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부터 자기 소개할 때마다 팔자를 들먹이게 됐다. 안녕하세요, 못 생기게 태어나 더 못 생겨진 사람입니다. 팔자가 그래요. 암울하고 민망한 말이지만 엄연한 사실이었다. 어릴 때부터 미인 팔자는 못 됐다. 땅딸하고 못 생겨서 집안의 구박데기였다.
본격적으로 못생겨진 시기는 20년 전. 당시 엄마가 운전하던 차가 미끄러져 마주 오던 차를 들이박았다. 다친 사람은 나뿐이었다. 쓰고 있던 안경이 깨져 이마 한가운데에 6cm가량의 자상을 입었다. 성형외과를 전전했지만 세로 방향 흉터라 제거할 수 없다고 했다.
그러다 3년 전 또 불상사를 겪었다. 눈꺼풀 쳐짐을 개선하고자 눈근육 접는 수술을 받았다. 수술 일주일 후 눈이 흉칙하게 어그러졌다. 수술 실을 제 때 풀어야 했지만 골든타임을 놓쳐버렸다. 때 마침 집도의뿐 아니라 전국의 성형외과 전문의들이 폴란드의 국제포럼에 나간 것이다. 의사가 귀국하자마자 수술을 풀었지만 그 전 눈을 되찾지 못했다.
그렇게 두 차례 화를 겪고 난 후 일련의 허무주의가 마음에 깃들었다. 사람 팔자 날 때부터 못 박혔다고 단정짓게 된 것. 자연히 팔자 헤아리는 학문에도 관심이 생겼다. 사주와 서양점성학을 독학하기 시작했다. 하루는 어떤 통계를 보고 이마를 탁 쳤다. 불행한 사람일수록 운명론자가 많고 성공한 자들 가운데는 의지 신봉자가 많다는 내용이었다. 의지를 믿어서 성공한 건지, 성공해서 의지를 신봉하게 된 건지는 알 도리 없다.
어쨌든 사주역학에서 이 꼴이 된 이유가 나오기는 했다. 바로 ‘백호대살’이 낀 날 태어났기 때문이란다. 전생에 남을 때려죽인 사람에게 돌아오는 천벌로, 현생에서 호랑이에게 물려가 끔살당하는 살이다. 오늘날로 치면 교통사고나 수술사고 팔자라고 한다. 백호살이 끼면 다른 데도 아닌 얼굴에 치명상을 입을 가능성이 높아진다. 구구절절이 내 이야기 아닌가.
사주를 공부할수록 모골이 송연해졌다. 을미백호의 날 태어난 친구는 어릴 적 교통사고로 한쪽 시력을 잃었다고 한다. 시주와 연주에 백호살을 하나씩 단 친구는 코 성형이 잘 못 돼 네 차례나 재수술을 받았다 했다. 더는 팔자를 무시하고 살기 어려워졌다.
그래도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지 않은가. 백호살을 물리칠 비책이 있기는 있다. 흔히 손에 칼을 쥐면 백호살을 좋게 탈바꿈할 수 있다고 한다. 그래서 요리사, 펜싱선수, 외과의 등 칼을 잡는 직이 바람직하다. 칼과 저울에 빗대어지는 일, 법무도 좋다. 하다 못해 사회에서 칼과 구실이 같다고 통하는 물건, 이를테면 펜이라도 쥐어야 한다. 글쓰기도 백호살을 퇴치한다.
더는 액운에 휘둘리고 싶지 않았다. 당장 요리사나 변호사, 외과전문의가 될 수는 없는 노릇. 까마득하지만 무언가 쓰고 싶었다. 겉으로는 언제나 무언가 흐지부지 쓰고 있기는 했다. 20대 후반부터 기자로 찌라시 언론사를 전전하다 글쓰기 과외교사로 전직했으니.
