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며 | 노가리를 앞에 두고
한 쌍의 청혼
나이를 먹었음을 깨닫게 하는 몇 가지의 단서가 있다. 매일 오르던 언덕을 단숨에 오르지 못하고 한숨을 골라야 한다거나, 넘어져서 까진 곳이 잘 낫지 않는다거나. 그런데 그보다 ‘이제는 정말 물러설 곳이 없구나’ 싶은 결정적 단서는 지인들의 결혼 소식을 전해 듣는 일이 많아졌을 때. 인생을 잘 살아온 것인지, 혹은 받은 만큼 뱉어 내야 하는 것인지 청첩장이 수북이 쌓여 간다. ‘결혼 적령기’라는 말이 이제는 정말 눈에 띄게 체감할 수 있는 무시무시한 무언가가 되어버렸다.
결혼 적령기에 접어 들어서 일까. 유튜브에 결혼 관련 영상이 알고리즘으로 등장하는 일이 늘었다. 대부분은 ‘포기해야겠다’ 생각이 드는 뉴스 기사와 가십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희망을 품게 만드는 영상이나 음악도 있다. 그중 하나가 바로 청혼에 관련된 영상과 음악이다. 특히 청혼을 다루는 음악들은 ‘아, 꼭!’ 하고 결심하게 만드는 설렘과 설득력이 있다.
한참 청혼의 설렘을 따라가다가 찾게 된 것은 가수 이석훈과 유연정의 <Marry me>와 <Marry you>의 라이브였다. 이 라이브에서 ‘비 내리는 날에 우산이 돼 주고’로 시작하는 이석훈의 세레나데를 유연정은 ‘나는 서툴지만 세상의 예쁜 말만 당신에게’라고 응답한다. ‘나와 결혼해 줄래요’라는 가사로 노래는 끝이 나고, 두 사람은 마주 보며 싱긋 인사한다. 세레나데를 통한 청혼이다. 이 영상을 감상하다가 불현듯 떠오르는 시들이 있었다. 바로 진은영 시인의 <청혼>과 배수연 시인의 <청혼>이다.
두 시에는 묘한 대척점이 있다. 비가 은색 드럼을 치는 것처럼 손바닥을 두드리는 여름과, 피어오른 수증기가 머리에 폭설로 내려앉는 겨울. 새의 둥지를 부수지 않고 너를 꼭 안아 줄 수 있을까라는 물음과 오래된 거리처럼 너를 사랑하겠다는 다짐. 마치 겨울을 지내고 있는 사람이 여름을 지내고 있는 사람에게 고백하듯이. 여름에 서 있는 사람이 겨울에 서 있는 사람에게 화답하듯이. 다른 배경의 두 사람이 마주 보며 서로를 알아보고 있다.
제목만을 공유하고 따로 쓰인 시지만, 왠지 서로가 서로에게 청혼하는듯한 기분이 든다. 그러니까 언어의 세레나데인 시를 통한 한 쌍의 청혼. 두 시를 포개어 놓으면 왠지 서로 다른 그림의 데칼코마니를 이루는 것 같다. 결혼 또한 이와 같지 않을까. 결혼은 서로 다른 두 사람이 하나의 캔버스로 진입하는 의식이고, 청혼은 이 그림을 그리기 위한 서로의 언약인 것이다.
청혼에 관련된 유명한 시인의 이야기가 있다. 아일랜드의 국민 시인 W.B.예이츠(William Butler Yeats)의 이야기. 예이츠는 28년에 걸쳐 단 한 사람에게 다섯 번의 청혼을 했지만 모두 거절 당했다고 한다. 28년 동안 예이츠의 청혼을 거절했던 여인 모드 곤(Maud Gonne MacBride)은 자신이 예이츠의 청혼을 받지 않았음을 세상이 고마워할 것이라고 말했다고. 그렇게 한 여자를 위해 쓴 잔을 마시려 했던 예이츠는 결국 인류를 위해 쓴 잔을 마시게 된 것이다.
가장 아름다운 시를 썼던 예이츠 같은 시인마저도 청혼에 실패했다는데 문득 ‘나 같은 게?’ 라는 고민에 빠진다. 그러나 여전히 꿈이다. 누군가에게 매일매일 선물을 주고 싶은 날들을 보내는 것. 내가 나를 찾는 술래였던 시간을 그에게 돌려주고 싶은 것. 누군가에게 청혼을 한다면, 혹은 받는다면 우리는 두 편의 시로 언약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니까 사랑은, 사랑을 통한 결혼은 다른 계절을 살던 이들이 만나 서로를 마주 보는 일. 오래된 거리와 지친 헝겊을 바라보듯 서로를 알아봐 주고, 그 곁에서 눈을 깜빡깜빡 입맞춤을 하는 일. 언젠가 그런 날이 온다면 두 편의 시를 잘 포개어 나의 설렘을 전해주고 싶다.
아, 드디어 붙잡혔네. 이제 내가 너를 붙잡을 술래가 될 차례야. 너의 팔에 그 시간을 모두 적어 줄게. 너에게 할 말이 있어. 조금만 조금만 가까이 와봐.
나와
결혼해 줄래요?
진은영, 「나는 오래된 거리처럼 너를 사랑하고」 (문학과 지성사, 2022)
배수연, 「조이와의 키스」 (민음사, 2018)
김슬기 작가의 <시와 노가리>는 노릇노릇하게 잘 구워진 노가리를 앞에 두고 술잔 대신 시집을 듭니다. 술 대신 시를 나눕니다. 매주 일요일 저녁, 시에 취해 보는 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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