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구수필] 2월 10일

2024.02.29 | 조회 9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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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구편지

춤추는 거북이 무구가 편지를 보내드립니다.

결혼하고 처음 맞이하는 설날. 결혼하고 광주로 이사한 후에도 수도권으로 올라갈 일이 종종 있어서 인천집에 가는 것이 그리 새삼스럽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동안의 방문이 온전히 가족들과만 보냈던 시간은 아니어서, 이번에는 명절을 핑계로 하루를 충분히 가족과 시간을 보내자고 마음먹었다. 맛있는 음식도 먹고, 카페도 가고, 다 같이 볼링장에 가는 정도의 가벼운 계획이었다. 계획이야 늘 오전 일찍 나가서 이것저것 하자고 말하곤 하지만, 정오쯤에야 가족들이 모두 채비하고 집을 나섰다.

어릴 때부터 명절에는 대부분 인천에 살고 있지만 평소엔 자주 보기 힘든 친척들을 만나는 날이었다. 아빠 쪽은 팔촌 할아버지 댁을 방문했다. 가서 특별히 하는 것은 없다. 얼굴 뵙고 인사하고, 준비해 주신 용돈 받고, 밥 한 끼 맛있게 먹고 오는 것이다.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는 작은외삼촌이 결혼할 때부터 쭉 함께 살아왔는데,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신 뒤에도 외할머니는 여전히 정정하셨다. 이모들과 사촌 언니, 오빠, 일찍 돌아가신 큰외삼촌네 가족들도 명절이면 다 외할머니가 계신 외삼촌 집으로 모였다. 설이나 추석은 그 집에서 사촌 동생들을 만나 노는 날이었다.

시간이 지나며 당연하게도 이 관행은 바뀌었다. 작년에는 팔촌 할아버지의 부고를 들었다. 외할머니는 코로나가 터진 이후로 점점 병세가 나빠지셔서 요양병원에 들어가셨다. 그 후로 외삼촌도 이전보다 더 작은 집으로 이사 가셨다는 소식을 들었다. 나는 작년에 결혼했고, 이제는 내가 광주에서 인천을 방문한다.

이제 따로 찾아가는 친척 집은 없지만 그래도 명절이니 가장 먼저 요양병원에 계신 외할머니를 뵈러 갔다. 그 후엔 김포에 있는 횟집에 가서 평소였으면 엄두도 못 냈을 가격의 생선회와 구이, 탕까지 야무지게 챙겨 먹고, 다시 인천으로 돌아가 카페에 갔다. 우리가 고른 곳은 중구청 앞에 있는 카페였는데, 엄마의 오랜 친구가 운영하는 곳이었다. 사실 그 동네는 엄마, 아빠의 젊은 시절 데이트 장소였고, 우리 부부의 결혼사진 촬영 장소이기도 했다. 내가 좋아하는 동네의 카페에서 가족들이 한자리에 앉아 각자 개성이 묻어나는 음료를 골라 주문했다. 조금 지나서 사장님이 우리에게 다가왔다. 언제 이렇게 많이 컸냐는 인사말과 함께 세월의 흔적이 느껴지는 낯익은 얼굴을 오랜만에 마주했다.

카페에서 조금 걸어가면 넷째가 이번에 취직한 학교가 있었고, 바로 옆에 자유공원이 있었다. 산책삼아 다 같이 공원을 향해 갔다. 계단을 올라 공원 부지에 들어서니 높은 곳에 서있는 맥아더 장군 동상이 보였다. 아빠는 공원과 동상에 관련된 역사적 사실들을 우리 앞에서 줄줄이 읊었다. 가족들 대부분은 관심 없어 보였는데, 단 한 사람, 남편만큼은 눈을 반짝이며 아빠의 역사 강의에 호응하고 있었다. 

점심을 든든히 먹은 탓인지 다들 딱히 대단한 저녁 메뉴가 떠오르지 않아 고민하다가 아빠가 근처 시장의 유명한 닭강정을 떠올렸다. 시장에 가족 모두가 좋아하는 공갈빵 집도 있으니 두 가지를 다 사 먹는 것이 우리의 계획이었으나, 아쉽게도 두 가게 모두 문을 닫았다. 그 대신 다른 주전부리를 몇 가지 사고, 엄마가 시장가는 길에 지나쳤던 중고의류 점에 가보고 싶다 해서 우리는 다 같이 우르르 가게로 들어갔다. 옷 가격은 무게를 달아 계산하는 방식이어서 생각보다 저렴했다. 각자 마음에 드는 옷을 편하게 고르고, 셋째가 이번에 성과급을 받은 기념으로 계산했다. 이미 날은 한참 전에 어두워져 있었다. 다들 양손에 하나씩 커다란 옷 봉지를 들고 집에 가면서 볼링장은 이번이 아닌 다음 추석을 기약했다. 

집에 돌아와 각자 산 옷을 입어보고 구경하며 만족스러웠던 쇼핑을 기념하고, 볼링장에 못 간 대신 주전부리를 먹으며 집에 있는 보드게임을 했다. 숫자를 생각하며 계산하는 게임, 순서를 나열해서 맞추는 게임, 그림을 빠르게 찾아내는 게임, 나무 블록을 떨어지지 않게 쌓는 게임.... 여럿이 거실에 동그랗게 앉아 다양한 보드게임을 했다.

나는 다음 날 새벽 일찍 다시 광주로 내려갈 계획이어서 더 놀고 싶은 마음을 내려놓고 평소보다 일찍 잘 준비했다. 다른 가족들보다 먼저 씻고 미리 작별 인사를 하고 일기를 쓰고 잠자리에 누웠다. 하루를 돌아보니 그동안의 명절과는 아주 달랐지만 그만큼 편하고 즐거운 시간이었다. 몇 년 전만 하더라도 가족과 이런 시간을 보낼 수 있을 거라고 상상도 못 했었는데.

신혼집을 광주로 한 것은 남편이 아닌 내가 적극적으로 제안한 결정이었다. 결혼을 준비할 때쯤에는 그동안 살아온 원가족과 함께하는 일에 한계를 느끼고 있었다. 오래 염원했던 새로운 가족을 이루는 일의 성취로 큰 기대와 기쁨이 있기도 했다. 그래서 고향을 떠나 새로운 도시에서 자리 잡는 일에 큰 거리낌이 없었는데.

처음으로 인천에 살지 않는 것이 아쉬웠다. 어쩌면 즐거웠던 이 하루는 결혼과 타향살이의 전제조건 안에서만 이뤄질 수 있는 것일지도 모르는데, 마치 그것이 내가 어디선가 흘려서 잃어버린 물건이 된 것 같은, 그래서 원해도 다시는 찾을 수 없는, 소유할 수 없는 것이 된 기분이었다.

정확한 이름 모를 감정에 휩싸여 눈물을 쪼르륵 흘리다가 그 모습을 금세 남편에게 들켜버리고 말았다. 말한 적 없지만 그는 내 마음을 알았는지, 나를 품에 안고 토닥이며 말해주었다. 나와 함께 살아줘서 고맙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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