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강나리

플레이리스트, 끄적 ep. 1

제휘, <Dear Moon>

2023.08.19 | 조회 27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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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성과 해체

에세이 프로젝트 <물성과 해체>

이 노래와의 첫 만남을 되짚어 본다. 아주 오래 전, 찰나의 우연이었다. 시간이 지나 이 노래가 내가 동경하는 가수의 작사곡이란 것, 또 그녀가 출연한 드라마의 ost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몇 년 뒤 뒤늦게 그 드라마를 전부 감상하게 된 후 다른 많은 이들이 그렇듯 인생 드라마로 꼽지만, 이 노래는 어째선지 드라마와 별개로 혼자서 맴맴 돈다. 보통 좋아하는 드라마의 ost를 들으면 드라마의 어떤 장면이나 분위기가 떠오르기 마련인데, 이 노래는 아직까지도 고요 속에 오롯이 말을 건다. 전주 없이 제휘의 미성으로 “Dear moon-"하고 여는 노래. 편지지의 첫 머리 그 시작을 듣자면 나는 언제고 아득한 밤하늘의 한가운데로 걸어간다.

유독 생각이 많은 날 밤, 나도 모르게 달에 말을 걸어본 경험은 누구나 있을 게다. 우리는 태양에는 좀처럼 빌지 않는 소원을 달에는 빌곤 한다. 손을 모으고, 달님, 하면서. 아주 오랜 시간 달은 우리 푸념의 훌륭한 청자이자 아늑한 상담소였다. 학습이 필요없는 본능에 가까울 정도로 달은 그 존재 자체로 참 사랑스럽게 느껴진다. 그렇게 우리 모두의 첫사랑은 달이 된다.

어린 날의 당신은 나에게 그런 존재였다. 가장 어두운 날 아주 오래도록 눈을 맞춰주더니 홀린 듯 다가가면 터무니없는 소리라 했다. 내 밤하늘에 뜬 내 달, 영영 닿을 수 없는 그 잔인한 따스함에 원망하며 울던 날들을 뒤로 하고 어느 샌가 당신 얼굴의 얼룩을 어루만져주고 싶다는 생각을 하면서부터 나는 사랑을 배워나가기 시작했다. 그런 내 모습이 당신에게도 당신만의 달빛이 되어 가 닿았을까. 허공을 쓰담는 내 외로운 손이 건네는 위로를 알았을까.

우리는 살아가면서 많은 달을 마주한다. 아주 멀리 있어 내 온 몸과 마음을 다 바쳐도 절대 닿을 수 없는 사람, 사랑... 그 앞에 쉬이 초라해지곤 한다. 가질 수 없어 차라리 도망치려 해봐도 그 뒷통수를 달은 비춘다. 그렇게 우리는, 소유하지 않는 존재 그 자체의 가치를 배운다. 무릎 사이 고개를 박고 있던 내가 고개를 들 수 있게 해준, 그 아름다움에 매료되는 동안 잠시 고통을 잊게 해준 그 고마움에 대해서. 그리곤 더 이상 가질 수 없음에 초라해지지 않아도 됨을 깨닫는다.

첫사랑 달은 어린 날 내 욕심에도 지금껏 나와 함께해주었다. 이젠 내가 그를 닮으려 글을 쓴다. 눈을 맞출 수 있도록 은은한 빛깔만을 골라 입고 늘 같은 자리에서 위로를 건네 줬던 숱한 밤처럼, 언젠가 내 고개를 들게 해준 총명한 하얀 빛처럼 써서, 누군가의 밤하늘에 떠올라야지. 다소 얼룩이 많아 희미한 빛이라도 절실한 이의 밤하늘에.

오늘의 달님은 구름 뒤로 살폿 숨었네. 이 장마가 끝나면 그를 더 자주 볼 수 있으면 좋겠다. 그 때는 창을 더 부지런히 열고 밤산책을 더 부지런히 하며 그간의 안부를 물어야지. 보지 않아도 선명한 그 얼굴을 떠올리며, 오늘은 일찍 잠자리에 들어야겠다.

 

제휘, <Dear Moon> Album Cover
제휘, <Dear Moon> Album Cover

글 쓰는 이들에게 사랑은 여름날의 장맛비 같은 건가 보다. 누구나 알지. 사랑이 살아가는데 얼마나 중요한 건지. 그러나 너무 많이 알게 돼서, 한 번 짓물려버리면 어쩔 줄 모르는 마음도 신경을 써주나? 그런 마음은 어디 가서 치료를 받나? 물성과 해체에서 새롭게 선보이는 강나리의 에세이는 이런 물음에 답할 수 있을 것 같다. 그가 쫓아갔던 음악에 우리도 몸을 풀고 자유롭게 헤엄치며, 사랑에 대해 배워 보자. 또 아는가. 지루했던 여름인 줄로만 알았던 오늘에 새로운 길이 보일지.

에세이 프로젝트 『물성과 해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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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프로젝트 『물성과 해체』는 다양한 예술 분야의 사람들이 자신만의 방식으로 풀어낸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우리는 그 어떤 장르보다 자유로운 형식을 가진 에세이를 통해서 이야기할 것입니다.


때로는 희망차고 때로는 비참할 이야기. 그러나 아마추어처럼 달려들고 프로처럼 진지할 이야기. 변화가 두렵지만 변화해야 할 때도, 견디는 게 지겹지만 견뎌야 할 때도, 우리는 쓰고 있습니다. 그것이 우리의 삶이기 때문입니다.


네, 우리는 영원히 쓸 것입니다. 그리고 영원히 달라질 것입니다. 견딜 때보다 벗어날 때 더욱 성장하는 가재처럼, 벗어남이 무한하다면 영원히 살 수 있는 것처럼, 영원처럼 살고 싶기 때문입니다. 예술처럼 영원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만든 이야기 궁금하지 않으신가요? 


『물성과 해체』의 공간으로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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