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ep.9 인천에서 수집한 #맥주의 락(樂)

안녕하세요 구독자 님, 로컬 브랜드 큐레이터 현입니다.💡

마법 같은 처서매직이 이제 정말 코앞으로 다가왔습니다. 이렇게 선선해지는 날씨에 떠오르는 건 무엇일까요? 바로 시원~한 맥주 한잔이죠.🍻 그런데 오늘 소개할 인천에는 우리가 흔히 아는 맥주들보다 더 사랑받는 지역 맥주가 있다고 해요. 바로 인천의 대표 수제맥주 브루어리 브랜드, ‘인천맥주’가 오늘의 주인공입니다.

브랜드 탄생 배경

클래식 바이올린을 오래도록 연주하다가 고등학교 2학년 때 헤비메탈과 락에 빠져 서른 살까지 음악을 즐기던 그에게 새로운 ‘락(樂)’이 찾아왔습니다. 바로 맥주였습니다.

2010년부터 칵테일과 와인 파는 공간을 운영하던 그는 곧이어 수제 맥주 펍 ‘칼리가리 박사의 밀실’을 열었습니다. 전국에 10곳의 체인점을 운영하며, OEM방식으로 전국 3~4곳의 양조장에 자체 레시피로 위탁생산을 맡겨 맥주를 생산∙유통하였는데요. 문제는 맥주 퀄리티가 들쑥날쑥한데 본인 공장이 아니다 보니 그 원인을 찾을 수도 없고, 그러다 보니 매장들의 제품 수급도 불안정하다는 것이었습니다.

결국 그는 2018년 1월, 인천 차이나타운 부근에 양조설비를 갖춘 본부(HQ)를 설립하기에 이릅니다. 즉, 수제맥주 양조장을 직접 만든 것인데요. 처음 문을 열었을 때의 이름은 펍의 이름을 딴 ‘칼리가리 브루잉(CALIGARI BREWING)이었습니다.

2020년, 사업 확장 중 브랜드 방향에 대한 고민 끝에 그는 지역과 맥주에 더욱 집중하기 위해 과감하게 리브랜딩을 결단하게 됩니다. 바로 이것이 인천의 아이덴티티를 살리고, 맥주의 자유로움을 강조한 브랜드 ‘인천맥주(INCHEON BREWERY)’의 탄생입니다. 할아버지 때부터 3대째 인천에 터를 잡고 살아온 그에게 지역성을 살리는 일은 자연스러운 결정이었죠. 인천은 그에게 가장 잘 알고 가장 편안한 곳이었으니까요.

대표상품

‘개항로 맥주’는 인천맥주의 대표 제품이자, 인천맥주로 사명을 변경한 후 처음으로 출시한 제품입니다. 그리고 이는 우리가 흔히 마시는 카스와 테라와 같은 라거의 한 종류인데요. 대부분의 수제맥주 양조장에서 도수가 높고 맛과 향이 강한 에일을 생산하는 것과 달리 특이하게도 라거를 선택한 이유는 간단했습니다. 모든 세대가 함께 즐길 수 있는 맥주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에서, 동네 어르신들이 즐겨주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였습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습니다. 노포에서도 판매할 수 있을 만큼 모두에게 익숙하면서도, ‘끝맛이 좋아야 라거다’라는 슬로건처럼 한 끝이 다른 맛을 구현해 낼 수 있었습니다. 또한, 이 맥주는 국내 최초로 비건 인증을 받은 맥주라고도 하네요.

(맥주는 보리로 만들기 때문에 모두 비건아닌가? 하는 궁금증이 드신다면 -> 실제 양조 과정을 들여다보면 홉이나 효모 등에서 발생하는 부산물이 제품의 질을 떨어뜨릴 수 있어 청징제라는 물질을 사용하게 되는데요. 바로 이 청징제가 동물성 성분을 포함하고 있다고 해요. 그러나 개항로 맥주는 해초로 만든 식물성 청징제를 사용했다고 합니다!)

로컬렉션이 수집한 세 가지 브랜딩 수.ZIP 포인트

1) 지역색을 가득 담은 생산과 유통

사실, 개항로 맥주는 ‘개항로 프로젝트’와의 콜라보를 통해 제작된 제품입니다. 개항로 프로젝트는 인천 구도심을 살리기 위한 방안을 고민하는 도시재생 크루인데요.

양조장인 인천맥주가 위치하고 있으며, 맥주의 이름이기도 한 이곳 개항로는 한국 최초의 영화관인 애관극장이 자리한 곳이자, 옛 상업의 중심지였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구도심화된 지역이 되었죠. 그러나 이곳은 40년 이상 된 노포가 60개, 100년 가게 인증을 받은 업소가 48곳이나 되는 독특한 색을 지닌 장소입니다.

