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살의 표정, 밤의 기억

#09 당신의 방문 아래 내려놓은 편지

서로의 가지를 뻗어 함께 숲을 이루는 사람들

2022.09.13 | 조회 51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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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ghtfull letter

세상 어딘가에 있을 당신에게, 빛나는 기억을 그림과 글에 담아 전합니다.

안녕하세요, 가울입니다.

아홉 번째 레터, 포카라의 기억을 보내드려요.
레터를 읽는 동안 구독자님과 함께 반짝이는 페와 호수의 물결이 흐르는 포카라에 닿을 수 있길 바랍니다.

※이번 레터엔 영화 'Into the wild'의 줄거리와 결말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Phewa Lake

포카라 스케치 - 아침의 페와 호수 (종이에 수채, 2019)
포카라 스케치 - 아침의 페와 호수 (종이에 수채, 2019)


알 수 없는 우연이 겹쳐, 오늘 곳에서 만난  우주가 서로의 삶을 이야기합니다. 함께 나눈 추억이 없더라도 평생을 알고지낸 사람처럼 친밀한 이야기를 나누고, 그 다음 날이면 약속된 서로의 길을 떠납니다. 어떤 인연은 뜻밖에도 길게 이어지기도 하고, 어떤 인연은 거짓말처럼 흩어져버립니다. 

낯선 인연이 홍수처럼 쏟아지는 긴 여행 속에서 네팔, 포카라는 사람을 대하는 자세와 인연의 의미를 새롭 도시로 기억됩니다. 외로운 나무처럼 살던 사람들이 모여 작은 숲을 이루는 . 설산의 자락 아래 만난 빛나는 눈동자의 사람들이 포카라에 있습니다. 

사람을 떠나, 저 깊은 고독 속으로

페와 호수 강변을 따라 북쪽으로 걸어가면 숲길 어귀에서 '무비가든(Movie garden)'의 팻말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오늘과 내일의 상영작이 분필로 적힌 팻말을 지나치면 돌로 만든 계단이 숲길 안쪽으로 이어져있어요. 가로등 하나 없는 어두운 숲길을 눈으로 더듬으며 한동안 걸어가면 숨겨진 야외극장의 입구가 나타납니다. 

①무비가든으로 향하는 길<br>②'Into the wild' 영화의 엔딩크레딧
①무비가든으로 향하는 길
②'Into the wild' 영화의 엔딩크레딧


포카라에 머무는 동안 길가에 있는 상영표를 보며 언젠가 마음에 드는 영화를 하는 날, 꼭가야겠다 다짐했습니다. 밤하늘 아래 숲 속에서 보는 영화라니, 어딘가 낭만적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러던 어느 날 상영 시간표에 '인투더 와일드(Into the wild)'라는 익숙하면서도 낯선 제목이 적혀있었어요. 한 번도 펼쳐보진 않았지만 포카라의 카페와 중고서점에서 종종 볼 수 있었던 책의 제목이었습니다. 책의 표지에 적혀있던 문장으로 같은 제목의 영화가 만들어졌다는 것을 이미 알고있었습니다. 반갑기도 했고, 마침 오스트레일리안 캠프로 떠나기 전 날 밤이기도 했어요. 산행을 하기 전 보기 딱 좋은 제목인 듯 했습니다. 그렇게 한 번도 넘은 적 없는 무비 가든의 팻말을 지나 극장으로 향했습니다.

혹여나 자리가 없을까 예정된 시간보다 조금 일찍 도착한 극장엔 다행히 아직 빈 자리가 더 많이 남아있었습니다. 숲 속의 극장은 폭이 긴 계단처럼 층층히 단을 이루고 있었고, 길게 놓인 좌식 방석과 다양한 모양의 의자가 곳곳에 놓여있었어요. 정면엔 커다란 바나나 나무 두 그루 사이에 적당한 크기의 스크린이 걸려있었습니다. 모든 조명은 나직했고, 자리마다 촛불이 안내등처럼 타오르고 있었어요. 극장의 모습을 보니 벌써부터 기대가 되기 시작했습니다. 직원에게 영화값을 치르고 팝콘과 맥주를 구입해 자리를 잡았어요. 곧 극장은 사람으로 가득 찼고, 이내 영화가 시작되었습니다. 

