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이가 생기고 약 8개월간 육아휴직을 한 시간이 있었습니다. 하루 종일 두 살 아기와 함께 지내며 지지고 볶다 보니, 어느 순간 제 말투와 언어 수준이 아기를 닮아있더라고요. 문장은 점점 단순해지고, 톤은 높아지고, 단어는 쉬워졌습니다. 주말에 친구를 만나 헤어질 때도 무심코 “빠빠이”라고 말하는 제 모습을 발견하게 됐죠. 복직 후 한동안은 새로운 언어를 배우는 것처럼 꽤 긴장했던 기억도 납니다.
그런데 요즘, 저는 비슷한 감각을 AI와 함께 일하며 다시 느끼고 있습니다. 예전에는 동료들과의 협업 속에서 AI가 간헐적으로 등장했다면, 이제는 AI와 더 오래 일하고 동료들과는 간헐적으로 협업하는 상황에 가까워졌습니다. 하루 종일 가상의 존재에게 지시를 내리고, 해석을 요구하며, 제 의도대로 움직이는 세계에 익숙해지다 보면, 문득 실제 동료들과의 협업으로 전환하는 순간이 낯설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이번 글에서는 몇 가지 연구 사례를 통해, AI 트렌드가 우리의 소통 방식을 어떻게 바꾸고 있는지 짚어보았습니다.
AI와 말하면서 변화된 점이 있다면
AI와의 상호작용은 기본적으로 ‘명령–응답’ 구조입니다. 원하는 결과를 얻기 위해 명확하게 지시하고, 부족하면 수정하고, 다시 요구합니다. 이 과정에는 감정이 개입될 여지가 거의 없고, 관계의 맥락 역시 최소화됩니다. 효율성과 정확성을 중심으로 설계된 커뮤니케이션 방식이기 때문입니다.
이 구조에 익숙해질수록 우리는 점점 더 직접적이고, 짧고, 목적 중심적인 언어를 사용하게 됩니다. 문제를 빠르게 정의하고 해결을 요구하는 방식은 분명 업무 효율을 높여줍니다. 그런데 이런 소통 방식은 조직 내 커뮤니케이션의 기능적 목표 외 관계적 목표는 필요가 없어지지요.
| 구분 | AI 기반 소통(HxA) | 사람 간 소통(HxH) |
|---|---|---|
| 주요 동기 | 과업 완수 및 정보 획득 (Functional) | 과업 완수 및 관계 유지 (Relational) |
| 정서적 소모 | 전무함; 기계적 일관성 유지 | 높음; 맥락과 감정적 배려 필요 |
| 반응 속도 | 즉각적이고 예측 가능한 패턴 | 가변적이며 상대의 상황에 의존 |
| 상호호혜성 | 요구되지 않음 (AI는 일방적 '시여자') | 필수적 (정서적·업무적 기여 교환) |
| 명확성 | 언어적 정확성 및 구조화 지향 | 비언어적 단서와 맥락적 함의 중심 |
심지어 한 연구에서는 ChatGPT와 같은 모델에게 매우 무례한 톤(예: "야, 심부름꾼! 이거 당장 해결해")으로 프롬프트를 입력했을 때, 객관식 문제의 정답률이 4%p 올라가는 현상이 관찰되었습니다.
연구진은 질문의 어조가 직접적이고 강할수록(즉, 예의를 덜 차릴수록) 모델이 질문의 핵심에 더 집중하거나 더 높은 성능을 보이는 경향이 있음을 발견했다고 설명합니다.
이러한 커뮤니케이션에 익숙해져서일까요.
예전보다 저는 동료와의 ‘직접적이지 않은’ 대화를 이해하기가 더 어렵게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어떤 때는 슬랙 대화를 통째로 캡처해 LLM에게 해석을 부탁한 적도 있었답니다. 반대로 동료에게 말을 건넬 때도, 이전보다 표현이 건조해지고 맥락은 생략되며 감정적 배려가 낮아지고 있다는 느낌도 들었어요. 어쩌면 누군가의 고민과 생각을 깊게 이해하고 맥락을 살피던 그 마음을 점점 잊어버리고 일하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보게 되었어요.
위 연구를 이끈 펜실베이니아 주립대 연구진은 정확도가 일부 올라가는 현상에도 불구하고 LLM에게 무례한 언어를 권장하지 않는 이유를 아래와 같이 설명했는데요.
