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월 두 번째ㅣ자기만의 방과 타인의 삶 ② #이호

📻 이호의 첫 EP

저는 2009년 겨울에 제가 만든 음악으로 첫 무대🎙에 섰습니다. 참 많은 직업들을 전전하다가 결국 마음 속 깊이 묻혀있던 꿈을 꺼내들게 되었고 지금 이 순간에도 그렇게 결정하길 잘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2012년 11월, 첫번째 EP 제작을 위한 크라우드 펀딩을 열었습니다. 지인들이 마음을 보내 준 것도 무척 고마웠는데 일면식 없는 타인들의 후원이란 정말 감동적이었습니다. 그리하여 제겐 그 과정을 통해 받았던 밝고 따뜻한 에너지에 대한 기억이 있어요. 펀딩은 성공적으로 끝났고 여러가지 단계를 거쳐 이호의 첫 EP가 세상에 나올 수 있었습니다! 💿

앨범 발매 이후, 차곡차곡 쌓였던 좋은 에너지를 생각하며 문득 이런 물음표가 생겼어요. “해당 후원자들에게 보답하는 것 말고 또 다른 사람들에게 나눠주면 어떨까?” 제가 받은 마음들을 좀 더 많은 사람들에게 전달하고 싶었달까요. 어쩌면 그렇게 사람을 관통해서 흘러가는 사랑 💟이 세상을 구원할지도 모르니까요. 후후후. 

하지만 마음만큼 실천하기는 어려웠어요. 심정적으로나 금전적으로나. 그래서 열심히 찾아보기 보다는 우연히 눈에 띄는 프로젝트를 후원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몇 년이 흘러갑니다. 🗓그리고 그 사이 저는 좀 더 안정적인 수입원이 생기는 일을 시작했어요. 그 때부터는 좀 더 ‘후원하고 싶다'는 마음을 먹게 되었죠. 저를 후원해 준 타인들에 대한 고마움은 타인들의 작업이 지속 가능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바뀌어 갔습니다. (‘오! 재밌겠다'는 마음도 한 스푼🥣 첨가) 그리고 작년 어느 날 밤, 인터뷰를 준비하다가 생각 난 김에 제가 참여했던 펀딩들을 찬찬히 살펴봤습니다. 그 때 그 때 결정했던 프로젝트들이지만 한데 모아 보니 어떤 키워드들이 떠올랐어요! 

💡여성 / 여성 음악가의 음악 / 퀴어 / 소수 / 차별 / 환경 

이 단어들이 떠오르고 비로소 제 마음을 깨달았지요. 지금까지의 후원은 의도적인 것이 아니었지만 이제부터라도 의도를 갖고 싶어졌습니다. 어쩌면 언제부터인지 모르게 제가 늘 갖고 사는 일종의 ‘부채감'들을 조금이나마 덜어내고 싶은 욕망일지도 몰라요.

✨특히

올해가 되면서 음악가로 살아온 시간이 12년째에 접어듭니다. 왕성한 활동을 하거나 많은 곡을 선보이지 못했지만, 겸업으로 인해 집중하지 못할 때도 많지만, 그래도 저의 직업적 정체성은 언제나 음악가였어요. 그 짧지 않은 시간 동안 직⋅간접적으로 만나게 된 여성 음악가들의 작업과 공연은 힘이 되기도 하고 즐거움이 되기도 하고 감동이 되기도 하고 자극이 되기도 했습니다. 무엇보다 정말 다채로웠어요. 그러고보니 제가 음악을 시작하겠다고 결심하게 된 계기도 한 여성 음악가의 앨범이었네요.

🔍 그런데 말입니다. 

사회 어느 분야에서나 마찬가지긴 하지만 예술, 음악, 게다가 대안적인 저항정신을 가지고 씬을 형성해 오던 인디음악 안에서조차 여성은 ‘성녀'🧝‍♀ 아니면 ‘마녀'🧙‍♀로 취급되고 있었습니다. 잊을 만하면 다시 등장하던 ‘홍대 여신'이라는 단어는 여성 혐오의 다른 얼굴이었죠. 

장르와 악기 편성, 밴드와 솔로, 연주자와 싱어송라이터 등 모든 구분과 경계를 넘어 여성들이 악기를 연주하면 🎸 ‘여자치고 잘 하는' 음악가가 되었고, 여성들이 서정적인 사랑노래를 부르면 ‘여자라서 저런 음악을 하는' 음악가가 되었으며, 여성들이 록음악🤘을 하면 ‘여성스럽지 않고 중성적이어서 매력있는’ 음악가가 되었습니다. 게다가 같은 씬에서 활동하는 남성 음악가로부터 ‘음악에서 자궁 냄새가 난다'는 말을 듣기도 하고 ‘음악하는 여자는 징그러’라는 노랫말을 듣기도 했죠. 자신의 음악으로 여성혐오 논란이 일자 ‘피해의식이 있는 여자들이겠거니'라고 생각했다던 남성 음악가도 있었습니다. 

그렇게 벽을 만들고 유리 천장을 만들어 여성의 음악을 폄훼하고 그 활동을 배제하는 남성들은 서로를 끌어주며 20~30년이 넘도록 음악활동을 이어가고 이내 음악계의 중진이 됩니다. 그 중진들의 선택과 집중은 남성 음악가와 여성 음악가 중 어디를 향하게 될까요? 👀

저는 점점 불편해지기 시작했습니다. 

과연 이 모든 상황이 차별과 억압이 아니라 그저 표현의 자유, 혹은 음악적 상상력일까요?