영화는 '크리스 맥캔들리스'라는 실존인물의 일대기를 담고 있었습니다. 가족 관계와 도시의 환경, 복잡한 사회 속에서의 삶에 염증을 느껴 가진 모든 것을 뒤로 하고 알래스카의 대자연 속으로 떠난 한 청년의 이야기였어요. 거대한 자연을 품은 히말라야 산자락에서 영화를 보아서일까요? 영화를 보는 내내 그의 삶에 몰입할 수 있었습니다.

영화의 마지막 부분에서 크리스는 'Happiness Only Real When Shared(행복은 나누는 순간 진정해진다)'라는 문장을 적어내립니다. 영화가 끝나니 어느 새 깊은 밤이 되었어요. 숙소로 돌아가 내일을 준비하며 침대에 누우니 영화의 여운에 많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억지로 눈을 붙여보아도 크리스가 남긴 글귀가 자꾸만 떠올랐습니다. 

③칸데마을로 향하는 버스에서 보이던 히말라야 산맥
③칸데마을로 향하는 버스에서 보이던 히말라야 산맥


날은 여지없이 밝았고, 아침을 든든히 먹은 뒤 서둘러 길을 나섰습니다. 포카라에서 가이드없이 오스트레일리안 캠프를 가려면 세 개의 버스를 갈아타는 조금 복잡한 길을 가야했습니다. 포카라 레이크사이드 중앙에 있는 버스 정류장에서 한란촉을 향하는 버스를 타고, 다시 한란촉에서 버스를 갈아타고 제로촉으로 간 뒤 바글루 버스파크로 이동해 칸데(까레)마을을 가는 버스를 타야해요. 칸데 마을에서 오스트레일리안 캠프까지는 걸어서 갈 수 있습니다. 다만 난감한 건 버스에 번호가 적혀있지않아 묻지않고서는 버스의 행선지를 알 수 없다는 점이었습니다.

길을 잃지않기 위해 버스를 탈 때마다 행선지를 연거푸 확인했지만 결국 한란촉에서 잘못된 방향의 버스를 타게 되었어요. 어쩐지 가야 할 방향에서 점점 멀어지는 것 같아 제로촉으로 향하는 버스가 맞느냐고 승무원에게 묻자 갑자기 자신은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듯 웃으며 고개를 흔들 뿐이었습니다. 분명 버스에 오를 땐 제로촉을 간다고 했었는데, 어째서 갑자기 아니라고 하는 걸까? 이해하기 어렵고 당황스러운 상황에 서로 같은 말만 반복하던 사이, 같은 버스를 탄 승객이 도움을 주었습니다. 자신을 따라오면 된다는 몸짓을 하는 그를 쫓아 버스에서 내렸고, 그는 저를 이끌고 바글루 버스파크를 갈 수 있는 버스를 찾아 주었어요. 덕분에 바글루 버스파크에 도착할 수 있었고, 무사히 칸데 마을을 향하는 버스에 오를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포카라에서 점점 멀어지고 칸데 마을에 도착했을 땐 벌써 오후 세시였어요. 이미 계획보다 많이 지체되었습니다. 해가 지기 전 산을 올라 오스트레일리안 캠프에 도착해야 했습니다.

④칸데 마을에 있는 이정표  ⑤칸데마을에서 오스트레일리안 캠프로
④칸데 마을에 있는 이정표  ⑤칸데마을에서 오스트레일리안 캠프로


마을에서 시작된 오솔길은 산으로 이어졌습니다. 구글 맵도 작동하지 않는 산길에서 몇 개의 팻말과 드물게 오가는 사람들에게 물으며 길을 찾았어요. 오르막길을 오를 수록 마을은 점점 멀어지고 숲은 울창해졌습니다. 깊은 숲으로 향할 수록 잔잔한 숲의 소리와 산을 오르느라 거칠어진 숨소리만 들렸어요. 인적이 드문 숲 속에서 목적지로 향하는 동안 염소와 소, 뜬금없이 산 중턱에 지어진 집들을 볼 수 있었어요. 깊은 숲 속에서 사는 사람들과 동물들의 모습을 보며 전날 본 영화의 크리스의 모습과 함께 포카라에 머무르던 짧은 시간들이 떠올랐습니다. 

 


포카라에 도착한 때는 새해 무렵으로, 여행을 시작한지 100일이 조금 지날 즈음이었습니다. 문득 새해엔 히말라야 산봉우리를 보고싶어 티켓을 끊어 카트만두로 향한 뒤 새벽 버스를 타고 12월 31일에 맞춰 포카라에 도착했습니다. 고요히 홀로 맞이하는 새해를 상상했지만, 신년 축제가 한창이던 포카라는 사람이 만든 흥겨움으로 가득했어요. 새해를 맞은 포카라에서 예약없이 숙소를 구하기란 참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택시를 잡아타 기사의 도움을 얻어 어렵게 숙소를 얻을 수 있었어요. 

