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직 도착하지 못한 사람
나는 오랫동안 원하던 자리가 있었다. 지원했지만 얻지 못했다.
시간이 흘렀다. 이제는 아무렇지 않게 말할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런데 마음 한편에는 아직도 그 자리 앞에서 자기 이름이 불리기를 기다리는 사람이 살고 있었다.
그 자리가 내게 해주기를 바랐던 말은 이런 것이었다.
'당신은 능력이 있습니다. 당신의 탐구에는 깊이가 있습니다.'
나는 그 말을 듣고 싶었다. 솔직히 인정하자 부끄러움보다 슬픔이 먼저 왔다.
그런데 나는 인정받지 못한 경험을, 능력이 없다는 증거처럼 써왔다. 마음속 심사위원은 자주 같은 말을 했다.
'그것은 학문적인 글이 아니지 않은가?'
한 문장이 마음에 닿다
그날 나는 파커 팔머의 문장을 다시 읽었다.
"참자기에 충실하지 않으면, 우리는 결국 다른 사람들에게서 그 대가를 거두게 될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충실함은,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참자기와 삶의 부르심을 배반하지 않는 것이었다.
내가 나 자신에게 주지 못한 인정을, 함께하는 사람들의 반응에서 얻으려 했던 것은 아닐까.
이 문장이 낯설지 않았다. 오히려 아프게 다가왔다.
그러자 오래 닫아두었던 기억들이 다시 떠올랐다. 열리지 않았던 문들. 그만두게 되었던 자리들.
나는 그것들을 오랫동안 놓친 기회처럼 여겨왔다. 그런데 다시 보니, 그 자리들은 대부분 내가 나 자신으로 마음껏 있을 수 없는 자리였다. 진짜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로 있어야 통과할 수 있는 문이었다.
그 문이 열리지 않은 아쉬움은 남아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그 일이 나를 지켜준 면도 있었는지 돌아보게 되었다.
그렇게 생각하자 오래 붙잡고 있던 미련이 조용히 내려놓아졌다.
두려움이 아니라 충실함으로
그날 나는 영어로 하는 사역을 다른 기관과 협력할지 알아보는 중이었다.
돌아보니 그 동기의 뿌리에는 두려움이 있었다. 내가 세운 공동체 안에서는 사람이 충분히 모이지 않을까 봐. 나의 관계망만으로는 부족하지 않을까 봐. 더 큰 기관과 함께하면 더 많은 사람을 더 크게 섬길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
그것을 알아차리자, 무엇이 어긋나 있었는지 선명해졌다.
그렇다면 이렇게 물어보면 어떨까.
사람들이 얼마나 모일지 아직 알 수 없어도, 하나님께서 이 여정에 함께하고 계신다면 나는 지금 무엇에 충실할 수 있을까.
그 질문을 만나자 마음에서 불안이 떨어져 나갔다. 그러면 나는 결과를 만들어내려 애쓰기보다, 지금 내게 맡겨진 일을 충실하게 해나가면 된다는 응답이 조용히 올라왔다.
협력 자체를 거부한 것은 아니었다. 다만 두려움 때문에 서둘러야 한다는 마음을 내려놓았다.
충실함이 여는 공간
이 흐름은 내가 하는 일로도 이어졌다.
내가 마음껏 수련을 기획하고, 마음에서부터 나오는 책을 써 내려가는 것. 증명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것이 나를 살아 있게 하기 때문에 하는 일.
그것이 나 자신에게 진짜이고 나를 살아 있게 하는 일일수록, 그 자리가 곧 나와 함께하는 사람들이 자신의 참자기를 발견하고 하나님을 만나는 공간이 된다는 것을 보았다.
충실함은 다른 사람에게서 대가를 거두는 대신, 오히려 그들에게 자리를 내어주는 일이었다.
그 사실 앞에서 감사한 마음이 조용히 올라왔다.
딸의 손을 잡고
저녁에는 결혼을 앞둔 딸의 이야기를 듣고, 손을 잡고 축복기도를 드렸다.
두 사람이 서로에게만 모든 것을 기대하다가 집착하거나 좌절하지 않기를, 그 관계 안에 함께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기를 기도했다. 어렵고 힘든 순간에도 자신들을 이 결혼으로 불러주신 분께 충실히 머물기를 빌었다.
딸을 위해 기도하면서, 나 자신에게도 같은 초대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를 하나님께 내어드리고, 다른 사람들에게서 내 가치를 확인받으려는 기대로부터 그들을 놓아주는 것.
충실하게, 그 한 가지
닫혔던 문도, 두려움으로 조급해졌던 협력도, 마음껏 살아 있게 하는 일도, 딸에게 빌어준 축복도 결국 같은 것을 가리키고 있었다.
사람의 반응이나 자리가 아니라, 충실함이 먼저라는 것.
내가 충실하게 여기 있을 때, 그 자유는 나만이 아니라 내 곁의 사람들에게도 흘러간다.
오늘 나는 자유로운 사람이 되었다고 말할 수 없다. 그러나 한 가지는 조금 더 분명하게 말할 수 있다.
나는 충실하게, 오늘도 그 부르심으로 다시 돌아가고 싶다.
지금 내 삶에서, 나는 무엇에 더 깊이 충실하도록 초대받고 있는가?
그 초대에 응답할 때, 나 자신과 곁의 사람들 사이에 어떤 새로운 가능성이 열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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