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려움, 소명의 나침반

충실함, 유일한 길

2025.12.14 | 조회 4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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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stening Heart

관상적 기도, 경청, 그리고 삶 (contemplative prayer, listening, and life)을 위한 글

두려움이 가리키는 것

나는 오늘도 두려움 속에 앉아 있다.

몸 컨디션이 좋지 않을 때 모임에 못 간다고 알리는 것. 사람들이 뭐라고 생각할까?

사람들의 영성지도에 대한 필요를 보면서도 계속 "지금은 할 수 없다"고 말하는 것. 나만 생각한다고 판단받을까?

강의와 수련 비용을 올리겠다고 말하는 것. 너무 돈을 밝힌다고 하지 않을까?

소중한 역할에 대한 초대를 받았을 때 "할 수 없다"고 답하는 것. 기회를 놓치는 것일까?

죽음을 준비하고 있는 사람을 방문하는 것. 내가 그 무게를 감당할 수 있을까?

그리고 더 큰 것들—새로운 프로그램을 여는 것, 웹사이트에 올릴 첫 문장을 쓰는 것, 40일 동안 몰입을 통한 글쓰기와 센터링 침묵기도(Centering Prayer) 안내에 들어가는 것, 사람들을 초대하는 것.

이 모든 것이 내 안에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두려움을 일으킨다.

하지만 긴 시간 두려움과 함께 앉으며 배운 것이 있다. 두려움은 나의 적이 아니라는 것이다. 오히려 두려움은 내가 어디로 가야 하는지를 정확히 가리키는 나침반이었다.

스티븐 프레스필드(Steven Pressfield)는 『예술가의 전쟁(The War of Art)』에서 이렇게 말한다: "우리가 어떤 소명에 대해 느끼는 두려움이 클수록, 그것이 우리의 것이라는 확신이 더 커진다."

처음 이 문장을 읽었을 때, 한참을 그 자리에 앉아 있었다.

내가 가장 두려워했던 일들—사람들 앞에서 내 취약함을 드러내는 것, 완벽하지 않은 언어로 글을 쓰는 것—이 모든 것이 사실은 내가 가장 해야 할 일이었다.

나의 두려움을 나열해 본다:

  • 판단받을 것이라는 것
  • 이기적이라고 보일 것이라는 것
  • 돈을 밝힌다고 비난받을 것이라는 것
  • 충분하지 않다는 것

이 모든 두려움은 하나의 뿌리에서 나온다는 것을 이제 안다. "나는 충분하지 않다"는 거짓말이다.

하지만 침묵 안에서 만난 진리는 이것이다—나는 이미 충분하다. 왜냐하면 이 일은 나의 힘으로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두려움 뒤에 숨은 목소리

두려움은 혼자 오지 않는다. 그것은 늘 그럴듯한 목소리를 데려온다.

"조금만 더 준비하면..." "완벽해야 시작할 수 있어..." "조금만 더 생각해 보자..."

이것들은 모두 신중함처럼 보인다. 심지어 영적으로 들리기까지 한다. "아직 준비가 안 됐어. 더 기도해야 해."

하지만 사실 이것들은 안개다. 나의 길을 흐리게 만드는 안개다.

모리스 니콜(Maurice Nicoll)은 『제4의 길』에서 이렇게 가르쳤다: "기계적 자아는 늘 '나중에'를 속삭인다. 그러나 의식적 자아는 '지금'을 선택한다."

나는 오늘 아침에도 그 속삭임을 들었다. 이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도 그 목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이제 나는 그 속삭임의 정체를 안다. 그것을 이름 붙이는 순간, 그 힘의 절반은 사라진다.

 

저항을 통과하는 법

나는 오랫동안 두려움을 이해하려고 했다. 분석하고, 원인을 찾고, 합리적으로 해결하려 했다.

하지만 배운 것은 이것이다: 두려움은 생각으로 이기는 것도 아니고, 억지로 밀어내는 것도 아니다.

먼저 두려움과 함께 앉는 것이다. 그것을 있는 그대로 지켜보는 것이다. 그리고 나서, 그 두려움을 품은 채로 자리에 앉는 것이다.

프레스필드는 단순하게 말한다: "저항을 이기는 규칙은 단순하다. 자리에 앉고, 시작하고, 계속하는 것이다."

그러나 관상의 길은 한 걸음 더 깊이 들어간다. 자리에 앉되, 두려움을 적으로 보지 않는 것이다. 그것을 밀어내려 하지 않고, 그저 거기 있게 하는 것이다.

두려움과 함께 앉아 있으면, 이상한 일이 일어난다. 두려움이 조금씩 투명해지기 시작한다. 그 아래 숨어 있던 것—사랑, 부르심, 그리움—이 보이기 시작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저항은 나의 깊이를 이용한다. 나의 섬세함과 신중함을—그 모든 영적 감수성을—망설임으로 바꾸어버린다.

하지만 때로는, 기도는 행동이다.

앉는 것이 기도다. 펜을 드는 것이 기도다. 두려움에도 불구하고 한 문장을 쓰는 것이 기도다.