⑥포카라에서 가진 첫 창문 밖 풍경 
⑥포카라에서 가진 첫 창문 밖 풍경 


하루를 꼬박 이동하고 마침내 쉴 곳을 얻어 짐을 풀었습니다. 오랫동안 흙길을 달린 탓에 몸에선 모래냄새가 났어요. 침대에 앉아 멍하니 창 밖을 내다보니 하루 끝무렵의 따스한 색의 햇살이 낮은 각도로 풍경을 비추고 있습니다. 피곤함에 아득해진 귓가로 먼 거리의 웅성거림이 들려왔습니다. 가사를 알 수 없는 높은 음의 노랫소리와 와글와글한 웃음소리가 들렸어요. 배를 채울 겸 거리로 나가 소리를 따라가니 축제가 한창인 길 위에 가게마다 내걸은 새해 축하 현수막이 걸려있었고, 현수막 아래엔 축제를 즐기는 사람들로 가득했습니다.

계속해서 이어지는 노래를 따라 춤추는 사람들을 따라 정처없이 걸으며 거리를 구경했습니다. 카트만두보다 맑은 공기와 강이 있는 마을의 풍경에 새로움을 느끼며 즐겁다가도 상인과 여행자, 마을 사람 모두가 쏟아져나온 거리가 커다란 혼돈처럼 느껴졌어요. 분명 이색적인 풍경이었지만 이 모습을 보기 위해 카트만두를 거쳐 거친 산길을 달려온 것은 아니었습니다. 모두가 축제를 즐기고 있는데, 나홀로 동떨어진 감정을 느끼고 있었어요. 무엇도 잘못된 것은 없지만 무언가 잘 풀리지 않는 듯했습니다. 흥겨운 분위기에 즐거웠지만 어딘가 만족스럽지 않았어요. 단순히 긴 거리를 이동하느라 지쳐서인걸까? 문득 사람으로 가득한 거리 위에서 뿌리를 잃은 나무처럼 단절된 듯한 감각을 느꼈어요. 그 감각은 작지만 날카로운 가시처럼 마음 속에 콕 박혀들었습니다.

 

포카라 첫 날 밤의 풍경
포카라 첫 날 밤의 풍경

흥겨운 사람들 속에서 홀로 고독해지던 그 순간, 지난 며칠간 외로웠다는 것을 뒤늦게 깨닫게 되었습니다. 북적이는 사람들로부터 멀어지고 싶지만 반대로 마음을 나눌 수 있는 누군가의 곁에 있고 싶었어요. 그 마음과 함께 여러가지 상반된 마음이 제 안에 있다는 걸 알게되었어요.

어떤 굴레도 없이 자유롭게 세상을 탐구하고 싶지만, 익숙한 장소의 소중한 사람들을 그리워 하는 마음. 새로운 사람을 만나 친구가 되고싶지만, 상처받을까 두려워 쉬이 옆을 내어주지 않는 마음이 제 안에 있었습니다. 머무르고 싶은 마음과 도망치고 싶은 마음. 사람으로부터 멀어지고 싶지만 곁에 있고싶은 마음들이 자리를 다투고 있었어요. 

 

포카라 스케치 - 레이크사이드의 풍경(2019, 종이에 수채)
포카라 스케치 - 레이크사이드의 풍경(2019, 종이에 수채)


그 마음을 들여다보고 생각을 정리하고 싶었어요. 보이는 그대로의 풍경을 그림으로 남기는 것 만큼 고요하게 생각에 잠기기 좋은 방법이 있을까요? 붓질을 하는 동안 고요해지는 마음 속에서 엉켜있던 생각들은 자리를 찾습니다.

포카라의 풍경에 머무르는 동안 풍경을 화지에 담으며 나는 어떤 시선으로 나 이외의 사람을 바라보며, 또 어떻게 관계를 쌓아가길 원하는지 고민했습니다. 보다 분명한 태도를 가지고 싶었어요. 다행이 축제가 끝난 후 포카라는 고요한 모습을 되찾아 생각에 잠기기 좋았고, 온난한 기후는 답을 찾도록 격려해주는 듯 했습니다.

