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구수필] 1월 23일

2024.01.31 | 조회 10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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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구편지

춤추는 거북이 무구가 편지를 보내드립니다.

흙먼지가 폴폴 날리는 비포장도로를 한 시간 정도 차를 타고 가서 내리니 가장 먼저 소똥 냄새가 코를 찔렀다. 이곳은 라오스의 방비엥에서 30km쯤 떨어진 작은 시골 마을. 이름도 깊은 산 속 마을이란 뜻을 가진, 내가 살면서 처음으로 방문한 오지였다.

처음 마을에 들어가기 전에 우리는 NGO 단체에서 몇 년 전 만들어준 학교에서 아이들을 만나게 될 것이라고 안내받았는데, 정작 가보니 그날은 마을 잔치가 있다며 학교 문을 안 열었단 답을 들었다. 학교라고 말은 하지만, 지면보다 살짝 높은 단 위에 세운 기역 모양의 작은 건물 하나, 그리고 그 앞에 약간의 공터를 둘러싼 나무 울타리가 학교라고 불리는 공간의 전부였다. 그 공터 곳곳에 소똥 더미가 쌓여있었다.

닭들이 제 새끼들을 데리고 멋대로 돌아다니고, 들개도 몇 마리 공터를 휘젓고 있었다. 외지인이 마을로 들어온 것을 보고 들은 마을 아이들이 조금씩 학교로 모였다.

 

우리는 시내에서 미리 그들에게 나눠줄 쌀 바게트를 사 왔다. 바게트를 길쭉하게 반으로 잘라서 그사이에 연유를 듬뿍 발라 아이들에게 나눠주었다. 아이들과 함께 온 엄마들에게도 하나씩, 그 자리에 모인 사람들에게 하나씩은 꼭 돌아가도록. 받은 자리에서 바로 먹는 아이들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먹지 않고 그대로 들고 있었다. 간혹 미리 받은 것을 어딘가에 숨겨두고 다시 받으러 오는 사람도 있다고 했다. 하지만 그런 욕심조차도 못 부려보는 사람이 대부분인 것 같았다. 어떤 엄마는 우리가 나눠줬던 빵을 담았던 비닐봉지와 다 쓴 연유 캔을 달라고 했다. 그것이 필요하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나는 그것을 그에게 주었다.

빵을 나눈 뒤엔 공터에서 잠시나마 아이들과 간단한 게임을 했다. 라오스어-한국어 인사말 노래를 부르기도 하고, 작은 종이 위에 여러 사람이 협동하여 올라가는 게임, 사회자가 숫자를 외치면 그 수만큼 그룹 짓는 게임 등 짧은 활동들이었다. 나는 게임에 직접 참여하지는 않고,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해 남아있는 빵과 연유 캔을 지키며 학교 건물 단 위에 앉아서 그 풍경을 바라보았다.

 

한가지 질문이 떠올랐다.

여기 아이들은 어떤 꿈을 꾸며 살까?

질문을 하기가 무섭게 어떤 대답이 떠올랐다.

, 바게트 원 없이 먹어 봤으면 좋겠다.’

나는 이 마을에 오기 전에 숙소 앞에서 햄과 치즈, 채소와 소스를 담뿍 넣은 샌드위치를 점심용으로 미리 사서 차 트렁크에 넣어왔다.

이 아이들이 자기 삶에 대해 어떤 감정을 느낄까, 어떤 감각이 있을까, 삶은 가치 있다고 여기며 살고 있을까, 하나둘 답 없는 질문이 쏟아져 나오며 동시에 눈물도 쪼르륵 나왔다.

너는 존귀하고 소중한 존재라고, 그 한마디라도 전하고 싶다는 마음에 바게트와 연유 캔을 바리바리 싸 들고 덜컹거리는 찻길을 견뎌내며 그 자리까지 왔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나에겐 어떤 말이, 내 입에 들어 있는 말이 아무것도 없었다.

나고 자란 그 마을이 자신의 인생과 세계의 전부인 줄 알고 살아갈 아이들. 그들을 위해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이렇게 빵 들고 몇 번 찾아가는 것이 최선인 걸까? 쉽게 답이 나지 않는 질문 앞에 나는 여전히 먹먹한 마음으로 앉아있다. 언제쯤, 이 질문의 답을 찾을 수 있게 될까.

 


 

안녕하세요, 무구입니다:)

그동안 무구수필을 진행하며 한 해의 명확한 주제를 두지 않고 그때그때 수필을 적어 발송하곤 했었는데요, 이번 해에는 조금 더 분명하게 하나의 주제를 가지고 수필을 작성해 보려 합니다. 올해의 주제는 이번 달 기억에 남는 한 장면이에요. 매달 말일에 한 달을 돌아보며 가장 기억에 남는, 혹은 가장 기억에 남기고 싶은 제 삶의 한 장면들을 여러분과 공유해보고자 합니다.

그리고 여러분은, 이번 달 삶 속에서 어떤 장면이 가장 기억에 남으셨나요? 저에게도 언제든지 알려주세요. 발송된 글의 댓글, 혹은 제 이메일 marywell@naver.com으로 보내주세요. 짧지만 깊은 삶의 순간들을 구독자분들과 함께 공유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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