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김해경

무드에 관하여 ep.7

밤의 무드

2023.06.22 | 조회 22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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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성과 해체

에세이 프로젝트 <물성과 해체>

밤의 무드

 

ⓒ 차서영
ⓒ 차서영

쓸 말도, 할 말도 없을 때. 물끄러미 하늘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리운 얼굴 하나 없는 이 밤에, 나는 무어라 글을 쓰려 했던가요. 식어가는 술잔 속엔 이국의 언어가 떠돌고, 사람들의 눈은 밤보다 더욱 깊어갑니다.

관찰자가 되려고 했습니다. 내가 궁금한 건 이토록 두터운, 세계라는 피복 안에 숨겨진 마음이란 것이었지만 그것은 퍼석퍼석한 여름 사과의 과육보다도 쉽게 으스러지고 있었고, 한때는 사랑에 모든 걸 바치려 했던 나도 빈 정거장에 서서 몇 번의 기차를 일부러 놓친 후에야 사랑이란 걸 깨달은 다음이었습니다.

담배는 필 줄 몰라요. 벤치에 앉아 있던 노인의 희끗한 머리 위로 하얀 연기가 나선을 그리며 부풀 때, 그 속에선 비가 내리고 있었습니다. 점점 더 거세지는 빗줄기를 입을 벌려 받아 먹는 오래된 아이가 하나 있었습니다. 노인은 성장점이 훌쩍 지난 그 아이의 나무 같은 몸덩어리를 껴안고 이따금 천둥이 되었고, 아무런 말도 할 수 없는 자식들이 찾아와, 조용히 내일을 펴드리고 가곤 했습니다.

당신의 이별에도 내일이 있다면, 그것은 밤마다 몸집을 키울 것이지만 한 번쯤은 쓰다듬어 주세요. 그러면 그 녀석도 귀염을 떨면서 한 번쯤은 당신의 눈물을 닦아줄 테니까요.

어떤 말도, 어떤 글도 떠오르지 않는 때. 나는 마침내 관찰자이기를 포기하고 다시 허전한 이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혼자 불을 켜고 혼자 밥을 차리고 혼자 술잔을 기울이는 모든 밤. 창밖에 심어둔 사과나무엔 여전히 아무것도 없지만 나는 이렇게 친해지고 있어요.

언제 끝날지는 모르겠어요. 언제 끝낼지도 모르겠어요.


 

"누나의 사진과 나의 글, 생각만 해도 좋지 않아?" <무드에 관하여>는 차서영 작가의 사진과 김해경 작가의 글로 구성된 사진에세이 단편입니다. 매주 수요일과 금요일 밤에 찾아옵니다. 

 

에세이 프로젝트 『물성과 해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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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프로젝트 『물성과 해체』는 다양한 예술 분야의 사람들이 자신만의 방식으로 풀어낸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우리는 그 어떤 장르보다 자유로운 형식을 가진 에세이를 통해서 이야기할 것입니다.


때로는 희망차고 때로는 비참할 이야기. 그러나 아마추어처럼 달려들고 프로처럼 진지할 이야기. 변화가 두렵지만 변화해야 할 때도, 견디는 게 지겹지만 견뎌야 할 때도, 우리는 쓰고 있습니다. 그것이 우리의 삶이기 때문입니다.


네, 우리는 영원히 쓸 것입니다. 그리고 영원히 달라질 것입니다. 견딜 때보다 벗어날 때 더욱 성장하는 가재처럼, 벗어남이 무한하다면 영원히 살 수 있는 것처럼, 영원처럼 살고 싶기 때문입니다. 예술처럼 영원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만든 이야기 궁금하지 않으신가요? 


『물성과 해체』의 공간으로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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