 

 

포카라와 담푸스에서 그린 여행 스케치들
포카라와 담푸스에서 그린 여행 스케치들

 

그렇게 그림을 그리며 스스로를 돌아보던 중, 우연히 같은 숙소에 묵게 된 두 명의 한국인을 만나게 되었어요. 막 트래킹을 마치고 돌아와 커다란 백팩에 흙이 잔뜩 묻은 신발을 신은  사람은 눈에 반사된 빛으로 그을린 볼과 둥그런 눈매가 인상적이었습니다. 늦은 밤 휴식을 위해 짧은 대화를 마무리하며 이렇게 같은 숙소에 머무는 것도 인연이니 언제고 함께 식사를 하자 약속했습니다

하지만 생각보다 함께 하기는 쉽지 않았어요. 같은 숙소에 머물러도 일정이 서로 다르니 다시 마주치기가 어려웠습니다. 몇 번의 아침이 지나는 동안 두 사람과 마주치지 못하는 날이면 평소처럼 레이크사이드를 걸으며 포카라의 풍경을 담았습니다. 그러는 동안에도 아쉬움이 조금씩 쌓여갔습니다. 사람의 이야기가 궁금했거든요. 어떤 사람들인지, 포카라엔 어떻게 오게 것인지 궁금했습니다. 그런 기분을 느끼며 정말이지 사람과의 대화가 그리웠었다는 걸 새삼 느낄 수 있었어요. 내내 사람에게 둘러싸여 성장한 터라, 생각보다 외로움을 타는 사람이라는 걸 이제서야 알게 된 거예요.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이 되었습니다. 만약 아무런 행동도 하지않는다면 그저 지나쳐버릴 인연일거예요. 어쩔 수 없는 일이라 생각하고 다시 평소처럼 생활할 수도 있었지만 어쩌면 지금 이 순간의 결정이 지난 며칠간의 고민에 답을 내릴 수 도 있을 것 같았어요. 용기를 내보기로 했습니다. 작은 종이에 메세지와 연락처를 적은 사람이 머무는 방문 으로 내려놓았습니다. 낯선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누고싶어 쪽지를 전하는 일은 난생 처음이었습니다. 작은 행동이었지만 저에겐 용기가 필요했어요. 매번 마주치는 인연의 대부분을 우연의 힘에 맡기던 부끄러운 습관에서 벗어나고 싶었어요. 처음 해보는 행동이 조금 어색하기도 했고, 이상한 사람으로 보이지는 않을까 걱정스럽기도 했지만 아무런 시도도 하지 않은  예전으로 돌아가거나 뒤늦게 후회하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쪽지를 내려놓고 돌아오니 후련한 기분이 들었어요. 그리고 이튿날 연락이 왔습니다그렇게 함께 식사를 하게 되었고  후에도 몇 번의 식사와 커피를 함께 하게 되었습니다. 첫 번째 숙소에서 두 번째 숙소로 옮길 때도 좋은 숙소를 알려주어 함께 이동하게 되었어요. 오스트레일리안 캠프로 향하는 길 역시, 이미 트래킹을 다녀온 두 사람이 알려준 길이었습니다.

오스트레일리안 캠프에서 그린 '사랑곳' 스케치 (종이에 수채, 2019)
오스트레일리안 캠프에서 그린 '사랑곳' 스케치 (종이에 수채, 2019)


마침내 오스트레일리안 캠프에 도착했을 때, 캠프에 있는 숙소 대부분은 산행을 하는 사람들로 방에 가득 차 있었습니다. 몇 없는 숙소 중에 남아있는 방을 물어 이인실 하나를 빌렸습니다. 짐을 풀고 식당에서 식사를 하고 캠프 끝자락에 앉아 그림 한 장을 그리고나니 어느새 밤이었습니다. 아직 잠들기엔 이르기도 하고, 빠르게 식은 공기에 방 안의 추위를 피해 식당의 난로로 향했습니다. 난롯가엔 여러 나라에서 찾아온 사람들이 둘러앉아있었어요. 짧은 언어를 굴려대며 대화를 하다 아침의 일출을 보기위해 모두 저마다의 방으로 돌아가 침대 위에 펼쳐놓은 침낭 속으로 들어갔어요. 침낭 위로 두터운 모포를 덮고 누워있으려니 마치 커다란 고치가 된 것 같았습니다. 침낭 안은 따스하고, 입가의 공기는 서늘했습니다. 주변은 고요했어요. 숲의 나무가 바람에 흔들리는 소리, 작은 벌레들의 소리, 옆 방의 사람들이 걷는 소리. 그러다 이내 적막한 밤이 찾아왔습니다. 

