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살의 표정, 밤의 기억

#10 달아나는 태양을 쫓아 긴 밤을 건너

여행의 시작, 비행의 의미

2022.10.20 | 조회 40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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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ghtfull letter

세상 어딘가에 있을 당신에게, 빛나는 기억을 그림과 글에 담아 전합니다.

안녕하세요, 가울입니다.

열 번째 레터, 야간비행의 기억을 보내드려요.
레터를 읽는 동안 구독자님과 함께 밤하늘의 벨벳같은 구름 위에 닿을 수 있길 바랍니다.

구독자님은 가장 기억에 남는 비행은 언제인가요? 처음으로 비행기에 올라 하늘 위의 풍경을 바라보고, 새로운 곳에 도착했을 때를 기억하시나요? 

저는 동쪽에서 서쪽으로 향하던 비행에서 손목시계의 분침을 돌려 시간의 간격을 좁히던 순간이 기억납니다. 작은 분침을 한 바퀴, 두 바퀴 연거푸 돌리며 시간을 맞추던 행동이 스스로에게 마법을 거는 듯 강렬하게 느껴지던 순간이었어요. 분명 하루가 진작에 흘러 지나가야 했을 텐데, 여전히 남아있는 하루의 자락에 밤의 길이를 죽죽 늘려 달아난 태양을 쫓아온 모험가가 된 듯 했습니다.  

오늘 보내드리는 편지는 다른 어떤 곳의 이야기도 아닌, 오로지 비행에 대한 개인적인 이야기를 담아 보내드리려 합니다. 

인천공항의 밤 (종이에 수채, 2018)
인천공항의 밤 (종이에 수채, 2018)

 

처음으로 공항의 문을 넘어 창 너머의 비행기를 마주한 순간을 기억합니다. 캄캄한 비행장 위에 서있는 비행기들은 마치 깊은 바다에서 잠을 자는 고래 무리같았어요. 커다란 기계들도 비행기 주변에선 장난감처럼 작아보였어요. 저 하늘을 날 수 있다는 게 새삼 믿어지지 않을만큼 비행기는 거대했습니다. 

터미널과 비행기를 잇는 둥근 통로를 걸으니 마치 다른 세계로 향한 문을 지나는 듯 했습니다. 그리고 승무원들의 환영인사와 좁은 통로 틈으로 제 자리를 찾기위한 승객들의 분주한 눈동자, 무거운 짐을 들어올리려 낑낑대는 소리, 긴 비행을 위해 담요와 안대, 목베개를 꺼내드는 알뜰한 움직임들, 철컥대는 안전벨트 소리를 끝으로 분주하던 순간이 지나자 비행기를 띄우기 위한 과정이 시작됩니다. 헤아리기 어려울만큼 반복했을 승무원들의 움직임은 마치 예식을 치르는 듯 했어요. 제 시간에 맞춰 벨트 사인에 불이 들어오고, 비행기를 인도하던 공항 요원들이 창 밖 먼 곳에 나란히 서서 인사를 합니다. 레고같이 작아진 사람들의 앙증맞은 손인사에 마주 손을 흔드는 찰나, 비행기가 굉음을 내며 엔진을 달구고, 이윽고 활주로를 달리기 시작합니다. 무엇 하나 틀려선 안되는, 아주 신중한 이륙의 순간입니다.

누군가는 이륙 전부터 안대를 끼고 잠에 빠져든다고도 하지만, 그 모든 과정에 익숙해질만큼 비행을 경험한 후에도 이륙의 순간엔 늘 바짝 긴장하게 됩니다. 첫 비행 때엔 더욱 그랬어요. 심장 박동이 거세지고, 식은땀이 배인 손은 저절로 움츠러들었어요. 궤도에 오르기위해 엔진이 만들어내는 진동과 소음, 그리고 중력에 의한 압박감 때문인지도 몰라요. 그러나 그 두려움에 끝내 익숙해지지 못한 것처럼, 구름의 장막 위로 떠오르는 순간의 감동 역시 영영 익숙해지지 못할 거예요. 뒷덜미를 잡아채는 중력의 손아귀를 벗어나 숨과 귀를 먹먹하게 하는 묵직한 압력을 떨쳐낸 뒤, 처음으로 고요한 구름의 평원을 발견하는 순간의 감각은 환희에 가까웠습니다. 

 

구름 위의 풍경은 종종 현실 감각을 잊게한다.
구름 위의 풍경은 종종 현실 감각을 잊게한다.
카트만두에서 방콕으로 향하던 비행, 창문에서 보이던 히말라야의 모습
카트만두에서 방콕으로 향하던 비행, 창문에서 보이던 히말라야의 모습


그 고요한 구름의 풍경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하루를 가득 채우던 복잡한 생각들 역시 도시의 풍경과 함께 저 멀리 자그마한 먼지가 되어 비행기의 날개 뒤로 훌훌 날아가버린 듯 잊혀집니다. 그렇게 마음에 여백이 생겨나고, 일상에서 미뤄왔던 작은 설렘들과 기대들이 하나 둘 씩 비워진 마음의 공간을 채웁니다. 그렇게 비행은 단순히 이 곳에서 그 곳으로 이동하는 움직임 이상의 의미를 띄게 됩니다.
 

