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가 남원에서 만날 수 있냐고 물었다. 남원. 살면서 한 번도 가보겠단 생각을 해본 적 없는 도시였는데, 길을 찾아보니 집에서 한 시간 거리였다. 춘향이가 이도령과 여차저차 결국엔 행복하게 살게 되었단 이야기 말곤 내가 남원에 대해 아는 것은 하나도 없었다.
행선지를 결정하고 집 어딘가에 있던 남원 이야기를 담아둔 잡지가 떠올라 급하게 집어 들고 차에 올라탔다. 옛적부터 이 도시엔 전쟁이 많았다는 얘기와, 춘향전을 재해석한 소설을 담아둔 파트를 꼼꼼히 읽었다. 읽으면 읽을수록 남원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추천받은 집에서 추어탕을 사 먹고, 북카페에 갔다. 남원에 간 진짜 목적은 이곳이었다. 이곳을, 이곳의 사람을 내게 소개해 주고 싶다며 친구는 서울에서 이곳까지, 그 밖에도 몇 도시를 거쳐 가며 이 자리에 나와 남편을 초대했던 것이었다. 여차하면 애매해질 수도 있었던 상황이 부드럽고 편안하게 흘러갔고, 산미가 있는 커피를 내려준 사장님은 처음 보는 우리 부부의 이야기를 경청해 주셨다.
시간이 흐르는 줄도 모르고 대화를 나누다가 친구가 서울에 가야 할 시간에 맞춰 우리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음에도 편하게 만나자며 작별 인사를 하고 남원에서 다시 광주로 차를 타고 가는 길. 우리는 익숙하게 라디오를 켰고, 평소라면 바로 다른 채널로 돌렸을 국악기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남원에서라면, 이 소리를 듣는 것도 괜찮은 것 같아서.
해는 슬슬 넘어가고 있었고, 빛이 차창 안으로 잔뜩 들어와 창문에 붙어있는 필름으론 열기가 가려지지 않았다. 손 그늘을 만들어 얼굴을 가렸다. 라디오에서는 이내 국악기 소리가 끝나고, 신청자의 사연과 함께 또 다른 노래를 틀어주었다. 우리는 라디오 소리는 배경으로 두고 남원에서의 여운을 이야기하며 두런두런 언젠가 이루고 싶은 우리의 모습을 상상하고 있었다. 언젠가 우리만의 공간을 만들자. 그곳에서 글도 쓰고 나무도 다듬고 커피와 차도 마시며 사람들을 초대하자, 그렇게 나이 든 어른이 되어가자. 그러다 새로 흘러나오는 노랫소리에 나는 다시 귀를 기울였다. 집으로 가는 길엔 터널도 여럿 있어서, 앞으로 쭉 뻗어나가는 고속도로를 달려가다가도, 문득문득 어둠을 만나다 다시 햇빛을 만났다. 그늘과 빛의 반복 속에 음악이 흐르고 있었다.
<Splendor in the Grass> - Pink Martin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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