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로자의 날, 어린이날, 석가탄신일로 주말과 이어지는 연휴가 많았던 5월이 지났습니다. 이번주 미션100은 지난 어린이날 연휴에 있었던 안타까운 죽음으로 이야기를 시작해보려고 해요.
5월 5월 다섯 번째 어린이날을 맞아 펜션에서 놀았던 A군은 그날 밤부터 고열과 호흡곤란에 시달렸어요. 다음날 동네 의원을 방문했고 처방약을 복용했지만 차도가 없었죠. 결국 늦은 밤 119에 전화를 걸어 대형병원을 찾았습니다. 구급차를 타고 병원에 연락해 문의하는 과정에서 병상과 의료진 부족 문제 때문에 아이를 곧바로 진료할 수 없다고 이야기하는 병원이 여럿이었대요. 다섯 번째 문의한 병원에서 입원 없이 진료만 가능하다는 조건을 달고서야 진료를 받게 되었고요.
‘급성 폐쇄성 후두염’을 진단받고 치료를 받은 A군은 다음날 새벽 귀가했습니다. 이후 병원에서 처방받은 약을 먹고도 저녁까지 상태가 좋아지지 않자 보호자는 전날 치료를 받았던 병원에 전화를 걸었습니다. 입원이 가능한지 묻자 병원은 전날처럼 “진료는 가능하지만 입원은 불가능하다”고 답했대요. 진료라도 받기 위해 병원을 나서려는데 아이가 쓰러졌고, 또다시 119를 불러 응급실로 이동했지만 A군은 사망하고 말았습니다.
서울은 응급의료 안전지대? “소아는 예외”
A군의 보호자는 왜 아이가 아팠던 날 입원시키지 못하고 서울 한복판에서 헤맸는지 의문을 갖고 있어요. 다섯 번째 병원이 아이를 받아주기 전에 연락했던 다른 병원들은, 야간에 소아응급의료진이 없거나 침상이 없는 상태, 또는 대기환자가 너무 많아서 아이를 빨리 봐줄 수 없는 상황이었대요. 어린아이를 지켜줄 수 있는 응급의료시스템이 서울에서도 제대로 돌아가고 있지 않은 거죠.
‘소아 응세권’ 얼마 안남았다
소아청소년과 의료진 이탈
최근에 소아를 야간에 진료할 수 있는 대형병원들이 연이어 사라지면서 부모들 사이에선 ‘소아과 응세권(응급실+역세권)’이라는 말도 등장했잖아요. 현재 서울에 소아 병상이 따로 있는 대학병원 응급실은 4개라고 합니다. 가뜩이나 적은 응세권은 더 사라질지도 몰라요. A군을 진료했던 의료진은 당시에 아이를 적절히 진단하고 치료한 것으로 알려졌는데요, 사망 소식을 접하고 A군을 담당했던 교수가 사직서를 제출했어요.
이 교수가 마음을 바꾸지 않으면 서울에서 소아 병상이 따로 있는 응급실이 3곳으로 줄어들게 될 거래요. 이 병원은 12명이었던 전공의가 최근 3명으로 줄면서 적은 인원으로 24시간 소아 응급실을 운영하다 보니 의료진이 ‘번 아웃’된 상태라고 합니다. 만약 이 병원의 소아응급실이 버티지 못하고 문을 닫으면 서울에 남아있는 세 곳 응급실에 환자들이 몰리면서 도미노처럼 소아응급체계가 무너질 수도 있습니다. 이미 다른 병원에도 사직을 심각하게 고민하는 소아과 의사들이 많은 상황이거든요. 한 대학병원의 소아응급 교수는 의과대학에 전임교수로 발령을 받았는데도 사직을 결정했다고 합니다. 현장의 의료진들은 갈수록 인원이 줄어 업무 강도가 극한에 이르는 데다가, 소아응급의료체계가 환아를 놓쳐 이슈가 되면 의료진에게 책임을 묻는 상황을 견디기 힘들어 해요.
