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애하는 당신에게
어푸어푸, 당신 덕분에 숨쉬는 요즘
나에게는 기쁜 일이 하나 생겼어요. 제가 좋아하는 단 한 사람과 한 집에서 같이 살게 된 거예요. 내 인생에는 걸맞지도 않아 너무 큰 일이에요. 할 일을 끝내고, 그러니까 맞지 않는 퍼즐조각을 억지로 끼워 맞추거나 맘에 들지 않는 옷을 입어야 하는 일처럼 나를 주무르고 찢어내는 이 세계에서 다시 온전한 나로 되돌아갈 수 있는 집이 생긴 거예요.
저녁엔 집 앞에서 같이 맥주를 마시기도 하구요. 강변을 걷기도 하구요. 너무 지친 날엔, 아무것도 먹지 않고 노트북 하나 켜두고 이런 저런 영화를 돌려보다가 서로 기대어 잠들기도 해요. 당신에겐 이미 익숙할 법도 한 일들이지만, 이런 사소한 일상이 내게는 너무 생경하고 생생해요.
그동안 나는 깜냥도 없으면서 거대한 것들과 싸우고 다니곤 했어요. 대부분 실체 없는 적들이었지만, 그것들이 가끔은 실체보다 더 선명한 물성으로 다가와 나를 울리고, 겁주고, 다시 사랑으로 보듬어 갈 때. 내가 할 수 있었던 건 글을 쓰는 일뿐이었는데, 글 속에서 그것들을 아무리 도륙내어도 웃을 수가 없었는데. 이젠 글을 쓰지 않아도 슬프지 않구요. 글을 쓰지 않아도 잘 웃을 수 있구요. 글을 쓰지 않아도 많은 날들을 괴롭힘 당하지 않고, 나답게 살고 있어요.
이건 그리 좋은 일은 아닐까요? 작가를 그만둔다는 건 아닌데...! 무튼 기분이 좋아요. 하나의 장소, 한 명의 사람. 모든 답은 여기에 있었다는 기분이 종종 들어요. 어쩌면 당신이란 거울 너머로 들여다볼 수 있었던 가족이라는 의연함, 그리하여 진정 사랑을 알고 진정 사랑으로 대했던 당신의 나날을 나는 경외하고 있었던 걸지도 몰라요.
누구든지, 무엇이든지 업신여기고 마는 이 자만한 마음으로부터 나를 구원해준 당신에게.
앞으로도 안부를 전해주세요. 어푸어푸,
나는 숨 쉬고 있을게요.
2023. 6 .27
새 곳
김해경 드림
<비틀거리고 있습니다>는 매주 월요일 친애하는 당신을 찾아갑니다. 광연과 해경이 주고 받는 편지 속 친애하는 당신의 삶에서 부디 안식을 찾을 수 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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