브라더 로렌스(Brother Lawrence)가 부엌에서 설거지를 하며 하나님의 임재를 연습했듯이, 나도 컴퓨터 앞에 앉아 한 문장을 쓴다.

떨리는 손으로, 불완전한 언어로.

 

두려움과 함께 여행하기

엘리자베스 길버트(Elizabeth Gilbert)는 『빅 매직(Big Magic)』에서 창조적 일을 시작할 때마다 두려움에게 편지를 쓴다고 했다.

"친애하는 두려움,

네가 여기 있다는 걸 안다. 나는 창조적인 일을 하려고 하고, 너는 언제나처럼 나타났구나. 너도 함께 가도 좋아. 하지만 분명히 해두자. 너는 뒷자리에만 앉을 수 있어. 목소리를 낼 수는 있지만, 투표권은 없어. 지도를 만지지 마. 라디오도 만지지 마. 운전대는 절대 안 돼."

나는 이 편지를 처음 읽었을 때, 해방감을 느꼈다.

두려움을 없애야 한다는 압박감에서 벗어났다. 두려움이 있어도 괜찮다. 다만 그것이 나를 운전하게 하지 않으면 된다.

프레스필드는 "저항을 이겨라"고 말하고, 길버트는 "두려움과 함께 가라"고 말한다. 그러나 관상의 길은 한 걸음 더 깊이 들어간다.

두려움을 적으로도, 동승자로도 보지 않는다. 그저 거기 있게 한다. 지켜본다. 그리고 조용히, 자리에 앉는다.

두려움과 함께 앉아 있으면, 이상한 일이 일어난다. 두려움이 조금씩 투명해지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너머에 있던 것이 보인다.

내가 정말로 사랑하는 것. 나를 통해 태어나려는 것. 하나님이 이미 심어두신 씨앗.

 

내 안의 더 깊은 자아가 아는 것

고백하고 싶은 조용한 진실이 하나 있다:

나는 사실 무엇을 해야 하는지 이미 알고 있다.

내가 머뭇거리는 이유는 길을 몰라서가 아니다.

내가 머뭇거리는 진짜 이유는, 하나님이 내게 맡기신 일이 너무 크고 신성해서 나의 작은 자아가 그 무게를 감당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라이너 마리아 릴케(Rainer Maria Rilke)는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이렇게 썼다: "당신 안으로 들어가라. 아무도 당신을 상담하거나 도울 수 없다. 오직 한 가지 길만 있다: 당신 자신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답은 밖에 없다. 더 많은 책에도, 더 많은 조언에도 없다.

답은 이미 내 안에 있다. 하나님께서 이미 심어두신 그 씨앗 안에.

나의 부르심은 이미 하나님 안에 심겨 있다. 이 일은 나의 것이 아니다. 주어진 것이다.

 

오늘 하나의 작은 용기

그렇다면 지금 무엇을 해야 할까?

나는 오랫동안 큰 계획을 세웠다. 완벽한 웹사이트, 체계적인 코스, 감동적인 책—모든 것이 준비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이 또 다른 미루기였다는 것을 깨달았다.

전체를 만들 필요 없다.

오늘, 단 하나의 작은 용기 있는 행동만 하면 된다.

한 문장을 쓴다. 한 통의 이메일을 보낸다. 한 이미지를 만든다.

작아도 된다. 불완전해도 된다.

나는 요즘 이렇게 한다: 15분 타이머를 맞춘다. 앉는다. 시작한다. 그리고 멈추지 않는다.

이 짧은 15분이 저항의 벽에 처음으로 작은 틈을 낸다.

시작하기 전까지는 두려움이 산처럼 커 보인다. 하지만 막상 앉아서 첫 문장을 쓰기 시작하면, 그 산은 안개처럼 흩어진다.

 

충실함, 유일한 길

"충실함은 자리를 떠나지 않는 것이다." Generated by ChatGPT

나는 늘 결과를 측정하려 했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왔나?" "반응이 좋았나?"

하지만 관상의 삶이 내게 가르쳐준 것은 다른 질문이다:

나는 오늘 충실했는가?

토마스 머튼(Thomas Merton)은 이렇게 썼다: "성인이 된다는 것은 나 자신이 되는 것이다."

진짜 나, 하나님이 창조하신 바로 그 나로 사는 것. 가짜 자아의 옷을 벗고, 진짜 자아(True Self)로 깨어나는 것. 그것이 거룩함이다.

나의 길은 성취가 아니라 충실함에서 열린다.

몸이 힘들 때도 솔직하게 말하는 것.

경계가 필요할 때 "아니요"라고 답하는 것.

비용 인상 대화를 떨리면서도 시작하는 것.

죽음을 앞둔 이의 집 문을 두드리는 것.

매일 같은 시간에 자리에 앉는 것.

두려움에도 불구하고 펜을 드는 것.

판단 없이 한 문장을 쓰는 것.

이 모든 것이 순종이다.

