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김해경

비틀거리고 있습니다 ep.3

테러리스트

2023.05.29 | 조회 35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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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성과 해체

에세이 프로젝트 : 글을 매개로 맺어질 수 있는 삶과 사람,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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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애하는 당신에게

불가항력이라는 당신의 말처럼 여름이 오고야 말았어요. 사흘 동안 비가 내렸습니다. 나는 금붕어처럼 수면 위로 간신한 입술을 띄워 놓은 채 삶을 바라고 있습니다.

갑자기 무서운 생각이 들었거든요. 지금 벌여둔 모든 것들이 부질없는 일은 아닐까요? 사람들이 원치 않을 수도 있는 이 일을 계속 해도 되는 걸까요? 우산을 써도 찝찝하게 젖어버리고 마는 옷소매처럼, 두손 모아 사양하는데도 내 슬픔을 내 만족을 위해서 사람들에게 강요하고 있는 건 아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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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기우는 그러나 꽤 과학적이에요. 마치 손톱달 끝에 샛별이 걸리는 몇천 년만의 확률처럼요. 결단코, 제가 나약해지거나 소심해져서 하는 걱정은 아니에요. 사람은 기본적으로 희망찬 존재라는 사실을 저도 믿어요.

그렇기에 누군가 부정적인 이야기를 한다면, 그것을 고쳐주고 싶어하는 욕망을 갖기 마련인 거겠죠. 하지만 글이란 건 이미 결정적이에요. 나는 쓰고 나서, 사람들과 멀리 떨어진 곳으로 도망왔어요. 그래서 아무도 나로부터 그 욕망을 실현시킬 수 없어요.

이토록 후미진 동네에서, 고집스런 내 슬픔을 애써 예술이란 말로 치장하고, 그것을 수취인불명으로 동봉하여 보내는, 말하자면 이것은 불특정 테러 같은 일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주 희박한 가능성으로 효용이 있다고 믿는 저는 그릇되고도 남은 거겠죠? 이제는, 기우가 아니라 확신이라 말해야겠군요.

이 확신에 찬 부질 없음을 당신께 전하는 일 또한 일종의 테러 같아서 마음이 무겁습니다. 입 속으로 말할 수 없이, 숨 쉴 수 없이. 다량의 회한과 죄책감이 쏟아집니다.

그러나 답신을 주신다면. 제 터무니 없는 공격에도 당신이 기꺼이 살아남아 생존을 신고해 주신다면 난 너무도 기쁠 거 같아요.

추신. 당신의 아이가 고운 숨결로 불어올린 홀씨가 영원히 건강하길 빌어요.

2023.5.29.

103-278에서

김해경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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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틀거리고 있습니다>는 매주 월요일 친애하는 당신을 찾아갑니다. 광연과 해경이 주고 받는 편지 속 친애하는 당신의 삶에서 부디 안식을 찾을 수 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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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성과 해체는 글을 매개로 삶과 사람, 그리고 사랑을 잇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가능한 일이라고 믿는 사람들이 모여 글을 쓰고 있습니다. 오래도록 방황했습니다. 잡으면 물성이 되지만, 놓치거나 놓쳐야만 했던 일들은 사랑을 다- 헤쳐 놓았습니다. 우리는 각자의 자리에서 사랑의 전리품을 줍습니다. 자기만의 방식으로요. 그리고 여전히 방황- 입니다. 그러니 안심하세요. 또 찾아 오겠습니다. 

물성과해체 김해경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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