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빈칸이 건드린 마음
일대일 영적동반 신청표를 바라보고 있었다.
원하는 사람만 자유롭게 신청하면 된다고 자료에 써놓았다. 그런데 막상 빈칸이 눈에 들어오자, 마음 한구석이 조용히 움직였다.
나와의 동반이 필요하지 않은 것일까? 이번 수련이 별로 도움이 되지 않은 것은 아닐까? 내가 충분히 안내하지 못한 것은 아닐까?
사람들이 나와의 동반을 원하고 수련에 만족하기를 바랐고, 그것을 통해 내가 잘하고 있다는 것을 조금은 확인받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이번 리트릿에서 나는 참가자들에게 거짓자기와 참자기를 가르쳤다. 그것이 나쁜 나여서가 아니라, 상처받지 않고 안전하게 살아가려고 오랫동안 몸에 밴 방식이라고. 그런데 정작 신청표 앞에서는, 내가 가르치던 그 말이 나를 붙잡아주지 못했다. 누군가 나를 선택하지 않으면, 나눔이 더 솔직했으면 싶은 아쉬움이 올라오면, 계획대로 되지 않으면—그 순간 내 안의 오래된 프로그램이 사건에 여러 의미를 덧붙이기 시작한다.
문제는 이런 반응이 일어난다는 사실이 아니다. 그것을 알아차리지 못한 채, 그 반응이 나를 대신해 현실을 해석하고 관계를 이끌게 된다는 데 있다.
이미 함께 계신 하나님
이번 리트릿의 출발점은 단순했다. 하나님께서 이미 우리와 함께 계시며, 지금도 우리 안에서 일하고 계신다는 것.
참가자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센터링 침묵기도는 하나님을 불러오는 기도가 아니라고, 하나님은 이미 우리보다 먼저 이 자리에 계신다고. 그러므로 이 기도의 중심은 성취가 아니라 동의라고. 말은 그렇게 했지만, 침묵 속에서 나는 여전히 무언가를 이루려는 사람처럼 앉아 있었다.
하나님, 이미 함께 계시며 일하고 계시는 당신께 저 자신을 내어드립니다.
생각이 떠오를 때 거룩한 단어나 호흡으로 돌아오는 것은 생각을 없애기 위해서가 아니다. 처음의 의도를 새롭게 하는 작은 몸짓이다.
주님, 다시 당신께 돌아갑니다. 다시 당신의 일하심에 동의합니다.
이 돌아옴은 기도 시간이 끝난 뒤에도 계속된다.
내가 만들지 않은 일들
리트릿 동안 나는 내가 만들지 않은 일들을 보았다.
서로 다른 세대와 언어, 서로 다른 수련 경험을 가진 사람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깊은 침묵을 원하는 사람과 대화를 통해 마음을 만나고 싶은 사람이 함께 있다는 사실은, 모두를 같은 방식과 속도로 이끌 수 없다는 것을 가르쳐 주었다.
나를 포함해 열 명이 함께했고, 그 가운데에는 세 쌍의 부부도 있었다. 애니어그램을 통해 자신의 자동반응을 알아가자, 서로의 오랜 반응을 조금 다르게 바라보는 순간들이 생겼다.
좋은 안내자는 모든 사람을 같은 곳으로 데려가는 사람이 아니라, 각 사람 안에서 일하시는 하나님을 알아보고 그 사람의 속도를 존중하는 사람인지도 모른다.
먼저 답하려는 마음
누군가의 이야기를 들을 때, 나는 때때로 그 사람에게 무엇이 일어나고 있는지 빨리 알아차린다.
지금 이 유형의 자동반응이 작동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해보시면 됩니다.
충분히 듣기 전에 답을 말해버리는 가르침은, 상대를 돕기보다 나의 불안을 달래고 상황을 통제하는 수단이 될 수 있다.
문제는 내가 가르치느냐 침묵하느냐가 아니었다. 무엇이 나를 움직여 말하게 하는가였다. 사랑과 신뢰인가, 아니면 불확실성을 견디지 못하는 불안인가.
관상적 안내는 아무것도 말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다만 그 모든 행위보다 먼저 오는 것이 있다. 이 사람 안에도 하나님께서 함께 계시며 일하고 계신다는 신뢰. 내가 상대를 변화시켜야 하는 것이 아니라면, 나는 조금 힘을 빼고 기다릴 수 있다.
도움을 받아야 하는 나
인터넷과 화면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여러 차례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아야 했다. 혼자 해결하고 남에게 신세지고 싶지 않은 내게, 그것은 기술적 불편함 이상이었다. 모든 것을 알고 통제할 수 없는 나의 한계가 드러나는 것 같았다.
내가 참자기와 애니어그램을 충분히 정확하게 이해하고 가르치고 있는지에 대한 걱정도 올라왔다. 책임 있게 연구해야 할 질문이었지만, 두려움과 결합하면 "모든 것을 완벽히 알아야만 가르칠 수 있다"는 증명의 목소리로 바뀌었다.
기도와 일상을 잇는 세 움직임
이번 수련을 지나며, 센터링 침묵기도와 환대기도와 깨어 있음이 하나의 삶을 이루는 세 가지 움직임이라는 것을 다시 배웠다. 참가자들과 나누던 말로 하자면 이렇다. 센터링 침묵기도는 이미 함께 계신 하나님께 동의하는 기도다. 환대기도는 사건으로 인해 몸과 감정에 일어난 것을 하나님과 함께 받아들이는 기도다. 깨어 있음은 자동반응이 나를 대신해 행동하기 전에 알아차리고, 다시 선택할 공간을 여는 삶의 태도다.
