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는 놀고 있었다

존재 자체로 기뻐하는 것에 대하여

2026.05.17 | 조회 4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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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착하기 전에도, 기쁨은 이미 거기 있었다." Generated by Gemini

한 문장이 공중에 떴다

목사님들과 함께 렉시오 디비나(Lectio Divina)로 잠언 8장을 세 번 읽었다. 세 번째가 끝난 후 한 목사님이 말했다.

"하나님 앞에서 진심으로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시간이 내 목회 안에 썩 많지 않았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침묵이 왔다.

나도 그 안에 있었다. 모임이 잘 되었을 때, 누군가 변화가 보일 때, 글이 잘 써졌을 때 — 그때 기뻐했다. 결과가 와야 기뻐했다. 본문이 말하는 기쁨과는 다른 자리에 있었다.

나중에 다른 분이 조용히 덧붙였다.

"뭔가를 이루어서 기뻐하는 걸 넘어서, 존재 자체로 기뻐하는 것으로 초대받는 것 같아 감사합니다."


지혜는 아직 아무것도 없을 때부터 놀고 있었다

본문은 말한다.

"날마다 그분을 즐겁게 하여 드리고, 나 또한 그분 앞에서 늘 기뻐하였다. 그분이 지으신 땅을 즐거워하며, 그분이 지으신 사람들을 내 기쁨으로 삼았다."

지혜는 땅이 생기기 전부터 거기 있었다. 아직 형태도 없고, 완성된 것도 없고, 증명할 것도 없을 때. 그 자리에서 지혜는 이미 기뻐하고 있었다.

히브리어 전통에서 이 장면은 아이가 노는 모습에 가깝다. 물을 만지고, 바람을 느끼고, 그냥 거기 있는 것 자체로 즐거워하는. 해결하려 하지 않았다. 도착하려 하지 않았다. 지금 이 자리, 지금 이 순간의 창조에 참여하며, 이미 기뻐하고 있었다.

오랫동안 나는 지혜를 다르게 살았다. 더 잘 안내하면, 더 깊이 읽으면, 더 준비되면 — 그때 제대로 될 거라고 생각했다. 지혜는 완성 이후에 오는 것이라고.

그런데 본문의 지혜는 완성 이전에 있었다. 결과보다 먼저, 증명보다 먼저, 이미 놀고 있었다.


어떤 수련이든 같은 말을 한다

피아노를 배우는 사람은 안다. 다음 소절을 잡으려 할 때 손가락이 굳는다는 것을. 그런데 지금 이 음 하나에만 있으면, 손이 풀린다.

달리기도 그렇다. 결승점을 보며 뛰면 다리가 무거워진다. 지금 이 보폭, 지금 이 숨에 있으면 몸이 달라진다.

원고를 보내고 답장을 기다릴 때도 그렇다. 코스 등록 인원을 확인하기 전까지는 불안하다. 그런데 그 순간 숫자가 아니라 지금 이 한 사람으로 돌아오면, 몸이 조금 풀린다.

렉시오 디비나도 마찬가지다. 깊은 체험을 잡으려 할 때마다 오히려 멀어진다. 그냥 앉고, 흩어지면 돌아오고, 또 흩어지면 또 돌아오다 보면 — 어느 순간 본문이 나를 데려가 있다. 내가 도착한 것이 아니라, 머무는 동안 일어난 일이다.

도착하려 할 때가 아니라, 지금 여기에 머물 때 일어난다.


그분이 지으신 사람들을 내 기쁨으로

31절이 조용히 들어왔다.

"그분이 지으신 사람들을 내 기쁨으로 삼았다."

지혜는 완성된 사람들을 기다리지 않았다. 헤매고, 실수하고, 아직 어딘가 부족한 사람들을 바라보며 기뻐했다.

영성지도 자리에 앉을 때, 혹은 영성수련을 함께 안내할 때 — 고치려 하면 안 된다는 것을 머리로는 안다. 내가 의미를 만들어 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이미 일하고 계신 자리를 함께 바라보는 것이라는 것도 안다.

그런데 누군가 오래 침묵하면, 나는 때때로 그 침묵을 함께 견디기보다 의미를 주고 싶어진다. 조금만 더 가면 자유로워질 것 같고, 하나님을 더 깊이 만날 것 같아서. 그런데 돌아보면, 그 순간 내가 믿지 못했던 것은 상대의 가능성이 아니라 침묵 속에서 일하시는 하나님의 속도였다.

먼저 기뻐하라.

해결이 아니라 기쁨(delight). 관리가 아니라 참여. 도착이 아니라 지금 이 사람과 함께 있는 것.

그 채워지지 않는 느낌 자체가 문일 수 있다. 아무리 잘 안내해도, 아무리 깊이 읽어도, 아무리 오래 침묵해도 — 아직 닿지 못한 것이 있다는 그 감각. 그것은 실패의 증거가 아니라, 무한을 향해 열린 자리다. 그 빈 자리에서 지혜는 이미 놀고 있었을 것이다.

어쩌면 관상적 삶은 이것인지도 모른다. 지금 내 앞에 있는 이 사람 안에서 즐거워하는 것. 이 대화의 결을 함께 느끼는 것. 이 침묵을 같이 누리는 것. 안개 속에서도 이미 여기 계시는 하나님과 함께, 지금 이 자리에서 놀고 있는 것.

놓쳐도 괜찮다. 다시 돌아오면 된다. 그 돌아옴 자체가 이미 참여다.

창조의 첫 움직임은 일이 아니라 기쁨이었는지도 모른다.

 

 

오늘, 무엇을 이루어야만 기뻐할 수 있었는가.

그리고 기쁨은 이미 어디에서 기다리고 있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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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여름 7월, 한국에서 3박 4일 침묵기도 수련회를 안내합니다. 에니어그램을 나침반 삼아 자신의 보호 패턴을 알아차리고, 센터링 침묵기도 안에서 참 자기로 돌아오는 시간입니다. 기도하고, 성찰하고, 쉬는 — 그 단순한 리듬 안에서.

2025년 7월 15일(수) — 7월 18일(토) | 수련 안내: 이대섭

센터링 침묵기도 수련 안내 링크: https://hanabokedu.org/courses/centering-pray/


앞으로 몇 달에 대해

뉴스레터는 5월 30일까지 발행됩니다. 6월은 책 집필을 위한 깊은 몰입의 시간으로 들어갑니다. 7월은 한국에서 센터링 침묵기도 수련회를 안내합니다. 8월 9일에 새 글로 다시 찾아오겠습니다.

그때까지 — 마음에 심어진 것들이 고요히 자라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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