니까요!🌸) 마오리 소포라, 애플민트, 남천, 유칼립투스, 홍콩야자, 트리안, 호야, 디시디아, 밀리언하트, 아이비, 그리고 크리소카디움(친구가 선물해 줌)이 집에 왔어요. 열심히 분갈이도 했고 수경으로 키울 애들은 유리병에 넣어줬지요.

다시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 중에 지금까지 함께 살고 있는 애들은 홍콩야자, 트리안, 호야, 아이비. 거기에 새로 합류한 카랑코에(선물받음), 얼마 전 친구가 분양해 준 몬스테라입니다. 참, 그리고 4, 5월의 ‘찬찬한 사이’를 통해 야심차게 소개했던 [식알못의 씨앗부터 도전기]는 완벽하게 실패했습니다. 하하; 🥺

🌿 가드닝이란 뭘까

그렇게 몇 년에 걸쳐 실패를 거듭하며 아주 조금씩 알아가고 배워갑니다. 그런데 이상한 건 실패투성이면서도 포기할 수 없다는 점입니다. 계속 함께 살아가고 싶은 마음이 커져서 심지어 작은 땅을 직접 가꾸고 싶다는 생각을 합니다. (식알못이 꾸는 거대한 꿈이란) 물론 저를 거쳐간 식물들에게 미안한 마음을 품은 채로 말이죠. 🙏🌱

지난 5월 말에 다녀온 전시
piknic - 정원만들기 GARDENING
2021.4.24-10.24

꽃과 나무, 들풀과 채소, 선인장과 물풀과 곡식. 사람이 식물을 심고 가꾸는 모든 행위를 ‘가드닝’이라고 하더군요. 햇빛 잘드는 손바닥만한 집 하나 장만하기 어려운 서울하늘 아래의 현실 속에서는 인도어(Indoor) 가드닝이 대부분이겠지만 그 행위가 주는 기쁨은 생각보다 큽니다. 

결국 식물을 가꾼다는 건 결국 그 식물이 주변 환경에 적응해서 죽지 않고 건강한 상태를 유지하며 잘 살 수 있도록 돕는다는 것이고 식물과 함께 더불어 숨 쉬고 살아간다는 말이겠지요. 또한 우리의 삶 속에서 자연과 연결된 고리를 찾을 수 있는 길이기도 하고요. (집안에 있는 식물들에게 슬쩍 말을 걸다보면 미묘하게 그런 느낌을 감지할 수 있답니다) 저의 또 다른 가족 ‘오로🐈 (19살 암컷 고양이)’에게서 찾아지는 그것과도 비슷해요.

🔗 지속가능한 연결고리

그리고 자연스럽게, 조금씩 ‘비거니즘'과 ‘기후위기'를 생각합니다.
‘비거니즘’이란 음식 섭취 차원의 채식주의를 넘어서 생활 전반에 걸쳐 동물성 재료나 화학 물질의 사용을 피하려는 성향을 말한다고 해요.🍃

2017년, 봉준호 감독은 <옥자>라는 영화를 통해 대규모 공장식 축산업의 문제점을 꼬집었습니다. ‘우리는 과연 다른 종을 학대하고 끝없는 고통 속에 밀어넣으면서까지 음식을 얻어내야 하는가’라는 윤리적인 접근을 제외하고도 <옥자>에서 볼 수 있는 축산업 형식이 농경지와 식수를 줄어들게 하고 지구를 사막화한다는 환경적인 접근 역시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또 하나 떠오르는 단어는 ‘지속가능성'이에요. 건강, 환경보호, 윤리적 소비를 추구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어느 산업이나 친환경적인 흐름을 중요시한다는 뉴스를 자주 접하게 됩니다. 실제로 제 주변에도 일 주일에 하루는 채식하기를 실행에 옮기는 친구도 생겼고, 물건을 하나 살 때 이 원재료가 어디에서 왔는지 체크하는 친구도 생겼습니다. 저 역시 페스코와 플렉시테리언을 오가며 궁극적으로는 비건이 되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화장품이나 목욕용품도 동물실험을 하지 않는 제품을 쓰고 있고요. 그런 마음을 담아 2019년에는 ‘모두의 비건(Vegan for Anyone)’이라는 주제로 열렸던 제6회 비건페스티벌에서 공연을 하기도 했어요.

👉링크를 열면 공연하는 호와호의 모습을 보실 수 있어요.👈
모든 존재를 위한 모두의 축제, 제6회 비건페스티벌

채식에도 많은 단계가 있다고 해요.🍃

육식을 선호하는 사람에게 채식을 강요할 수도 없고 채식을 하는 사람에게 육식을 강권할 수도 없습니다. 다만, 우리들이 먹고 마시고 입고 사용하는 모든 것들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어떤 과정을 통해 우리에게 왔는지 한 번쯤 생각해보며 살아갔으면 좋겠어요.

🌐 섬을 잇는 우리 삶의 가드닝

저는 음악가이고 동시에 기획자이며 소소하게 디자인 업무를 보기도 합니다. 작년에 이어 올해에도 뮤지션유니온에서 운영위원으로 일하고 있어요. 지난 6,7년 동안은 세계적으로 왕성한 활동을 이어가고 계시는 현대미술가(완전 멋있는 언니)의 스튜디오에서 제작팀으로 일하기도 했습니다. 👀 지난달부터는 제가 애정하는 언니와 함께 azshop이라는 공간을 그려가기 시작했어요. (6월 6일에 마포구 합정동 무대륙 Fleamarket을 통해 선보임!) 그리고 정말 멋있는 또 다른 언니의 베이스 음반을 만들기 위해 7명의 친구들이 모여 머리를 맞대고 계획을 실행하고 있습니다. 다음 주에는 또 다른 친구의 새로운 싱글 뮤직비디오 촬영을 진행하기로 했고요.(콘티도 아직 미완성인데 어쩌지) 

동시다발적인 일,일,일의 연속입니다. 후훗 😇 사실 제 삶은 언제나 순간의 선택을 바탕으로 닥치는대로 일하면서 이어져왔고(감만 믿고 달리는 편) 그 선택에는 지금도 후회가 없습니다.