1. 언어 습관의 변질: AI에게 지속적으로 무례하고 모욕적인 언어를 사용하는 습관이 생기면, 이것이 실제 사람 간의 대화나 사회적 의사소통 규범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2. 포용성 및 접근성 저하: 이러한 방식이 보편화되면 정중하게 대화하는 사용자들은 오히려 낮은 품질의 정보를 얻게 되는 '정보의 불평등'이 생길 수 있으며, 전반적인 사용자 경험이 퇴보할 수 있습니다.
3. AI의 태도 학습: 사용자가 무례하게 대할수록 AI 역시 그 말투를 학습하여 사용자에게 무례하게 응답할 가능성도 제기되었습니다.
세번째 가설이 무척 재미있지 않나요?
언젠가는 무례해진 AI로 우리가 당황하게 될 날들이 올지도 모르겠습니다.
‘내 편이 되어주는 AI’가 만드는 착각
또 다른 연구 결과 하나를 살펴볼게요.
최근 스탠퍼드 연구진은 11개의 LLM을 대상으로, 대인 갈등 상황에서의 조언을 분석했습니다. Reddit 커뮤니티에서 한쪽의 잘못으로 의견이 만장일치에 가깝게 모인 사연부터, 사기나 불법 행위처럼 명백히 해로운 행동까지 포함해 모델의 반응을 비교했는데요.
그 결과 AI들은 인간보다 사용자의 입장을 지지하는 비율이 평균 49% 더 높았고, 심지어 불법적인 행동에 대해서도 47%는 사용자의 행동을 사실상 옹호하는 답을 했습니다.
더 재미있는 점은 2,400명 이상이 참여한 이 실험에서, 사람들은 비판적인 AI보다 아부적인 AI의 답변을 더 신뢰할 수 있다고 느낀 것이에요. 아부적인 답변을 본 참가자들은 “내가 맞다”는 확신이 더 강해졌고, 사과하거나 관계를 회복하려는 의지는 줄어드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AI가 나의 의도를 ‘합리적’으로 설명해주면, 사람들은 그 갈등을 다시 들여다보는 대신 ‘확신’을 얻게 됩니다. 그리고 그 확신은 종종 더 강한 감정으로 이어집니다.
물론 감정적 스트레스가 있는 여러 상황에서 든든한 내 편이 있다는 것은 큰 위안이 되는 일이지만, 때로는 그 편안함이 스스로를 돌아보고 더 나은 방향으로 성장할 기회를 가로막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한 번쯤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PM의 경쟁력: 사람을 움직이는 힘
PM의 일에서 기획서의 작성, 일정 관리, 데이터 분석, 인사이트 도출은 이미 상당 부분 AI가 대체하거나 보완하고 있고 그 속도는 앞으로 더 빨라질 것입니다. 이제 PM의 역할은 ‘무엇을 만들까’에서 ‘왜 만들고, 어떻게 현실에서 작동하게 할까”로 이동하고 있는데요. 이 지점에서 인간 PM의 핵심 역량은 결국 사람을 움직이는 힘이 아닐까 해요.
서로 다른 이해관계를 조율하고, 팀이 같은 방향을 바라도록 만들며, 필요한 의사결정을 끌어내는 것. 고객이 말하지 않는 불편을 읽어내고 조직 내부의 제약을 고려하며, 파트너사의 숨은 의도를 파악하는 것. 이 모든 과정을 통해 실제로 의미 있는 결과를 만들어내는 사람이 더욱 빛을 발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좋은 소통이 있습니다. 우리가 노력을 기울인 설명과 공감과 배려를 통해 사람을 움직이는 힘이지요.
한편, AI와 대화하며 우리가 익힌 스킬 중 일부는 오히려 인간과의 협업에도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좋은 프롬프트는 대체로 맥락이 명확하고, 목적이 분명하며, 기대 결과가 구체적입니다. 이 세 가지는 사실 좋은 업무 커뮤니케이션의 조건과도 같습니다. 여기에 단순히 결과를 만들어내기 위한 기능적 목표를 넘어, 설명하고 공감하며 배려하는 언어가 더해진다면 우리의 커뮤니케이션은 한층 더 성숙해질 것입니다.
결국 AI와의 협업이 늘어날수록, 아이러니하게도 사람과의 소통 역량이 PM의 가장 중요한 경쟁력으로 남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Refere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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