백호살을 쳐부수기에는 한참 미흡한 글쓰기였다. 말이 기자지 기자실이나 사무실에 갇힌 신세였다. 기업이 뿌린 보도자료 받아쓰기가 고작이었다. 토사물 주워먹는 비둘기나 나나 뭐가 다른가 싶었다. 글쓰기 과외 역시 남 글을 좋게 꾸며주는 하청업일 뿐이었다. 퇴근하고 내 거 써보겠다고 폼 잡았던 적도 있었다. 무엇이 문제인지 일기 한 편 쓰지 못했다. 밤마다 나를 책망했다. 사기꾼. 협잡꾼. 나한테 글 배우는 아이들이 불쌍하다.
암울하던 마음에 한 줄기 볕이 든 것은 지난 해 어느 날. 아는 사람 하나가 카카오톡으로 여자친구 사주풀이를 부탁했다. 불행히도 그녀는 백호살이 낀 을미일주였다. 괜히 재수없는 말로 듣는 사람 기분을 잡칠 필요는 없었다. 그보다 운수 바꾸는 법을 귀띔했다.
“남들보다 교통사고 더 조심해야 해. 수술이 필요하면 아무 때 말고 럭키데이를 받아. 여친은 파란 양의 날에 태어났는데, 양과 합하는 동물인 말 액세서리를 추천해. 필통에 커터칼이나 눈썹칼을 보관하는 것도 좋아.”
별 거 아닌 조언이었다만 친구는 고마워했다. 문득 그런 생각이 떠올랐다. 꼭 백지나 워드에 각 잡고 써야 글인가. 소설이나 시, 칼럼뿐 아니라 카카오톡 사주풀이도 글쓰기 아닌가.
모름지기 이야기 쓰기란 상상과 말의 미학이다. 사주를 풀며 나는 상상하고 말을 지어냈다. 화를 면할 시나리오를 상상하고, 상대의 기분을 고려해 말의 수위도 조절했다. 이렇게 완성된 사주풀이도 부족하지만 하나의 이야기 아닌가.
돌이켜보면 찌라시 언론사에서도, 과외 학생의 공부방에서도 나름대로 이야기를 썼던 것 같다. 보이지 않는 것을 상상하고, 말을 지어내고. 기자 시절 달에 한 번은 단독기사를 썼다. 기사 쓰기 전에는 어디서 단독을 건질지 상상하고, 기사 쓸 때는 고소당하지 않게 표현의 수위를 조절했다. 과외할 때도 부족하지만 애썼다. 매주 만드는 문제지도 넓은 의미에서 나만의 글이었다. 빠진 부분을 상상해 메꾸고, 어색한 말을 적확하게 바꿔넣는 첨삭 역시 큰 틀에서는 글쓰기의 일환이었다.
신기하게도 자존감을 회복하니 글쓰기가 무섭지 않았다. 지난 해 가을 거의 5년만에 나만의 영화 감상문을 하나 완성했다. 그 뒤 반 해동안 100여 편의 길고 짧은 수필글을 썼다. 준비운동이었다. 이제 처음부터 끝까지 상상으로 지어낸 이야기가 쓰고 싶어졌다. 그렇게 소설을 짓기 시작했다. 한 달동안 네 편의 단편소설이 탄생했다. 나처럼 못 생겼지만 한 편으로는 함함한.
내 이야기를 사람들에게 내놓는 재미도 쏠쏠했다. 몇몇 동무들에게 소설을 보여주고 조언을 부탁했다. 문장이 어색하고, 가독성이 낮고, 이야기의 인과관계가 허술하다는 비판이 돌아왔다. 신출내기 글쟁이에게 참으로 유용한 지적들이었다. 그렇게 매만져주면 어김없이 글이 좋아졌다. 가끔 머리로 수긍하기 힘든 조언도 있었지만 기저에는 배려와 응원이 깔려있었다. 다 마음의 밑거름이 됐다.
