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이광연

비틀거리고 있습니다 ep.8

사람, 꽃

2023.07.04 | 조회 32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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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성과 해체

에세이 프로젝트 <물성과 해체>

친애하는 당신에게

 

당신이란 낱말을 풀어보면 마땅히 내 몸과 같은 사람이란 의미래요. 당신께 편지하는 오늘, 당신을 제 자신과 같이 여기는 마음으로 스스로 어깨를 토닥이며 적습니다.

축하해요. 새 보금자리로 가신 일. 그곳에 거하기까지 당신의 노고에 제 마음 담아 진심으로 축복합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안전히 살기위해 애쓰는 삶. 그런 숨을 살아내는 우리에게 집이란 도대체 무엇일까요. 조심스레 답한다면, 나와 너라는 독립된 개체를 넘어 우리라는 공동체로 새롭게 언약을 맺고 사랑의 모습을 완성해 나가는 안식처라고 생각해요.

그런 안온한 마음으로 거했던 보금자리의 기억이 제게도 있습니다.

방 두 칸짜리 열 평이 간신히 넘는 조촐한 신혼집이었어요. 두 사람이 세 사람으로, 종래에는 네 사람이 되어 살기에 비좁았지만 어머니 집을 떠나 다 자라난 독립된 인격체로써 살아내는 첫 출발이었기에 그 곳도 감지덕지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매일 밤 좁은 방 안을 대부분 차지한 침대에 지친 몸 누이면, 우리는 아이러니하게도 행복으로 가득 채워졌어요.

삶의 새로운 국면을 맞게 한 결혼이란 이름의 관계는 막연한 미래에 대한 두려움과 둘이 함께라면 어떤 역경도 헤쳐나가리라는 소망, 사랑하는 사람들을 지키기 위한 막대한 책임감으로 헛헛했던 우리라는 이름을 풍성하게 만들었습니다.

비록 건물이 먹은 세월만큼 여기 저기 노후되고 열악해 갖은 벌레들과 곰팡이와 같이 사는 신세였지만 확정된 인생의 동반자와 비로소 하나됨을 이루어나간 장소였기에 그 시절 벅차던 첫 마음은 아직도 생경합니다.

이젠 힘들었던 기억은 모두 흩어졌고 어렴풋이 좋은 기억만 남은 지난 일입니다. 희미한 추억 속에 저희 부부의 보금자리를 의미있게 만들어주신 집 주인 할머니가 생각납니다. 할머니는 늘 저희 부부를 보며 젊은 사람들이 아이들 키우며 고생한다고 격려와 따뜻한 마음을 나눠주셨어요.

아이들이 아장 아장 문을 나오면,

“우리 인간 꽃들이 나왔구나! 무럭 무럭 자라니 보기좋다!”라고 하시며 더 없이 흐믓한 표정으로 자라나는 새싹들에게 어여쁜 말을 심으셨습니다.

인간 꽃들. 사람과 사람 사이에 난 존재가 꽃이 되다니. 자라나는 존재들에게 이보다 더한 찬사가 있을까요. 그래요, 어쩌면 우리는 꽃으로 태어났습니다. 꽃으로 바라봐주는 사람으로 인해.

단단한 껍질을 깨고 온 힘을 다해 싹을 움틔우고, 짓누르는 중력을 바들바들 떨리는 몸으로 이겨 줄기를 올려서, 온갖 궂은 날씨를 견뎌내 비로소 맺힌 꽃망울로 이름 붙여졌습니다.

그 누가 뭐라해도, 조금 진부할지라도 이 편지의 오롯한 발화자로써 저는 지금 말하고싶어요.

당신이란 찬란함. 우리라는 한 철에 핀 살아있는 것만으로 아름다움의 이유가 합당한 당신이 이 울타리 안에 심겨있다고. 언젠가 맞이 할 낙화의 때. 흐드러져야 절경을 이루는 마지막을 기다리며 지금의 어떤 시간도 잠잠히 이겨내고있다고.

음울한 장마의 시간은 활짝 개어 맑은 하늘이 오고나서야 어둔 시절의 이름을 부여받습니다.

우리 울타리에 드리운 그늘도 결국 지나가요.결국 맞이한 쨍쨍한 햇살의 향기로, 활짝 피어난 꽃 같은 사람들로.

당신은 마침내 피어난 꽃 같은 사람입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태어나 온갖 계절을 견뎌서 활짝 만개한 아름다움. 그 시절, 저의 기억 속의 할머니의 따뜻하고 정겨운 음성으로 당신께 보내는 편지를 맺고싶습니다.

“우리 인간 꽃들아! 자라는 모습이 보기 좋다!”

 

꽃들로 가득한 우리의 집에서

이광연 드림

2023. 7. 4.

 

 


<비틀거리고 있습니다>는 매주 월요일 친애하는 당신을 찾아갑니다. 광연과 해경이 주고 받는 편지 속 친애하는 당신의 삶에서 부디 안식을 찾을 수 있길.

 

에세이 프로젝트 『물성과 해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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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프로젝트 『물성과 해체』는 다양한 예술 분야의 사람들이 자신만의 방식으로 풀어낸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우리는 그 어떤 장르보다 자유로운 형식을 가진 에세이를 통해서 이야기할 것입니다.


때로는 희망차고 때로는 비참할 이야기. 그러나 아마추어처럼 달려들고 프로처럼 진지할 이야기. 변화가 두렵지만 변화해야 할 때도, 견디는 게 지겹지만 견뎌야 할 때도, 우리는 쓰고 있습니다. 그것이 우리의 삶이기 때문입니다.


네, 우리는 영원히 쓸 것입니다. 그리고 영원히 달라질 것입니다. 견딜 때보다 벗어날 때 더욱 성장하는 가재처럼, 벗어남이 무한하다면 영원히 살 수 있는 것처럼, 영원처럼 살고 싶기 때문입니다. 예술처럼 영원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만든 이야기 궁금하지 않으신가요? 


『물성과 해체』의 공간으로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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