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비군 훈련에 참여했을 뿐인데… 되려 장학금 깎은 학교
한국외국어대학교에서 교내 방과 후 토익 기본반 프로그램을 듣는 A 씨는 예비군 훈련에 다녀왔다가 황당한 일을 겪었습니다. 99점으로 1등이었던 A 씨의 점수가 예비군 훈련에 다녀온 날이 결석으로 처리되며 최종 성적이 2점 감점되어 2등으로 떨어진 것입니다. 이 사건으로 원래라면 12 만원의 최우수 수료 장학금을 받을 수 있었던 A씨는 우수 수료 장학금인 5만 원만을 지급받게 되었습니다. A 씨는 예비군 훈련 참석으로 불이익을 받은 것이 부당하다며 이의를 제기했으나, 당시 담당 교수는 성적 정정을 거부했습니다. 교수는 A 씨에게 “예비군 등 각종 사유를 포함해 개강일에 유고 결석이 원칙적으로 없다고 공지한 바 있다”며, “최종 수료에 영향을 미치는 것도 아니므로 불이익이 아니다”는 취지의 답변을 남겼다고 합니다. 이 사건은 A 씨가 교내 커뮤니티에 글을 올려 밖으로 알려지면서 많은 대학생들의 불만을 샀습니다. 일이 커지자 학교는 결국 A씨에게 원래의 최우수 장학금을 지급, 재발 방지를 약속하며 사과했습니다. 그런데 학생들은 ‘이러한 불이익이 올해 한 번도 아니고 매번 일어나고 있음에도 고쳐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며, 학교의 사과를 믿지 못하겠다고 합니다. 학생들은 왜 학교의 사과를 믿을 수 없는 것인지, 예비군에 대한 불이익이 왜 반복될 수밖에 없는 것인지, 미션100이 알아봤습니다.
법 위에 있는 교수, 법 위에 있는 학교?
예비군에 대한 불이익이 반복될 수밖에 없는 이유, 교수와 학교가 법 위에 있기 때문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애초에 우리나라는 예비군 훈련에 참여하는 학생들의 학업을 보장하기 위해 예비군법 제10조의2에 예비군 훈련을 받는 학생에게 그 기간을 결석으로 처리하거나 훈련을 이유로 불리한 처우를 하지 못하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교수와 학교는 자신이 세운 규정을 법보다 우선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한국외국어대학교에서 A 씨에게 불이익을 준 교수는 A 씨의 이의 제기에 대해 다음과 같은 답변을 남겼다고 합니다. “정규 수업이 아닌 교내 비교과 프로그램에는 예비군법보다 센터 규정이 우선한다”. 자신의 결정과 학교에서 세운 규정을 법보다 우선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례는 한국외대뿐만이 아니었습니다. 지난해 성균관대에서 대학생들의 공분을 샀던 일명 ‘꼰대 사건’이 화제가 된 적이 있습니다. 해당 교수는 예비군 훈련으로 제출해야 할 서류가 있는지 묻는 학생의 정중한 문의에 자신이 세운 규정을 앞세워 학생에게 미출석으로 인한 감점을 줬습니다. 해당 사건 역시 비판 여론이 일자 학교 측에서 결과를 정정한다고 밝혔으나, 이러한 불이익은 2018년 서울대, 2022년 서강대, 부산대, 2023년 한국외대 등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있습니다.
처벌 사례는 많은데 보호는 전무, 예비군은 동네북인가?
국가가 예비군 훈련에 빠진 사람들을 매년 수백에서 수천 명씩 고발하고 있지만, 반대로 훈련으로 불이익을 받는 사람들에 대해 보호를 전혀 제공하지 않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습니다. 국회에서 발표된 자료에 따르면, 국방부가 올해 들어 지난달 초까지 일반 예비군 훈련 불참자를 고발한 건수는 968건으로, 상반기에만 1000건에 육박했다고 합니다. 코로나19 상황으로 예비군 훈련이 축소되며 고발 건수 역시 급감했다가 지난해부터 다시 늘어나는 추세입니다(2020년 117건, 2021년 38건, 2022년 374건).
예비군 훈련 불참으로 처벌된 사례는 수천 건에 이르지만, 국가가 예비군에 참석하느라 사회에서 겪는 불이익에 대해 보호를 제공한 사례는 거의 없습니다. 2017년 이후 대학들의 예비군법 제10조의 2 위반사례 접수 건수와 조치 현황"에 따르면, 국방부에 접수된 예비군 훈련에 따른 불이익 조치 사례는 2022년에 고려대에서 발생한 사례 단 한 건이었습니다. 서울대, 서강대, 성균관대, 부산대, 한국외대 등 여러 대학에서의 불이익 조치가 언론에 보도됐음에도 불구하고, 국가는 예비군 학생들의 권리를 보호하고 있지 않는 것입니다. 불이익이 발생할 때마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불이익을 감내하거나, 교내 커뮤니티에 이를 알려 스스로 자신의 권리를 보호했습니다. 학생들이 학교의 사과와 정부의 말을 믿을 수 없는 이유입니다.
이제서야 신경쓰는 척하는 정치권, 실효성 없다는 비판도 있어
예비군에 대한 불이익이 반복되고, 국가가 학생을 보호할 의무를 저버렸다는 비판이 쏟아지자 정치권은 이제서야 대안을 짜내고 있습니다. 올해 7월, 국민의힘 김성원 의원은 예비군·동원훈련에 참여한 대학생·직장인에게 불이익을 줄 경우 최대 3년 이하의 징역형으로 처벌을 강화한 예비군법·병역법 개정안을 발의했습니다. 현행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2천만원 이하의 벌금을 강화해 예비군의 권익을 강화하자는 취지입니다.
그러나 김성원 의원의 개정안은 실효성이 없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현행 예비군법은 예비군 훈련을 받는 학생이 부당한 처우를 받지 않도록 ‘학교의 장에게만’ 불이익 처우를 금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해당 조항으로 인해 교육 현장에 있는 일선 교직원은 아무런 의무와 책임을 갖고 잊지 않아 예비군 훈련으로 인한 불이익 사례가 계속 발생하는 것입니다. 실제로 대한소아청소년의사회가 한국외대의 교수를 고발했지만, 경찰은 해당 교수를 ‘혐의없음’으로 불송치했다고 합니다. 현행 예비군법이 학생이 예비군 훈련으로 불리한 처우를 받을 경우, 처벌 대상을 교육자 개인이 아닌 학교장으로 규정하고 있어 A 씨의 행위가 범죄 구성요건을 충족하지 못한다고 판단한 겁니다. 정치권이 급히 신경 쓰는 척을 한다고 비판을 받는 이유입니다.
의무가 있다면 보호받을 권리도 있어야
‘뺄 수 있으면 빼는 것이 답이다.’ 입대를 앞두고 있거나 예비군을 가야 하는 사람들 대부분은 이렇게 말합니다. 현역이나 예비군 모두 훈련에 참석해 고생만 하고, 피해만 본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청년들이 의무를 싫어하게 된 사회가 생긴 원인에는 국가가 있습니다. 한창 성장 중인 20~30대 청년들에게 의무만 지우고, 이에 따라 발생하는 불이익을 개인에게 떠넘긴 것이 원인입니다. 그러나 국가는 청년들을 보호할 의무도 가집니다. 청년들에게 의무를 지어주는 만큼 보호받을 권리도 충분히 보장해 줘야 하는 것입니다. 이제는 청년들이 예비군 불이익을 시정하겠다는 학교와 국가의 말을 조금이라도 믿게끔 국가가 나서야 할 때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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