고치 안에 누워 알래스카의 크리스와 히말라야의 나의 닮은 점을 생각했어요. 그리고 그가 남긴 마지막 문장을 몇 번이고 곱씹었습니다.

오스트레일리안 베이스 캠프 (코끼리똥 종이에 펜, 2019)
오스트레일리안 베이스 캠프 (코끼리똥 종이에 펜, 2019)

나 역시 그처럼 익숙한 환경을 떠나 모종의 무언가를 얻기 위해 여행을 시작했습니다. 거친 세상에 던져져 강인해지길 꿈꾸었고, 홀로 긴 여행을 하면 이전보다 더욱 깊은 자아를 발견할 수 있을거라 기대했어요. 익숙한 관계, 사회적 의무와 압박이 없는 곳을 자유로히 여행하면 감춰져있던 자아가 펼쳐질 것 같았습니다. 그렇게 몇 개의 나라를 거치며 평소와는 다른 결정도 내어보고 충동에 따르기도 하며 여정지로 거쳐가리라곤 예상하지 못했던 이 곳 오스트레일리안 캠프까지 이르게 되었습니다.

물론 그 여정동안 내면을 바라보고 탐구하는 시간을 통해 무척 많은 것을 얻었지만, 아무리 새로운 곳을 가고 아무리 멋진 풍경을 보아도 끝없이 자신의 세계만 파고든다면 결국 나의 우주는 스스로 넓힐 수 있는 영역 이상으로 성장할 수 없다는 걸, 한 그루의 나무는 숲을 이룰 수 없다는 한계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 서로의 감정, 영감, 경험을 나누며 지나온 삶을 교류할 때, 서로 다른 우주가 만나는 그 순간에서야 비로소 홀로 뻗을 수 있는 가지의 한계를 벗어나 나와 인연을 맺은 사람들과 함께 아름답게 나이들어가는 깊은 숲을 이룰 수 있다는 것을 이 먼 곳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깊이 이해하게 되었어요.

 

담푸스 스케치 - 구름에 감싸인 마차푸차레 (종이에 수채, 2019)
담푸스 스케치 - 구름에 감싸인 마차푸차레 (종이에 수채, 2019)

 

어쩌면 영화의 마지막 문장, 'Happiness Only Real When Shared(행복은 나누는 순간 진정해진다)'가 그토록 가슴에 파고든 이유는 여행을 하는 동안 무의식 속에서 영글어가고 있던 생각들을 대신 문장으로 표현해주었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그렇게 다시 포카라에 돌아와 머무는 동안 많은 사람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습니다. 겉으로는 이전과 동일한 듯 했지만, 기꺼이 시간을 내어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들으려 노력했고,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사람에게 먼저 다가가 한 잔의 커피나, 식사를 권했습니다. 

포카라의 길에서 장신구를 팔던 티베트 아주머니의 곁에 앉아 함께 음식을 나누어먹으며 이야기를 나누었고, 인도에서 머무르다 네팔로 이동해온 배낭여행자들과 그림과 예술가의 삶에 대해 고민을 나누었습니다. 포카라에서 한인 식당을 운영하고 있는 '사랑'식당의 사장님들과 여러번의 저녁을 함께 하며 작은 전시도 열 수 있었어요.

포카라의 강변에서 많은 그림을 그리는 동안 다가온 다양한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었어요. 유럽과 미국에서 온 히피들이 어떻게 네팔에서 생활을 이어가는 지 이야기를 듣기도 하고, 평생 액자를 만들다 처음으로 외국으로 여행을 온 화구상에게 음악을 추천받기도 했습니다. 새로운 사람을 만났을 때 기꺼이 시간을 내어 함께 대화했어요. 귀를 열고 타인의 이야기를 듣는 것. 전하고 싶은 마음을 전하는 것. 누군가의 방문 아래에 쪽지를 내려놓을 수 있는 용기는 포카라에서 얻게 된 작지만 큰 변화였습니다. 

그렇게 서로의 삶을 나누고 포카라에서 만난 사람들과 세상 어딘가에서 다시 만날 수 있다면 다시금 기꺼이 시간을 내어 지나온 삶을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그렇게 조금씩 서로의 우주를 나누고 외로운 나무가 아닌 더불어 사는 숲이 되고 싶어요. 서로의 감동과 기쁨을 나누면서요.

구독자님과 마음을 나누는 이이 만들어가는 숲 속에 오늘 전한 포카라의 이야기가 작은 거름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가을이 깊어져가는 계절에, 가울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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