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김해경

무드에 관하여 ep.2

서울로 가겠습니다

2023.05.26 | 조회 33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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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성과 해체

에세이 프로젝트 <물성과 해체>

서울로 가겠습니다

문학은 내게 뒷모습만 보여주었다. 나는 그것이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른 채, 줄곧 쫓아다니기만 했다. 얼굴을 보고 싶었다. 표정을 읽고 싶었다. 그러나 그때까지도 뒷모습이 마음의 다른 말이었단 사실을 깨닫지 못했다.

Ⓒ 차서영
Ⓒ 차서영

2017년 8월, 졸업을 앞두고 있었다. 모든 국문학도가 그런 건 아니지만, 대부분 4년 간 배운 문학과 맞춤법은 그저 술자리에서 문과생의 전용 드립으로 활용할 뿐, 그것으로 먹고 살 궁리를 하진 않았다. 나 또한 교직으로 나갈 생각이었다. 고등학교에서 선생님들이 내게 가르쳐주었던 것처럼, 나도 '화자가 의도한 바로 옳바른 것'에 학생들이 잘 도달할 수 있도록 흥미로운 방법을 찾는 길잡이가 되려고 했다. 그러나 마음 한 켠엔, 문학에 대한, 문학을 위한 이야기들이 끊임없이 꿈틀대고 있었다. 나는 이 이야기들을 종종 술자리를 가졌던 학교 밖 문우들과 나누는 것으로 그 갈증을 해소하곤 했다. 주로 했던 이야기는 문학을 하는 이유나, 그것의 제대로 된 정의 같은 고리타분한 내용이었지만, 그 순간 만큼 우리는 문학판에서 생사를 다툰 원로들처럼 치열했고 정력적이었다.

나는 사실 수능시험과 다를 게 없는 임용고시를 치려고 준비하는 과정이 너무 싫었다. 교육학을 공부할 때면 인강 속 강사의 되도 안 한 마인드컨트롤 방법을 통해 나를 다스려야 했는데, 그것 자체가 내게는 고역에 가까운 일이었다. 매일 아침 정확한 시간에 일어나 복습을 하고 오늘 배울 것을 예습한 뒤, 강의를 듣고 모의고사를 풀고, 그것을 다시 복습하거나 핵심개념 노트를 정리한 후 침대에 눕는 패턴. 이 속에서 내가 상상할 수 있는 재밌는 일은 별로 없었다. 조금 숨통이 트였던 시간은 문학사를 공부할 때였다. 국문학 강사는 조금 특이하게 유인물로 논문을 참고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 대학교 4년을 다녀 놓고도, 논문이라는 텍스트가 생소했던 나는 그것에 쉽게 흥미를 가졌다. 문학 작품에 대한 다양한 접근이 열어 놓은 '논리'라는 구조는 문학을 일차원적으로 이해하고 정답만을 추구하는 시험지와는 전혀 다른 문제였고, 이것이야말로 문학 교사가 지녀야 할 상상력이라 생각했다.

그때부터 나는 문학사만 파고 들었다. 1894년부터 2010년대까지 한국문학을 달달 외웠다. 교육실무니 방법이니 과정이니 하는 것들은 일순간에 뒷전이 되었다. 점차 공부에 균형이 무너지기 시작하고, 임용에 대한 권태는 날로 극심해져 갔다. 그러던 어느 날 벤치에 앉아 놀고 있는 내게 동기가 다가왔다. "대학원 가자. 조금만 준비하면 된다." 말도 안 되는 소리라 생각했다. 졸업도 얼마 안 남았고 임용고시 준비에 너무 많은 돈을 지원 받은 상태였다. 그런 나에게 "여기 말고 서울로 가면 부모님도 좋다고 하실 거다."라고 말하는 동기는 지금 생각해보면, 마치 동주에게 몽규가, 혹은 몽규에게 동주가 그리 했던 것처럼 꽤 낭만적이고 대책 없지만 꿈길이라곤 그 길뿐이라고 말해주는 것과 비슷한 맥락이었다.

