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무구 홍참빛입니다. 두 달 연속으로 수필이나 픽션이 아닌 편지로 인사를 드리게 되었네요. 이래도 되나? 싶다가도 안될 건 또 뭐야? 하면서 일단 키보드 자판을 눌러보고 있습니다. 무구편지-무구수필을 시작한 지 얼마나 되었나 돌아보니 벌써 올 해로 4년차가 되었더군요! 꽤 오랜 기간 제 삶의 다양한 사건들을 중심으로 글을 써보고 있는데, 이것이 꾸준히 쌓여 책도 만들고 때론 공연도 만들고, 새로운 만남과 기회를 생성한다는 사실이 놀라워요. 그리고 이 일은 제 글을 읽어주는 사람, 독자가 존재하기 때문에 이뤄지는 것이기에 겸허해지기도 하고, 감사하기도 하고, 쉽게 설명하기 어려운 감정을 느낄 때도 있습니다.
솔직하게 말하자면요, 요즘 제 일기를 다시 읽어볼 때 쓸만한 것이 마땅하지 않다는 판단이 듭니다. 모든 것을 지면으로 자세히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지난 달에 예기치 못하게 남편이 대학 졸업 이후 삼 년 가량 하던 일을 그만두게 되었고, 그 여파를 온전히 맞는 시간을 보내고 있어요. 경제적인 부분은 부차적이고, 그동안 믿고 지켜왔던 가치들이 흔들리는 경험을 하다 보니 마음과 영혼이 시름시름 앓고 있는 시간인 것 같아요. 이럴 땐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제가 아닌 누군가의 이런 이야기를 들을 땐 쉽게 이렇게 해봐, 저렇게 해봐, 했던 제 모습이 생각나기도 하고, 정말 이럴 때는 아무 것도 하고 싶지 않아진다는 사실을 직접 경험하며 남들을 쉽게 판단했던 과거의 제 모습을 부끄러워 하기도 했습니다. 시간이 지나며 사건에 대한 기억과 판단, 해석이 조금씩 명료해질 거라고, 앓았던 것들도 괜찮아질 수 있을 거란 막연한 기대가 있기는 하지만, 그것 마저 쉽지 않네요.
저는 올해 초부터 남편과 함께 상담을 받고 있었는데요, 공교롭게도 남편이 사직을 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상담 마지막 날이 있었어요. 상담 선생님도 그동안 꾸준히 상담을 진행하며 많이 좋아지고 있었는데, 갑작스레 저희 가정에 이런 일이 일어난 것이 유감스럽다고, 이럴 때는 어쩔 수 없다는 얘기를 하시더라고요. 폭풍이 몰려올 땐, 그저 서로 껴안고 엉엉 울면서 버티는 수밖엔 없는 것 같다고 말이에요. 버티라. 이 말이 어쩔 수 없다는 것을 알지만, 그 말이 이제는 너무 듣기 싫다고, 지겹다고 생각만 했어요. 선생님 앞에서 미소 지으며 그쵸, 삶이란 게 그렇죠, 사회성 좋은 얼굴로 대답하기는 했지만요. 저와 남편은 그렇게 폭풍 속에서, 서로를 붙잡고서 버티며 지내는 일상을 보내고 있답니다. 때론 서로가 도움이 되지 않기도 하고 마치 우리 두 사람이 서로의 적인 것 양 끝장을 볼 때까지 싸우기도 하지만, 그래도 다시 좋은 친구이자 동반자, 지지자로 지금의 시간을 함께 버티고 있답니다. 아무래도 전 정말 잘 결혼한 것 같아요.
삶이란 것이, 고난이 파도처럼 밀려왔다가 다시 멀어지고, 또 한 번 경험해봤다고 다시는 안 겪는 것이 아니라 또 찾아오고, 또 찾아오고, 그런 거라고. 최근 관계가 생긴 인생 선배님께서 말씀해주시더라고요. 그 선배님의 삶을 제가 오래 지켜본 것은 아니지만, 희끗한 머리칼과 얼굴에 새겨진 주름과 인상, 단단하면서도 소녀 감성을 간직하고 있는 목소리를 들으며 생각했어요. 그래, 삶이란 그런 것이지, 원했던 것은 아니지만 어쩔 수 없지. 별로 좋아하는 말은 아니지만 피할 수 없다면 즐겨볼까? 하지만 피할 수만 있다면 당장이라도 삶의 고난의 꽁무니만 보여도 멀리멀리 도망쳐버리고 싶습니다. 불가능하다는 것을 아니까 한숨 내쉬어보고 버텨보는 것이죠. 좋아하는 것들을 붙잡아서 간신히 힘을 내어보면서 말예요.
보고 싶었던 그림을 보러 옆 동네에 다녀오고, 천천히 걸어서 영화관에 가고, 좋은 생각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강의를 듣기도 합니다. 그리고 좋은 이야기를 담고 있는 좋은 책을 찾아서 읽고 생각하고 고민하며, 나도 언젠가는 지금의 내 삶 이야기를 잘 녹여내 좋은 이야기를 만드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소망해봅니다. 그게 언제가 될까요? 제가 그런 사람이 될 수 있을까요? 사실 그 소망에 쉽게 답을 못하고 점점 안으로 자꾸만 쪼그라들지만, 그래도 언젠가는 그렇게 될 거라고 믿어보려해요. 믿음이란 건, 그런 것이니까요. 당장 보이지 않더라도 그렇게 될 것이라고 믿는 것이 믿음이니까요.
다음 달 말에는 어떤 글을 써서 보낼 수 있게 될까요? 아직 저도 장담을 못하겠지만... 그래도 즐겁게 읽어주시기를 기대해봅니다. 저도 폭풍 같은 이 여름날을 나름의 방법으로 잘 버텨볼게요. 좋은 이야기를 읽고, 믿고, 좋은 사람들을 만나 이 시간을 함께 버텨보면서, 조금 더 단단하게, 저 다운 삶을 살아보겠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언제든 제가 답장을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 알고 계시죠? 흐르는 땀이 생명의 증거로 여겨지는, 기쁜 여름 삶이 되시길. 이만 총총 글을 맺을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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