대체로 황금기였다만 언짢은 일화도 하나쯤 있었다. 문예창작과를 나와 일찌감치 등단한 자가 주변에 있었다. 내가 딸린 독서모임의 장이었다. 점잖은 데다 남에게 인색하지 않은 호인 이미지였다. 소개팅까지 주선할 정도로 좋게 본 위인이었다. 소설을 하나 보내고 소감을 청했다. 그가 A4 10장을 읽는데 걸린 시간은 컵라면 하나 익는 시간인 4분. 문창과라 읽는 속도가 남다르네 싶었다. 비난조의 메시지가 휴대폰을 울리기 시작했다.
“대체 내가 왜 이런 걸 읽어야 하는 거죠? 글이라기보다 배설물이네요.”
“헐… 정말요? 어디를 고쳐볼까요?”
“아무도 이런 주제에는 관심이 없어요.”
“요새가 취업난인데, 취업준비하는 내용에 아무도 관심이 없다고요? 음...”
“취업 준비 같은 소재는 너무 뻔해요.”
“음… 이거 재밌다는 지인도 있기는 했어요.”
“아니 이걸요?? 믿을 수 없군요.”
“아직 글쓰기가 미숙해요^^; 문창과 나온 것도 아니고 이제 걸음마 단계라...”
“기자 출신 중 김훈 같은 사람도 있잖아요. ㅋ 왜 그렇게 못하죠? 문창과라고 다 글을 쓰지 않아요. 오히려 문창과 나와서 때려친 사람들이 더 많지.”
이쯤 되면 조언이 아니라 조소였다. 어떤 부분이 어떻게 배설물인지 설명도 일체 없고, 김훈과의 차이점을 구체적으로 일러주지도 않고. 등단자가 아니라 노벨문학상 수상자 입에서 나왔어도 사절할 조롱이었다. 할 말은 해야겠다 싶었다.
“왜 김훈처럼 못 쓰냐고요? 말이라고 하세요? 본인은 15년 가까이 전업으로 글만 썼으면서 왜 헤밍웨이나 현진건 수준으로 못 쓰나요? 남에게 가혹하고 자기 자신한테만 관대하네요. 그리고 본인 관심사에서 벗어난 글은 다 배설물인가요? 본인이 세상 모두를 대표해요? 자의식이 심각하게 비대하시네요. 그리고 엉뚱한 데다 갑질하지 마세요. 문창과에서 혹독히 당한 모양인데 왜 그런 못난 관습을 생각 없이 답습하시나요?”
한심한 대화를 마치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 왜 작가 양반은 그리도 고까워했을까. 소설 봐주기가 싫으면 처음부터 거절하면 된다. 설령 소설이 정말로 똥덩어리였대도, 조롱의 수위를 좀 순화할 수도 있었다. 적어도 나는 학생을 말로 그렇게 두들겨 팬 적이 없었다.
문득 기자 시절 날 괴롭혔던 선임이 떠올랐다. 주제에 취재기사 쓴다고 나대지 말고 보도자료 처리나 하라던 쓰레기. 이어 조선 초기 한글 창제를 반대하던 엘리트들도 그려졌다. 어리석은 백성들이 글자를 알면 나라가 망한다며 쌍지팡이를 짚었던 그들.
쓰기라는 행위란 그만큼 거룩하고도 파괴적이다. 자기만의 기사를 쓰는 기자는 업계에서 입지가 달라진다. 글자를 배우고 글을 쓰면 주변과 세상을 바꿀 수 있다. 그래서 혹자는 선택된 소수만이 글을 쓸 수 있다고 여긴다. 장삼이사들이 무언가 써보려 하면 가소로워 한다. 더더욱 목숨 걸고 글을 쓰기로 했다. 꼰대들 배알 꼴려 하는 모습 보기 위해서라도.
