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애하는 당신에게.
잘 지내시나요. 보내신 편지는 잘 받았습니다.
말씀처럼 어느덧 신록의 계절이네요. 거리엔 각양 각색 꽃들이 아름답게 피어나고 초록빛 나무와 풀들의 싱그러움으로 한창인데 편지를 읽는 당신의 삶에도 새로운 푸르름이 찾아왔는지 궁금합니다.
저에게도 매일 푸르름으로 자라나는 존재들이 있습니다. 새순처럼 아직 작고 어린 녀석들이죠. 아이들은 길을 가도 그냥 지나치지 못합니다. 자신의 일상을 무심히 살아가는 생명들에게 쉽게 눈길을 빼앗깁니다.
“아빠 이것 봐! 민들레 씨야! 내가 불어볼게!"
홀씨 가득한 민들레는 좋은 관찰 대상입니다. 후- 하고 불어 휘날리는 씨앗들이 아이들의 눈동자에 비치면 그 순간이 어느새 제 마음에 닿아 살아갈 용기로 심어집니다.
불가항력입니다. 제발 그곳에 뿌리내리지 말아라 하셨죠. 비틀거리는 존재의 무성한 여름을, 볼품없는 씨앗의 흩날림을 막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작고 미약한 아이들의 입김에 쉽게 흐드러지는 모습이지만 그럼에도 살아내라 명령받은 존재들은 소소한 외력에도 거리를 수놓습니다.
당신도 그럴 겁니다. 등 떠미는 바람에 한 줌 땅 찾아 이리저리 헤매고 결국 뿌리내리는 민들레 씨처럼 어느새 시작된 삶에 한 뼘 비빌 곳을 찾아 헤매는 거겠죠. 김이 나도록 애태워야 간신히 살아내는 일상에 무언가 들이붓고 취해서야 살아내는 거겠죠.
그런 모습으로 우리가 만난 것 같습니다. 비틀거리다 기댄 우연으로 어느새 사람이라는 형상을 이룬 것 같습니다.
생애 주기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삶이 일정한 주기를 가지고 원처럼 돌아간다는 의미예요. 우리는 원을 그리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언젠가 당도할 종착지를 향하여 나그네 살듯 흘러가고 있었습니다. 굴렁쇠처럼 돌아가는 삶은 원 밖의 원을 쉽게 맞닥뜨리지 못합니다. 무슨 이야기냐고요. 원을 그리며 고유의 세계를 살던 우리가 만난 건 기적이라고요. 민들레 홀씨가 우연히 날아와 뜻밖의 장소에 뿌리내리듯.
우리는 작은 바람의 손짓에 만나 멋진 교집합을 그리게 되었습니다.
웃기는 일입니다. 제가 당신을 언제 봤다고 이리도 애틋이 생각하다니요. 그러기에 더 아름답습니다. 이해할 새 없이 떠오른 '함께'라는 수식어가. '나'와 '당신'이 허물어지고 비로소 '우리'를 이루게 된 맞닥뜨림이 형용할 수 없기에 찬란합니다.
쓰레기 더미에도 아름다움을 찾는 시선은 눈동자의 주인을 아름답게 만든다고 합니다. 겹쳐지는 삶이 구겨진 종이처럼 버려지기 직전이라도 우리를 우리로 바라보는 시선에 아름다움으로 화하기를. 어느 순간 날아온 민들레 홀씨처럼 홀연히 심어져 언젠가 오늘의 삶을 푸르게 물들이기를.
당신 위해 조심스레 두 손 모아 바랍니다. 오늘도 생계 나서는 시작의 발걸음 앞에 찬란히 물드는 마음으로.
2023.05.22.
새벽의 거리에서
이광연 드림
<비틀거리고 있습니다>는 매주 월요일 친애하는 당신을 찾아갑니다. 광연과 해경이 주고 받는 편지 속 친애하는 당신의 삶에서 부디 안식을 찾을 수 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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