새벽, 아침, 낮, 저녁, 그리고 야간비행 중, 저는 야간비행을 가장 좋아합니다. 물론 태양이 머물고 있는 때 빛과 구름이 만들어내는 풍경 역시 정말 아름답지만 야간비행을 좋아하는 마음의 크기를 이길 수는 없었습니다. 가장 강렬했던 경험이 야간비행이었기 때문일까요? '비행'이란 단어를 떠올리면 언젠가부터 까만 밤의 풍경이 생각납니다. 

모두가 잠들어 잠잠해진 기내에서 둥근 창문 바깥을 바라보면 까만 구름과 더 까만 어둠이 보입니다. 그 까만 어둠 속에서 하늘과 바다의 경계는 잘 눈에 띄지 않습니다. 손을 모아 기내의 빛을 막고 창 밖을 깊이 들여다보면 우주의 별과 땅 위의 도시의 빛이 만들어낸 빛의 그늘, 그리고 바다 위의 나그네와 같은 배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 풍경에 빠져들어 어둡게 반짝이는 벨벳같은 밤의 풍경을 바라보면 어둠에 물든 부드러운 구름이 이불같이 풍경을 토닥입니다. 그렇게 엔진의 진동을 자장가 삼아 잠에 들고 깨기를 반복하다 보면 어느덧 비행이 마무리됩니다. 

 

Night flight (종이 위에 수채, 2017)
Night flight (종이 위에 수채, 2017)


어린 시절 운동장에 서서 넓은 하늘을 가로지르는 비행기를 보며 많은 상상을 하곤 했습니다. 저 비행기는 어디로 가는걸까? 누가 타고 있을까? 손톱보다 작아 보이는 저 비행기는 가까이에선 얼마나 커다랄까? 나도 언젠가 비행기에 올라 멀리멀리 떠날 수 있을까?
학교에서 집, 그리고 다시 집에서 학교로. 눈감고도 걸어갈 수 있는 익숙한 등교길만이 세상의 전부이던 그 때에 하늘 위를 나는 비행기는 배불뚝이 텔레비전 속에서 보았던 수많은 도시와 숲이 어딘가에 정말로 있다고 말해주는 한 줄기의 단서였습니다. 

언젠가 나도 저 비행기를 타고 저 먼 세상 어딘가로 향해 아름다운 풍경을 직접 보고싶다는 마음은 어른이 된 후 여행을 계속하게 만든 가장 큰 원동력이었습니다. 사춘기 시절 밤을 지새우며 고민하던 질문인 '이 세상에 태어난 이유'는 여전히 알 수 없어도, '이 세상을 살아가는 내 삶의 의미'는 스스로 쌓아갈 수 있지 않을까요? 세상의 아름다운 풍경을 경험하고, 그 아름다움을 나만의 방식으로 기록해 전하는 일을 한다면 나름의 가치를 이 세상에 새겨넣는 생이 될 수 있을 것 같았으니까요.

그러나 일상의 반복적인 리듬에 발맞추어 걷다보면, 어느덧 치열하게 고민해온 삶의 이유며 가치는 잊게되고, 새로운 도전과 변화는 멀어지게 됩니다. 모두가 해야한다고 말하는 것을 덩달아 하고, 뒤쳐질까 불안해하는동안 내 안의 미지를 잊고 내일의 당연함에 수긍하게 돼요. 그 익숙함은 편안하지만 괴롭습니다. 그렇게 모험을 잊은 여행자에게 비행의 기억은 다시 한 번 잃어버린 내일의 가능성을 되찾아줍니다. 지상을 박차고 하늘을 나는 비행기가 뿜어내는 에너지는 여행자의 마음 속에 파고들어 어디로든 갈 수 있고, 무엇이든 해낼 수 있다는 용기로 자리잡았고, 밤바다를 건너는 동안 다시 한 번 어린 시절의 꿈을 기억하라고 달래어주었습니다. 저 땅에서 비행기를 올려보는 어린 시절을 기억하라고, 그 소중한 꿈을 포기하지 말라고 속삭였습니다. 그렇게 오늘의 분주함 속에서도, 비행이 되찾아준 그 꿈을 잊지 않으려 노력합니다.  

오늘 편지에 보내드린 비행의 의미에 괴롭지 않으시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모두 무언가를 얻은 만큼 잃었고, 잃은 만큼 무언가를 얻었습니다. 어쩔  수 없이 타협해야 할 현실이 있었다면, 그 현실 속에서 찾아낸 새로운 가치가 있을거예요. 만약 그럼에도 일상의 분주함 속에서 미뤄둔 꿈이 있으시다면, 오늘 전해드린 비행의 의미가 도리어 위로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영영 잊지만 않는다면, 기억 속에 살아있는 꿈은 언젠가 분명 활주로를 박차고 날아오르는 비행기처럼 새로운 가능성을 향해 날아오를 거라고 믿습니다. 그리고 미지의 내일로 우리는 망설임없이 날아갈 거예요.

밤하늘의 위로를 담아, 

가울 드림

야간비행 영상작업
야간비행 영상작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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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내주신 마음 모두 소중히 간직하겠습니다. :)
보내주신 마음 모두 소중히 간직하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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