개항로 맥주는 이러한 지역을 알리고, 되살리기 위한 일환으로 탄생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이 로컬 맥주를 만들 때의 핵심은 바로 개항로의 사람, 문화, 역사를 브랜드에 담아내는 것이었습니다. 맥주의 모델은 동네에서 페인트 가게를 운영하시는 최명선 어르신이 되었습니다. 맥주 로고의 필체는 60년째 수제 목간판을 제작하는 전원공예사 전종헌 어르신의 작품입니다. 이처럼 지역민이 함께 참여한 작업을 통해 지역성이 담긴 맥주가 탄생한 것입니다.

당연히, 이 맥주는 지역스토리를 담았다는 취지에 맞춰 인천에서만 판매됩니다. 현재 인천의 식당, 선술집, 맥줏집 등 약 350여 개의 업장과 마트에서 판매되고 있는데요. 이러한 진정성 덕분인지 카스나 테라보다 천 원 더 비싼 가격에도 불구하고 개항로에 있는 음식점들에서는 개항로 맥주의 판매량이 거의 50%를 차지한다고 합니다.

🍺인천맥주

인천 개항로에 위치하는 양조장을 직접 방문하시면, 개항로 맥주 선물세트는 물론 더 다양한 종류의 수제맥주들을 구매하실 수 있습니다!

2) Only one을 만드는 계산된 디자인

양조장의 이름에 사용된 획의 방향과 두께가 통일성 없이 제각각인 눈에 띄는 이 폰트, 도대체 어떻게 제작된 걸까요? 바로 디자인 스튜디오 '구트폼(guteform)'의 작품입니다. 인천맥주의 아트 디렉션을 맡은 이 스튜디오는 나이키의 '너라는 위대함을 믿어' 프로젝트를 진행한 타이포그래피의 대가이기도 한데요.

구트폼은 무척 세련되지도, 그렇다고 촌스럽지도 않은, 수도권에 위치하면서도 아직 젠트리피케이션이 미치지 않은 원석 같은 도시, 인천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의도적으로 정돈된 미감과는 다소 거리가 먼, 눈에 걸리는 타이포그래피를 선택했다고 해요. 물론 여기에는 숨겨진 의도도 있습니다. 자원이 한정된 소규모 브랜드가 남들과 똑같은 디자인을 선택한다면, 그저 'one of them'이 될 뿐이니까요.

개항로 맥주 제품의 디자인 역시 보틀 라벨에서부터 색상을 모두 배제하는 것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메인 포인트 컬러는 오직 옛 느낌을 자아내는 상아색 하나뿐입니다. 이러한 계산된 디자인은 인천맥주만의 독특한 ‘only one’ 스타일을 구축하는 데 크게 기여했습니다.

3) 단점을 강점으로 승화시키는 프로젝트

'마계인천'이라는 용어는 인천의 부정적인 이미지에서 비롯된 표현인데요. 그런데 이 표현을 오히려 전면에 내세운 놀라운 행사가 있습니다. 바로 '마계인천 프로젝트'인데요. 이 프로젝트는 인천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가 과장되어 있다는 점에 주목하여, 빌런에게도 각각의 서사와 매력이 있듯이 진짜 인천의 매력을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에서 시작되었습니다.

프로젝트는 지역에서 30~40년 이상 가게를 운영해 온 사장님들과의 콜라보를 통해 진행됩니다. 첫 번째 마계인천 시리즈는 54년 된 스지탕집과의 협업이었다고 해요. 구체적으로는 각 노포의 이름을 딴 한정판 맥주를 약 4,000병 정도 만들고, 그곳에서 음식과 맥주를 함께 즐기는 론칭 파티를 열어 해당 업장을 홍보하는 방식입니다. 맥주의 맛 역시 가게의 메뉴나 분위기에 맞춰 다르게 제작됩니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3대 재즈클럽 중 하나인 '버텀라인'과의 협업에서는 음악과 어울리는 도수가 조금 높은 라거를 생산했다고 해요.

이 프로젝트는 인천의 노포나 오래된 가게들의 고유한 매력을 재조명하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인천의 과거를 이끌어 온 이들이, 인천의 미래를 이끌어 갈 젊은이들에게까지 사랑받을 수 있게 새로운 길을 열어준 셈이죠.

🍺https://www.instagram.com/incheon_brewery/

공식 인스타그램을 통해서도 행사 소식을 안내하고 있으니, 관심 있으신 분들은 꼭 확인해보세요👀

‘인천맥주’의 따끈따끈한 최신 소식

최근 인천맥주가 인천 중구 인천아트플랫폼에 새로운 개념의 뮤직갤러리 탭룸(여러 대의 탭을 설치해 다양한 수제 맥주를 판매하는 곳)을 선보였습니다. 탭룸 '호랑이'는 '보고 듣고 맛보고 즐기는 본격 복합쾌락공간'을 지향한다고 하는데요. 감상, 공연, 파티 3가지 테마가 뒤섞인 이곳에서 인천맥주가 자체 양조한 다양한 수제맥주는 물론, 다양한 락밴드 공연까지 즐길 수 있다고 해요:) 현재는 가오픈 기간이며 9월 초 정식 오픈 예정이라고 합니다. 이 특별한 문화공간을 만나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