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의 위기’, 범인은 생활동반자법이 아니다

미션11🚩가족구성권을 보장하라

2023.05.22 | 조회 29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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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션100

한국 사회, 100가지만 바뀌어도 살 맛 날 걸요?🥳 지금 필요한 100가지 제도 변화를 이야기하는 미션100레터. 매주 월요일, 무겁고 어려운 문제도 쉽게 풀어 전해드려요.

tvN 예능 '조립식 가족'의 포스터 이미지. 자발적으로 가족이 된 '조립식 가족'을 통해 혼자도 결혼도 아닌 새로운 형태의 가족을 관찰해보는 프로그램이다. (이미지 출처: tvN 조립식 가족 홈페이지)
tvN 예능 '조립식 가족'의 포스터 이미지. 자발적으로 가족이 된 '조립식 가족'을 통해 혼자도 결혼도 아닌 새로운 형태의 가족을 관찰해보는 프로그램이다. (이미지 출처: tvN 조립식 가족 홈페이지)

 

따스한 5, 가정의 달입니다. 여러분은 가족이라고 하면 누가 떠오르시나요? 혈연과 혼인 또는 입양으로 이루어진 관계만 가족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살다보면 가족처럼 친밀한 사람 또는 가족보다 더 가족 같은 사람을 만나게 되기도 합니다. 그런 사람은 이성이거나 동성일 수도 있고, 성애적 관계일 수도 있지만 아닐 수도 있죠. 전통적인 의미의 가족이 아니더라도 친밀한 사람과 돌봄을 비롯한 각종 도움을 주고받으며 살 수 있습니다. 실제로 그런 삶을 선택한 사람도 많아지고 있어요. 전통적인 가족 개념 밖에 있는 시민들 사이의 자유로운 결합을 인정하고, 보호하는 내용을 담은 생활동반자법에 대한 입법 요구도 크고요.

 

생활동반자법이란?

국회에서 생활동반자법의 명칭과 내용을 처음 제안했던 황두영 작가는 혈연이나 혼인으로 이뤄진 민법상 가족이 아닌 두 성인이 합의하에 함께 살며 서로 돌보자고 약속한 관계가 생활동반자 관계라고 말합니다. 이런 관계를 맺은 사람들이 국가에 등록하면 함께 살아가는 데 필요한 사회복지 혜택을 누릴 법적 권리를 보장하고, 생활동반자로 살다가 헤어지는 과정에서 일어날 수 있는 둘 사이의 분쟁을 해결할 수 있는 절차를 만들어주는 것이 생활동반자법이에요. 지난 4월 말 기본소득당의 용혜인의원이 10명의 국회의원들과 함께 '생활동반자관계에 관한 법률'을 발의했죠.

 

데이터 출처: 통계청 인구총조사
데이터 출처: 통계청 인구총조사

 

함께 살고 싶어도 못 사는 사람들

우리나라가 전통적인 가족 개념에 머물러 있는 동안, 가족으로 인정받지 못한 생활동반자들은 어떻게 살고 있을까요? 많은 사람들이 문제로 지적하는 것은 주거권입니다. 전세 계약서를 쓰거나 전세자금 대출을 받을 때 부부가 아니면 공동명의가 사실상 불가능하잖아요. 한 사람의 이름으로 대출을 받으면 자금이 부족해 2인 가구에 알맞은 집을 얻기가 어려워요. 둘이 살면 주거비, 식비, 냉난방비 등이 혼자 살 때보다 훨씬 저렴한데도 각각 따로 살게 되죠.

금전적인 여유가 있어 한 사람 명의로 대출을 받아 같이 살 집을 구할 수 있는 경우에도 문제가 있어요. 나중에 생활동반자 관계가 깨졌을 때 금전적인 피해가 발생할 수 있거든요. 두명이서 자금을 모아 보증금을 마련했는데 문서상으로는 한 사람의 권리만 명백하잖아요.

 

 

우리에겐 ‘외롭지 않을 권리’가 있어요

가족이 아닌 사람과 함께 살 집을 마련하기 어려운 현실 속에서 1인 가구는 점점 늘어나고 있어요. 젊은 층이 일자리 때문에, 또는 혼자 사는 걸 선호해 1인 가구를 구성하는 것도 맞지만 1인 가구가 가장 많이 늘어나고 있는 연령층은 45~65세 사이의 중년층이래요. 75세 이상 노인층에서도 1인 가구가 절대적으로 많은 숫자를 차지하고요. 노인층이 혼자 살게 되면 주거비용이 높아지는 문제 뿐만 아니라 필요한 돌봄을 받지 못하는 문제가 생겨요. 외로움이나 우울감에 더 잘 노출되고요.