‘꼭 입원해야 한다, 그런데 입원실은 못준다’는 병원
아픈 아이를 키우고 있는 윤은미씨는 요새 아이를 데리고 소아응급실에 가면 ‘검사 결과가 어떤 상태라도 입원은 불가능하며, 오전 6시가 되면 무조건 병원에서 나간다’는 조건에 동의해야 진료를 받을 수 있다고 말합니다. 이런 조건에 동의하고서 아이를 검사해봤더니 임종 전의 노인보다 염증수치가 두배 이상 높아 패혈성 쇼크가 올 수 있는 긴박한 상태였고, 의료진은 ‘입원이 필수’라고 말했대요. 그래도 입원하지 않는다는 약속을 지켜야 했기에 새벽에 병원을 나와 다른 병원의 번호표를 뽑았죠. 낙상사고로 실려온 다른 아이도 ‘CT상 뇌출혈이 있어도 입원은 없으며 오전 6시 전에 나간다’는 조건 하에 진료가 이뤄지는 걸 목격했대요.
올해 단 33명만 소아과 전공의 지원, ‘폐과 위기’
이런 일들이 일어나는 이유는 소아과 의사가 부족하기 때문이에요. 수련의(인턴) 기간을 마친 의사들은 전공의(레지던트)가 되는데요, 이때 소아과·내과 등의 전공을 선택하게 돼요. 원래도 피부과·성형외과 등에 전공 쏠림이 문제이긴 했지만 최근 몇 년간 소아과 지원율이 급감했어요. 올해 소아과 전공의 확보율은 17%에 그쳤고, 전국의 소아과 수련병원 50곳 중 38곳이 전공의를 한 명도 확보하지 못했어요. 대한소아청소년과의사회의 임현택 회장은 ‘올해 소아청소년과에 전공의로 총 33명이 지원했는데, 내년에는 한 자릿수가 지원할 것 같다’며 4년차가 3년차를, 3년차가 2년차를 가르치는 대학병원의 도제식 교육 특성상 지식전달체계가 무너져 2~3년 뒤면 소아과가 폐과될지도 모른다고 경고했어요.
전공의가 부족한 이유
소아과 전공의 지원율이 2020년부터 급격히 떨어지기 시작한 이유는, 코로나19를 겪으며 소아과 개인병원들의 수익이 급감했기 때문으로 분석됩니다. 등원·등교 조치와 마스크 착용으로 소아들이 자주 걸리는 질환의 발생이 줄어들면서 소아과를 방문하지 않았어요. 이 시기에 문을 닫은 병원들도 많았죠. 2020년, 2021년에 소아과 전문의를 따고 대학병원을 나온 의사들은 구직난에 시달렸고, 의료계는 이런 여파가 전공의 지원율 감소로 이어졌을 거라고 봅니다.
우리나라의 큰 병원들은 전문의보다 인건비가 낮은 전공의를 여럿 두어서 병원을 돌아가게 하는데요, 전공의 지원율이 떨어지면 일손이 급격히 부족해집니다. 게다가 전공의가 미달된 상태에서는 악순환이 반복돼요. 다음해, 또 그 다음해에 지원하는 전공의들이 갈수록 살인적인 스케줄을 소화해야 하기 때문에 더 지원을 꺼리게 되죠.
전문의가 부족한 이유
인력이 부족한 과는 전문의마저 모집하기 힘들어요. 여러 병원들이 소아과 전문의를 고용해서 전공의 부족 문제를 완화하려 해봤지만 충원이 어려웠대요. 병원 입장에서 소아청소년과는 수익이 많은 과가 아니기 때문에 현장에서 필요한 만큼의 인력을 채용하도록 예산을 확보해주지 않는다고 합니다. 어렵게 예산을 더 확보해 인건비를 올려도 지원자가 없고요. 연봉을 높여주더라도 인력이 부족한 과는 그 자체로 업무 부담이 큰데, 소송에 휘말릴 위험까지 커지거든요.
전문의, 전공의 모두 소아과로 불러올 수 있는 대책은?
전공의 부족 문제로 현재 소아과를 담당하고 있는 의료진들마저 소진되기 전에, 의사들을 하루빨리 현장에 불러올 수 있는 대책이 필요해요. 수입이 적은 소아과의 응급의료나 입원진료에 파격적인 가산 수가를 적용해서 병원이 적극적으로 전문의를 고용해 환아를 받도록 만들거나, 소아과 의사들의 인건비를 직접적으로 지원하는 방법이 있어요.