말로는 그렇게 정리했지만, 리트릿 내내 나는 그 세 가지를 몸으로는 자주 놓쳤다.
신청표의 빈칸을 볼 때, 인터넷이 끊어질 때, 침묵이 더 깊이 지켜지지 않았다고 느낄 때—내 몸은 먼저 반응한다. 그때 잠시 멈춘다.
지금 내 안에서 무엇이 일어나고 있는가? 내가 무엇을 두려워하고 있는가?
그리고 몸으로 돌아온다. 그것을 고치거나 없애려 하지 않고, 그 안에 함께 계신 하나님께 마음을 연다.
주님, 이것이 지금 제 안에 있습니다. 다시 당신과 함께 선택하게 해주십시오.
알아차리고, 몸에 머물고, 하나님께 내어드리고, 다시 선택한다.
다시 응답하고 선택하는 나
인격적 자아는 생각하고 느끼고 선택하며 관계하고 책임지는 구체적인 나다. 그것을 없애는 것이 목표였던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센터링 침묵기도도, 환대기도도, 깨어 있음도, 이 자아를 지우거나 감정을 없애거나 판단력을 포기하게 하지 않는다. 다만 자동반응이 나를 대신해 결정하지 못하도록 할 뿐이다. 그렇게 될 때, 나는 하나님 앞에서 다시 응답하고 선택할 수 있는 사람으로 남는다.
그날 나는 참자기를 이렇게 이해했다. 하나님의 사랑을 얻기 위해 자신을 증명하는 내가 아니라, 이미 사랑받고 하나님께 속해 있음을 받아들이며 그 사랑으로부터 생각하고 느끼고 선택하며 살아가는 나.
거짓자기의 반응은 이번 리트릿에서도 계속 나타났다. 그것이 더 이상 내 삶의 주인이 될 필요는 없다는 것을, 나는 여러 번 다시 배워야 했다.
사람의 수보다 한 사람
리트릿을 마친 뒤, 듣는마음공동체의 방향을 더 깊이 분별하게 되었다. 더 많은 사람을 모아야 할지, 소수와 깊이 걸어야 할지, 아직 답은 없다.
다만 한 가지는 조금 분명해졌다. 듣는마음공동체는 내가 사람들을 끌고 가는 곳이 아니라, 우리 각자 안에서 일하시는 하나님을 함께 듣고 알아보는 자리가 되어야 한다. 그렇다면 성장은 사람의 수보다, 한 사람이 자신의 목소리를 되찾고 하나님 안에서 자유롭게 응답하게 되는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신청표의 빈칸도 어쩌면 그런 자리였는지 모른다. 누군가의 부족함도, 나의 실패도 아니라, 하나님께서 각 사람의 속도로 일하시도록 비워두어야 할 자리.
부드럽고 정확하게
리트릿을 마치고 잠깐 탁구를 쳤다.
선수 출신 목사님의 공은 힘이 들어가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 그는 서두르지 않았다. 공을 정확히 보고, 몸의 힘을 빼고, 여유 있게 받아쳤다.
나는 달랐다. 공이 오면 빨리 공격하려 했다. 서둘러 세게 치다가 실수했다.
그 공을 몇 번 놓치고 나서야, 신청표 앞에서 내가 하던 일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아챘다. 서두르고, 힘을 주고, 먼저 움직이려는 것.
하나님께서 이미 이민교회 목회자들의 마음 안에서 일하고 계신다. 침묵을 향한 갈망도, 관계의 회복도 내가 만든 것이 아니다.
나는 지금 어떤 빈칸과 불확실성을 두려워하여 서둘러 의미를 붙이고 있는가?
이미 일하고 계시는 하나님을 신뢰하며 힘을 조금 뺀다면, 지금 사랑 안에서 선택할 수 있는 가장 작고 진실한 한 걸음은 무엇인가?
귀한 초대
분별
하나복DNA네트워크 영성수련
2026년 9월 14일 – 10월 26일 (월요일, 7주) · 오후 8:30–11:00 · 신청 마감 8월 13일(목)
개인의 영적 여정에서 참된 인도하심을 분별하고, 내면에 있는 하나님의 목소리를 명확히 듣는 법을 탐구합니다. 퀘이커 전통의 명료화 모임을 통해 참가자들이 서로의 분별을 돕고, 깊은 영적 지혜를 함께 발견합니다.
자세히 보기: https://hanabokedu.org/courses/discernment/
분별의 여정: 개인 분별과 공동체 분별
듣는마음공동체 · 2026년 9월 8일 – 12월 1일 (10주) · 화요일 오후 3:00–5:30 PT / 수요일 오전 7:00–9:30 KST · 온라인
분별은 혼자 하는 것이 아닙니다. 열 주 동안, 먼저 명료화 모임을 통해 내 안에서, 그다음 사회적 분별 사이클을 통해 공동체 안에서, 하나님의 움직임을 함께 듣습니다.
관심이 있으시면, 이 자리로 초대합니다: https://www.listeningheartcommunity.org/events/35
영어로 진행되는 영성수련 코스에 관심 있으신 분은 듣는마음공동체 웹사이트에서 다른 프로그램들도 함께 살펴보실 수 있습니다: https://www.listeningheartcommunity.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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