 

데이터 출처: 통계청 장래가구추계, 장래인구추계
데이터 출처: 통계청 장래가구추계, 장래인구추계

 

독거 노인 늘어나는데, 혈연만 믿고 있을 건가요?

한국은 OECD 국가 중에서 노인자살률이 1위인 나라이고, 독거노인의 자살률이 높아. ‘고독이라는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돌봄을 국가가 책임져야 하는 상황이죠. 그런데 시민들이 돌봄을 상호교환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것도 중요해요. 자발적으로 서로를 돌보며 함께 살아가겠다는 사람들을 지원하는 건 우리 사회를 지키는 방법 중 하나예요. 친밀한 관계에서 주고받는 돌봄은 정부나 시장이 제공해줄 수 없는 정서적인 교류를 가능하게 해요. 배우자나 자녀가 아니더라도 노인들이 직접 선택한 사람과 함께 도움을 주고받으며 살 수 있다면 좋지 않을까요?

국회에서 보좌진으로 일하며 생활동반자법을 기획했던 황두영 작가는 국가 입장에서도 1인 가구의 복지를 책임지는 것보다 2인 이상 가구의 복지를 살피는 것이 더 수월할 거라고 말합니다. 예를 들어 독거노인을 정기적으로 방문해 노인의 고독 문제를 해결하려는 정책을 시행한다고 할 때, 노인들이 자발적으로 모여 사는 가구가 많다면 돌봄을 제공하는 데에 따르는 인건비를 줄일 수 있잖아요. 주거정책 측면에서도 1인가구의 집을 2채 만드는 것보다, 2인가구의 집을 하나 만드는 게 비용이 적게 든다고 해요. 화장실·주방 등은 공용공간으로 쓸 수 있고 세탁기·냉장고 같은 가전을 공유해서 쓸 수 있으니까요.

 

KBS1 예능 '박원숙의 같이 삽시다'의 한 장면을 캡처. 노년이 된 친구들끼리 함께 살며 겪는 에피소드를 보여주는 프로그램이다.
KBS1 예능 '박원숙의 같이 삽시다'의 한 장면을 캡처. 노년이 된 친구들끼리 함께 살며 겪는 에피소드를 보여주는 프로그램이다.

 

실질적인 보호자인데도, 병원에 가면 무력한 존재가 된다

가족이 아닌 동거인은 병원에서 보호자로 인정받기 어렵다는 걸 알고 계시나요? 중환자실 면회를 못 하거나, 검사나 치료 결과에 대한 설명을 듣지 못하는 일이 발생한대요. 실질적인 보호자인데도요. 그리고 생활동반자에게 수술이 필요할 때 병원 측은 친족의 동의를 요구해요. 의료법에 가족의 동의에 관한 별도 규정은 없지만 관행으로 이어지고 있죠. 환자가 의사능력이 있는 상태에서 수술에 동의하는데도 친족의 동의를 추가적으로 요구하는 경우도 있다고 합니다. 때문에 멀리 살거나 왕래가 단절된 가족을 기다리게 돼요. 여러 사정으로 친족과 연락을 끊고 지내는 사람들에겐 상당히 곤란한 일일 거예요. 이러한 병원 측의 요구를 위법행위로 단속하자는 주장도 있지만, 병원 진료 과정에서 보호자의 필요성을 고려해 보호자의 범주를 늘리자는 이야기가 있어요.  

 

 

죽음 앞에서도, 생활동반자는 ‘권리없음’

생활동반자는 연명의료의 결정 과정에서도 소외되고 있어요. 현행법상 회생가능성이 없는 환자가 죽음에 이르는 기간만 연장하는 치료를 받고 있는 경우, 환자의 배우자·부모·자녀가 모두 동의하면 연명의료를 중단할 수 있어요. (환자가 의식을 잃기 전에 미리 연명의료에 관한 결정을 해뒀다면 본인의 의사를 따릅니다.) 환자의 사망에 관해 혈연가족과 생활동반자의 의견이 다를 수 있는데, 생활동반자에게는 연명의료 결정권이 없죠. 사망의 시기를 두고 가족과 생활동반자의 이해관계가 갈릴 수도 있어요. 주거를 함께 하던 생활동반자는 살던 집에 대한 정리 등을 고려할 때 환자의 죽음을 미룰 유인이 있지만 상속을 받는 가족들은 연명치료 중단 시기를 당기려 할 수도 있습니다.