아직도 나는 운명론자다. 얼굴이 이 지경이 된 데에 내 잘못은 없다. 다 팔자 탓이다. 마찬가지로 백호살에 맞서고자 글을 쓰게 된 것도 팔자 덕이다. 찬서리 같은 운명을 피하려 했을 뿐인데 어느새 사는 이유를 찾은 것도 팔자 덕. 거기다 쓰기로 밥까지 벌어먹으니 참으로 행운아다. 예전에는 사는 것이 호랑이에게 물려가는 기분이었다면, 지금은 호랑이 등에 올라탄 기분이다. 10년, 20년 후 장담은 못하겠다만 일단 지금을 즐겨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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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이
안녕하세요:) 사주를 본적이 한번도 없는데 이런 이야기를 들으니 뭔가 낯설면서도 굉장히 흥미로워요. 선택된 소수만이 글을 쓴다는 말이 뭔가 괜히 나도 그 소수인가? 같이 생각해 보게 되는 구절이에요. 무엇보다 솔직한 글 적어줘서 감사해요:) (근데 글 평가해준 분 정말...... 흠,,)
최서영
소수만 펜을 잡을 수 있다는 건 기만이죠. 사실은 누구든 할 수 있으니까요.. 작가양반과 충돌했을 당시엔 기분이 별로였지만 지금은 괜찮아졌어요. 나를 죽이지 못하는 고통은 나를 강하게 할 뿐이라는 말 너무 좋습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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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영📓
작가님 반갑습니다🙏🏻 앞으로 작가님 글을 읽게 될 생각을 하니 정말 기대가 되네요 필체만으로도 작가님인지 맞출 수 있을거 같네요! 백호살에 대해서 처음 알게 됐는데 엄청 엄청 무서운 살이었군요 제 사주도 주섬주섬 찾아보러 지금 가려구요 🤣 저도 문창과를 나왔지만 마음 상한 일이 정말 많았어요 글을 멈추게 된 이유 중에 하나였기도 했구요 그런 말들에 멈추기에는 작가님을 찾을 독자들이 훨씬 많을거 같은데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최서영
동명이인 작가님 반갑습니다. 문창과의 경험이 어땠는지 언제 한 번 소상히 듣고 싶네요.. 정제되지 않은 글에 따스한 댓글 달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서영 님 글도 앞으로 기대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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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사생활
월간 사생활 모집 당시 처음 작가님 글을 읽고선 너무 좋았던 기억이 여전히 생생합니다. 솔직하면서도 잘 정제된 글이라는 생각과 함께 스스로를 가감없이 드러내는 걸 두려워하지 않는 분이구나 싶었거든요. 앞으로 서영님이 써내려가실 글이 더더욱 기대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근거 없는 비방의 말에 위축되거나 움츠리지 않으시고 계속 쓰는 삶을 이어나가시기를 바라며, 월간 사생활이 그 디딤돌이 되길 희망합니다. 좋은 글 써주셔서 감사드려요.
최서영
저야말로 월간 사생활에서 얻어가는 바가 많네요..ㅎㅎ 굉장히 우울하고 힘든 시기인데 자존감 팍팍 얻어가고 있어요. 여기 모인 분들은 기본적으로 용기 있는 분들 같아요. 자기 안에 엄연히 우울, 분노, 찌질함이 도사리고 있음을 솔직히 인정하는 사람들이 요새 드물잖아요. 앞으로도 용기 있고 솔직한 글들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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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ANA
불행할수록 운명론자가 많다는 이야기가 공감이 되면서 마음이 한편으로 아프네요..! 저도 운명론자거든요. 매년 사주를 보러 가는데 올해는 보러도 오지 말라는 말을 들었어요. 정말 답답하고 힘들었는데 작가님의 글을 보면서 호랑이에 물려가는 기분이었는데, 지금은 호랑이에 등에 올라탄 기분이라는 말을 들으니 저도 그렇게 마음가짐을 바꾸고 운명을 고스란히 받아들이고 이겨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많은 위안 받고 갑니다 :-) 다음 글도 무척 기대되어요!
