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앙같은 눈보라 속 너와 나는 ,
아마도 절대 얼어붙지 않을 것이다.
춤추는 청춘을 얼릴 수 있는 빙하기는 이제까지 단 한 번도 없었으니까!
결국 텁텁한 사랑 같은 그 무언가 사랑 언저리의 그 어떤 것으로 우리의 춤이 전락하더라도, 그냥 기다리는 거예요. 재미없는 사람들에게 구태여 설명하면서도 춤은 멈추지 않을 테니까.
재앙은 말랑하고 연약한 우리 하루를 덮친다. 아무도 대비하라 하지 않았고 어깨 너머로도 본 적이 없건만, 내딛는 땅이 갈라지며 뒤집히고 굉음을 내던 하늘이 엄청난 질량으로 덮쳐오며 재앙은 시작된다. 디스토피아 속에도 눈을 맞추었다면, 그게 내가 그토록 찾아 헤매던 사랑일까?
와, 춥다. 이런 거, 영화에서나 봤던가? 아니, 영화서도 이런 연출은 없다. 그런 도로 위로 날듯이 미끄러져 단숨에 내 앞으로 온 너, 온통 얼어붙은 줄 알았는데, 아직 이런 온기를 내뿜는 사람이 남아 있었나. 뿌리치기 힘든 온기. 그 옆에서 몸을 녹이다 우연히 마주친 눈동자가 이상하다. 지난 설산의 토끼와 사슴과 들개와 꽁꽁 언 뾰족뾰족 가시나무를 눈동자에 담아왔다. 출렁이는 눈망울이 잠시도 얼 틈 없이 설산의 정수를 흘려댄다. 고민 없이 손을 잡았다. 그랬더니 따뜻했다. 너는 나의 냉기에 잠시 움츠러들었다가, 이내 내 어깨까지 덥히려 와락 껴안는다. 용서를 빌 틈도 없이 나는 녹는다. 그렇게 기다림이 시작되었다. 한 철 세대도 시작되었다. 사랑이란 또 다른 디스토피아가 열렸다.
첫사랑으로는 이 노래를 이해할 수 없다. 일생에 가장 낭만적인 사랑은 첫사랑이겠지만, 그런 풋내나는 첫사랑으로는 이 영화보다도 낭만적인 노래를 음미할 수 없다. 남자와 여자가 이름을 바꿔가며 앞다투어 열어주는 꽁꽁 얼어붙은 빙하기를 수차례 겪고 나서, 불꽃이 아닌 온기를 지닌 사람의 눈동자를 그리워하기 시작할 때, 그때쯤부터는 이 노래를 듣기에 알맞게 고립되었다고 볼 수 있다. 영화가 영화가 아닐 만큼의 외로움에 절절 울어봐야, 덤덤히 새 영화를 쓸 수 있다. 사랑에 사람에 울다 지쳐 결국 그렇게 꽁꽁 얼려 봤더니 그 끝엔 다시 사랑이 얼마나 아름답던가. 그 온기가 다시 얼마나 달콤하던가. 사랑에 구사일생 한 젊음이 다시 사랑을 노래하는 것은 이토록 아름답다. 하나도 어리석지가 않다. 그 자체로 사랑스럽다. 그 자체로 해피엔딩이다.
글 쓰는 이들에게 사랑은 여름날의 장맛비 같은 건가 보다. 누구나 알지. 사랑이 살아가는데 얼마나 중요한 건지. 그러나 너무 많이 알게 돼서, 한 번 짓물려버리면 어쩔 줄 모르는 마음도 신경을 써주나? 그런 마음은 어디 가서 치료를 받나? 물성과 해체에서 새롭게 선보이는 강나리의 에세이는 이런 물음에 답할 수 있을 것 같다. 그가 쫓아갔던 음악에 우리도 몸을 풀고 자유롭게 헤엄치며, 사랑에 대해 배워 보자. 또 아는가. 지루했던 여름인 줄로만 알았던 오늘에 새로운 길이 보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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