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줄 것이 없어도

역할이 사라진 자리에서 만난 나

2026.09.06 | 조회 3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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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enerated by ChatGP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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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당신에게 줄 것이 없어도, 당신은 여전히 나를 만나고 싶은가.

 

역할이 주는 자리

나는 사람을 만나는 일을 좋아한다. 정확히 말하면, 오랫동안 나는 만날 이유가 있는 사람을 만나는 일을 좋아했던 것 같다.

영성지도를 할 때는 편하다. 내가 왜 그 사람 앞에 앉아 있는지 안다. 강의를 할 때도, 수련회를 인도할 때도, 누군가 나에게 조언을 구할 때도 그렇다. 내게는 해야 할 일이 있다.

목사. 교사. 영성지도자. 수련회 인도자. 작가. 공동체의 리더.

역할이 있으면 내가 그 자리에 있어도 되는 이유가 분명하다.

그러나 아무런 용건 없이 오랫동안 만나지 않은 사람에게 전화를 걸려고 하면 손이 쉽게 가지 않는다.

무슨 말을 하지? 왜 전화했느냐고 하면 뭐라고 하지? 특별한 용건도 없는데 부담이 되지는 않을까?

그래서 연락하지 않는다. 시간이 지나면 미안해지고, 미안해지면 더 연락하기 어려워진다. 그렇게 조금씩 멀어진다.

나는 이것을 오랫동안 내향적인 성격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어느 날 다른 질문이 생겼다.

나는 왜 관계에도 역할이 필요한가?

돌아보면 역할은 단지 내가 하는 일이 아니었다. 역할은 나에게 자리를 주었다.

내가 영성지도자라면 누군가의 이야기를 들어줄 수 있다. 교사라면 가르쳐 줄 것이 있고, 목사라면 돌보아야 할 사람이 있다. 나는 무엇인가를 가지고 그 사람 앞에 간다.

그러면 마음 한구석이 안심한다.

나는 당신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 그러므로 내가 여기 있어도 된다.

그 문장 아래에는 더 깊은 두려움이 숨어 있었다.

아무것도 줄 것이 없다면, 나는 왜 여기 있어야 하는가.

 

그러면 알 필요가 없네

교회 청년부 모임이 끝난 뒤였다. 다 같이 근처 식당으로 몰려가 늦은 저녁을 먹던 자리였다. 한 선배가 테이블을 돌며 사람들에게 어느 대학에 다니는지 물었다. 한 사람씩 대답했고, 내 차례가 왔다. 나는 아직 대학에 가지 못해 다시 입시를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녀는 내 얼굴을 보지도 않은 채, 벌써 다음 사람 쪽으로 고개를 돌리며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그러면 알 필요가 없네."

아마 그녀는 자신이 무슨 말을 했는지조차 몰랐을 것이다. 그러나 어떤 말은 말한 사람보다 들은 사람 안에서 훨씬 오래 산다.

그 말은 내 안에서 다른 문장이 되어 남았던 것 같다.

무엇인가 되어야 사람들이 나를 본다.

좋은 대학에 가야 한다. 능력이 있어야 한다. 가난에서 벗어나야 한다.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세월이 흐르면서 목록은 달라졌다.

좋은 목사가 되어야 한다. 깊이 있는 영성지도자가 되어야 한다. 영어를 잘해야 한다. 좋은 글을 쓰고 책을 내야 한다. 내가 시작한 공동체가 성장해야 한다.

이것들은 모두 좋은 열망일 수 있다. 나도 여전히 배우고 싶고, 좋은 글을 쓰고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고 싶다.

문제는 열망이 아니었다.

그 열망들이 어느 순간부터 나의 존재를 증명하는 증거가 되기 시작했다는 것이었다.

 

관계인가, 나의 이미지인가

나는 사람들과 크게 충돌하지 않는 편이었다. 상대의 말을 들어주었고, 내가 조금 양보하면 관계가 평화로워진다고 생각했다. 상대가 원하는 것을 알아차리면 거기에 맞추어 주기도 했다.

나는 그것을 사랑이라고 생각했다. 실제로 그 안에는 사랑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사랑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상대가 실망하는 것이 두려웠다. 나를 이기적인 사람, 영적이지 못한 사람, 좋은 목사가 아닌 사람으로 볼까 봐 두려웠다.

그래서 묻게 되었다.

나는 관계를 사랑하고 있는가, 아니면 관계 안에서의 나의 이미지를 사랑하고 있는가.

둘은 비슷해 보이지만 같지 않다.

관계를 사랑하면 때로 진실을 말하고 거절도 해야 한다. 그러나 이미지를 보호하려면 계속 좋은 사람으로 남아 있어야 한다.