소아과에 더 이상 지원하지 않는 전공의들을 불러모으기 위해서는 소아과의 미래가 밝다는 것을 보여줘야 합니다. 소아과는 처치나 시술을 거의 하지 않고 진찰료로만 수익을 내기 때문에 다른 개인병원들에 비해서 수입이 적은 과로 알려져 있어요. 보건복지부의 보건의료인력 실태조사에 따르면 의원급 병원의 소아과 의사 연평균 임금이 조사에 포함된 22개 과목 가운데 19번째였다고 합니다. 낮은 수입 문제 때문에 대한소아청소년과의사회는 ‘소아과 폐과 선언’을 하기도 했고요, 서울연구원의 자료에 의하면 최근 5년간 서울시에서 가장 많이 사라진 개인병원의 진료과목은 소아청소년과였어요.
소아과 의사들이 여기서 더 줄어들지 않도록 수가 체계를 개선할 필요가 있어요. 이미 소아과 개원의들이 병원을 접고 돈 되는 진료과목으로 떠나면서 대학병원이 아닌 로컬병원에서도 소아과 수요가 폭발한 상태예요. 아침에 아픈 아이를 데리고 동네 병원에 가려고 해도 가는 병원마다 예약이 마감되어 발을 동동 굴렀다는 부모들의 하소연이 줄을 잇고 있어요.
정부는 ‘응급실 뺑뺑이 사망’ 아니라며 소아응급의료 문제 외면?
정부는 뭐하고 있을까요? 보건복지부는 최근 A군의 사망에 대해 “응급실을 전전하다 사망한 것은 아니다”라는 입장을 냈어요. 마치 의료시스템에 문제가 있었던 것은 아니라는 뜻 같습니다. ‘정치하는엄마들’의 활동가 윤은미씨는 “보건복지부가 아동의 사망 장소가 집이라는 점을 강조하며 5곳의 응급실을 돌고 병원 밖으로 내쳐진 아동에 대해 국가의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고 지적했어요.
복지부는 지난 1월, 소아 필수의료 지원대책을 발표했는데요, ①소아암 진료체계 구축 ②소아 응급진료 기반 확충 ③소아 입원진료 수가 개선 ④소아 1차 의료 지원 강화 ⑤어린이 공공전문진료센터 적자 사후 보상 등이 주요 내용입니다. 그러나 의료계 전문가들은 보편적인 의료복지를 위한 대책이 아니라고 말해요. 실효성이 있을 정도의 획기적인 예산이 확보된 사업은 대형병원의 소아진료 적자를 메워주는 정책이 유일한데, 사실상 중증 난치 소아 환자의 생명을 살리는 데에만 돈을 쓰겠다는 거라고 지적합니다.
복지부가 2월에 발표한 ‘소아의료체계 개선대책’에 소아의 입원진료 가산을 확대하는 방안이 들어있었지만, 1세 미만의 아동에게 가산율을 현재보다 20% 늘리는 데에 그쳤어요. 의료계는 ‘저출산으로 1세 미만 인구가 상당히 적어 가산으로 인한 혜택을 누리기에는 무리가 있다’며 사실상 생색내기용에 불과한 대책이라고 비판했습니다. 또한 인력에 대한 획기적인 투자 없이 설비나 센터만 늘리면 인력을 오히려 빨아들이거나 의료진이 부족해 ‘알맹이’ 없는 병원이 된다는 지적도 나왔어요.
전쟁터를 방불케하는 소아과 대란은 이미 충분한 의료 인프라를 갖추고 있다고 생각했던 서울에 사는 부모들에게 까지도 일상의 위협으로 다가왔습니다. 일부 대형병원의 소아 진료 적자를 보상해주는 정책만으로는 지금의 문제를 막을 수 없어요. 파격적인 인건비 대책으로 지금의 전문의, 전공의 인력 문제를 해소해야 해요. 어린이들에게 해야 할 필수적인 투자를 망설이지 말고, 실효성 있는 정책이 빨리 실행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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