나는 며칠 고심하다가, 이왕 배운 거 끝까지 배워볼까 하는 마음이 드는 순간 결단하였다. 지도교수님과 국어교육과 교수님께 추천서를 부탁하고, 원서부터 접수했다. 그리고 혼자 서울로 갔다. 면접을 보고 이대에 있다던 위트앤시니컬(시집 전문 서점, 지금은 혜화에 있다)에 가서 시인들을 구경하고, 그 앞에 우동집에서 우동을 먹고 나오는 길이었다. 엄마로부터 전화가 왔다. "어, 나 이대예요." 거기는 왜 갔냐는 물음에, 대학원 면접을 보았다고 말했다.학비 걱정 하지 않아도 된다고, 임용 붙으면 안 갈 거라고, 당시 내 상황으로선 말도 안 되는 허세를 부렸다. 엄마는 일단 알겠고, 당신만 알고 있겠다 하셨다. 그리고 나는 기왕에 떨어질 임용, 제주로 쳐서 엄마랑 여행이나 다녀와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길로 우리는 제주에 갔다. 공부는 하지 않았다. 회를 먹었고, 갈치구이를 먹었다. 소주도 한 잔 했다. 그날 대학원으로부터 최종 합격 통보를 받았다. 나는 남은 시험도 최선을 다할 거라 했지만, 엄마는 알고 있던 듯하다. 후회 없이 치고 오되, 마음 편히 다녀오라 했다.

나는 그 후로 대학원에서 미친 듯이 했다. 아무도 없는 서울에 와서 번호도 바꾼 채, 학교에서만 지냈다. 친구들도, 문우들도 내가 뭘 하는지 몰랐다. 열심히 글을 썼고, 선생님 밑에서 일 하면서 시라는 실체에 다가서려 노력했다. 몇 년이 지나자 학위가 나왔다. 박사복을 입고, 박사모는 아버지 씌워드리고, 온 가족이 교정 곳곳에서 사진을 찍었다. 그날 이후 아버지는 가끔 전화로 말씀하셨다. "여기까지 온 거, 진짜 하고 싶은 것 마음껏 해봐라. 아부지가 다 책임진다." 나는 이 말에 아직도 면역력이 없다. 네, 하고는 울 뿐이다.

몇 줄에 줄여 나의 서울살이가 간단해지기 위하여, 나는 수없이 증명해야만 했다. 내게 여전히 완전한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 문학은, 그러나 이 일이 평생 이어진다 할지라도 나를 포기할 줄 모르는 문학도로 이끄는 원동력이다. 뒷모습 뿐인 문학일지라도 이제 그것이 웃고 있는지 울고 있는지, 나는 어깨 너머로 가늠할 수 있다. 그것의 얼굴과, 그것의 표정은 다름 아닌 나의 얼굴이요, 표정이요, 마음이라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가끔은 여기로 오는 게 아니었을 수도 있다는 생각도 든다. 허름한 방안, 굴러다니는 술병과 쌓인 빨래들. 그리고 정리되지 않는 책상과 책탑들. 그런 걸 볼 때면 말이다. 조금 더 정확한, 혹은 올바른 길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어떻게든, 나는 오게 되었다. 그리고 지금 내 앞으로 내질러 나가는 수많은 뒷모습들을 본다. 이게 현실이다. 누군가는 현대라고도 하고 또 누군가는 생활이라고도 하는, 문학의 실체이다. 그들과 발맞춰, 나는 노력하여야 한다. 맨 마지막에 내리는 사람이어야 한다. 비로소 문학이 존재하는 이유를 위해서.

Ⓒ 차서영
Ⓒ 차서영

"누나의 사진과 나의 글, 생각만 해도 좋지 않아?" <무드에 관하여>는 차서영 작가의 사진과 김해경 작가의 글로 구성된 사진에세이 단편입니다. 매주 수요일과 금요일 밤에 찾아옵니다.

 

에세이 프로젝트 『물성과 해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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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프로젝트 『물성과 해체』는 다양한 예술 분야의 사람들이 자신만의 방식으로 풀어낸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우리는 그 어떤 장르보다 자유로운 형식을 가진 에세이를 통해서 이야기할 것입니다.


때로는 희망차고 때로는 비참할 이야기. 그러나 아마추어처럼 달려들고 프로처럼 진지할 이야기. 변화가 두렵지만 변화해야 할 때도, 견디는 게 지겹지만 견뎌야 할 때도, 우리는 쓰고 있습니다. 그것이 우리의 삶이기 때문입니다.


네, 우리는 영원히 쓸 것입니다. 그리고 영원히 달라질 것입니다. 견딜 때보다 벗어날 때 더욱 성장하는 가재처럼, 벗어남이 무한하다면 영원히 살 수 있는 것처럼, 영원처럼 살고 싶기 때문입니다. 예술처럼 영원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만든 이야기 궁금하지 않으신가요? 


『물성과 해체』의 공간으로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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