관계를 사랑하면 상대가 나에게 실망하는 것도 견뎌야 한다. 그러나 이미지를 보호하려면 그 사람의 실망까지 내가 관리해야 한다.

그 차이를 알면서도 나는 자주 두 번째 쪽으로 넘어간다.

 

역할이 끝난 뒤에도

내 삶에는 깊은 관계들이 적지 않았다. 목회 안에서 만난 사람들, 영성지도 관계 안에서 만난 사람들, 학생과 교사로 만난 사람들이 있었다.

그런데 역할이 끝나면 관계도 끝나는 경우가 많았다.

영성지도가 끝나면 만나지 않았다. 함께하던 사역이 끝나면 연락이 줄었다. 학교를 떠나면 관계도 멀어졌다.

모든 관계가 계속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전문적인 관계에는 분명한 경계가 필요하고, 계절이 끝나며 자연스럽게 끝나는 관계도 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것이 내 안에 있었다.

나는 역할 이후의 관계를 잘 몰랐다.

이제 내가 당신의 영성지도자가 아닌데 왜 만나야 하지? 함께할 일이 없는데 무슨 이야기를 하지? 당신에게 줄 것이 없는데 내가 왜 연락하지?

그러다 단순하면서도 두려운 질문 하나를 만났다.

아무것도 줄 것이 없어도 당신은 여전히 나를 만나고 싶은가.

내 마음 한구석에서는 이미 답을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아마 아닐 것이다.

내가 더 이상 깊은 사람도, 유능한 사람도, 도움을 주는 사람도 아니라면 누가 나를 필요로 하겠는가.

 

그냥 손자였던 자리

그런 생각을 하다가 할머니가 떠올랐다.

할머니 앞에서 나는 무엇을 증명해야 했던가.

나는 무언가를 가르쳐 줄 필요도 없었고, 영적인 사람이 될 필요도 없었다. 좋은 대학에 갈 필요도, 영어를 잘할 필요도 없었다.

그냥 손자였다.

그 기억이 특별한 것은 거창한 사건이 있었기 때문이 아니다. 오히려 별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함께 있는 데 이유가 필요하지 않았다.

어쩌면 사랑의 깊은 형태 중 하나는 이것인지도 모른다.

당신이 여기 있는 데 설명이 필요하지 않은 것.

관계에는 주고받음이 있다. 그러나 가장 깊은 관계는 그 교환보다 먼저 시작되는지도 모른다.

당신이 나에게 무엇을 해주기 전에 당신이 있고, 내가 당신에게 무엇을 해주기 전에 내가 있다.

그리고 우리가 만난다.

역할보다 관계가 먼저다.

 

성공과 실패가 말해 줄 수 없는 것

그렇다고 아무것도 이루지 말아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나는 여전히 좋은 글을 쓰고 싶다. 영어를 더 배우고, 다양한 영적 수련도 익히고 싶다. 내가 섬기는 공동체가 성장하면 좋겠고,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영성지도자가 되고 싶다.

성공을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다만 성공에게 내 존재를 결정할 권한을 주지 않는 것이다.

성공해도 내가 더 우월한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다. 실패해도 내가 가치 없는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다.

실패했다면 배우면 된다. 잘못했다면 사과하고, 부족하다면 연습하면 된다. 성공했다면 감사하며 그 열매를 나누면 된다.

그러나 성공과 실패는 내 삶에서 일어나는 사건이지, 나에 대한 최종 판결은 아니다.

나는 역할과 성취를 버리려는 것이 아니다. 다만 그것들로 나의 가치를 증명하지 않는 법을 배우고 싶다. 요즘은 아침에 말없이 앉아 있는 짧은 시간 속에서, 아무것도 증명하지 않아도 되는 존재 자체가 조금씩 몸에 스며드는 것을 느낀다.

그래서 때로는 아무런 용건 없이 누군가에게 연락해 본다. 그저 생각이 나서 안부가 궁금했다고 말해 본다.

어쩌면 관계는 거기에서 다시 시작되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내가 찾고 있는 참자기로 돌아오는 길도 거창한 곳에 있지 않은지 모른다.

무언가를 증명하려고 앞으로 달려가는 나에게서, 아무것도 증명하지 않아도 하나님 앞에 머물 수 있는 나에게로 돌아오는 것.

그 길 위에서 나는 다시 묻는다.

지금 나는 이 사람을 사랑하고 있는가, 아니면 이 사람 앞에서 나를 증명하고 있는가?

아무것도 줄 수 없는 날에도, 나는 하나님 앞에서 사랑받는 나로 머물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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