최서영
저도 말만 그럴싸하게 써놓고 시시때때로 낙담해요. ㅋㅋ 쿠크다스 멘탈이라 가끔 윤회를 다룬 영성서 따위를 읽으며 위안을 얻어가네요. 그런 말이 나오더라고요. 이번 삶이 시작되기 전, 내 영혼이 무언가 분명히 배워가고자 그에 가장 걸맞는 인생 시나리오를 주체적으로 택한 거라고요. 요새 어떤 고충이 있으신지 궁금하네요.. 조만간 글로 한 번 풀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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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래
안녕하세요, 작가님의 글을 읽으면서 어떻게 이렇게 글을 잘쓰실까 생각하며 읽었는데 소설읽고 함부로 말씀하신 분 이야기보고 너무 기가 막혔네요.... 근데 솔직하게 그 분께 말씀하신것 너무 멋져요...저라면 상처받아서 쭈구리가 됐을텐데...! 작가님께서 글을 더 생명처럼 여기며 쓰시겠다는 다짐이 제게 너무 귀감이되었습니다. 솔직하게 써주신 글, 감사합니다. 계속 써나가시길 응원하겠습니다!!
최서영
쿠크다스 멘탈에 의외로 평화주의자(?)라 저도 대거리를 잘 하지 못하는 편입니다. 그래도 나이들수록 따질 건 따지려고 하고 있어요. 살면서 뭔가 기분이 더러울 때 그 감정을 무시하기보다, 일단 긍정해주려고 해요. 참으로 어렵지만, 나라도 내 감정에 공감해주는 것이 자존감 높이기의 초석인 듯 합니다.. 물론 어두운 감정을 글로 풀어내기 역시 비슷한 의의가 있을 것이고요.. 우리 함께 노력해보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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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트루
글쓰기 모임을 하면서 얻게되는 몇가지 희열은 저와 다른 삶을 살고 계신 분들의 이야기를 이렇게 글로써 접하게 되는 것이랍니다. 서영님의 글을 읽고 차분함 속 대범함을 느꼈습니다. 어떤 분인지, 어떠한 삶을 살아오셨는지 지금 이 한 편의 글로 감히 짐작컨데 사주팔자를 넘어서 서영님이 원하시는 삶 가운데 계시리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앞으로도 서영님의 글 기대하겠습니다.
최서영
2020년은 인생에서 가장 자유로운 시기였는데 2021년이 시작되자마자 또 운명강점기에 갇혀버렸습니다..ㅋㅋ 그나마 월간 사생활이 가장 편안한 공간이네요.. 다들 마음에 까닭모를 우울, 환부없는 고통을 느끼고 여기 오셨으리라 짐작해봅니다.. 우리 모두 글을 쓰며 운명을 쥐락펴락 휘어잡아 봅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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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방
글이 독특하고 재밌어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저도 사주에 백호살이 있다고 들어서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펜으로도 막아진다니 희소식이네요. (할말은 하신거 멋져요)
최서영
개인적으로 재밌는 글을 지향하는데, 재밌으셨다니 뿌듯합니다.. 백호살답게 힘있고 생동감 넘치는 글 기대할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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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R
글에서 강하고 멋진 에너지가 느껴져요. 어떤 상황이었든 스스로의 힘으로 돌아와 다시 쓰시는 거잖아요. 힘과 의지에 감탄했습니다. 저도 인생 한치 앞을 몰라 답답할 때 처음으로 사주를 보러갔던 기억이 있어요. 지나고나니 큰 도움이 되지 않았던 것 같아서 이제 안 가야지! 하다가도 인생 막막해지면 꼭 생각나더라고요. 불행할수록 운명론자라니 정곡을 찔려서 아프지만 다들 그런거였구나 나쁜 안심을 하게되네요. 멋진 글 감사합니다.
최서영
인생에 운명이 실제로 많이 작용하기도 하는 거 같아요. 개인적으로 의지로 삶을 다 개척할 수 있다는 말은 신화 같아요. 어쨌든 사주 생각날 일이 없을만큼 만사 형통하시길 기원해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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