그리고 저는 보통 일을 하면서 그런 생각을 합니다. 

‘이 일이 좋은 씨앗이 되어서 나와 내 친구들을 먹여살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기적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저는 저와 제 친구들을 보호하고 더 튼튼하게 가꾸고 싶어요. 

우리들 각자는 섬처럼 태어났고 다른 시간을 살아왔지만 촘촘하게 연결되어 있거든요. 그 연결망이 얽히고 설켜 지금까지 저를 살아내게 했거든요. 그리고 제 주변 친구들은 사회에서 말하는 ‘보편적인 가족형태'에서 좀 벗어난 다양한 구성으로 살아가고 있거든요.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라던가) 

그래서 적어도 대한민국에서 12년 이상 이어진 주입식 교육에 의해 배워진 가치들 외에 우리가 스스로 깨닫게 되거나 먼저 깨달았던 사람들이 알려주는 또다른 가치들을 포용하는 삶의 정원을 가드닝하고 싶어요. 그리하여 우리들의 생이 마감되더라도 그 정원은 살아남아 다음 사람들의 손으로 이어지기를 고대합니다.
저는 오늘도 ‘일’을 부여잡고 정원을 가꿉니다. 살아갑니다. 🤗

I walk in this garden
Holding the hands of dead friends
Old age came quickly for my frosted generation
Cold, cold, cold they died so silently

Did the forgotten generations scream?
Or go full of resignation
Quietly protesting innocence
Cold, cold, cold they died so silently

⋯

My gilly flowers, roses, violets blue
Sweet garden of vanished pleasures
Please come back next year
Cold, cold, cold I die so silently
Goodnight boys,
Goodnight Johnny,
Goodnight,
Goodnight.

나는 이 정원을 거닌다.
죽은 친구들의 손을 잡고
서리 내린 나의 시대에 노년이 빨리도 찾아왔구나
춥고, 춥고, 춥다, 그들은 아주 고요히 죽었구나

잊혀진 세대들은 비명을 질렀을까?
아니면 체념에 가득찬 채
조용히 결백을 외쳤을까?
춥고, 춥고, 춥다, 그들은 아주 고요히 죽었구나

⋯

내 비단향꽃무, 장미, 제비꽃,
사라져버린 즐거움의 달콤한 정원
내년에 다시 와 주길
춥고, 춥고, 춥다, 나는 아주 고요히 죽었구나
잘 자 소년들아,
잘 자 조니,
잘 자,
잘 자.

Derek Jarman 데릭 저먼

섬처럼 떨어져있지만 어디선가 저와 연결되어 이 글을 읽고 계시는 구독자님은 어떤 가드닝을 하며 살아가시나요. 

6월은 <찬찬한 사↔이> 시즌1이 마무리되는 달입니다. 저는 세 번의 편지를 보냈고 이제 이 레터를 보내는 구성원들과 함께 다음을 어떻게 이어갈지 고민해보려고 해요.

그 고민의 방향을 의논하고자 레터를 구독하고 계시는 분들에게 질문을 드립니다.

세 가지의 짧은 질문이니 부디 답변해주시길. 🙏

👉<찬찬한 사↔이> 구독자 설문👈

📢 레터니까 대놓고 홍보체

돌아오는 6월 25일 금요일 밤 12시에 클럽하우스에서 진행될 [유희왕의 스케치북]에 호와호가 초대되었어요. 곧 발매될 싱글 얘기(파란만장, 우여곡절이 함께 했던)와 함께 나즈막한 목소리로 고막을 즐겁게 할 오밤중 라이브🎙가 이어집니다. 잊지 마시고 캘린더에 저장해 주시길. 금요일에서 토요일로 넘어가는 밤입니다. 😉

호와호 관련 링크모음

📮 편지를 보내는 사람들

모호 mohho
기타치고 노래하는 사람. 솔로프로젝트인 ‘모호프로젝트(Mohho Project)’와 일렉트로닉 포크 밴드 ‘호와호(howaho)’로 활동 중이다.

이호 eeeho
인문학을 사랑하는 이과 출신 음악가. 싱어송라이터 ‘이호(eeeho)’, 일렉트로닉 포크 밴드 ‘호와호(howaho)’로 활동 중. 항상 인생의 갈림길에서 그 때의 마음을 좇다보니 현재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삶을 살고 있다.

트리키네코 trickyneko
싱어 송라이터. 인간 내면의 가장 깊은 곳에서 끌어올리는 듯한 감정의 세계를 소리로 맞바꾼다. 2011년 EP ‘꿈의 통로’, 2015년 1집 ‘모든 계절의 밤’, 2019년 2집 ‘수면 아래’. 마포FM 게릴라디오 DJ로도 활동했다.

홍한나 annaHong
시각예술분야 종사자. 비 가시적인것과 가시적인것 사이에서 고민하며 작업과 생활을 병행한다. 아트랩반 개인전 Circuit Mode(2018), REC Mode(2018), 별관 개인전 General Error(2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