과연 이 모든 상황이 가만히 있다보면 저절로 좋아질까요?

제가 할 수 있는 일 중에 현실적으로 실천이 가능한 일을 생각해 봤습니다.
하나는 위에서 언급했던 키워드 중 ‘특히’ 여성 음악가의 작업과 활동을 중심으로 후원하는 일입니다. 그리고 또 다른 하나는 제 스스로가 오랜 기간에 걸쳐 음악가로서의 정체성을 유지하고 활동해내는 일이에요. 두 가지 다 쉽지 않은 일이겠죠. 마지막으로 제 주변 동료 여성 음악가들의 뒷배가 되는 일입니다. 물리적으로, 심정적으로, 혹은 금전적💰으로. 항상 제 코가 석자이다보니 이 일이야말로 실천하기 위한 부단한 노력이 필요할 것 같아요. (역시 정기적으로 로또를 사야 할까요..😑)

저는 예전에 비해 많이 변했습니다. 자꾸만 눈에 띄는 무언가가 생기고 질문도 생깁니다.

의문이 많아진다는 건 좋은 일이라 생각해요. 무엇인가 불평등해 보이고 불공평하거나 불합리해 보일 때, 그래서 결국 나의 마음이 불편해질 때 옆에 있는 친구들과 의견을 나누고 함께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보는 건 어떨까요. 나비효과처럼 어느 날 세상은 조금 바뀌어 있을지도 모릅니다.

🙌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한 만인선언 ‘평등하다’ : 참여방법 안내 (국문/영문/수어)

🌈 무지개도 일곱가지 색깔이 있다

지난 4월 말, 윤여정 배우는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한국 배우 최초의 배우상 ‘여우조연상'을 수상했습니다. 수상 전후로 진행했던 많은 인터뷰들이 전 세계에서 화제가 되기도 했죠. 저도 수상소감과 인터뷰들을 찾아보며 속이 시원하기도 했고 가슴 벅찬 감동을 느끼기도 했습니다.

정말 멋있는 이 ‘여'배우가 시상식이 끝난 후 미국영화예술과학아카데미가 마련한 온라인 기자간담회에서 했던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마지막으로 저의 첫 정규앨범 타이틀곡 'colour'라는 곡의 코러스로 기꺼이 참여해 주었던 엄청난 공력의 뮤지션들 음악으로 플레이리스트를 만들었습니다. 제가 정말 애정하는 분들이에요. 우리는 이 어벤저스 코러스 집단을 '무지개합창단'이라고 불렀지요. 🐤🐦🐧
소중한 음악들, 구독자님과 함께 듣고 싶습니다.

기록이 남아있는 크라우드 펀딩 내역

[식알못의 씨앗부터 도전기 ②]

지난 4월 13일, 씨앗을 심고 나서 구독자님에게 레터를 보냈죠. 그리고 따뜻해야 한다고 해서 전기밥솥 옆에 두었습니다. 3일이 지나서 귀여운 싹이 올라왔어요! 🌱 그리고 그 다음 날엔 키가 훌쩍 자라기 시작했습니다. (이 때까지만 해도 저는 희망에 차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떡잎을 헤치고 본잎이 나와줘야 하는데 무럭무럭 키만 크더군요. 저는 이 씨드키트를 판매했던 분들에게 도움을 요청했어요. 햇볕을 충분히 쬐지 못해서 웃자란 것 같다는 답변이 왔습니다. 그러면서 자라난 새싹들을 뽑고 다시 씨앗을 심어보라는 조언을 해 주셨습니다. 눈물을 머금고 새싹들을 냠냠(?!!) 먹었어요. 🌱🌱🌱🌱🌱

저는 다시 씨앗을 심었고 이번에는 큰 창문(볕이 제일 잘 드는 곳이에요) 앞에 두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일 주일 정도 지났습니다.

여전히 제가 키우는 새싹은 본잎을 틔우지 못하고 웃자라기만 하고 있습니다. 이유를 모르겠어요. 햇볕도 잘 드는 곳이었는데. 역시 저는 식알못이고 똥손인가봐요. 어쩌면 다음 편지에는 이 코너가 폐지될지도 모릅니다. 😿

결정의 순간이 오고 있어요. 다른 방식으로 또 싹을 틔워보거나 혹은 포기하거나. ㄷㄷㄷ
구독자님, 저를 응원해 주시렵니까? 

📮 편지를 보내는 사람들

모호 mohho
기타치고 노래하는 사람. 솔로프로젝트인 ‘모호프로젝트(Mohho Project)’와 일렉트로닉 포크 밴드 ‘호와호(howaho)’로 활동 중이다.

이호 eeeho
인문학을 사랑하는 이과 출신 음악가. 싱어송라이터 ‘이호(eeeho)’, 일렉트로닉 포크 밴드 ‘호와호(howaho)’로 활동 중. 항상 인생의 갈림길에서 그 때의 마음을 좇다보니 현재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삶을 살고 있다.

트리키네코 trickyneko
싱어 송라이터. 인간 내면의 가장 깊은 곳에서 끌어올리는 듯한 감정의 세계를 소리로 맞바꾼다. 2011년 EP ‘꿈의 통로’, 2015년 1집 ‘모든 계절의 밤’, 2019년 2집 ‘수면 아래’. 마포FM 게릴라디오 DJ로도 활동했다.

홍한나 annaHong
시각예술분야 종사자. 비 가시적인것과 가시적인것 사이에서 고민하며 작업과 생활을 병행한다. 아트랩반 개인전 Circuit Mode(2018), REC Mode(2018), 별관 개인전 General Error(2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