애도할 권리또한 생활동반자에게 보장되지 않아요. 사망했을 때 시신을 인수하고 장례를 치를 권리가 사실상 가족에게만 주어지거든요. 장사법이 개정되어 올해 9월부터는 친분관계에 있는 사람도 장례를 주관할 수 있지만, 사망자가 무연고자로 확인됐을 때만 가능해요. 남보다 못한 사이로 지내던 가족이더라도 당연하게 주어지는 권리가, 평소 친족보다 더 가깝게 지내며 서로를 돌본 사이에게는 주어지지 않는 거예요.

 

 

‘전통 가족’에 집착할수록, 우리사회는 연결되지 못한다

제도적으로 가족을 좁게 인정했을 때 나타나는 이런 문제들 때문에, 해외 여러 나라에서는 이미 생활동반자법을 도입한 상태예요. 대표적으로 프랑스에는 ‘PACS’가 있고, 네덜란드에는 파트너십제도가 있으며, 영국에는 시민동반자법, 독일에는 생활동반자법’(Lebenspartnerschaften)이 있죠. 우리나라와 다르게 스스로 선택한 사람과 결혼하지 않고도 함께 살아갈 수 있는 권리를 보장받고 있어요.

왜 우리나라는 생활동반자법이 아직도 없을까요? 아마도 전통적인 가족관계를 무너뜨리는 법이라는 공포가 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가족의 위기가 아니라 가족법의 위기라고 지적해요. 전통적인 가족의 개념와 이상은 이미 변했는데, 가족법이 변하지 않으면서 새로운 형태의 가족이 누려야 할 권리를 위협하고 있다는 거예요.

 

여성가족부가 발간한 '가족다양성에 대한 국민인식조사 결과 보고서'에서 캡처한 그래픽. 다양한 가족이 차별받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법·제도의 대응에 관해 71.2%가 부정적으로 평가했다.
여성가족부가 발간한 '가족다양성에 대한 국민인식조사 결과 보고서'에서 캡처한 그래픽. 다양한 가족이 차별받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법·제도의 대응에 관해 71.2%가 부정적으로 평가했다.

 

 

우리 사회를 무너뜨리는 법(X)

우리 사회를 연결하는 법(O)

기본소득당 용혜인 의원이 지난달 국회에서 최초로 생활동반자법을 발의한 이후, 원내 1당인 민주당은 동성 간 동거에 대한 거부감을 우려해 최근 이성 간의 동거만 지원하겠다는 쪽으로 입장을 바꿨다고 전해졌습니다. 그런데 성별을 구별한다면 생활동반자법은 또다른 차별이 되고 말 거예요. 동성끼리는 왜 생활동반자가 될 수 없나요? 성애적 관계가 없음을 증명이라도 해야 하나요? 동성애자가 생활동반자법을 이용하는 게 싫다는 동성애 혐오 때문에 모든 사람들이 누려야 하는 보편적 권리의 입법이 막혀서는 안 됩니다.

이제 각자도생이라는 말이 낯설지 않을 정도로 우리 사회는 파편화되고, 개인화됐어요. 이런 가운데 자발적으로 서로를 도우며 살겠다고 나서는 시민들이 있다면 국가가 나서서 보호하고, 지원해야 해요. 원가족이 아니더라도 잘 살 수 있는 사회적 토대가 만들어져야 개인의 고립을 막을 수 있습니다. 생활동반자법은 우리 사회를 무너뜨리는 법이 아니라, 연대가 무너져 있는 우리 사회를 연결해주는 법이 될 거예요.

 

 

 


[참고 문헌]

여성가족부. 2021. "가족다양성에 대한 국민인식조사 결과 보고서”.

전윤정. 2023. "생활동반자제도 해외 사례 및 입법정책 방안". 생활동반자법 제정을 위한 국회 토론회 자료집.

통계청. 2022. “장래가구추계 2020”, “장래인구추계 2020”.

허민숙. 2022. "가족 다양성의 현실과 정책 과제: 비친족 친밀한 관계의 가족 인정 필요성". 국회입법조사처.

황두영. 2020. 『외롭지 않을 권리』. 시사IN.

KBS. 23-05-04. “혼인·혈연 아니어도, 같이 살면 가족가능할까? 생활동반자법 첫 발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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