사막 교부 아바 포이멘(Abba Poemen)은 말한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매일 다시 시작하는 것이다. 그것으로 충분하다."

나는 이제 글을 쓸 때, 이렇게 기도한다:

"하나님, 이 일을 당신께 드립니다. 결과는 당신께 맡깁니다. 저는 단지 오늘, 이 자리에, 충실하게 앉아 있을 뿐입니다."

 

두려움은 방향표지

니콜에게서 배운 규칙이 하나 있다:

두려움은 방향표지다.

나의 가장 두려운 일들:

책을 쓰는 일. 사람들을 초대하는 일. 새로운 것을 시작하는 일. 혼자서 해야 하는 일. 비판받을 것이라는 두려움.

이 모든 것이 사실은 나의 진정한 소명으로 향하는 문 앞에 있다는 신호다.

"저항이 가장 큰 곳이, 당신의 가장 큰 소명이 있는 곳이다."

나는 이제 두려움을 피하지 않으려 한다. 오히려 그것을 향해 걸어간다.

두려움이 올라올 때마다 이렇게 속삭인다:

"아, 이것이 길이구나."

 

더 큰 사랑이 나를 통해 흐른다

오늘 아침, 침묵 안에서 깨달은 것이 있다.

가장 큰 것은, 뭔가 큰 힘이 있다는 것이다.

그 힘은 나보다 크다. 나의 두려움보다, 나의 부족함보다, 나의 실패보다 크다.

나는 그것을 "성령"이라고 부른다. "더 큰 사랑"이라고 부른다.

중요한 것은 이것이다: 창조의 원천은 나 밖이 아니라, 나를 통해 일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이다.

나의 일은 그 사랑에 연결되는 것이다.

관상기도는 바로 이 '받아들이는 채널'을 여는 훈련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 사랑이 나를 통해 나오게 하는 것이다.

릴케는 젊은 시인에게 썼다: "예술가와 어머니는 통로이지, 창조자가 아니다. 그들은 새로운 생명을 만들지 않는다. 단지 그것을 낳을 뿐이다."

내가 글을 쓰는 것이 아니라, 글이 나를 통해 쓰여진다. 내가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가르침이 나를 통해 흐른다.

 

매일 자리에 앉는다

그래서 나의 모든 통찰은 결국 하나의 실천으로 돌아온다.

나는 나의 어떤 감정이나 상태와 상관없이, 충실하게 자리에 앉는다.

기분이 좋지 않아도. 영감이 없어도. 두려워도.

나는 매일 같은 시간에 자리에 앉는다.

이것이 프레스필드의 언어로는 "프로가 되는 것"이다.

릴케의 언어로는 "익어가기"다.

수도자의 언어로는 "골방에 머물기"다.

그 모두는 하나를 가리킨다: 더 큰 사랑이 나를 통해 일하신다는 신뢰로 매일을 헌신하는 삶이다.

나의 매일의 충실함이 바로, 하나님의 사랑이 이 세상 속으로 육화되는 자리가 된다.

 

내 안의 진실을 알아서

그리고 이것을 배웠다:

내 안의 진실을 더욱 더 잘 알아서, 내가 진정으로 원하고 기쁜 것들을 해 나가는 것.

이것은 자기 의지가 아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뜻과의 일치로서의 기쁨이다.

관상적 삶은 억누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생명이 내 안에서 스스로 기뻐하도록 허용하는 삶이다.

나는 이제 더 이상 "무엇을 해야 한다"고 스스로를 채찍질하지 않는다.

대신 이렇게 묻는다: "지금 내 안에서 기쁨이 올라오는 것은 무엇인가? 나를 통해 태어나려는 것은 무엇인가?"

그리고 그것에 귀 기울인다.

놀랍게도, 내가 진정으로 기쁨을 느끼며 하는 일이 바로 다른 사람들에게도 생명을 주는 일이었다.

나는 오늘도 15분을 택한다. 완벽하지 않아도, 확신이 없어도, 단지 거기 있는 것을. 그것으로 충분하다.


마무리 기도

오늘, 저는 통제하려는 마음을 내려놓습니다.

저는 두려움이 가리키는 방향을 따르겠습니다—그것이 제 길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결과가 아니라 헌신을 선택합니다.

성령님이 저를 통해 일하도록 허용합니다.

저는 그 흐름의 통로가 되기를 원합니다.

성령님, 제가 두려움 속에서도 길을 보게 하소서.

결과가 아니라 헌신으로 살게 하소서.

그리고 제가 오늘 자리에 앉을 때,

당신이 저를 통해 일하게 하소서.

아멘.


오늘 함께 앉고 싶은 질문들:

  • 지금 내 안에서 가장 크게 올라오는 두려움은 무엇인가? 그 두려움이 가리키는 방향은 어디인가?
  • 내가 "완벽해지면 시작하겠다"고 미루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만약 오늘 단 15분만 그 일에 앉아본다면 무슨 일이 일어날까?
  • "나를 통해 태어나려는 것"에 귀 기울일 때, 나는 무엇을 듣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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